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13
정도마신 112화
이군이 차분히 서찰의 내용을 설명했다.
“남궁세가의 가주가 직접, 가문의 고수들을 이끌고 정유문으로 가서 사완악을 잡아 오겠다고 하더군요.”
칠군이 놀라며 물었다.
“무애신검(無涯神劍)이 직접? 가문의 고수들까지 함께 간다는 건, 남궁세가 전체가 움직이겠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그렇습니다. 남궁세가에서 사완악에게 밝혀내야 할 것이 있으며, 다른 사람의 개입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임시 맹주는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허, 남궁세가라…… 어떤가?”
이군은 칠군의 말뜻을 알아듣고는 말했다.
“남궁세가에는 무애신검뿐만 아니라 참혼중검(斬魂重劍)도 있지요. 그리고 남궁세가의 자랑인 창천검대(蒼天劍隊)가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나선다면 사완악이 태산에서 상대했던 무인들을 모두 합친 것과 비슷한 힘이지요.”
“하지만 사완악은 지난 일 년 동안 어떤 성장을 했을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칠군의 반문에 이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러므로 남궁세가가 더 적합합니다.”
이때 일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칠군은 그것을 보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말했다.
“자네는…… 남궁세가가 사완악에게 아주 큰 타격을 입기 바라는 거였군. 그렇게 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싸움이 될 테니.”
순간, 이군이 칠군을 물끄러미 응시하며 물었다.
“제가 바라는 것입니까?”
“…….”
칠군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군은 비어 있는 삼군, 양천상의 자리를 잠시 바라보고는 말했다.
“사완악은 분명히 지난 일 년 동안 더 강해졌을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뛰어난 그릇이고, 얼마나 대단한 천재인지는 우리 모두가 아는 일이니까요. 그러니 이번 일로 사완악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말 이후 아무도 더 입을 열지 않았다.
회의는 그렇게 끝이 났다.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회의실을 떠났다.
남아 있는 사람은 천의문의 대사형, 일군이었다.
그는 이군이 그랬던 것처럼,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삼군의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며 어떤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그때, 회의실의 문이 스르르 다시 열렸다.
일군은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확인하고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사매?”
다시 들어온 사람은 오군이었다.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밖에서 기다렸는데 나오지 않으셔서.”
호수처럼 깊은 눈빛의 일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곳은 조용히 생각에 빠지기에 좋은 방이지.”
오군은 일군을 바라보다 말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그래.”
오군은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요?”
“…….”
일군은 멈칫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군은 대답을 요하듯, 그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잠깐의 적막이 흘렀을 때, 일군은 나지막이 말했다.
“이게 과연 옳은 일일까?”
“…….”
대답 대신 일군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오군.
일군은 천천히 다음 말을 이었다.
“과연 우리 중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을까?
“…….”
“신우라고 다를까? 누구보다 마음이 여린 강이는?”
신우는 이군의 이름이었고, 강은 팔군의 본명이었다.
오군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결국은 믿음과 선택의 문제였다. 우리 중 신우는 가장 확고할 뿐이고, 그렇기에 사부님도 신우에게 그런 역할을 맡기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일군은 차분히 말하고 있었으나, 오군은 그의 얼굴에서 형용하기 어려운 비통함을 느꼈다.
일군은 힘겹게 말을 이었다.
“나는…… 나 역시, 믿기로 했다. 하지만 만약, 사매가 믿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사매의 선택이다.”
일방적인 협조 요청도, 명령도 아닌, 선택에 맡기겠다는 말.
이번에는 오군의 표정에 복잡한 심정이 떠올랐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홀로 생각에 잠겨 있었고, 일군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렇게 침묵이 흐른 후, 오군이 말했다.
“저도…… 믿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의 방식은…… 잘 모르겠어요.”
“그래. 다른 방법이 없을 뿐이지.”
“만약예요.”
오군이 침을 삼키며 천천히 물었다.
“그 사람이 끝까지 우리의 계획과 어긋난다면요?”
“…….”
“어떤 일이 있어도 악행을 저지르지 않고 협행을 계속한다면, 혹은 만에 하나 봉인된 수호성이 깨어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녀의 말에 일군은 잠시 두 눈을 감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일군은 마치 수많은 번뇌를 정리하듯, 두 눈을 다시 뜨며 담담히 말했다.
“천의문의 모든 힘을 동원하여…… 그를 제거해야겠지.”
* * *
정유객잔에 대한 소문은 날이 갈수록 멀리 퍼져 갔다.
그런 바보 같은 말을 누가 믿느냐며 비웃던 사람들조차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고, 속는 셈 치고 소문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구경 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 소문은 더욱 널리 퍼져 나갔다.
-정유객잔의 소문은 진짜였다.
-웬만한 객잔에서 돈 주고 사 먹는 밥보다 더 훌륭하더라.
-정유객잔의 점소이들은 정유문의 고수들이라 그 누구도 횡포를 부릴 수 없다.
-그 점소이 중에는 절색의 미녀 고수도 있다.
점소이에 대한 소문이 생겨난 이유는 가끔씩 찾아오는 염치없는 자들 때문이었다.
“손님은 굶주릴 정도로 사정이 어려워 보이지 않는군요. 죄송합니다. 무상으로 드릴 수 없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그렇게 판단하는 거요?”
“물론입니다. 진짜 어려운 사람들은 손님 같은 옷을 입을 수 없고, 손님처럼 손과 얼굴이 뽀얗고 깨끗할 수 없습니다.”
“아, 거참! 나도 사는 게 팍팍하단 말이오. 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짜 밥을 주면서 나에게 한 끼 더 준다고 달라질 게 무엇이오? 나도 한 그릇 주시오!”
“잠시 밖에서 이야기를 하시지요.”
그렇게 만사무나 가종후, 혹은 묵영을 따라 밖으로 나간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저승사자를 본 것처럼 부리나케 객잔을 떠났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더 이상 그런 사람은 찾아오지 않았다.
대신 오히려 부유한 사람들이 정유객잔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정유객잔의 음식이 다른 곳보다 비싼 대신, 그들의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을 자랑하며 떠벌리기 좋아했다.
또한 몇몇의 부자들은 진심으로 정유문의 취지에 감격하여 객잔 운영에 도움이 되라며 큰돈을 따로 기부하기도 했다.
사완악은 그것을 보고 좋은 생각이 떠올라, 기부자들의 이름을 명패로 만들어 객잔 안에 걸어 두었다. 그러자 가뜩이나 자신의 부를 뽐내지 못해 안달난 사람들이 그들을 따라 돈을 내놓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런 기부자들 중에는 길성객잔을 팔았던 하북성의 장사꾼, 왕주보도 있었다.
“이런 일을 하실 거였다면 미리 말씀해 주시지 그랬습니까? 제값을 받겠다고 가치까지 따져 가며 계산한 제가 부끄러워지는군요.”
그가 민망한 얼굴로 말하자, 사완악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됐어. 나는 예상보다 훨씬 싸게 샀으니까.”
왕주보가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니 어쩔 수 없군요. 대신 주기적으로 정유객잔에 쌀을 보내겠습니다.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해 주십시오.”
“오호? 그건 아주 반가운 이야기군.”
“그 외에도 제가 필요한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사완악은 왕주보를 바라보다 말했다.
“사실 부탁할 게 하나 더 있긴 해.”
왕주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무엇입니까?”
“나중에 소문 하나만 내 줘.”
“소문이요?”
이때 사완악의 입이 소리 없이 달싹거렸다.
다른 사람은 들을 수 없도록 왕주보에게 전음을 보내는 것이었다.
왕주보는 전음이라는 것에 놀라면서도 사완악의 말을 다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고마워. 나중에 사례를 하도록 하지.”
그런데 이때, 갑자기 한 그림자가 유령 같은 신법으로 사완악의 옆에 스르르 나타났다.
제 이 귀령, 묵영이었다.
“일이 생겼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에 왕주보는 기겁했지만, 사완악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도 의아함이 떠올라 있었다.
“일?”
묵영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정유문에서 하인이 왔습니다. 지존을 찾는 자들이 나타난 듯합니다. 남궁세가. 여러 명입니다. 총관님이 쓰러졌다고 합니다. 문주님이 대치 중입니다.”
묵영은 최대한 짧게 그가 들은 사실을 모두 전했다.
하지만 묵영 역시 당황했는지, 사완악을 지존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황 총관이 쓰러졌다는 말에 사완악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황 총관님이? 죽었대?”
“그런 거 같지는 않습니다.”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했다.
“그래. 너희는 객잔을 잘 지키고 있어라.”
“알겠습…….”
묵영은 말을 마치지 못했다.
바로 앞에 있던 사완악의 신형이 어느새 땅으로 꺼진 듯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 * *
약 반 시진 전.
하늘은 푸르고 선선한 날씨에 평화로운 날이었다.
설린은 정유문의 건물이나 재정 상태, 하인들의 상황 등 문파의 전반적인 살림을 황임과 함께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장원 입구에서 하인 조달구의 당황스러운 음성이 울렸다.
“누구십니까? 자, 잠깐 기다리십시오!”
“비켜라!”
“어이쿠!”
거칠게 밀어내는 손길에 조달구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내공이 실린 묵직한 음성이 정유문 전체에 진동했다.
“무림공적 사완악은 어디 있는가!”
설린과 황임은 갑작스러운 소란에 빠르게 마당으로 달려 나갔는데, 그곳에는 약 서른 명의 청년 검사들과 다섯 명의 중년 검사가 서 있었다.
청년 검사들은 넓은 어깨에 허리가 꼿꼿하며 용맹한 눈빛을 뿌리고 있었고, 다섯 명의 중년 검사들은 한 명 한 명이 절정 고수의 위엄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그 다섯 중년인 중 가장 선두에 있는 한 사람과, 그의 바로 뒤에 있는 한 사람.
설린은 그 두 사람에게서 다른 세 명의 중년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장엄한 기도를 느낄 수 있었다.
설린은 마른침을 삼키고 왼손으로 검집을 살며시 잡으며 말했다.
“이게 무슨 무례한 행동입니까?”
검사들의 시선이 설린에게로 집중됐다.
다섯 명의 절정 고수와 서른 명의 패기 넘치는 청년 검사들의 눈빛이 마치 비수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설린은 내색하지 않으며 차분히 물었다.
“정유문의 오대 문주, 설린입니다. 귀하들은 누구십니까?”
설린은 가장 선두에서 좌중을 내리누르는 듯한 압도적인 기세의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설린과 눈을 마주치고는 천천히 자신을 소개했다.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조다.”
순간, 장내가 얼어붙은 듯했다.
‘남궁세가의 가주!’
설린과 황임, 그리고 뒤늦게 달려 나온 관일성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오대세가의 수장이라 불리는 남궁세가에서, 심지어 가주 남궁조가 직접 나타나다니?
무애신검 남궁조는 천하 팔대고수는 아니어도 그 아래 삼십대 고수에는 반드시 들어가는 엄청난 고수였다.
하물며 혼자가 아니라 수십 명의 세가 고수들과 함께 나타났다.
특히 남궁조와 닮은 얼굴로 뒤쪽에 서 있는 중년인은 남궁조 못지않은 기도를 발산하고 있었다.
남궁조의 동생, 참혼중검(斬魂重劍) 남궁우가 분명했다.
이런 엄청난 고수들이 대거 정유문에 나타난 이유라면 오직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설린은 짐짓 모른 체하며 말했다.
“저희는 남궁세가를 초대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명색이 오대세가의 수장이라 불리는 남궁세가가 어찌 이런 횡포를 부린단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