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24
정도마신 23화
천사환검 궁무외의 얼굴이 굳어지며 전신에서 폭발할 듯한 살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너, 지금 뭐라고 그랬지?”
사완악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당신이 삼방주인가 보군.”
궁무외는 야수가 으르렁거리듯 말을 내뱉었다.
“뭐라고 했는지 물었다.”
사완악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말했다.
“아들의 복수 말인가?”
궁무외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흉수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청년이라고 한 것을 떠올렸다.
“네가 내 아들을 죽였느냐?”
사완악이 다시 한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약 당신이 말하는 아들이 개망나니로 유명한 궁화종이라면,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궁무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한 가지만 말해 주마.”
“뭔데?”
“간단히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눈과 혀를 뽑고 사지를 잘라 개의 먹이로 던져 줄 것이다. 그리고 정유문의 사람들은 일하는 하인들까지도 모조리 잡아 산 채로 불태워 죽여 주마.”
그의 말에 구휘의 안색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사완악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역시 피는 속이지 못하는 법인가?”
“뭐라고?”
사완악이 궁무외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당신 아들도 죽기 전에 그런 말을 했던 거 같아서 말이야. 아, 물론 그 녀석은 말을 끝마치기 전에 목이 잘렸지만.”
그 순간 궁무외의 전신에서 흐르고 있던 기운이 폭발하며,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그의 신형이 사완악을 향해 화살처럼 쏘아졌다.
“오호?”
사완악의 눈에 잠시 이채가 흘렀다.
궁무외의 별호는 천사환검이었다.
천 마리의 뱀이 환영을 일으킨다는 말처럼, 그의 사환검법은 아들 궁화종이 펼친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흐악!”
자신도 모르게 기겁하며 비명을 지른 것은 사완악의 옆구리에 매달려 있는 구휘였다.
궁무외의 검이 마치 은빛 물뱀이 강물을 헤엄치듯 꿈틀거리며 사완악의 목을 향해 날아가다, 갑자기 검로가 꺾이더니 칼끝이 구휘의 두 눈을 찔러 왔기 떄문이었다.
이는 궁무외가 아들의 죽음 때문에 흥분한 와중에도 얼마나 노련하고 냉정한 무인인지를 보여 주는 대목으로, 싸움에서 본인의 몸보다 다른 사람을 지키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이용한 한 수였다.
하지만 이때, 구휘는 귀가 울릴 정도의 금속성과 함께 자신의 눈앞에서 검광이 번쩍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느새 사완악의 검이 구휘의 얼굴 앞을 가로막으며 궁무외의 검을 막아 낸 것이었다.
“죽어랏!”
하지만 이미 이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 궁무외의 검은 사완악의 검을 뱀처럼 타고 올라가 그의 가슴을 그대로 찔렀다.
그 공격은 너무나 빠르고, 사완악의 검을 짓누르면서 펼치는 초식이기에 사완악으로서는 막아 낼 방도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 사완악의 검 또한 변화를 일으켰다.
사완악의 검은 스르르 원을 그리며 궁무외의 검 위로 올라와 뱀의 머리를 내리누르듯 궁무외의 검을 아래로 떨쳐 버리고, 다시 튕겨 올라오며 반대로 궁무외의 가슴을 향해 쏘아졌다.
“컥!”
궁무외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구휘와 흑사방 무사들의 눈이 부릅뜨였다.
사완악의 검이 그대로 궁무외의 가슴을 꿰뚫고 등 뒤로 튀어나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게 무슨 검법……!”
궁무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리다가 말을 멈추었다.
팟!
사완악이 검을 빼내자 그의 신형은 눈을 부릅뜬 채 힘없이 허물어졌다.
이미 그는 절명(絶命)한 것이다.
“이, 이럴 수가…….”
사람들은 도무지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흑사방의 삼방주가 약관 남짓한 청년에게 단 일 초식 만에 가슴을 관통당하다니?
물론 사완악이 방금 펼친 검술이 과거 강호를 공포로 물들게 했던 마교에서 유일하게 여인의 몸으로 교주의 자리에 올랐던 사대 교주, 검마후의 환요옥영검이라는 것을 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이 자리에서 그 검법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완악은 모두의 경악한 시선을 무시한 채, 별일 아니라는 듯 검에 묻은 피를 살짝 털어 내며 흑사방의 무사 한 명에게 물었다.
“이봐, 일방주와 이방주의 처소는 어디지?”
* * *
며칠 뒤, 하북성 일대에는 하나의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흑사방의 이방주와 삼방주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다가 양패구상(兩敗俱傷)하고, 두 방주의 부하들은 일방주 흑철야왕(黑鐵夜王)의 세력이 되었다.
-흑사방 삼방주의 아들 궁화종은 정유문과의 비무에서 의문의 청년 고수에게 죽음을 당했다. 하지만 흑철야왕은 그것이 정정당당한 비무였음을 인정하고, 앞으로는 정유문에게 어떠한 보복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방주와 삼방주가 서로 양패구상하여 죽을 수 있는지 의아해했고, 흑사방이 정유문에게 복수는커녕 오히려 비무 결과에 승복한 것도 믿을 수 없었다.
그 결과 한 가지 추측이 자연스럽게 확실시되었는데, 바로 흑철야왕이 흑사방을 통일하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는 의혹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삼방주의 아들이 정유문과의 비무에서 목숨을 잃은 것은 오히려 흑철야왕에게 호재가 되는 셈이니, 앞뒤가 딱 들어맞는 것이었다.
그리고 설린은 이 모든 사건과 소문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 너무나 행복한 얼굴로 고기 요리를 먹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 특별한 요리도 아닌데, 그렇게 맛있나요?”
사완악은 입안에 음식을 우물거리며 끄덕였다.
“이게 특별한 요리가 아니라니, 그럼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요리가 있다는 걸까? 그리고 이 술. 이 술이 아주 기가 막혀.”
“저는 술을 잘 모르지만, 그것도 많이 비싼 술은 아닌걸요.”
“크, 들으면 들을수록 내가 정말 불쌍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군.”
사완악은 물론 술을 마셔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사대악인들이 은거지에서 어설프게 담근 술이었으니, 전문적인 솜씨로 만들어진 술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설린은 술과 고기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사완악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구휘에게 들었어요.”
“응? 뭘?”
설린이 물었다.
“구휘를 옆구리에 낀 채로 흑사방을 쳐들어가서 가로막는 무사들을 순식간에 쓰러뜨리고 삼방주의 처소로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사완악이 고기 한 점을 다시 입안에 넣으며 말했다.
“그랬지.”
설린이 말했다.
“흑사방의 삼방주가 공자님의 일 초식도 버티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던데요.”
“아마도.”
“그리고 이방주의 처소로 가서 이방주도 삼 초식 만에 죽이고, 다시 흑철야왕을 찾아갔다고 들었어요.”
사완악이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캬, 하는 소리를 내며 끄덕였다.
“그게 중요한 건가?”
설린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리고 협박을 하셨다고. 죽고 싶지 않으면 이 일들을 알아서 수습하고, 정유문에도 시비를 걸지 말라고요.”
“협박이라기보다는 권유였지.”
설린은 별일 아니라는 듯한 사완악의 대답을 들으며 구휘와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흑철야왕이 그 말을 듣고 순순히 응했다고?’
‘저도 믿을 수 없었어요. 흑철야왕은 덩치가 곰처럼 크고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삼방주나 이방주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했거든요. 소문으로는 세 명의 방주가 비슷한 실력이라고 했지만, 제가 직접 본 흑철야왕은 전혀 달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흑철야왕이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공자님을 노려봤는데, 공자님은 마치 장난을 치듯 웃으며 흑철야왕을 마주 봤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대치를 하며 서 있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흑철야왕의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나중에는 이마에서 비 오듯 땀이 흘러내렸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했어요. 저도 눈으로 보면서도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니까요.’
설린은 물론, 황임과 관일성 또한 그 말을 정말 믿기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구휘가 거짓을 말할 리도 없었다.
‘그렇다면 흑철야왕은 싸우기도 전에 스스로 이분을 이길 수 없음을 자인한 거야.’
흑철야왕의 무공과 신분을 생각해 봤을 때, 조금의 차이로 그런 행동을 할 리가 없었다.
그는 사완악에게 기세를 일으켜 실력을 가늠해 본 것이고, 사완악이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 분명했다.
‘그게 가능한 일일까?’
설린은 이 눈앞의 곱상한 공자에게 더 이상 놀라기도 지치는 기분이었다.
“사 공자님이 도대체 어떤 분인지 저는 헤아릴 수가 없군요.”
사완악은 처음으로 음식과 술에서 눈을 떼고 설린을 쳐다보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는 게 중요한가?”
설린은 사완악의 말을 듣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중요한 건, 저희가 사 공자님께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다는 것이지요.”
사완악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비무 한 번으로 뭘 그 정도까지.”
설린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비무에서 졌다면 흑사방은 저와의 혼인을 요구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저는 제 정절과 문파의 명예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이었지요. 그러니 사 공자님은 제 목숨,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정유문의 명예를 지켜 주신 은인이십니다.”
사완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밥값은 제대로 한 셈이군.”
설린은 이 엄청난 사건을 밥값 정도로 치부하는 사완악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정유문은 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능력이 부족하여 마땅히 보답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없으나…… 사 공자님께서 정유문에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따르겠습니다.”
그런데 설린의 말을 들은 사완악은 이상하게도 손사래를 치며 단호히 말했다.
“아니야, 내게 보답을 해서는 안 돼.”
“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옳은 일을 해야 진짜 정의로운 것이잖아. 그 의미가 퇴색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야.”
설린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분은 겉보기로는 장난스러운 언행을 많이 하시지만 속은 매우 깊고, 올바른 신념으로 적에게는 자비가 없으니 그야말로 협객(俠客)이라는 말에 어울리시는 분이구나.’
이때 사완악이 갑자기 “악!” 소리를 내며 말했다.
“아, 그런데 이미 내가 그 대가로 음식과 술을 먹었구나! 이봐, 설 문주. 그럼 설마 내가 한 행동들이 의미가 없어지는 걸까? 그럼 안 되는데!”
설린은 사완악이 농담을 한다고 생각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리가요. 흑사방의 이방주와 삼방주, 그리고 궁화종은 평소 악행을 일삼아 많은 사람들이 그들로 인해 고통받았습니다. 사 공자님은 정유문뿐만 아니라 하북성의 많은 약자들을 구하신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요리와 술 정도야 귀한 손님에게 응당 대접하는 것이니 부담스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설린은 말을 하고 나서 깜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흑사방의 세 방주 중 흑철야왕은 이방주와 삼방주의 행동을 관망할 뿐, 직접 나쁜 짓을 저지르는 사람은 아니었구나. 어쩌면 사 공자님은 그것까지 미리 파악하시고 흑철야왕이 흑사방을 통일하도록 만드신 것일까?’
설린은 사완악을 보면 볼수록 그 끝을 알 수 없는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완악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설린의 말에 진심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사완악은 그러고 잠시 어떤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대가까지는 아니어도 부탁하고 싶은 건 하나 있는데…….”
설린은 사완악의 말에 반색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로서는 무엇이라도 보답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