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44
정도마신 143화
사완악과 가인, 그리고 연비려는 함께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는 동안 세 사람은 약간의 어색함 속에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가인은 식사도 잊은 채 애틋한 눈빛으로 사완악의 먹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사완악은 그 눈빛에 약간의 부담을 느끼며 말했다.
“어머니…… 도 드십시오.”
“맞아요, 엄마. 그러고 있으니까 밥이 안 넘어가요.”
“응? 아, 그래. 미안하다. 어서 먹자.”
사완악은 식탁에 가득한 요리들과 고급스러운 실내 가구들을 살펴보고는 말했다.
“참 좋은 장원이군요.”
가인은 사완악의 말을 알아듣고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천기자. 그 사람이 비려를 제자로 데려가면서 많은 지원을 해 주었단다. 장원을 마련해 주고, 평생 호의호식할 수 있는 돈을 주었지. 장원 전체에는 침입자를 대비해 작동시킬 수 있는 진법도 설치해 주었고. 아들을 살리지 못한 것에 대한 속죄이니 받아달라고 사정했었지. 나는 그때 천기자의 눈에서 진심을 보았단다. 하지만 그것이 날 속인 것에 대한 속죄인지는 알지 못했구나.”
사완악은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자책감을 보며 위로했다.
“그는 매우 용의주도한 인물이니, 누구라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연비려는 사부의 이야기에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세 사람은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쳤다.
가인은 차를 마시고는 본론을 꺼냈다.
“천기자가 나를 속이고 너를 사대악인의 제자로 만든 것까지는 알겠다. 그런데 왜 그가 그런 일을 벌였는지 알고 있니?”
사완악은 일군 백신형에게 들었던 모든 것을 그녀에게 전해 주었다.
가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기자는 그 예언을 믿고 너를 악인으로 만들고, 악인이 되었을 때 죽이려고 했던 것이구나. 그럼 천살성이 각성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 믿은 거겠지.”
사완악과 연비려는 조금 놀란 얼굴로 어머니 가인을 바라봤다.
예상과 달리 그녀는 모든 사정을 듣고 나서도 상당히 침착했던 것이다.
연비려가 말했다.
“저는 엄마가 충격 받으실까 봐 걱정했어요.”
가인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정말 충격적이고 화나는 일이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겠니.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나는 하늘에 감사하고 있단다. 그리고 천기자 역시 이미 죽었으니 그를 원망한다고 하여 무엇이 달라질까.”
연비려는 자신이 알던 어머니와 지금의 모습이 사뭇 다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가인의 말에 사완악과 연비려는 그녀가 어째서 이토록 의연하게 반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정도맹주와 무적검천…… 두 사람이 죽은 것은 이미 일어난 일이니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나는 네가 여기서 끝냈으면 좋겠구나.”
“그들을 용서하라는 말씀입니까?”
“그래. 이제 우리 가족은 서로 함께 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들에게 복수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사실 가인 역시 처음에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곧, 그녀는 사완악이 태산에서 정도맹주 양천상을 죽인 것과, 천의문에 대한 복수심으로 무적검천을 죽였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녀는 사완악이 사대악인의 제자로 자란 만큼 과격한 면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아들의 손에 많은 사람들의 피가 묻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좋으나 싫으나 비려의 사형제들이란다. 그들 역시 천기자의 말을 믿고 따른 것이니 앞으로 두 번 다시 엮이지 않는 것으로 모든 은원을 청산했으면 좋겠구나.”
“…….”
사완악은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그들을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정말 마교와 싸우며 죽음을 택한다면, 제 손으로 그들을 죽이지는 않겠습니다.’
그것이 사완악이 양보할 수 있는 마지막 선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속사정을 가인에게 모두 말할 필요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복수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연비려는 사완악의 표정을 보고 어느 정도 그의 생각을 눈치챘지만, 그것을 내색하지는 않았다.
사완악도 이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진 않았기에, 화제를 돌렸다.
“하지만, 마교와는 아마도 싸워야 할 것 같습니다.”
가인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마교.
그녀도 강호의 사람이었던 만큼, 그 전설적인 악명을 모르지 않았다.
약 이십 년 만에 만나게 된 아들을, 그런 마교와의 싸움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해졌다.
“이런 말을 들으면 정파의 사람들은 욕할지 모르겠지만…… 꼭 네가 그들과 싸워야 하니? 네가 아니더라도 강호에는 수많은 고수들이 있고, 그들이 힘을 합치면 오백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마교를 상대할 수 있을 텐데.”
“엄마. 그들은 정말 무서운 힘을 갖고 있어요. 오라버니가 아니면…….”
“누가 그걸 몰라서 말하니?”
가인이 눈을 흘기며 연비려를 노려봤다.
연비려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꺼냈다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사완악은 가인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게…… 가족이구나.’
마교와 꼭 싸워야 하냐는 가인의 말에서 사완악은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기묘한 감정을 느꼈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 어떤 따뜻함.
그리고 사완악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사대악인, 바로 사부들이었다.
가인과 연비려와 함께 있으니 비로소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부들과 자신은 진정한 가족이 아니었다는 것을.
“정도맹의 힘만으로는 마교를 막을 수 없을 겁니다.”
사완악은 가인의 안타까운 표정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정도맹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겠지요. 정유문도, 이곳 망망장도 무사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
“예. 결국 좋으나 싫으나 그들과 맞서게 되겠지요. 그럴 것이라면 처음부터 정도맹과 힘을 합쳐 그들과 싸우는 것이 좋습니다.”
가인은 사완악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선뜻 잘 싸우고 오라고 말할 수 없는 게 그녀의 심정이 아닌가?
“열흘…… 열흘만 이곳에서 함께 있다 가면 안 되겠니?”
사완악은 당연히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도맹은 그 정도로 약하지 않다.
그리고 천의문과 현종도 손 놓고 당하고 있지 않을 것이고.
열흘 안에 세상이 망할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완악 역시 그 정도의 시간은 처음 만난 어머니와 보내고 싶었다.
“예. 열흘 뒤에 떠나겠습니다.”
* * *
가인은 시간이 너무나 야속하게 느껴졌다.
과거, 천기자가 어린 아들을 치료하겠다고 데려갔을 때는 하루하루가 십 년처럼 길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돌아온 아들과의 열흘은 마치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 것처럼 빠르게 흘러가 버렸다.
그래도 사완악에게는 나름대로 세 가지의 큰 사건이 있었다.
첫 번째는 가인에게 어머니라는 호칭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쓰게 되었다는 것.
여전히 말투는 딱딱하고 가족이라는 것이 어색한 사완악이었지만, 그래도 가인에게 어머니라는 호칭은 꼬박꼬박 사용했다.
가인이 그 호칭을 들을 때마다 더없이 행복해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마찬가지로 연비려도 사완악에게 오라버니라는 호칭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그 동생 연비려와 한바탕 다툼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마교와의 싸움 때문이었다.
“너는 이곳에 남아라.”
“왜요? 저도 오라버니와 함께 싸우겠어요.”
“아니. 네 실력으로는 그들을 제대로 상대할 수도 없다. 오히려 내게 짐이 될 뿐이지.”
“이미 오라버니와 약속했잖아요? 마교와의 싸움에 목숨을 걸겠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라. 그건 내 동생이 아닐 때의 이야기다.”
“……싫어요. 그래도 저도 함께 가겠어요.”
사완악은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정의롭고 생각이 깊다고 생각했던 연비려가 동생이 되니 왜 이리 철없이 느껴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네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무슨 낯으로 어머니를 뵐 수 있겠니?”
하지만 연비려의 다음 말에 사완악은 자신의 뜻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아니, 아마도, 제 사형제들과는 마지막일 수도 있잖아요.”
“…….”
고집을 피운 이유가 그것이었나.
사완악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그럼 약속해라. 위험한 전투에서는 빠지겠다고. 그리고 네 사형제들이 위험한 순간이 와도 절대 나서지 않겠다고.”
“…….”
“약속하지 않으면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가 마교와 싸우지 못하게 만들겠다. 네 혈도를 봉해서 이곳에 가둬둘 수도 있다. 내게 그 정도 능력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겠지?”
연비려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약속할게요.”
사완악은 이 같은 약속을 어머니에게 말해 주었고, 가인은 내키지 않는 얼굴로 연비려가 따라가는 것을 허락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큰 사건은 사완악이 아버지와 자신의 원래 이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네 아버지의 이름은 연남운. 그리고 네 이름은 연소천이란다.”
“소천(小天)이요?”
가인이 슬픈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래, 나와 네 아버지에게는…… 네 존재 자체가 하늘과 같았다. 우리 삶의 가장 큰 기쁨과 희망이고, 우리가 앞으로 함께 살아가는 이유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네 이름을 작은 하늘, 소천이라고 지었다. 나는 네가 마교와 싸우러 가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프지만…… 한편으로 네 아버지는 하늘에서 너의 모습을 보고 정말 자랑스러워할지도 모르겠구나.”
가인의 말을 듣는 순간 사완악은 왠지 모를 울컥함을 느꼈다.
소천.
그 이름에 담긴 부모의 마음이 그러한 것이었구나.
사완악은 말했다.
“당분간 강호에서는 사완악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생각입니다.”
“그건 네 뜻대로 하렴.”
“마교와의 싸움이 끝나면, 연소천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부디…… 몸 조심하거라.”
“예. 그럼 이제 가 보겠습니다.”
몸을 돌리려는 사완악을 가인이 마지막으로 다급히 불렀다.
“소천아.”
사완악이 멈칫하며 그녀를 쳐다봤다.
가인은 간신히 울음을 참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사히 돌아와 줄 수 있지?”
사완악은 염려 말라는 듯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럼요. 그때 직접 해 주신 밥, 정말 맛있었거든요. 꼭 돌아와서 또 먹겠습니다.”
가인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 심각한 상황에 장난스럽게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
그것은 죽은 남편과 너무나 똑같은 모습이었다.
가인은 떠나는 사완악과 연비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그곳에서 아이들을 지켜 줘요, 여보.’
* * *
숭산의 소림사.
천 년의 세월 동안 변함없이 그 자리를 굳게 지켜 온 무림의 태산북두.
하지만 지금, 그 소림사는 전례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치, 침입자다! 크윽!”
“컥!”
뎅뎅뎅뎅-!
침입자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시뻘건 불기둥이 솟아오르며 검은 구름이 하늘로 피어올랐다.
소란을 듣고 가장 먼저 뛰어 나온 것은 소림사의 원로 영조였다.
“누가 감히 소림사에서……!”
버럭 호통을 치며 침입자를 막아선 영조 대사.
하지만 상대를 확인하는 순간, 영조 대사의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너, 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