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201)
201화
“여긴 그대로네.”
초월급 헌터들이 대부분 습격을 받은 걸 생각하면, 이곳 암시장은 평온한 느낌이 들 만큼 변화가 없었다.
문을 열어 주는 감시자의 얼굴도 그대로였고, 여전히 상점 안팎으로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잉센.”
“음?”
“생각해 보니 궁금해. 네 말대로 야차가 초월급 헌터라면, 왜 그놈은 아무런 공격을 받지 않은 거지?”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워 봤어. 가장 그럴듯한 게 두 가지 정도 남더군.”
“두 가지? 뭔데?”
잉센의 안경이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하나는 소재 파악이 불분명하다는 점이야. 다른 초월급 헌터들은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지역에 있었어. 이사순 회장의 경우에도…… 변고를 당한 게 한국 헌터 협회 본사 건물이었지. 하지만 야차는 달라. 그가 평소에 어디에 있는지, 어디를 왔다 갔다 하는지는 같은 파이브 사이더스조차 알기가 힘들거든. 암시장에서조차 일주일에 한두 번 얼굴을 비추는 사람이니까.”
“일리가 있네.”
물론 찾으려고 하면 방법은 있었을 거다.
이곳 암시장을 모두 쓸어 버리고 야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그만일 테니까.
하지만 녀석들이 초월급 헌터를 죽인 과정은 하나같이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졌다.
아마도 크라수스 드래곤이 말한 ‘차원 간섭’ 때문일 터.
그런 의미에서 야차는 처치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존재라 할 수 있었다.
“나머지 하나는?”
“좀 더 간단한 이유야. 야차가 너무 강해서 처치할 수가 없었던 거지.”
“흠. 그것도 일리가 있네.”
스스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나는 단기간에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가진 거라곤 독밖에 없는 헌터가 2년 만에 메루스를 가진 다중 능력자가 되었으니 오죽할까.
처음 야차를 만난 날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단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야차를 대면할 때면 여전히 위압감이 느껴진다는 것.
단순히 외모나 분위기가 공포스러웠다면 진작에 없어졌을 감정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야차를 만났을 때에도 나는 체모가 쭈뼛 서는 긴장감을 느껴야 했다.
야차는 강하다.
그전에는 막연히 그런 감정을 느꼈다면, 이제는 이유를 알았다.
그가 사일리아나 잉센보다 더 강한 초월급 헌터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이군.”
바위처럼 단단한 근육을 뒤덮은 채, 날것의 눈빛을 번뜩이는 야수가 인사를 건넨다.
그래.
내가 강하면 강해질수록, 저 인간이 얼마나 센지 잘 느껴진다.
나는 인사를 하는 대신 질문부터 날렸다.
“왜 말하지 않았지?”
“뭘 말인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딴청을 부린다.
미소를 짓느라 드러난 이에 몬스터의 살점이 끼어 있었다.
더럽고 무식한 놈 같으니.
“네가 초월급 헌터였다는 거.”
“물어본 적이 없으니까.”
“…….”
저렇게 나오니 할 말이 없군.
하기사, 물어봤다 하더라도 나에게 사실대로 대답해 줄 의무는 없다.
녀석과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였을 뿐이니까.
“혹시, 내가 키릴과 관계가 있다는 것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나?”
“물론.”
“어떻게?”
“혼자서 포이즌 던전에 들어가 희귀초를 캐 오는 미친놈은 드물지.”
“미친놈에게 미친놈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이상하네.”
“흐흐흐흐흐.”
낮은 웃음소리가 커다란 동굴을 가득 메운다.
인간의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스산하고 두꺼운 음성이었다.
“야차님.”
잉센이 공손한 자세로 야차에게 고개를 숙였다.
“당신이 거래할 물건 없이 빈손으로 오는 손님을 싫어한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사안이 급박한 점을 생각해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뭔 소리야.
그러면, 파이브 사이더스끼리도 야차를 만나려면 거래할 물건을 가져와야 했다는 건가?
“허. 시장 주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대단하군그래.”
내 이죽거림에 야차가 큰 웃음을 터트렸다.
“소식을 들으셨겠지만, 이사순 회장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그 외에도 초월급 헌터 다수가 마인들에게 습격을 받아 죽었습니다. 같은 파이브 사이더스로서, 야차님에게 정보를 얻고자 합니다.”
“무엇에 대한?”
“마인들. 그리고 10년 전 전쟁에 대해서.”
맛이 없는 부위를 먹은 것일까.
아니면 딱히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걸까.
야차는 씹고 있던 고깃덩이를 퉤, 하고 뱉었다.
그러자 부하 한 놈이 그쪽으로 뛰어가 씹다 만 고기를 부리나케 청소했다.
아주 왕이구만 왕.
“그래. 파이브 사이더스의 일원이라면 응당 이야기해 줘야지.”
야차의 고개가 기묘한 방향으로 꺾인다.
그 시선의 끝이 향하는 곳에, 내가 있었다.
“하지만 저놈은 뭐지? 내가 알기로 천해선 저놈은 파이스 사이더스가 아닐 텐데.”
왜 자꾸 꼬장이야?
잉센은 다소 당황한 듯 우물쭈물거렸지만, 나는 배를 내밀고 목청을 높였다.
“야. 잉센이 혼자 들었다 쳐. 네가 잉센의 입을 꼬매지 않은 이상 무조건 나한테 말해 줄 텐데 그게 의미가 있냐?”
“그거 좋은 방법이군.”
야차가 끔찍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
설마하니 정말로 꿰매려고?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잉센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아무래도 잉센은 나보다 훨씬 야차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저놈이 가진 힘이 뭐길래?
“처음 희귀초를 거래하겠다며 왔을 때가 생각이 나는구나.”
야차가 추억에 잠긴 얼굴을 하며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왔다.
“솔직히 그때 가져온 희귀초가 백 프로 장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의 넌 지금보다 수천 배는 약했으니까.”
“칭찬 고맙군.”
“네가 직접 가져온 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포이즌 몬스터 한 마리를 불렀지. 기억나나?”
“당연하지.”
당시에 나는 갑자기 나타난 ‘폴루티드 하이에나’를 상대해야 했다.
물론, 던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단칼에 녀석을 죽여 버렸지만.
그런데.
새삼스레 과거 이야기는 왜 꺼내는 거야?
“검증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네가 처음 동영화를 가져온 그때처럼 말이다.”
“검증은 무슨 얼어 죽을 검…….”
-크르르…….
나는 말을 하다말고 황급히 등을 돌렸다.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생명체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 마물?!”
* * *
“어떻게?”
휘둥그레진 잉센의 눈을 보니 녀석도 영문을 모르는 모양이다.
‘속임수인가?’
아니, 속임수라고 하기에는 영계에서 본 녀석과 너무나도 닮았다.
좌우가 대칭되지 않는 기형적인 팔다리와 까뒤집은 것 같은 백색의 눈동자.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검은 기운까지.
저 녀석은 마물이 백 프로 확실하다.
문제는, 이게 어떻게 갑자기 나타났냐는 거다.
‘정황을 보니 저놈이 불러낸 것 같긴 한데.’
당황스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잉센보다는 빠르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암시장에서 갑자기 몬스터를 맞딱뜨리는 게 처음은 아니니까.
‘폴루티드 하이에나’ 역시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갑자기 나타나곤 했다.
-크르르…….
마물의 발톱은 정확히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차에게 딱히 명령을 받은 것도 없는데 말이다.
‘어쩌면…….’
마음속으로 한 가지 가설을 품은 채, 나는 슬쩍 눈을 감았다.
부우우웅.
전신에 메루스의 기운을 활성화시키자, 온몸에 황금빛 기운이 넘실거렸다.
저쪽 어딘가에서 ‘호오’ 하는 감탄사가 들렸지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비척거리며 다가오던 마물이 내 어깻죽지로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스륵.
상체를 반쯤 틀어 마물의 발톱을 피했다.
마물에게서 난 상처는 치유가 잘 듣지 않는다.
마치 포이즌 몬스터에게 당했을 때처럼 말이다.
‘일전에 상대했던 마물과 모든 게 동일하다.’
몇 번의 공격을 회피하고 난 뒤에 나는 그런 결론을 내렸다.
비단 생김새뿐만 아니라 몸의 움직임, 퍼져 나오는 검은 기운 모두가 같았다.
마물이 공격해 오는 동안 반격을 하지 않은 건 당황해서가 아니다.
놈이 정말 마물이 맞는지, 아니면 단순한 속임수인지 확인이 필요했을 뿐.
부우웅.
프라셀에서 메루스의 칼날을 꺼내 들었다.
어둑어둑하던 지하 암시장이 환하게 밝혀질 만큼 강렬한 빛이었다.
“음.”
야차에게서 자그마한 감탄사가 들린다.
어쩐지 목소리에 반가운 기운이 서려 있는 것 같다.
-크오올!
마물이 메루스를 발견하자 사나운 울음소리를 낸다.
못생긴 얼굴을 한껏 찡그리는 걸 보아, 아무래도 이 메루스의 기운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팟.
놈이 앞발을 세워 내 허리 품으로 달려들었다.
마물이라는 특성을 빼면 하급 잡몹에 가까운 놈이다.
나는 칼날의 우월한 사거리를 이용해 놈의 발톱이 닿기 전에 목을 베어 버렸다.
서걱.
-퀙……!
비명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마물의 대가리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영계에서 키메라가 된 구건이도 제압한 마당에 이런 잡몹 하나 해치우는 건 일도 아니다.
털썩.
목을 잃은 마물의 몸체가 힘없이 쓰러졌다.
나는 놈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야차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때와 상황이 비슷하네.”
“흐흐흐. 그래. 그때도 넌 포이즌 몬스터를 단칼에 베고 네 힘을 입증했지.”
“이 정도면 증명이 될까?”
“물론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굉장히 쉬워 보이지만 마물을 처치하는 건 S랭커들한테도 어려운 일이지. 마물을 죽일 수 있는 헌터라면 10년 전 전쟁의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다.”
야차가 턱짓을 하자 부하 한 명이 나와 우리를 안내하겠다고 했다.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이려던 차, 나는 황급하게 시선을 돌려야 했다.
‘없어졌다……!’
마물의 기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미 목이 달아난 녀석이라고는 하나, 마물들은 죽고 나서도 일정 기간 몸에서 마력이 흘러나온다.
한데 지금은 놈의 사체에서 단 한 줌의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체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누가 치운 것도 아닌데…….”
잉센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가늘어진 눈으로 이곳저곳을 살폈다.
맞아.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같은 경험을 한 기억이 난다.
처음 암시장을 왔을 때 베었던 폴루티드 하이에나도, 그 사체가 감쪽같이 사라졌었지.
정황상 그때나 지금이나 야차가 불러낸 놈들이 확실해 보였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나타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건 흡사 내가 불러내는 적독사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포이즈너 레벨이 2가 되었을 때 V1이 붙여 준 명칭.
소환사(summoner).
어쩌면 야차의 능력은 그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헌터 시절에 타입이 소환사였나?”
앞서 걷는 야차를 향해 묻자, 그의 어깨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웃고 있는 건가.
“그때는 그랬지.”
“그때는?”
“그래. 전쟁에 참여하기 직전까지도 나는 단순한 소환사에 지나지 않았다.”
야차는 겸손(?)하게 말했지만, 소환사는 ‘버프’ 능력만큼이나 진귀한 능력이었다.
다른 차원에 있는 존재를 에테르로 구현해 낸다는 것 자체가 고난도의 능력이었으니까.
비슷한 능력을 가진 잉센이 ‘초월급’이라는 칭호를 받은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일 터.
“하지만 그 전쟁에서 나는 한 가지 능력을 ‘개화’할 수 있었지. 근처에 있는 마물을 먹어 치우고 나서부터 말이다.”
“!”
잘못 들은 게 아닐까.
뭘…… 먹었다고?
“……너 혹시 이상 식욕이 있다든가…….”
“크하하하하하.”
어깨의 진동이 아까보다 한층 더 커졌다.
갑자기 야차가 걸음을 멈추더니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정말 맛있어서 몬스터의 고기를 먹는다고 생각하나?”
“……?”
“먹어야만 비로소 내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승 문턱을 넘어선 놈들을 이 자리로 끌어내려면 먹어야 하지.”
“그…… 그럼…….”
좀처럼 실제 사례를 보지 못해 신화처럼 전해 오는 타입이 있었다.
망자(亡者)를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존재 말이다.
이미 죽어 버린 녀석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사계의 주인.
“네크로맨서……?”
내 추측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야차가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