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21
정도마신 120화
“어떻게 알았죠?”
사완악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오, 진짜였어?”
“…….”
죽립 미녀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설마 한 번 떠 본 소리였던 것일까?
그녀의 표정을 본 사완악이 말했다.
“맞아, 그냥 찔러봤어.”
“…….”
“어쨌든 진짜라니 대답해 줘야지. 몇 번째 제자야? 삼군은 죽었고, 이군, 육군, 팔군은 만나 봤는데 말이지.”
죽립의 미녀는 뜸을 들이다 말했다.
“저는 오군이에요.”
“이름은?”
“연비려입니다.”
“연비려?”
사완악은 연비려의 하늘하늘한 몸매와 기품 있고 아름다운 미모를 다시 한번 바라본 뒤 말했다.
“과한 추측일 수는 있지만…… 과거 천하 삼대미녀 중 한 사람이었던 세외선녀(世外仙女) 가인의 성씨가 연(然)이라고 들었는데.”
연비려는 조용히 대답했다.
“제 어머니시죠.”
사완악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어머니와 같은 성씨지?”
“아버지도 연씨 성을 쓰셨거든요.”
사안왁이 손뼉을 쳤다.
“과연! 과연 그렇군.”
사완악은 이어서 물었다.
“천기자가 나에게 그런 문제를 내라고 시킨 건가?”
오군 연비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오늘 내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오직 내 의지였습니다. 사부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호오, 그래? 그런데 천기자의 제자는 대체 몇 명인거야?”
연비려는 순순히 말했다.
“팔군이 마지막 제자예요.”
“굉장히 쉽게 말해 주는군.”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그럼 뭐가 중요하지?”
“…….”
연비려는 대답 대신 되물었다.
“제가 오군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사완악은 고민스러운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나도 그걸 생각 중이야. 협행은 충분히 하고 있으니 당신들의 계획은 잘 방해하고 있는 듯하고…… 원래는 정도맹에서 그 팔군 녀석을 잡아 천기자가 내 앞에 나오게끔 인질로 쓸 생각도 있었거든. 당신에게 내가 새롭게 익힌 섭혼술을 사용하여 궁금한 사실들을 알아내 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 있고.”
사완악의 말에 연비려의 몸이 살짝 떨려 왔다.
그녀의 무공은 결코 약하지 않았지만, 상대가 사완악이라면 달랐다.
사형제 없이 그녀 혼자서는 사완악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유일한 희망은 필사적으로 경공을 펼쳐 도망가는 것이겠지만, 그녀는 사완악이 잔혹신풍 구득소에게 강호제일의 신법, 승광신법을 전수받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완악의 입에서 예상하지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밥이나 한 끼 먹고 가.”
“네?”
“객잔에 찾아왔으니 밥은 먹고 가야지. 우리 주방장, 요리 엄청 잘하거든.”
“그냥…… 놓아주겠다는 말인가요?”
의아해하는 연비려의 물음에 사완악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오늘 이곳에 온 건 천기자 그 늙은이와 상관없다며?”
“그건 맞아요. 난 당신이 내 사부님의 계획을 어긋나게 하기 위해 억지로 협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문득 궁금했었죠. 마음에도 없는 협행을 하고 있는 당신의 기분이요.”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어쨌든 그 늙은이의 명령으로 온 것이 아니라면…… 천기자의 다섯 번째 제자가 아니라, 세외선녀의 딸을 만난 것으로 생각하려고. 난 내 사부님과 함께 삼대미녀라고 불렸던 여인들의 미모가 궁금했었거든. 당신은 어머니를 닮아 이렇듯 아름다울 테니, 간접적으로나마 소원을 풀은 셈이지.”
연비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가 당신이라면 우리를 매우 증오했을 거예요.”
“알고는 있네?”
“그런데 이런 자비를 베푸는 이유가 무엇이죠?”
사완악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냥.”
“예?”
“진짜 그냥이야. 정확히 말하면 기분이지. 왠지 당신과는 싸우고 싶지 않은 기분이거든.”
“그, 그게 전부인가요?”
“무슨 소리야? 기분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거라고.”
“…….”
“자, 어서 밥 먹으러 가자.”
사완악은 무방비 상태로 뒤를 돌아 정유객잔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순간 연비려는 신법을 펼쳐 도망갈 수 있었고, 사완악이 자신을 추격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왠지 자신도 모르게 사완악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진심으로 후회했다.
* * *
‘이 사람, 진짜 악인이었어.’
연비려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네 명의 눈빛에 체할 것만 같았다.
그 네 명은 바로 만사무와 묵영, 천화, 그리고 가종후였다.
사완악은 정유객잔에 돌아오자마자 그녀를 위해 다섯 개의 요리를 주문했다.
“이렇게나 많이 주문할 필요는…….”
“에이, 사람 성의가 있는데,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먹어.”
“네? 아, 아니 저는 원래 소식을 하는 편이라…….”
“설마 그 대단한 천기자의 제자가 가난으로 배곯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객잔에서 음식을 남기지는 않겠지.”
사완악의 말에 연비려는 말문이 막혀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다들 이리 와 봐.”
사완악은 정유객잔의 점소이, 네 명의 귀령들을 불러 말했다.
“이 여자 정체가 뭔지 알아? 천기자의 다섯 번째 제자래.”
그 순간, 귀령들의 눈빛에서 살기가 확 일어났다.
그들은 사완악과 천기자의 관계를 알고 있었고, 자신들의 지존을 모함하고 음해하는 천기자와 그 제자들에게 큰 적의(敵意)를 갖고 있었다.
“오늘은 그냥 밥 먹고 가기로 했으니까 이상한 행동들은 하지 말고.”
사완악이 그리 당부했지만, 귀령들의 눈빛이 친절할 리 없었다.
특히 사완악을 신(神)으로 숭배하는 가종후의 눈빛은 무시무시했다.
탁! 탁! 탁! 탁! 탁!
숟가락과 젓가락, 앞접시와 요리들을 내던지듯 내려놓은 만사무가 말했다.
“잘 처먹으시오.”
“…….”
연비려는 무안하기 짝이 없었으나 어쩔 수 없이 젓가락을 들어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이때 그녀의 눈이 살짝 떠졌다.
사완악의 말대로 정말 맛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 묵영이 쌩하고 지나가며 말했다.
“먹으라고 한다고 진짜 처먹는군.”
묵영으로서는 굉장히 긴 문장을 내뱉은 것이니, 그녀에 대한 적의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휙! 휙! 휙! 휙!
만사무는 주방에서 빌려온 넙적한 식도(食刀)로 사령문의 백팔절혼쾌검(百八絶魂快劍)을 한쪽 구석에서 펼치고 있었다.
그의 식도와 눈빛은 연비려를 향해 있었고, 그것은 마치 식사를 하고 있는 연비려를 조각조각 썰어 버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거기에 맞은편에 앉아 속삭이는 천화까지 있었다.
“확실히 예쁘기는 한데, 가슴이 작네.”
“…….”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밥이 제대로 넘어갈 리가 없었다.
연비려는 이때 직접 점소이 일을 돕고 있는 사완악을 쳐다보았는데, 사완악은 눈이 마주치자 씩 미소를 지었다.
연비려는 사완악의 미소가 말하는 것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천기자의 제자를 그냥 보내 줄 줄 알았어? 먹다 체해 봐라.’
연비려는 울며 겨자 먹기로 요리들을 꾸역꾸역 먹으며 생각했다.
‘이 사람은 사대악인의 제자가 틀림없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겠어.’
그녀는 내공으로 음식을 강제로 소화시키며 빠르게 음식을 먹어치웠다.
하지만 그녀는 천하의 사완악을 너무 과소평가했음을 곧 깨달았다.
“다 먹었네? 모두 일로 와 봐.”
귀령들이 모이자 사완악이 말했다.
“이제 곧 신시라 바빠지겠지? 그래서 오늘 신입을 한 명 데려왔다.”
“신입이요?”
귀령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연비려에게로 향했다.
연비려가 설마 하는 눈빛으로 사완악을 쳐다봤다.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여기 연 소저가 바로 신입이지. 우리 객잔에서 무상으로 하는 일을 아주 훌륭하다고 극찬을 하니, 그녀도 그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일을 알려 주거라.”
“저, 저기요?”
당황하는 연비려에게 사완악은 말했다.
“설마하니 강호의 제일기인 천기자의 다섯 번째 제자가 비싼 요리를 다섯 개나 먹어 놓고 밥값도 하지 않는 건 아니겠지?”
“…….”
그날 연비려는 그야말로 혼이 쏙 빠졌다.
무상 식사를 위해 몰려드는 사람은 끝이 없었고, 태어나 처음 해 보는 식당일에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그녀를 쉴 틈 없이 굴리는 가종후의 명령들이었다.
“저기 탁자 치워라, 신입.”
“빨리빨리 주문 받아, 신입.”
“앉아 있지 말고 주문이 없으면 청소를 하고 있어라, 신입.”
연비려는 확신했다.
무공 수련보다 어려운 것은 객잔의 점소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날 저녁.
녹초가 된 연비려는 마침내 정유객잔을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떠나기 전, 사완악이 말했다.
“궁금하다고 했었지?”
“네?”
“너희들의 계획을 방해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협행을 하고 있는 기분이 어떤지.”
“…….”
사완악이 물었다.
“그런 객잔에서 억지로 좋은 일을 해 보니 어떤 기분이지?”
연비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은 오늘 어떤 기분이었는지.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너무 바빠서 아무 생각이 없었는걸요.”
사완악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돌아가서 잘 생각해 봐. 어떤 기분인지.”
“…….”
“그럼 이만.”
사완악은 그렇게 등을 돌려 떠나갔다.
연비려는 그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를 정말 혼란스럽게 만드는군요…….”
* * *
십만대산의 진마촌.
그곳에 있는 마교의 궁궐은 북쪽이 절벽으로 막혀 있었고, 그 절벽의 중간에는 하나의 깊은 동굴이 있었다.
바로 마교의 성지이자, 교주의 자격을 시험하는 천마동이었다.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역대 마교 고수 열아홉 명 중 단 세 명만이 통과한 시험.
한 사내가 그곳에 들어간 지 삼십 일이 지났을 때였다.
꽈르르릉!
꽈아앙!
천지가 개벽하는 굉음이 천마동 안에서 울려 퍼지고, 궁궐 전체가 흔들리는 지진이 일어났다.
그 순간, 마교의 모든 교도들은 건물에서 나와 절벽의 천마동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넝마가 된 옷에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붉은 눈빛을 지닌 한 사내가 천마동 입구에 나타났다.
그는 높은 절벽의 중턱에서, 마치 계단을 밟듯 허공을 밟으며 천천히 내려왔다.
사내의 몸에서는 가공할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 기운을 느낀 모든 교도들의 몸은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중년 문사의 음성이 은은히 울려 퍼졌다.
“마침내…… 교주께서 탄생하셨다.”
교주의 탄생.
지난 오백 년간 바라고 기다렸던 염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사내의 모습은 그야말로 마존의 현신이었다.
수백의 교도는 그 자리에서 일제히 오체투지의 자세로 사내에게 숭배의 뜻을 올렸다.
사내는 그 장엄한 광경을 내려 보며 말했다.
“천하를 지배할 준비가 되었는가?”
부르르르.
사내의 한마디에 마교도들의 전신에서 전율이 스쳐 갔다.
사내, 마교의 오대 교주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했다.
“너희의 손에 천하를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