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36
정도마신 35화
사완악은 처음 가종후에게 받았던 팔찌를 쳐다봤다.
가종후가 말했다.
“그것은 사령문의 신물입니다. 본래는 흙으로 빚어 만든 것 같은, 황토색의 낡은 팔찌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영겁사령존이 탄생하면 아까 보셨듯이 상아색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팔찌로 변하게 됩니다. 그 팔찌는 약 십오 년 전쯤 상아색으로 변했고, 저희는 영겁사령존께서 탄생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사완악은 생각했다.
‘십오 년 전이라면 아마도 사부님들이 내게 영겁사령존을 심어 놓았던 때로구나.’
가종후가 말했다.
“그 사령녹리완천은 영겁사령존의 기운을 머금으면 상아색에서 다시 색깔이 변하며 무늬가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
가종후는 이때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
“한 가지 저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전설에 따르면 사령녹리완천은 본래 녹색으로 변하고, 뱀과 용을 합쳐 놓은 듯한 이무기의 문양이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만…….”
사완악의 팔찌는 적색이었고, 불꽃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영겁사령존의 기운이 염화신공으로 합쳐져서 그런 것일까?’
사완악이 내심 그렇게 짐작하고 있을 때, 가종후는 크게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
“애초에 영겁사령존이 아니시라면 사령녹리완천을 착용할 수조차 없으니, 색깔이 변한 것만으로도 이미 사령문의 지존이심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사완악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영겁사령존이 아니면 착용조차 할 수 없다고?”
“그렇사옵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억지로 이 팔찌를 차면 문제라도 생기는 건가?”
“물론입니다. 사령녹리완천은 영겁사령존의 기운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착용자의 내공을 끝없이 빨아들입니다. 단순히 내공뿐만 아니라, 생기(生氣)마저 모두 갉아먹어 목내이로 만들어 버리지요. 그것은 어떤 무공의 고수와 술법의 고수라 할지라도 막을 수 없습니다.”
사완악은 그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
조금 전, 팔찌를 착용하자마자 사완악이 지니고 있는 내공 중 삼 할이 어찌 반항할 틈도 없이 순간에 빨려 들어갔으니까.
사완악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처음에 나에게 우선 이 팔찌를 권한 것이로군? 너희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영겁사령존인지 아닌지 알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사옵니다!”
사완악은 더욱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하! 사령문의 신물이라더니, 정말 굉장하군.”
“후후, 그렇습니다.”
“후후, 그렇습니다?”
“예…… 커헉!”
사완악을 따라 웃음을 흘리던 가종후가 기침을 토해 내며 뒤로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사완악이 냅다 그의 복부를 걷어차 버린 것이었다.
가종후는 깜짝 놀라고 두려운 얼굴로 벌벌 떨며 고개를 들었다.
“영겁사령존이시여, 무, 무슨 일로…….”
“뒈질래? 한마디로 내가 영겁사령존이 아니었으면 죽을 뻔했다는 거 아냐?”
“그, 그건…….”
가종후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렇다는 뜻이었다.
사완악은 어이없는 얼굴로 콧방귀를 뀌고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언제까지 자빠져 있을 거냐? 원위치로.”
“옛!”
가종후는 후다닥 달려와 공손히 기립했다.
사완악이 그를 보며 생각했다.
‘그러니까 어쨌든 내가 사령문의 지존이 되었다는 뜻이지?’
사완악은 갑자기 표정과 말투를 달리했다.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다.”
그것은 마치 황제가 신하에게, 주인이 하인에게 대하는 듯한 언행이었다.
하지만 가종후는 그것을 당연시 받아들이며 고개를 숙였다.
“하문하십시오.”
이때, 사완악의 눈이 푸른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진안심공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내가 영겁사령존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이냐?”
이것은 사완악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이었다.
천하의 악인으로 자라난 그가, 지금까지 강호로 나와 갑자기 협객이 되려고 하는 이유와 직결될 수도 있는 부분이기에.
종가후는 진안심공과 상관없이 충직한 신하처럼 바로 대답했다.
“사실 저 역시 그것이 조금 의문스럽습니다.”
“무슨 말이지?”
“저희는 영겁사령존께서 스스로 그 모습을 드러내실 거라 믿으며 기다려 왔습니다. 그런데 약 열흘 전, 서찰 하나가 사령문의 은거지로 왔습니다.”
사완악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서찰?”
“예. 언제 누가 놓고 갔는지는 알 수 없고, 어떻게 사령문의 은거지를 알아냈는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편지 내용에는 스스로를 사령문의 암중사자(暗中使者)이라 칭했고, 예언의 때가 왔으니 영겁사령존을 영접하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사완악은 빠르게 물었다.
“사령문에 암중사자라는 것이 원래 존재했었나?”
“삼백 년 전에 영겁사령존의 비밀스러운 명령을 받드는 암중사자에 대한 기록은 있습니다. 하지만 암중사자가 지금까지 존재해 왔다는 사실은 저희로서도 깜짝 놀랄 일이었습니다.”
“그가 진짜 암중사자인지는 모를 일이겠군.”
가종후는 음, 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는 사령문에서만 쓰는 암호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 암호로 표식을 남겼고, 그것을 따라 영겁사령존께서 계시는 객잔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표식과 함께 서찰 하나를 또 남겼는데, 이것입니다.”
가종후는 품에서 서찰을 꺼내 사완악에게 바쳤다.
사완악이 펼쳐 보니 그 내용에는 영겁사령존과 함께 있는 소림사의 승려는 무공이 매우 뛰어나니, 일행 중 여인을 인질로 삼아 우선 영겁사령존을 따로 모시라는 것이었다.
사완악은 가종후가 설린을 인질로 삼으면서도 매우 조심스러웠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만약 사완악이 진짜 영겁사령존이고 설린이 그의 연인이라면, 가종후에게는 황후마마와 같은 존귀한 신분이기 때문이었다.
‘사령문의 암중사자라…….’
사완악은 가종후에게 넌지시 물었다.
“혹시 천기자(天奇者)에 대해 아는 바가 있나?”
“천기자라면 강호역사서를 만들었다는 그 예언자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이야기는 들어 봤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정도 외에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사완악은 가종후의 대답에 잠시 어떤 생각에 골똘히 잠겼다.
가종후가 물었다.
“혹시 그와 무슨 일이 있으신 것입니까?”
“아니. 신경 쓸 필요 없다. 그보다.”
사완악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쨌든 내가 영겁사령존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사령문은 나를 따르는 것인가?”
가종후가 바로 말했다.
“물론입니다. 사령문은 오직 영겁사령존께서 탄생하시기만을 기다려 왔습니다.”
사완악이 물었다.
“사령문의 문도는 얼마나 있지?”
“현재는…….”
가종후는 조금 망설이다 말했다.
“저를 포함하여 네 명입니다.”
사완악은 예상보다 적은 숫자에 그를 바라봤다.
“겨우 네 명?”
“아무래도 정파의 눈을 피해 음지에서 명맥을 유지해 오다 보니…… 그리고 전대의 고수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여, 사령문의 무공을 수련하는 과정이 정확히 전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여 타고난 기재가 없는 자들은 무공을 익히는 과정에서 주화입마에 걸리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가 빈번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그럼 현재의 네 명은 타고난 기재로, 사령문의 무공을 익혔다는 소리인데…….”
사완악은 가종후를 쳐다보며 말했다.
“썩 대단한 실력은 아닌 것 같은데?”
가종후가 민망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하지만 저는 무공보다 술법을 집중하여 연성하였고, 다른 세 사람은 저보다 더 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습니다.”
순간 사완악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대단하지 않다고 했지만, 가종후의 무공도 사실은 상당히 뛰어났다.
적어도 흑사방의 일방주 흑철야왕이나, 육사괴의 대형(大兄) 철혈귀조보다 더 뛰어난 실력이었다.
다른 세 사람이 그보다 더 강하다면, 그들은 강호의 내로라하는 고수들과 견주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볼 수 있었다.
“그들도 나에게 절대 복종할 것이라 확신하는가?”
가종후가 당연하다는 듯 힘주어 말했다.
“영겁사령존께서 죽으라고 하면 죽는 것이 사령문도의 운명이옵니다.”
“만약 반항한다면?”
“예?”
가종후는 사완악의 말에 심히 당황했다.
“감히 그런 일이 어찌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사령녹리완천은 사령문의 모든 내공심법을 흡수할 수 있으니, 사령문의 무공을 익힌 자는 영겁사령존의 영원한 수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
사완악은 팔찌의 능력보다 가종후의 태도에 더 믿음이 갔다.
그는 애초에 감히 반기를 든다는 것을 상상해 본 적조차 없는 얼굴이었다.
‘저들은 내가 진짜 영겁사령존이라 믿고 있으니…… 죽으라고 하면 진짜 목숨까지 바칠 사람들이다. 뜻밖의 수확이야.’
사완악은 자신의 팔찌를 다시 한번 살펴보며 말했다.
“녹색 이무기가 아니라 적색의 불꽃 문양이니…… 이름은 사령적화완천(邪靈赤火腕釧)으로 바꿔야겠다.”
“사령적화완천…… 훌륭한 이름입니다. 역시 고매하신 영겁사령존이십니다.”
사완악은 황당한 듯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쓸데없는 아부는 떨지 말도록.”
가종후는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사완악은 팔찌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가져간 내공은 돌아오지 않는군.”
사령적화완천은 사완악이 지닌 내공에서 무려 삼 할가량을 흡수해 버렸다.
내공을 사용한 것과 흡수된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운기조식을 통해서도 회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슨 특별한 능력이라도 있는 건가?”
가종후가 대답했다.
“제가 알기로 신물은 상고무림의 보물이자 특별한 주술이 담겨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영겁사령존께서 신물에 내공을 일정량 주입하시면 발현되는데, 세 번을 사용하고 나면 힘을 잃고 원래의 형태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 후에는 백 년 동안 주술이 봉인되어 아무런 능력도 쓸 수 없다고 전해집니다.”
“그 주술이 무엇인지는 모른다는 소리군.”
“예. 전대 영겁사령존께서는 오직 그 도사와 겨룰 때 신물의 힘을 사용하셨다고만 기록되어 있고, 어떤 능력이 발현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흐음.”
사대악인의 내공과 영겁사령존의 기운까지 흡수한 사완악의 내공 삼 할은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하지만 이미 사라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그리고 이 사령문의 신물이라는 팔찌에서는 확실히 알 수 없는 기이한 힘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 정도의 대가라면 그 특별한 주술이라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겠지.’
사완악은 그렇게 생각하며 가종후에게 말했다.
“그럼 다른 문도들은 사령문의 은거지에 있는 것인가?”
“예. 은거지는 이곳 산서성의 가장 북쪽에 있는 야산의 동굴에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시겠습니까?”
사완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네 명뿐이라면 굳이 그곳에서 볼 필요 없겠지. 너는 지금 사령문으로 가서 그들을 데리고 하북성의 정유문으로 오도록 해라.”
“정유문이요?”
“나는 현재 정유문의 문도 신분으로 있다. 저 여인이 바로 정유문의 오대 문주이지.”
가종후가 깜짝 놀라 물었다.
“영겁사령존께서 어찌 정유문의 문도로 계신단 말입니까?”
그 순간.
사완악의 몸에서 강렬하고 날카로우며 섬뜩한 기운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