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74
정도마신 173화
“더 안 좋은 소식이라고 했소?”
정도맹의 임시맹주이자 화산파의 장문인, 천향화검 연천도는 침중한 기색으로 사완악을 바라봤다.
다른 대표자들의 표정도 마찬가지.
무림의 태산북두이며 정신적 지주와 같았던 천 년 소림사의 방장 대사와 원로들이 모두 학살당했다.
심지어 그 흉수는 소림사의 제자이자, 사완악과 함께 강호를 구해 줄 거라 믿었던 절대의 기재 현종이라는 것까지.
직접 보고 듣고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충격적이고 안 좋은 소식이 무엇이란 말인가.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이번 사건을 일으킨 현종이, 바로 마교의 오대 교주였다는 거야.”
일순, 회의실 내에 경악의 물결이 일어났다.
현종이 단순한 흉수가 아니라 마교의 교주였다니?
청성파의 장문인 하령 진인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어찌 가능한 일인가? 현종은 줄곧 정도맹의 행사에 함께 했네. 마교를 발견한 것도, 마교가 오대세가를 기습할 것을 예측한 것도…….”
하령 진인은 문득 말을 멈추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그렇지? 그 녀석은 정도맹을 돕는 척하면서 교묘하게 우리를 흩뜨려놓았던 거지. 그리고 빈틈을 노려 제갈세가를 공격하고, 설린 문주를 납치한 거야.”
이때 무당파의 장문인, 태극신검 상현 진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현종이 마교에 포섭되었다면 말이 되지만, 교주라고 설명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네.”
사람들의 시선이 상현 진인에게 향했다.
“과거의 기록에 따르면 마교의 교주는 반드시 천마신공이라는 마공을 익혀야 한다고 했지. 그런데 나는 과거, 현암 방장의 부탁을 받아 현종의 무공을 봐준 적이 있네. 현종은 분명히 소림사의 내공과 무공을 익혔네. 그것도 마공과는 상성이라는 역근경과 범천항마금강신공을. 그런 현종이 어찌 마교의 교주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그렇다 한들 어찌 우리와 함께 지내면서 마공의 기운을 그토록 완벽하게 숨길 수 있단 말인가?”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중용 또한 상현 진인의 말에 덧붙였다.
“그뿐만이 아니오. 현종 대사가 교묘하게 마교에 대한 정보를 흘렸다고 하기에는, 굳이 우리에게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정보들도 있었소. 그것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고 볼 수도 없소. 어차피 현암 방장님의 사제이자 소림수호승인 그를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말이오.”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야.”
사완악이 현종을 의심하지 못했던 이유도 제갈중용이 말한 요소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와 있었던 현종과, 마교의 교주인 현종이 같은 사람이면서 다른 존재라면 말이 되지.”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사완악을 바라봤다.
“그게 무슨 소리요?”
“현종에게는 두 가지 인격이 있어.”
“두 가지 인격?”
“그래, 하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현종이고, 다른 하나는 마교의 교주인 인격이지. 그 다른 인격은 스스로를 종천이라 하더군. 아무튼 종천은 현종이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을 모두 파악할 수 있고, 반대로 종천의 인격이 나왔을 때 현종은 기억을 잃는 것이었지.”
사완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그리고…… 내 생각에 종천은 원할 때면 언제든지 현종의 인격을 밀어 낼 수 있었던 것 같아. 처음에는 아니었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정도로 두 인격의 힘이 역전됐을 거야. 그러니 필요할 때만 모습을 드러내서 우리를 교란시켰던 셈이지.”
회의실 내의 대표들은 기가 막힌 얼굴로 서로를 마주 봤다.
사완악의 말대로라면 앞뒤의 상황은 맞아 떨어지지만, 한 사람에게 두 가지 인격이라니 그게 가능한 일일까?
그런데 이때 구석에 있던 점창파의 장문인, 오향자가 굳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는 사 공자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오.”
“음?”
“나 역시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오.”
제갈중용이 놀란 듯 물었다.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있다고요?”
“그렇소.”
“그게 누구였습니까?”
오향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말했다.
“빈도의 사숙이었고, 점창파의 전대 장로이셨소.”
화산파의 장문인 천향도가 물었다.
“그분이 두 개의 인격을 지니고 있었다는 말이오?”
장문인 오향자는 옛 생각을 떠올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숙에게는 분명히 다른 인격이 있었소. 그리고 그분은 자신이 다른 인격이 되었을 때 본인의 다른 모습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셨을 뿐 아니라, 도사가 아닌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계셨소.”
사람들은 오향자가 사숙에 대해 말하는 것을 껄끄럽게 여김을 느낄 수 있었다.
점창파의 장로로 지내면서 한편으로는 도사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향도는 이 일은 확실히 해야 한다고 느꼈기에 물었다.
“그분이 때때로 다른 인격이 된 것이 확실하오?”
오향자는 사람들의 면면을 한 차례 살펴본 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무영대도(無影大盜) 마동소를 기억하시오?”
사람들의 얼굴에 의외의 빛이 떠올랐다.
그들은 물론 무영대도 마동소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림자도 남기지 않는다는, 강호 제일의 도둑.
그는 약 이십 년 전 강호에서 활동했으며, 그가 훔쳐 낸 중원의 보물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는 피해를 입은 것이 없지만, 수많은 표국이나 상단이 그에게 중요한 물건을 도둑맞아 강호가 떠들썩한 적도 있었다.
“그분이 빈도의 사숙이었소.”
사람들의 얼굴에 황당함과 놀람이 동시에 일어났다.
“무영대도 마동소가 말이오?”
“그렇소. 심지어 그분은 점창산에서 가까운 마을에 가정을 꾸리고 있으셨소. 그분은 어려서부터 점창파에서 무공을 익혔고, 특히 경신술이 뛰어난 분이었소. 하지만 우리는 아무도 그분이 강호에서 도둑질을 하고, 장원을 사서 가정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소. 심지어 본인의 원래 인격 스스로도 모르고 있었고, 다만 다른 인격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점창파의 무공을 이용하여 강호에서 그런 사건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오. 다만, 현종과 다른 점이라면 그분의 인격은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만 바뀔 수 있는 것 같았소.”
제갈중용이 그의 말을 정리했다.
“무영대도 마동소가 강호에서 갑자기 활동을 멈추고, 그가 훔친 보물들이 영문을 알 수 없는 경로로 본래의 주인들에게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점창파에서 그분의 행각을 알아냈던 것이군요.”
오향자는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리고 점창파는 그분이 훔쳐 온 보물들을 다시 본래의 주인들에게 돌려주었소. 물론 주인을 알 수 없는 재물들이나, 이미 팔아서 돈을 마련한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기에…… 좋은 일에 사용하였소.”
사람들은 그제야 오향자가 어째서 말하기 힘들어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구파일방 중 하나라는 점창파의 장로가 강호에서 온갖 도적질을 하고 다니고, 가정까지 이루었으니 그 사실이 알려진다면 체면이 말이 아닌 셈이었다.
또한 점창파는 검술도 그렇지만, 경신술과 보법 역시 빠르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비운축영(飛雲逐影)이나 창응칠식(蒼鷹七式) 같은 경신술은 속도만으로 보자면 구파일방의 무공들 중에서 수위를 다툴 정도.
만약 그런 점창파에서도 경신술에 조예가 깊었던 사람이라면, 능히 무영대도라 불릴 만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설명되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제갈중용은 무당파의 상현 진인을 한 차례 바라봤다.
그러자 사완악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말했다.
“소림사의 내공을 익힌 현종이 어떻게 마교 제일의 무공이라는 천마신공을 익히고, 그 기운을 어떻게 감추었냐는 거지?”
“그렇소. 마공은 반드시 그 기운이 밖으로 도출되게 되어 있는 것 아니오?”
“누가 그래?”
“…….”
사완악이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물었다.
“누가 그러냐니까?”
“아까 상현 진인께서 기록에 따르면…….”
“그러니까.”
사완악은 고개를 돌려 상현 진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결국 기록에만 그렇게 나와 있는 거지. 오백 년 동안 마교는 활동을 한 적이 없는데, 마교나 마공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
상현 진인은 사완악의 말을 알아듣고는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야 그러네만…… 자네도 알다시피 무공에는 상성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글쎄?”
사완악은 동의하지 않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천마신공은 그 상성을 뛰어넘을 만큼 대단한 것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현종이 그만큼 대단한 것일지도 모르지. 세상에 절대라고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사완악은 굳이 현종이 천살성의 기운이라거나, 중단전을 이용해 마공을 익혔다는 설명까지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중요한 건 현종이 천마신공을 익힌 마교의 교주라는 것이었으니까.
이때 제갈중용이 말했다.
“알겠소. 그럼 사 공자의 말대로 현종이, 아니, 그 종천이라는 자가 마교의 교주라고 합시다. 어차피 그게 아니라면 소림사의 방장 대사님과 원로분들을…… 그가 해칠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을 테니 말이오. 그런데 아까 안 좋은 소식이 두 가지라고 하지 않았소?”
사완악은 역시 제갈세가의 가주답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사실은 두 번째 소식이 더 안 좋은 일일지도 몰라.”
“그게 무엇이오?”
“흠…….”
사완악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말했다.
“마교의 교주 종천이 너무 강하다는 것.”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사완악을 바라봤다.
다른 인격이라 해도 육체는 같다.
현종이 얼마나 대단한 천재이고, 강한 무인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물며 그가 천마신공까지 익혔다면, 얼마나 강할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다음 이어지는 사완악의 말에, 그들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그런데 다음에 만날 때는 훨씬 더 강해질지도 모른다는 거야.”
“이유가 무엇이오?”
“도망갔으니까.”
“…….”
사완악은 어깨를 으쓱인 후 말했다.
“현종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들 알잖아. 그리고 아마 당신들은 잘 모르겠지만…… 현종은 승부욕이 지독한 놈이거든. 다른 인격이라고 해도, 마교의 교주라는 놈이 더하면 더할 거 아니겠어? 그런데 나와 일대일의 결투에서 도망갔다니까?”
물론 마교의 교주 종천은, 두 사람의 대결은 더욱 성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완악의 생각에, 그건 그야말로 개소리였다.
현종의 성향이라면, 자신의 호적수 앞에서 결코 등을 보이고 도망칠 놈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까 그 점창파 도둑 장로 이야기를 들으며 확신했어.”
점창파 도둑 장로라는 말에 오향자는 얼굴이 붉어지며 미간을 찌푸렸으나, 별다른 대꾸를 하지는 않았다.
“그 사람은 다른 인격이 되고도 점창파의 무공을 사용해서 도둑질을 했다며? 하지만 종천은 그러지 않았어. 현종이 익힌 소림사의 내공이나 무공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지. 이상하지 않아? 어쨌든 현종이 천마신공을 익힌 시간은 짧을 수밖에 없고, 더 오랜 시간 연마한 것은 소림사의 무공인데, 조금도 사용하지 않다니.”
사완악이 무당파의 상현 진인을 바라봤다.
“어쩌면 당신 말대로 마공과 상극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 즉, 그의 상태는 아직 온전하지 못했다는 거야.”
사완악의 인상이 처음으로 찌푸려졌다.
“그럼에도…… 그놈의 기운은 진짜 강했지. 도망갔다고 하지만, 솔직히 그 상태로 붙었어도 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
사람들은 사완악의 말을 이해했다.
종천은 몸이 정상이 아니었기에 도망쳤다.
만약 그가 제대로 몸을 회복하고 돌아온다면?
그때는 사완악조차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뜻이었다.
사완악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무릎을 꿇으면서까지 도와달라고 할 만큼 대단한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사완악이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정도맹이 어찌 그를 막을 수 있을까?
사완악은 일순 절망이 떠오른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겁먹은 강아지 같은 얼굴들을 하고 있군.”
사람들은 겁먹은 강아지라는 말에 기분을 나빠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다만 사완악의 웃음을 보고는, 제갈중용은 일말의 희망을 느끼며 물었다.
“사 공자에게는 그를 상대할 수 있는 대안이 있는 것이오?”
“뭐, 대안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할 방법은 있지.”
“최선을 다할 방법?”
사완악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대표들을 쭉 훑어보며 말했다.
“무공 좀 가르쳐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