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40
정도마신 39화
사완악의 말에 네 사람은 일순 당황했다.
묵영에게 갑자기 사령문의 문도이자 그의 동료인 만사무를 죽이라니.
가종후가 황급히 물었다.
“지, 진심이십니까?”
사완악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내가 지금 쓸데없이 농담이나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느냐?”
“그런 것은 아니오나…….”
“가종후, 다시 한번 입을 놀린다면 너를 먼저 죽이라고 하겠다.”
가종후는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한마디 도움을 주려던 천화도 마찬가지였다.
묵영이 말했다.
“이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사완악은 묵영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명령마다 일일이 이유를 설명해야 하나? 혹은 이유에 따라 불복이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
묵영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만사무를 쳐다봤다.
만사무는 아무 말 없이 땅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는데, 마치 자신의 죽음을 각오한 사람처럼 눈을 한 차례 감았다 뜨더니 묵영을 질책했다.
“묵영, 영겁사령존의 명을 받들지 않고 무엇하느냐?”
묵영은 머릿속에서 하고 싶은 말을 고르는 사람처럼 잠시 서 있다가 짧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고생했소.”
그 순간, 묵영의 품에서 비도 하나가 만사무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묵영이 날린 비도술에는 조금의 사정도 없었고, 만사무 역시 담담하게 자신의 최후를 맞이하며 두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 순간, 사완악은 중지를 둥글게 말아 엄지로 튕겨 냈다.
사완악의 손가락에서 한 가닥의 지풍(指風)이 암기처럼 날아가 묵영이 날린 비도의 옆면을 강하게 때렸다.
그러자 비도는 멀리 날아가 땅에 떨어졌다.
사령문의 네 명은 다시 사완악을 쳐다봤다.
사완악은 살짝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확실히 입으로만 충성하는 것은 아니군.”
묵영과 가종후, 천화의 얼굴에는 안도의 빛이 흘렀다.
만사무는 아무 이유 없이 죽음의 문턱을 다녀왔음에도 사완악에게 담담히 고개를 숙였다.
사완악은 그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묵영의 공격은 진짜였고, 만사무 역시 한 치도 피하지 않았다.
사완악은 만사무를 쳐다보다가 불쑥 물었다.
“이유가 무엇이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완악은 말했다.
“사령문의 무공을 익히고 나서, 강호역사서에 나와 있는 사령문에 대해 읽은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사령문이 정통 무공에서 벗어나 술법을 익히는 문파이고, 그 영향으로 종교적 성향을 지닌 단체였다고 기록되어 있더군.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삼백 년 전의 사령문은 하나의 거대한 종교였고, 영겁사령존은 그들에게 신 같은 존재였겠지. 그러니 영겁사령존이 어떤 명령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광신도와 같이 따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완악은 만사무를 두 눈 깊게 응시하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그건 삼백 년 전의 이야기고. 음지에서 명맥을 이어 오며, 이제는 겨우 네 명 남은 문파에서 과거의 예언을 믿고 나를 찾아와 목숨까지 바치면서 충성한다고? 설마 나보고 그걸 믿으라는 것은 아니겠지? 너희들이 나를 찾아온 진짜 이유를 말해라.”
만사무는 잠시 사완악의 눈빛을 받아 내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입을 열었다.
“복수 때문입니다.”
“복수?”
“원한을 갚을 사람이 있습니다. 그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힘으로는 역부족이지요. 지난 이십 년간, 오로지 무공만을 연마했지만 여전히 저는 그를 죽일 자신이 없습니다.”
사완악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원수가 누구인데?”
만사무가 말했다.
“무적검천 사도준. 정도제일 검객입니다.”
사완악은 뜻밖이라는 듯 만사무를 쳐다봤다.
무적검천 사도준은 사완악도 잘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그는 과거 강호 칠대고수 중 한 사람이었다.
사완악의 사부, 염라대사 영환은 칠대고수 중에도 엄연히 서열이 존재한다고 했다.
영환은 그중 네 번째라고 했고, 자신의 위에 있는 두 사람과는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직 한 사람만은 자신보다 확실히 강하다고 하였는데, 그가 바로 무적검천 사도준이었다.
염라대사 영환은 승부욕과 자부심이 매우 강한 사람이어서, 다른 칠대고수들을 언제나 평가절하(平價切下)하기 일쑤였는데, 그런 영환 사부마저 무적검천 사도준에 대해서만큼은 천하제일인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할 정도였다.
사완악은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내가 대신 복수해 주기를 원하는 건가?”
만사무는 갑자기 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영겁사령존께서는 필시 이 무림을 제패하실 계획을 갖고 있으시겠지요. 그렇다면 반드시 그자와 만나게 되실 것입니다. 제 손으로 직접 그를 죽이고 싶으나…… 제 능력이 닿지 않는다면 영겁사령존의 손발이 되어 지켜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흐음.”
사완악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하지만 조금 전 목숨을 잃었다면, 복수를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만사무가 답했다.
“정말 죽이지는 않으실 거라 믿었습니다.”
“만약 그 예상이 틀렸었다면?”
“그럼 죽었겠지요.”
“오호라.”
사완악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떠올랐다.
“상당히 마음에 드는 대답이군.”
사완악은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천화에게 물었다.
“너도 말해 봐라.”
“저는…….”
천화는 조금 난감한 얼굴로 망설이다가 말했다.
“정말 예언을 믿고 영겁사령존을 모시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다시 말했다.
“저의 어머니는 기녀였습니다. 아비는 누구인지도 몰랐지요. 저와 어머니는…… 정말 많은, 험한 일들을 당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평생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기루를 뛰쳐나왔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돌아가신 사부님을 만났지요.”
천화의 사부는 사령문의 문도였다.
그녀는 사부에게 무공을 전수받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그토록 무서웠던 남자들은 그녀의 한마디에 노예가 되었고,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그들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다룰 수 있었다.
“저는 다시는 누구에게도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강제로 어떤 일을 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여전히 저는 강호에서 당당하게 사령문의 사람이라는 것을 말할 수 없었지요.”
무림에서 사령문의 무공은 어떤 면에서는 마교의 무공보다도 더 사이한 무공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니 사령문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세상이 가만둘 리 없었다.
천화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영겁사령존께서 강호를 지배하시면, 저와 그들은 반대의 입장이 되겠지요. 그리고 혹 영겁사령존의 여인이라도 된다면, 호호, 저야말로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신분이 되는 거 아니겠어요?”
삼십 대의 천화는 농염하고 애교 가득한 표정으로 사완악을 은근히 바라봤다.
“안타깝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군.”
“너무 그렇게 딱 잘라 정하지 마시고, 곁에 두고 천천히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그녀의 넉살에 사완악은 결국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때 천화가 말했다.
“그리고 묵영은 제가 기루에서 나올 때 데리고 나온 아이입니다.”
묵영 역시 다른 기녀의 아들이었고, 당시 겨우 예닐곱 살이었다.
그런데 천화가 기루에서 도망치던 날, 천화는 그 기녀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신의 어린 아들을 죽이려는 것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알고 보니 그 기녀는 스스로의 신세를 한탄하여, 아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을 하려는 것이었다.
천화는 힘 있는 자들에게 짓밟힌 자신의 처지와, 어미 손에 죽게 되는 어린아이의 처지가 비슷하게 느껴져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 기녀에게서 묵영을 빼앗아 함께 도망쳤고, 묵영은 자연스럽게 사령문의 문도가 되었다.
사완악은 묵영을 쳐다봤다.
이때 묵영은 조용히 입을 달싹였는데, 사완악에게 전음을 날리는 것이었다.
사완악은 그 전음을 듣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일 뿐, 묵영에게 더 이상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사완악은 마지막으로 가종후를 쳐다봤다.
그런데 이때 가종후의 표정은 조금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멍해져 있었다.
“무슨 일이지?”
가종후는 송구한 듯 고개를 숙이고는 쇳소리 가득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 아닙니다. 그저 다른 귀령들이 그런 생각들로 영겁사령존을 찾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어 그렇습니다.”
“이제 네 이유를 말할 차례다.”
그러자 가종후는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저는 다릅니다.”
“응?”
“저는 말 그대로 영겁사령존께서 다시 탄생하시기만을 간절히 고대했습니다. 영겁사령존께서 나타나시어 수많은 술법과 힘을 보여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신을 따라 새로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영광이 제게 있기를 말입니다.”
“…….”
사완악은 잠시 할 말을 잃고 가종후를 바라봤다.
‘이놈이 제일 미친놈이었군.’
어쩌면 삼백 년 전의 사령문 문도들은 지금의 가종후와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믿어 주십시오. 저는 정말 영겁사령존의 명이라면 목숨을 바칠 수 있나이다!”
“…….”
사완악은 헛웃음을 한 번 내뱉고는 말했다.
“알겠다. 알겠으니 그만해라.”
사완악은 네 사람의 얼굴을 면면히 살펴본 후 말했다.
“좋다. 너희들의 뜻은 모두 알았고…… 나는 영겁사령존으로서 너희를 수하로 거두겠다.”
만사무의 얼굴에 감격의 빛이 떠올랐다.
사완악의 말은 곧 만사무의 복수를 해 주겠다는 대답과도 같았으니까.
물론 그런 만사무의 벅찬 심정은 가종후의 요란스러운 대답에 묻혀 버렸다.
“만세! 만세! 만만세! 오오, 영겁사령존이시여!”
“가종후, 닥쳐라.”
“…….”
사완악은 특히 가종후를 노려보며 말했다.
“대신 한 가지 규칙을 정하겠다. 앞으로 우리끼리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영겁사령존이라는 호칭은 쓰지 않도록 한다. 아니, 우리끼리 있을 때도 지존 정도로 부르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남들이 있을 때는 사 공자님이라고 칭하면 된다.”
“하, 하지만, 지존에게 겨우 공자님이라는 호칭은…… 카학! 죄, 죄송합니다.”
가종후는 갑자기 날아든 발길질에 복부를 움켜쥐고 쓰러졌다.
사완악은 고통스러워하는 가종후에게 물었다.
“너희에게 나의 위치를 알려 주었던 암중사자는 어떻게 되었느냐?”
가종후는 자세를 바로하고 말했다.
“정유문으로 와서 지존을 뵈라고 암호를 남겼으나 회신은 없었습니다. 여태껏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보면 무슨 사정이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
사완악은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령문의 문도들은 조용히 사완악의 말을 기다렸다.
잠시 뒤, 사완악은 말했다.
“원래는 다른 계획이 있었으나 너희를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만사무, 천화, 묵영, 가종후. 네 사람 모두…….”
사완악은 씩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말에, 네 사람의 얼굴에 황당함이 떠올랐다.
“정유문의 문도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