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그건 통역기가 번역해 준 인사가 아니었다.
천해선은 익숙한 프랑스말로 인사를 건넸고, 프랑코는 다시 한번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어떻게.
‘지옥의 계단’ 던전 입구에 온 건 즉흥적인 판단이었다.
사전에 일정을 잡은 것도 아니고, 천해선과 약속을 잡은 건 더더욱 아니었다.
혼란에 빠져 있는 프랑코를 향해, 천해선이 빙글거리며 말을 이었다.
“프랑스에도 이런 말이 있는지 궁금하네.”
한 발자국씩 천천히, 천해선이 프랑코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범인은 반드시 현장에 되돌아온다. 한국에는 그런 말이 있지.”
“……!!”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천해선의 입꼬리가 하늘까지 승천해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프랑코는 정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던전 주변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말.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안 그래도 궁금해서 안달이 난 자신을 끌어내기 위한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당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 범행 현장을 찾아온 프랑코.
천해선은 그의 심리를 이용해 덫을 놓았고, 프랑코는 그 덫을 보란 듯이 덥썩 물어 버렸다.
여기 와서 특별한 소득을 얻지 못할 거란 걸 예상하면서도 그는 이곳에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호기심.
그 망할 놈의 호기심 때문에.
빠득.
입은 떼지 않았지만 이를 가는 소리가 천해선의 귓가에 똑똑히 전해졌다.
남들이 듣기에는 듣기 거북한 소리지만, 그에게는 천상의 하모니처럼 달콤하게 들렸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자꾸 거짓말만 늘어서 큰일이야.”
첸에 이어서 프랑코까지.
늘어야 할 에테르는 그대로인데 구라력(?)만 나날이 상승하는 현 상황에 천해선은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물론, 프랑코가 느끼기에는 아주아주 거북한 미소였다.
“여기서 네가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혹시나 안 오면 어쩌지 하고 말이지. 하지만 역시 사람은 죄를 짓고 못 사는 법인가 봐.”
바늘.
수천, 수만 개의 바늘이 날아와 자신의 몸을 찌르는 것 같다.
이것은 살기인가, 투지인가.
확실한 건, 천해선의 흉흉하기 짝이 없는 에테르가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궁금하지? 내가 어떻게 백사를 무력화시켰는지.”
“…….”
프랑코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았다.
바로 그 점이 궁금해서 출국 전날 밤에 이곳에 찾아오지 않았던가.
“백사에게 물리긴 물렸어. 아주 많이. 근데 뭐, 좀 따갑고 말더라고.”
“mensonge(거짓말)!!!!”
프랑코가 더는 참지 못하고 목청을 높였다.
말려 올라간 그의 갈색 콧수염이 파르르 떨릴 만큼, 그의 얼굴은 격정으로 뒤덮여 있었다.
“개소리도 적당히 해야지! 백사에게 수십 방을 물려 놓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어! 한 번 속지, 두 번은 속지 않는다!”
“그거 유감이네.”
때로는 사실을 알려 줘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있다.
실제로 천해선은 수십 마리의 백사에 물렸고, 버텨 냈다.
단지 상대방이 그게 불가능하다 여기고 있을 뿐.
천해선은 진심으로 프랑코를 향해 유감을 표했다.
“널 강제로 끌고 가서라도 원인을 밝혀내겠어. 던전에서 어떤 요상한 수를 부렸는지. 또, 구건이를 어디로 데려갔는지……!!”
“그것도 유감이네. 난 구건이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데.”
“웃기지 마.”
저 자식은 왜 아까부터 사실을 믿어 주지 않는 거야?
천해선은 억울했지만 일단 가만히 있기로 했다.
놈이 은근슬쩍 재롱을 부리는 짓이 귀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부르르…….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에 뒤덮여 있지만, 오감이 발달한 천해선에게는 똑똑히 보였다.
놈의 발밑에서부터, 아주 작은 입자의 자색 안개가 이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신중하고 은밀하게.
‘오호.’
이제 보니 놈이 과하게 흥분하는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시선을 분산시켜 기습을 할 생각.
내 말에 화를 내는 건 소위 ‘찐텐’에 가까워 보였는데, 한편으로는 그 감정을 이용하려고 하다니.
괜히 나라를 대표하는 ‘S’랭커가 아니군.
천해선은 그런 생각을 하며 모른 척 질문을 던졌다.
“말하는 걸 보니 나를 납치라도 하려는 것 같은데, 국제 헌터법상 그건 중범죄야. 자신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아는 건가?”
“그거야말로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 넌 분명 부정한 방법으로 기록을 날조했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여섯 명이서 5층을 돌파하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부정한 방법이라니.
내가 거기서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천해선은 히죽 웃으며 양쪽 어깨를 슬쩍 들어 올렸다.
“뭐…… 다들 그렇게 자기가 가진 시야만큼만 생각을 하는 법이지.”
그 말에 프랑코의 콧수염이 또다시 파르르 떨렸다.
자신을 꾀어내어 이 자리에 나오게 만든 것도 그렇고, 입을 열 때마다 사람 속을 박박 긁는 재주가 뛰어난 놈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다.’
사실 프랑코는 던전 공략에 특화된 에스퍼지, 헌터들 간의 싸움에서 쉽게 우위를 접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특히나 무지성으로 달려드는 전사들에게는 자신의 ‘딥슬립’을 사용할 새도 없이 선공을 허용하곤 했다.
그래서 프랑코는 자신만의 확실한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한편, 은밀하게 ‘딥슬립’을 상대에게 보내는 전략을.
천해선에게 화가 난 것은 100% 진심이었지만, 그러면서도 프랑코는 본능적으로 ‘딥슬립’을 상대의 주변까지 퍼트리는 데 성공했다.
혹자가 보면 왜 저렇게 떠벌거리나 싶은 모습이, 알고 보면 그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로이가 ‘보고도 못 막는’ 에테르의 실을 뿌렸다면, 프랑코의 ‘딥슬립’은 ‘알고 나면 당할 수밖에 없는’ 공격 방식이었다.
어느새 자색 안개가 천해선의 허리를 감싸기 시작했고, 천해선은 아는지 모르는지 얄미운 웃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성공이다……!’
한번 몸에 달라붙은 ‘딥슬립’은 어지간해서는 벗겨 낼 수 없다.
차라리 대기 중의 공기를 베어 가르는 편이 쉬울 것이다.
프랑코의 표정은 어느새 득의만만한 얼굴로 변해 있었다.
“코를 골다 일어나서 네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군.”
“코를 골아? 지금이 잘 시간이긴 하지……. 하암.”
천해선이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한다.
그 천연덕스러운 모습에 프랑코의 머리 위로 물음표 하나가 떠오른다.
‘진짜 졸린 거야, 아닌 거야?’
‘딥슬립’은 어느새 천해선의 몸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다.
당연히 하품이 나와야 정상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 모습에 진심이 담겨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되려 자신을 놀리는 것만 같은 느낌.
프랑코는 마음이 급해졌지만, 일단은 사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치유 능력이 뛰어난 헌터의 경우, ‘딥슬립’에 조금 더 버티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뭘 기다리는 거야?”
“……!”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지만, 천해선에게는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프랑코는 혼란스러웠다.
정말로 ‘딥슬립’ 때문에 몸이 움직이지 않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만있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십 년이 넘게 스킬을 사용해 봤지만, 상대 헌터에게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 처음이었다.
헌터? 아니 보스 몹을 상대할 때도 이런 위화감은 느껴 본 역사가 없었다.
“조금 나른한데. 잠도 깰 겸 재밌는 이야기를 해 줄까?”
“……곧 죽을지도 모르는 놈이 말이 많군.”
“들어 봐. 진짜 재밌는 이야기니까.”
천해선은 히죽거리다 못해 킬킬거렸고, 그 모습에 프랑코는 다시 한번 불쾌감을 느껴야만 했다.
“로이 히들스턴이 반병신이 돼서 영국으로 돌아갔잖아. 그때 내가 뭘 했을 것 같아?”
“…….”
그거야 프랑코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가 접한 정보라고는 ‘로이와 천해선이 비무를 벌였고, 궤멸적 타격을 입은 로이 때문에 영국 대표팀은 던전 공략에서 철수했다’는 것뿐이었으니까.
그 안에서 어떤 대결이 있었는지는 단 한 줄의 보도도 없었다.
그래서 프랑코도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Contact’라는 강력한 기술을 가진 로이가, 어째서 천해선에게 힘 한번 쓰지 못하고 박살이 났는지 말이다.
“난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백사가 내 몸을 물었던 것처럼, 콘택트의 실이 내 몸에 꽂히도록 내버려 두었지.”
“또다시 허풍을 늘어놓으려는 건가?”
“조금 전부터, 네가 하고 있는 수작질처럼.”
“……!!”
이미 알고 있었구나……!
서늘한 감각이 프랑코의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한 걸음.
천해선이 한 걸음을 프랑코 쪽으로 옮겼다
“나는 같은 에스퍼 타입이랑 상대하는 게 너무 좋아. 그게 불이든, 염력이든, 질 떨어지는 수면 가스든 간에.”
자신의 ‘딥슬립’을 격하하는 발언에도, 프랑코는 무어라 지껄일 수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압박감이 그의 온몸을 쿡쿡 쑤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에테르의 질로 승부를 보면 되거든. 손 하나 까닥 안 하고 이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편한 방법이 어디 있어?”
하얗던 천해선의 피부가 붉게 변한다.
까칠한 인상이 빨간 얼굴로 보이니 마치 지옥에서 온 악귀처럼 느껴진다.
갑자기 녀석의 얼굴 톤이 바뀐 이유가 뭘까.
‘잠깐…….’
붉게 변한 건 비단 천해선의 피부색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시야에 보이는, 그 모든 것들이 붉게 변해 갔다.
잘못된 건 눈앞의 세상이 아니라, 중독되어 버린 자신의 눈에 있었던 것이다.
“우웨엑!!”
급격히 밀려오는 구토감에 프랑코는 자신이 먹은 걸 전부 게워 내야 했다.
분노와 공포, 두려움과 황당함이 그의 전신을 덜덜 떨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땅만 쳐다보면 알 수가 없잖아. 사실을 말해도 믿어 주지 않으니, 직접 확인해 봐.”
안 그래도 확인해 볼 참이었다.
금방이라도 잠에 취해 뒤로 넘어가야 할 천해선은 멀쩡히 서 있고, 되려 자신이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고통에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그는 핏발 선 눈으로 눈앞의 광경을 쳐다보았고, 곧 기절할 것 같은 충격에 사로잡혔다.
‘잠식당했다……!!!!’
자신이 흩뿌렸던 안개들이,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었다.
자색이었던 빛깔이 언제 그랬냐는 듯 검붉은 빛으로 천천히 변해 버린 것이다.
그가 천해선을 향해 사용한 ‘딥슬립’ 스킬이, 되려 자신의 목을 조이는 형국이었다.
“이익……!!”
프랑코는 다급하게 자신의 스킬을 회수했다.
회수?
아니, 그냥 바닥에 던져 버렸다.
평상시 같으면 에테르의 보전을 위해 거두어들였겠지만, 검붉은 색으로 변해 버린 ‘딥슬립’은 더 이상 에테르도 무엇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몸을 망치는 독, 맹독일 뿐.
그러나 발버둥 치는 프랑코의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는 그를 더욱 절망 속에 몰아놓았다.
“이미 늦었어.”
천해선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중독 상태에 빠진 프랑코의 망가진 신체가.
이대로 몇 분만 놔두면 화타가 살아 돌아온다 한들 녀석을 고칠 길은 없다.
‘죽여 버려도 그만이지만, 그걸로는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
괘씸한 녀석이긴 하나 이용할 가치는 있다.
천해선은 천천히 무릎을 숙여 프랑코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바닥에는 이미 녀석이 뱉은 핏물이 흥건한 상태였다.
프랑코의 혈색은 이제 초 단위로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러니 잘 파악했어야지. 내가 다중 능력자라는 걸 잊었어?”
다중 능력자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이렇게 강할 줄 몰랐을 뿐.
에스퍼가 발동한 스킬을 역으로 삼켜 온다?
그건 프랑코가 헌터 밥을 먹기 시작한 이후로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해괴한 스킬이었다.
“어떻게…… 그런…….”
이제는 문장 하나를 제대로 말하지 못할 만큼 신체 기관이 무너져 있었다.
프랑코 또한 산전수전 겪어 본 베테랑이니만큼, 자신이 처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자신은 곧 죽는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붕괴를 일으키는 느낌.
죽어서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통이 그의 몸 이곳저곳에서 폭주하고 있었다.
천해선이 병마 중에 겪었던 흔한 고통일 뿐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생전 처음 겪는 생지옥인 것이다.
프랑코는 얼마 남아 있지 않은 힘을 모두 끌어모아 최후의 한마디를 남겼다.
“살려…… 줘…….”
“……흠.”
천해선이 심각한 고민을 한다는 양 입맛을 다신다.
그 찰나의 순간에도 프랑코는 혼절할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좋아. 살려 주지.”
굴욕스럽지만, 그때만큼은 천해선이 둘도 없는 메시아처럼 느껴졌다.
피를 홍수처럼 쏟아 내는 프랑코를 향해, 메시아가 따듯한 미소를 지었다.
“대신 지금부터 묻는 말에 대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