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76
정도마신 175화
사대악인이 소림사를 기습했던 그날.
사완악은 자신의 손으로 사부 채보령과 사마소를 죽였다.
그 마지막 순간, 신천마뇌 사마소가 사완악에게 남긴 말이 있었다.
“어떻게…… 모든 내공과 호신강기를 뚫을 수 있는 현무천살통을…….”
“강호는 넓다니까.”
털썩!
사마소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사완악은 어깨를 으쓱이며 그에게 말했다.
“그리고…… 날 가르친 사부들이 꽤 대단하잖아?”
“하하. 그래. 너는 우리가 키웠지.”
피식.
사마소의 얼굴에서, 사완악과 비슷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두 사람은 닮은꼴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사완악의 많은 표정이나 태도는 사마소를 보고 배운 것이었으니까.
“기분이 나쁘지 않구나. 우리 사대악인이 누군가에게 패배해서 죽는다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기르고 키운 제자인 것이 좋지. 그래야 사대악인의 자존심이 지켜지는 것이니까.”
“웃기시네.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으면 마교의 수족이 되지 말았어야지.”
“큭큭, 못된 녀석. 마지막까지 사부들의 체면을 깎아먹지 못해 안달이구나.”
이때 사완악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못된 녀석이라고?’
사마소는 약 십오 년의 세월 동안 사완악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는 ‘못났다’, ‘형편없다’, 라는 식의 표현을 사용했고, 반대로 그의 가르침을 잘 따라갈 때에는 ‘괜찮구나’, ‘제법이구나’, ‘훌륭했다’, 같은 말을 했을 뿐이다.
한마디로 그의 표현에는 사적인 감정은 없고, 오직 사완악에 대한 평가가 전부였다.
하지만 죽음을 앞두었기 때문일까?
못된 녀석이라는 말은 의미가 달랐다.
언제나 냉혈무정했던 그가, 처음으로 사완악을 자신의 제자로 여기며 서운함을 나타내고 있었다.
예전에는 몰랐던 정(情)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완악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고, 이때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말했다.
“딱히 체면을 깎으려는 건 아니야. 사부들이 어떤 사람이건 간에 날 길러 준 부모와 같은 사람이라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 그냥 궁금해서 그래. 그 마교의 교주라는 놈이 그토록 대단한 녀석인 건가? 사부들이 힘을 합쳐도 상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
침묵하는 사마소에게, 사완악은 재차 말했다.
“제자인 내가 그놈을 쓰러뜨리면 사부님들의 체면이 사는 거잖아. 그러니 방법을 말해 줘 봐.”
사마소는 생명의 기운이 다해 점점 죽음을 향해 가는 와중에도 마교의 교주를 떠올리고는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안타깝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더 강해진다면?”
사마소는 사완악을 힐끗 쳐다보고는 말했다.
“그래서 이길 수 있다면 불가능하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을 거다. 세상에서 우리 사대악인보다 네 재능을 잘 아는 사람은 없지. 너는 언제나 우리를 놀라게 했고, 너보다 뛰어난 재능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지금의 너는 내 예상을 한참 뛰어넘을 만큼 강해져 있다.”
사마소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보는 순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는 다르다. 그야말로 진정한 무신의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오히려 지금이 너와 그의 차이가 가장 적은 순간일지 모른다. 네가 더 강해질 때, 그는 더 강해져 있을 테니까.”
사완악은 사마소의 안목이 얼마나 정확한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마소가 모르는 것도 있었다.
사완악에게도 북해빙궁에서 얻은 기연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부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무공들은 사부들의 무공들보다 더 뛰어난 면도 많다고 말했었잖아. 만약 내가 정파의 무공들도 모두 익힌다면 어때?”
사마소가 당치 않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무당파의 양의심공이나 소림사의 역근경 같은 구파일방의 최고 절학들을 익힌다면 모를 일이지. 하지만 그럴 일이 있겠느냐? 그 무공들은 단순히 비급을 훔쳐 낸다고 해서 온전히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거늘……!”
순간, 사마소는 말을 멈추며 눈을 크게 떴다.
사완악이 대답 대신 그의 눈앞에서 한 가지의 무공을 펼쳐 보였고, 그것은 사마소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너, 너, 설마……!”
“이래도 그 녀석의 상대가 될 수 없는 거야?”
“허……!”
사마소는 놀란 눈으로 멍하니 사완악을 바라보다 이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렇다면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겠구나.”
* * *
중원의 천하 팔대고수는 다음과 같았다.
사천회를 이끌었던 사천회주 마양과 사파의 기인으로 불리는 백발검귀.
정도맹주 양천상과 무적검천 사도준, 정파의 기인 천기자.
개방의 방주 방욱과 소림사의 방장 현암 대사, 그리고 무당파의 장문인 상현 진인까지.
이들은 모두 초절정의 고수로 그 차이가 크다고 할 수는 없으나, 이들 간에도 분명히 서열은 존재했다.
백발검귀와 천기자는 소문이 무성할 뿐, 실제로 본 사람은 매우 적기에 정말 그 정도의 무공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그다음으로는 사천회주 마양과 정도맹주 양천상과 개방의 방주 방욱 세 사람이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었으며, 소림사의 방장 현암 대사가 그들보다 강하다는 평이 많았다. 그리고 팔대고수 중 가장 윗 서열에 있는 두 사람은 무적검천 사도준과 무당파의 장문인 상현 진인이었다.
다만, 그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평가일 뿐.
만약 팔대고수들에게 직접 서로의 무공을 평가하라고 한다면, 그들은 아래의 서열에 대해서는 각자 생각이 다르겠지만 가장 강한 한 사람을 뽑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다.
바로 무당파의 장문인, 태극신검이라 불리는 상현 진인이었다.
그리고 그 상현 진인은 지금, 사마소와 같은 반응으로 사완악을 바라보고 있었다.
“본파의…… 태극혜검이 맞군.”
상현 진인의 놀람은 경악이라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컸다.
사완악이 다른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초식을 펼칠 때, 놀라기는 했지만 그러면서도 무당파의 무공은 조금 다를 거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다른 구파일방의 무공들이 주로 강맹함과 빠름을 중시한다면, 무당파는 독특하게도 상대를 내부에서 뒤흔드는 내가중수법과 동작의 부드러움에서 나오는 힘을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미파는 여인들로만 이루어진 문파이기에 부드러운 면에서 무당파와 비슷한 부분이 있었으나, 결국 소림사의 무공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궤가 같다고 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어려서부터 무당파의 기본 무공들을 차근차근 익히며 그 부드러움을 온몸에 익히고 깨닫지 않는 이상, 무당파의 절학을 제대로 펼쳐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적어도 상현 진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태극혜검이 어떤 무공인가?
장삼봉이 말년에 창안한 무당파의 무공 중 가장 복잡하고 난해한 검법.
외형적으로는 몰아치는 폭풍처럼 빠르고 강해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태극권과 태극검의 부드러운 묘리가 숨겨져 있는 최고의 절학이었다.
조사 장삼봉 이래 무당파의 역사 속에서도 태극혜검을 대성한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
그만큼 무당파 무공의 모든 정수가 담긴 무공이었다.
하지만 사완악은 정말 그 태극혜검을 펼쳐 보였다.
단순히 겉모습만을 따라 한 것이 아닌, 진정한 태극혜검이었다.
“놀랍군. 정말 태극혜검까지 익히고 있을 줄이야…….”
사완악은 평소와 달리 진지한 표정으로 상현 진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이건 완벽한 태극혜검이 아니야. 비급대로 펼치긴 했지만, 이 검법의 본 위력은 이 정도가 아니겠지. 나 스스로도 어딘가 자연스럽지 못함을 느끼고 있으니까. 그래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거야. 당신이 봤을 때 무엇이 부족한 건지 말해 줘.”
“음…….”
상현 진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자네의 태극혜검은 이미 나의 태극혜검보다 뛰어나네.”
일순, 사완악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흘렀다.
그에게는 그런 칭찬이 아니라 부족한 점에 대한 지적이 필요한 때였다.
그런데 그때, 상현 진인의 말이 이어졌다.
“다만…….”
“다만?”
사완악이 반색하며 물었다.
상현 진인의 말이 이어졌다.
“그건 자네의 무공이 나를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이네. 단순한 무공의 위력일 뿐이지. 사 소협의 말대로, 사 소협의 태극혜검에는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네.”
“그게 뭐지?”
“무당파의 무공은 유(柔)라는 글자로 대변할 수 있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는 무공이지. 하지만, 때로 강함은 부드러움을 끊어 낼 수도 있다네. 장삼봉 조사께서 결국 세상만물은 조화라는 것을 깨달으시고, 무당파의 무공이 지닌 유(柔)함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만든 무공이 바로 태극혜검이네.”
다소 원론적인 이야기였으나 사완악은 집중하여 그의 말을 들었다.
“정리하자면,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한다’의 이치에서 ‘부드러움으로 말미암아 강함이 탄생한다’라는 이치로 바뀌었다는 것이네. 하지만 그 말은 곧, 태극혜검의 근간은 결국 부드러움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네. 물론 자네의 검에도 부드러움이 있기에 태극혜검을 펼칠 수 있는 것이겠지.”
상현 진인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네만, 자네는 검결 속에 부드러움을 억지로 끼워 넣은 듯한 느낌이네. 그러니까, 부드러움이 필요한 부분마다 인위적으로 움직여 그럴싸한 태극혜검을 만들어 냈다고 해야 할까? 이를테면…….”
상현 진인은 천천히 자신의 검을 뽑아 기수식을 취했다.
직접 시범을 보이겠다는 뜻이었다.
이윽고 그의 검초가 펼쳐지자, 사완악이 조금 전 펼쳤던 검법과 비슷한 느낌이 재현됐다.
“자네는 이렇게 움직였다는 뜻이네. 하지만, 이건 강함 속에 부드러움을 넣어 단점을 보완한 격이네. 부드러움으로 말미암아 강함이 탄생한 것과는 다르네. 장삼봉 조사께서 말씀하신 태극혜검은 이런 것이네.”
상현 진인의 검이 다시 움직였다.
살랑거리듯 원을 그리는 상현 진인의 검.
하지만 다음 순간, 사완악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의 검은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가, 그 부드러움이 겹겹이 쌓이기 시작하며 어느새 몰아치는 칼날 같은 바람이 되었다.
조금 전, 사완악을 흉내 내었던 태극혜검과는 차원이 달라진 모습.
또한 사완악은 상현 진인의 설명이 너무나 정확하다는 것을 내심 느끼고 있었다.
사완악은 태극혜검의 비급을 익힐 때, 초식 중간중간 부드러운 동작이 필요할 때마다 정유검법의 묘리를 섞어 익혔다.
하지만 이제 보니 태극혜검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 무공이었던 것이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사완악은 자신의 무공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구파일방의 무공이 지닌 그 깊이를 모두 알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반면 구파일방의 장문인, 혹은 최고의 고수들은 선대의 가르침을 밑바탕 삼아 한평생 사문의 무공을 깊게 연구하고 수련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무공에는 오랜 세월 수많은 둔재와 범재, 기재들이 도전하고 고심하며 만들어 낸 결과들이 담겨 있었다.
사완악은 그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사완악은 상현 진인이 해 준 말들과, 그가 몸소 펼친 태극혜검을 머릿속에 똑똑히 각인시켰다.
“확실히 어렵기는 하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해야 된다는 말이지?”
사완악은 머릿속에 정리한 것들을 토대로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약간은 어색한 듯한 움직임.
하지만 잠시 후.
상현 진인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