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14
정도마신 113화
“횡포?”
설린의 말에 무애신검 남궁조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예, 허락도 없이 수십 명의 무인들을 이끌고 정유문의 식구를 해하였으니 횡포가 아니라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요?”
남궁조는 설린에게 두 가지의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감탄과 건방짐이다.
이 많은 남궁세가의 고수들 앞에서,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듣고도 일문(一門)의 문주답게 차분히 항의하는 모습에는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개 정유문의 문주 따위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어야 했다.
“그대는 아직 진짜 횡포가 무엇인지 모르는 듯하군.”
설린은 더 강해진 기세를 느끼면서도 차분히 말했다.
“오대세가의 수장이라는 남궁세가가 지금 힘으로 약자를 핍박하려 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남궁조 뒤쪽에 서 있는 중년인들 중 세모꼴 얼굴에 깡마른 체구를 지닌 사내가 호통을 쳤다.
“갈! 감히 남궁세가의 이름을 더럽히려는 것이냐?”
그 말에 총관 황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
“그게 아니라면 당장 이곳에서 나가시오! 할 말이 있다면 예를 차리고…… 컥!”
하지만 순간, 황임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뒤로 밀려나 쓰러졌다.
세모꼴 얼굴의 사내가 앞으로 튕겨져 나오듯 신법을 전개해 황임의 가슴에 일장을 내질렀던 것이다.
“총관님!”
설린과 관일성은 크게 놀라 황임에게 급히 다가갔다.
다행히 황임은 내상을 입었을 뿐 생명에 지장은 없어 보였다.
다만 황임은 내공이 약하고 나이가 이미 많기에 쉽게 회복될 만한 부상은 아니었다.
설린은 설마 남궁세가가 이렇게 기습적으로 무력을 쓸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기에 크게 화가 나 세모꼴의 중년인에게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사람을 해하다니! 이러고도 남궁세가가 명문대파라 할 수 있습니까?”
하지만 세모꼴 얼굴의 중년인은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
“무림공적을 비호하는 문파에게 어떤 예의가 필요할까! 어서 그 사완악이라는 놈이 어디 있는지 말하라!”
중년인이 언성을 높일 때, 무애신검 남궁조는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린은 그런 남궁조를 노려보다가 말했다.
“사 공자님은 지금 출타중입니다. 사람을 시켜 이곳으로 오시라 하겠습니다.”
남궁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그가 있는 곳을 말하라. 자네가 사람을 시켜 그를 도망가게 만들 수도 있으니.”
설린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분을 도망가게 할 생각이라면, 당신들에게 그분이 어디 있는지 말하지도 않겠지요. 그리고…….”
황임이 당한 일 때문일까?
설린은 격앙된 음성으로 평소라면 하지 않을 말을 내뱉었다.
“태산에서 천하를 상대했던 사 공자님이 겨우 남궁세가의 이름에 도망칠 분은 아니지요.”
남궁조를 비롯한 모든 남궁세가 검사들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뭐, 뭐라? 감히! 다시 한번 지껄여 보거라!”
세모꼴 얼굴의 중년인이 황당함을 삼키며 설린을 노려봤다.
하지만 설린은 그를 무시하며 아까 문 앞에서 넘어졌던 하인 조달구를 불렀다.
“몸은 괜찮으신가요?”
“아, 예! 저, 저는 괜찮습니다. 그냥 넘어진 것뿐이라서요.”
설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남궁세가가 양심이 없다 해도 무공을 모르는 하인에게까지 심한 짓을 할 리는 없었다.
“말을 타고 가서 사 공자님께 여기의 상황을 전해 주세요.”
하인들 중 말을 탈 수 있는 사람은 조달구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조달구도 그걸 알기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문주님, 조심하십시오.”
그의 걱정스러운 말에 설린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요.”
“예.”
조달구는 마구간으로 가서 말을 타고 정유객잔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설린은 남궁조에게 말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계시니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무애신검 남궁조가 말했다.
“한 가지 분명히 했으면 좋겠군. 정유문은 무림공적을 비호하는 것이 맞는가?”
설린은 당당히 자신의 주장을 재차 밝혔다.
“저희는 사 공자님이 무림공적이 된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여 정도맹에 정식으로 항의 중인 것입니다.”
“그게 비호일세.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것이네. 끝까지 그의 편에 선다면 정유문 역시 응당 대가를 치르게 될 터이니. 그대의 사조이신 설영충 대협의 이름에 먹칠을 하지 마시게나.”
그 말에 설린은 자신도 모르게 검집을 꽉 쥐었다.
다짜고짜 들이닥쳐 그녀에게는 가족 같은 황임에게 손찌검을 한 것부터, 시종일관 정유문을 무시하는 권위적인 태도, 거기에 정유문의 정신 그 자체라 볼 수 있는 사조의 이름까지 들먹이니 것까지.
아무리 천성이 선하고 부드러운 설린이라 할지라도 부아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었다.
“선대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이 어느 쪽인지 모르겠군요.”
남궁조가 눈을 살짝 치켜떴다.
“무슨 뜻이지?”
설린은 남궁조 뒤쪽의 남궁세가 무사들을 보며 말했다.
“전대의 강호 칠대고수이셨던 검제께서 살아 계셨다면, 사 공자님 한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무사들을 끌고 오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 순간 남궁조와 그 뒤에 있던 참혼중검 남궁우의 표정에서 평정심이 사라졌다.
일대종사였던 검제 남궁명조의 경지를 따라가지 못한 것은 남궁조, 남궁우 형제의 역린이었다.
강호의 모든 사람이 알지만, 그 누구도 그들의 면전에서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진실.
남궁조는 눈에서 불을 뿜으며 말했다.
“방금 그 말, 책임질 수 있겠나.”
설린은 담담히 말했다.
“가주께서 제게 하신 말씀을 돌려 드렸을 뿐입니다.”
말투는 다르지만, 그것은 사완악이 매우 즐겨하는 말이었다.
설린은 화가 나자 자신도 모르게 사완악의 방식을 따라 하고 있었다.
남궁조는 설린을 노려보았는데, 설린은 그 시선을 조금도 피하지 않았다.
남궁조의 입매가 살짝 비틀렸다.
“무림공적을 잡기 전에 가볍게 몸을 풀고 싶어지는군. 설영충 대협이 남기신 정유검법은 무림오십공으로 꼽힐 만큼 훌륭하다는데, 한 번 견식해 볼까?”
비무 요청을 가장한 노골적인 시비.
남궁조 본인은 물론, 장내의 모든 사람들은 설린이 남궁조의 십 초도 버티기 어려울 것을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남궁조는 바락바락 대드는 설린에게 그만 꼬리를 내리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 검술로는 남궁세가 가주의 상대가 될 수 없겠지. 하지만 여기서 물러서는 것이야말로 창피한 일이다.’
설린은 자세를 바로하며 말했다.
“남궁세가 가주님의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은 강호에서 적수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가르침을 주신다면 기꺼이 배우지요.”
남궁조의 눈이 가늘어졌다.
“확실히…… 젊은 문주라 패기가 넘치는군. 하지만 그게 과하면 독이 되거늘.”
순간, 설린의 몸이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무애신검 남궁조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압도적인 기운 때문이었다.
이때 처음 그녀에게 호통을 쳤던 세모꼴 얼굴의 중년인이 끼어들었다.
“가주님, 어찌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겠습니까? 남궁세가의 가주가 검을 섞을 상대는 그만한 이름이 필요한 법입니다.”
그의 말은 설린의 면전에서 정유문을 비하하는 말과 다름없었다.
중년인은 다시 고개를 돌려 설린에게 말했다.
“당신에게 남궁세가 검법을 가르쳐 주는 것은 나로도 충분할 것 같소만.”
설린은 남궁조를 힐끗 쳐다봤다.
남궁조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잡았던 검집을 다시 놓은 상태였다.
중년인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사실 남궁조로서는 설린과 직접 검을 섞는 것이 오히려 체면이 상하는 일이었는데, 그녀가 너무 당돌하게 나오자 어쩔 수 없이 손을 쓰려고 했던 것이다.
설린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황임에게 기습을 가한 저 중년인에게 반드시 한 방 먹여 주고 싶었다.
“저는 상관없습니다.”
설린이 답하자 중년인은 잘 걸렸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검을 뽑았다.
“좋군. 검을 뽑으시오.”
창!
설린의 검이 검집에서 스르르 빠져나오며 기수식의 자세를 취했다.
중년인은 비릿한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나는 남궁세가의 장로, 남궁문당이다. 뇌정검객이라 불리고 있지.”
설린은 그 이름에 내심 놀랐다.
뇌정검객(雷霆劍客) 남궁문당.
그는 남궁세가에서 방계 출신 중 유일하게 장로직에 오른 사람이었다.
장로들 중에서는 무공이 약한 편이지만, 방계 출신으로서 남궁세가의 장로직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무공이 매우 비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공을 양보하겠소.”
뇌정검객 남궁문당의 얼굴에서는 자신만만함이 느껴졌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구파일방, 오대세가와 일반적인 중소문파 간의 실력 차이는 하늘과 땅이었다.
아무리 문주의 신분이라 해도 일반적으로는 남궁세가 장로의 검을 받아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물며 상대는 이제 막 성인이 된 묘령의 여인이 아닌가?
방계 출신으로 남궁세가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 온 남궁문당이 그녀에게 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설린은 그 말과 함께 정유검법의 첫 번째 초식을 펼쳤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날아오며 아무런 변화가 없는 평범한 일검.
남궁문당의 얼굴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이런 형편없는 검법으로 감히 그런 건방을 떨었단 말이냐?’
남궁문당은 재빠르게 설린의 검을 쳐 내고 그대로 그녀의 어깨를 향해 검을 찔렀다.
그런데 이때, 설린의 눈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몸을 비틀며 보법을 밟아 검을 피해 내고, 남궁문당의 허리를 베어 갔다.
이를 지켜보는 무애신검 남궁조와 참혼중검 남궁우의 눈에서는 이채가 흘렀다.
설린의 이 반격은 남궁문당이 허공에 검을 찌르며 드러난 허점을 매우 날카롭게 추궁하는 한 수였던 것이다.
‘헛!’
남궁문당 역시 깜짝 놀라 속으로 헛바람을 들이켰다.
하지만 그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고수답게 몸을 빙글 돌려 설린의 검을 피해 냈다.
“제법이군!”
남궁문당은 설린의 검술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다.
‘후발제인의 검법이었다니.’
상대로 하여금 먼저 초식을 전개하게 만들고 허점을 노리는 후발제인의 무공.
남궁문당은 단번에 설린의 정유검법이 어떤 형식인지를 파악하고 검을 고쳐 잡았다.
세가의 젊은 무인들 앞에서 한 번 더 이런 꼴을 보인다면 그건 수치였다.
“과연 이것도 받아 낼 수 있을까!”
남궁문당은 외침과 함께 하늘을 향해 검을 세웠다.
그가 익힌 검법은 남궁세가의 창궁뇌정검법(蒼穹雷霆劍法).
꽈릉!
하늘에서 내리치는 벼락처럼 그의 검이 설린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런데 이때 설린의 검이 기다렸다는 듯 변화를 일으켰다.
그녀는 남궁문당의 벼락을 받아 내듯 검을 눕혀 머리 위로 올렸다.
하지만 검과 검이 격돌하는 순간, 설린의 검날이 남궁문당의 검을 타고 미끄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설린의 신형이 남궁문당의 품속으로 파고들 듯 앞으로 나아갔다.
“조심!”
무애신검 남궁조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설린의 검이 어느새 남궁문당의 가슴 중앙을 찌르고 있었던 것이다.
남궁문당은 기겁하며 검을 거두고 급히 장법을 내질렀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때, 설린의 검이 어째서인지 멈칫했다.
그 찰나의 틈.
남궁문당의 장력이 그녀의 검을 강하게 때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