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75
정도마신 174화
“무공을 가르쳐 달라고 했소?”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대표들은 의아한 눈빛으로 사완악을 바라봤다.
사완악은 이미 그들이 감히 범접하기 힘든 수준의 고수였다.
그의 나이가 불과 약관이 조금 넘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강호 역사를 통틀어도 이 정도의 인물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대표들이 자존심을 내려놓고 무릎까지 꿇었던 것이었다.
그런 사완악이 자신들에게 갑자기 무공을 가르쳐 달라니 이상할 수밖에.
“알아, 당신들은 나보다 훨씬 약하지.”
사완악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민망함과 당황스러움이 떠올랐다.
그들 역시 어려서부터 천재 소리를 들으며 일문의 대표가 된 사람들.
누구에게 약하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사완악이 너무나 비정상적인 존재일 뿐이었다.
“하지만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무공이 약한 것은 아니야.”
“그, 그건…… 당연한 말이오!”
하북팽가의 가주, 혼원벽력도 팽일해가 소리 높여 말했다.
사완악보다 약한 것은 사실이나, 이 자리의 대표들은 사문의 무공에 대해 의심을 품은 적은 결코 한 순간도 없었다.
다만, 사람들은 매우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언제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지나가는 삼류 문파처럼 무시하던 사완악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솔직히 내가 익힌 사령문의 무공보다 더 뛰어난 절기들도 많지.”
전설에 따르면, 음양천자의 열두제자 중 가장 무공이 뛰어난 것은 산신과 마선이었고, 주선은 각종 주술을 이어받았고, 천기는 하늘의 기운과 날씨를 익혔다.
비록 주선이 산신과 마선을 질투하여 사령문을 만들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그 뿌리는 주술에 의한 무공들이었다.
반면, 마선은 알다시피 천마신공과 마교를 만들었고, 산신은 자신의 무공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세상에 전했으니 그것이 곧 구파일방이 되었고, 오대세가에도 그 일부가 전해졌다.
즉, 사령문의 무공은 사술(邪術)적으로는 마교나 중원의 무공보다 뛰어날지 몰라도, 정석적인 위력에서는 그들보다 떨어졌다.
실제로 사완악 역시 사령문의 무공을 익힌 후에도, 대부분의 상황에서 사대악인에게 배운 무공을 사용하고 있었다.
어쩌면 전대의 영겁사령존이 중원의 무공 비급들을 수집한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사완악은 북해빙궁에서 그 비급들을 익히며 자신의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고, 사존의 힘을 이어받고도 여전히 사대악인에게 배운 무공들만을 사용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때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대표들은 사완악의 말에 내심 기분이 좋아졌는지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사완악은 그들을 잠시 바라보다 말했다.
“그러니 내게 그 무공들을 가르쳐달라는 거야. 각 문파의 절기들을 배우다 보면 내가 새로 깨닫게 되는 부분도 있을지 모르니까.”
이때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도사가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 보고 사문의 절기를 당신에게 알려 주라는 소리입니까?”
그는 종남파의 장문인, 정옥이었다.
정옥은 다른 장문인들에 비해 비교적 나이가 젊은 편이었는데, 그 역시 현종처럼 배분을 뛰어넘어 전대 장문인의 제자가 된 사람이었다.
그만큼 그의 무재가 남다르다는 뜻이었고, 천하 팔대고수들과 견주어도 별 차이가 없을 거라는 말도 있었다.
사완악은 그를 보더니 빙긋 웃으며 말했다.
“바로 그거야. 당신에게는 천하삼십육검을 배우면 좋겠군.”
사완악은 이어서 화산파의 천향도를 보며 말했다.
“화산파는 검법도 좋지만 자하신공의 구결을 좀 알려 줬으면 좋겠고.”
정옥과 천향도의 얼굴이 굳어졌다.
천하삼십육검은 종남파의 가장 뛰어난 절기였고, 자하신공은 화산파의 장문인만이 익힐 수 있는 신비로운 내공구결이었다.
같은 문파의 제자조차 허락 없이 익힌다면 파문 정도가 아니라 죽음으로 죄를 물을 정도로, 밖으로 절대 유출시킬 수 없는 비전 절학들이었다.
그런 무공의 구결들을 가르쳐 달라니?
천향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화산파의 무공은 비인부전(非人不傳)이요. 또한 자하신공은 오직 화산파의 장문인에게만 허락된 무공이오.”
“비인부전? 내가 사람 같지도 않은 놈이라는 소리야?”
비인부전이란 인간 됨됨이가 갖춰지지 않은 자에게는 가르침을 줄 수 없다는 뜻.
천향도는 헛기침을 한 차례 하고는 말했다.
“그렇다기보다는 사문의 무공은 선조들이 화산파를 위해 남겨 둔 유산이오. 내가 장문인이라 해도 함부로 타인에게 알려 줄 수는 없소.”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었다.
어느 무림문파가 사문의 절학을 남에게 가르쳐 준단 말인가?
하지만 사완악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말했다.
“웃기고 있네.”
“뭐요?”
“싫으면 다 같이 죽든가. 내가 종천을 막아주지 않으면 너희가 마교의 상대가 될 수 있을 거 같아?”
“그건…….”
“그리고 지금 내가 부탁하는 걸로 보여?”
사완악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대표들을 쭉 훑어보고는 말했다.
“중원을 구해 달라고 부탁한 건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야. 무릎 꿇고 도와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내가 왜 당신들을 위해 싸워야 하지?”
천향도는 이제 와서 왜 이러냐는 듯,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타일렀다.
“사 공자 역시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소? 사 공자의 여동생이나 정유문의 사람들 말이오.”
하지만 천향도의 생각은 사완악을 잘 모르는 소리였다.
사완악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조소를 머금고 말했다.
“글쎄? 내가 지켜야 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마교로 귀의하면 되는 거 아닌가? 현종이라면 날 매우 반겨줄 거 같던데 말이지. 실제로도 자신과 함께 천하를 거머쥐자고 제안하던데?”
물론 사완악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고, 종천도 그런 제안을 한 적이 없었다.
설령 사완악에게 그런 의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연비려나 설린, 그리고 어머니 연가인은 절대 반대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입장에서는 사완악의 말이 허풍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현종과 사완악이 막역지우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
심지어 현종은 사완악이 구파일방에게 무림공적이 되어 태산에서 위기에 빠졌을 때, 사문인 소림사에 대항하면서까지 목숨을 걸고 구해 준 일도 있지 않았는가.
또한 사완악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기에, 만약 마음이 바뀌어 마교로 귀의라도 한다면그 뒤의 일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당신들 문파의 무공 좀 아끼다가 다 같이 죽고 마교가 천하를 지배해도 상관없다는 거지? 그렇게 될 거면 나도 마교 편에 서지, 뭐.”
천향도를 비롯한 문파의 대표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 침묵을 깬 것은 종남파 장문인 정옥이었다.
“사 소협, 일단 진정하시지요. 당신 말대로 중원은 현재 유례없는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문파의 무공을 아낄 때는 아니지요.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당신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고 싶어도,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무공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사 소협은 수박 겉핥기식의 가르침을 원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요체를 하루아침에 배울 수 있다면 결코 절학이라고 부를 수 없겠지요. 그 하나의 절학을 익히기 위해 문파의 기본공부터 시작하여 십 년, 이십 년 동안 수련을 하여 조금씩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사완악은 이번에는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는 말이야. 하지만 나는 보통 사람보다 배우는 속도가 조금 빠르거든. 한 보름 정도면 될 거야. 그리고 가르쳐 줘도 내가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면, 그건 내 잘못이지. 당신들에게는 좋은 일 아니야? 사문의 무공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
“그렇습니까? 보름이라……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사 소협이 원하시는 건 무엇이든 알려 드리겠습니다.”
종남파의 장문인 정옥은 흔쾌히 대답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사람들은 정옥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동감했다.
‘그래, 배울 테면 배워 봐라. 아무리 네가 대단하다고 해도 그렇게 쉽게 배울 수 있는 무공이 아니니.’
한 개도 아니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여러 개의 절학들을 보름 안에 배우겠다?
그건 죽은 달마 대사나 장삼봉 진인이 살아 돌아온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때 사완악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아, 그리고 사문의 무공을 내게 가르쳐 준다는 것에 대해 너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나는 이미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무공들을 조금씩 알고 있거든. 그러니 당신들은 내 무공을 보고 부족한 부분을 말해 주면 돼.”
화산파의 장문인 천향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우리들의 무공을 이미 알고 있다고 했소?”
사완악은 솔직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래, 과거 사령문의 지존이었던 영겁사령존은 중원을 지배하려고 했던 적이 있지. 그 과정에서 그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비급들을 상당수 필사하여 빼돌렸고, 덕분에 강호를 떠나 있던 지난 일이 년 동안 그 비급들을 조금씩 익힐 수 있었지.”
사령문에 대한 과거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천향도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럼 비급들을 보고 우리들의 무공을 혼자 독학했다는 뜻이오?”
비급은 비급일 뿐.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절학들은 비급만으로 익힐 수 있는 무공들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부족한 점을 말해 달라는 거잖아.”
사완악은 돌연 허리에서 검을 뽑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으니까. 화산파의 무공부터 해 볼까?”
그들이 모여 있는 회의실은 상당히 넓었기에 검을 가볍게 휘두를 정도의 공간은 충분했다.
사완악은 천향도를 향해 허공에 대고 하나의 초식을 펼쳐 보였다.
그 초식을 본 타 문파의 대표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완악의 초식은 매우 힘차고 용맹한 느낌은 있었지만, 검술이라고 보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둔탁하고 투박해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화려하고 날렵한 초식으로 날카롭고 예측불허한 변초를 자랑하는 화산파의 무공과는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천향도 역시 처음에는 마찬가지의 반응이었다.
화산파의 무공이라고 해 놓고 왜 저런 초식을 펼치는지 영문을 모를 지경.
하지만 잠시 후.
천향도는 문득 무엇인가 생각난 듯 표정을 달리하더니, 점점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것을 눈치챈 사완악은 검을 멈추고 물었다.
“어때?”
천향도가 말했다.
“설마…… 마운부(摩雲斧)의 초식이었소?”
“역시 장문인은 알아보는군.”
“허……! 정말 마운부라니.”
천향도의 반응에 점창파의 장문인 오향자가 물었다.
“부(斧)라면 도끼를 쓰는 무공입니까? 화산파에 그런 무공이 있었습니까?”
천향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본산의 무공이오. 선조 중 한 분께서 창안하셨으나, 후대에는 계승자가 딱히 없었소.”
천향도는 장문인으로서 화산파의 모든 무공 비급을 한 번씩 보아야 했기에 마운부를 대충은 알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사완악은 고개를 돌려 종남파의 장문인 정옥을 바라봤다.
“종남파의 검법은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깊이 파고들수록 매우 난해한 구석이 있더군. 그래서 당신이 잘 봐줬으면 해.”
이윽고 사완악의 검이 다시 너울거렸다.
부드럽게 시작했다가 거친 계곡물처럼 빠르게 쏟아지고, 다시 넓은 바다로 뻗어 나가듯 웅장하고 도도하게 이어지는 초식.
정옥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넋을 놓고 사완악의 검을 바라봤다.
그것은 분명히…….
“천하삼십육검.”
종남파의 최고 절학, 천하삼십육검이었던 것이다.
사완악은 다시 검을 멈추고 씩 웃으며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가르쳐 준다고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