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52
정도마신 51화
“내기?”
사완악은 자신과 남궁준휘를 바라보고 있는 주변의 후기지수들을 쭉 훑어본 뒤 말했다.
“남궁세가가 놓친 육사괴를 내가 제압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고작 정유문 따위의 제자가 그 정도의 무공을 지니고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해서겠지?”
사완악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남궁준휘에게 말했다.
“사실 너희들이 뭐라고 하건 상관없지만…… 내가 한 일을 너무 인정받지 못하니까 조금 억울해져서 말이야. 내가 그 정도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면 되는 것 아니겠어?”
남궁준휘는 재밌다는 듯 사완악을 바라봤다.
“어떻게 입증하겠다는 거지? 설마 나와 비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사완악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속만 좁은 줄 알았더니, 머리까지 멍청한 놈이었군.”
“뭐, 뭐야?”
“아까 정도맹의 집법당주가 주의 사항으로 분명히 말했을 텐데. 비무 대회 참가자들끼리 사적인 비무는 금지라고. 너 정말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맞냐?”
집법당주 서문석은 자리를 떠나기 전, 분명 그런 말을 했었다.
남궁준휘는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대꾸할 말이 없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때 당소윤이 화제를 돌리며 빠르게 말했다.
“비무가 아니라면 어떤 방식으로 입증하겠다는 거죠?”
사완악은 씩 미소를 짓고는 설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문주, 잠깐 검 좀 빌려 줘.”
설린은 의아해하면서도 별다른 말 없이 바로 검을 건넸다.
사완악은 앞으로 걸어 나가, 자신의 주변에 검 끝으로 하나의 원을 그렸다.
“비무는 안 되지만 가벼운 놀이 정도는 괜찮겠지. 규칙은 간단해. 제한 시간은 일각, 무기는 무엇을 사용하든 상관없고. 팔다리를 제외한 내 몸을 가격하거나, 혹은 나를 이 원 안에서 나가게 만들면 내가 패배하는 거지. 일각 안에 하지 못한다면 내 승리가 되는 거고.”
사람들은 황당한 표정으로 사완악을 바라봤다.
사완악이 정한 규칙은 남궁준휘에게 너무나 유리한 조건이었다.
저 작은 원 안에서 남궁준휘의 공격을 모두 막거나 피해 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무려 일각(15분)이라는 시간 동안.
사완악이 아니라 다른 명문대파의 제자들이 나서도 그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고 해야 할까?
이어지는 사완악의 말은 그들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아, 물론 너 하나를 이겼다고 내가 육사괴 중 셋을 상대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겠지. 그러니까…… 너, 그리고 너까지. 셋이 한꺼번에 덤벼라.”
사완악이 지목한 사람은 바로 처음 인사를 했던 하북팽가의 소가주 팽무강과 제갈세가의 소가주 제갈근이었다.
그러자 장내의 모든 후기지수들은 황당함을 넘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사완악을 쳐다봤고, 설린조차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남궁준휘 한 사람을 상대하는 것만 해도 사완악에게 불리한 규칙인데, 셋을 동시에 상대한다니?
더군다나 팽무강과 제갈근이 누구인가?
제갈근은 남궁준휘보다 결코 아래의 실력이 아니었고, 팽무강은 무공의 조예는 두 사람보다 못할지 몰라도 타고난 신력과 강맹한 도법으로 이런 규칙이라면 오히려 더 무서울 수 있는 인물이었다.
남궁준휘는 대단히 미친놈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짜 제정신이 아니로군.”
사완악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왜? 이 정도까지 해 줘도 자신이 없는 건가? 구파일방이니, 오대세가니 해도 막상 인재가 없는 건가?”
남궁준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네놈이 스스로 무덤을 파겠다고 하니 그리해 주마. 일각이 아니라 삼초식이면 끝날 일이지만, 어쨌든 내기라고 했으니 조건을 정해야겠지. 만약 네가 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사완악은 주변 모두를 향해 말했다.
“내가 진다면 육사괴를 잡은 것이 허풍이었음을 인정하지.”
그러자 당소윤이 코웃음을 쳤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죠.”
사완악이 그녀를 힐끗 쳐다봤다.
“말해 봐. 뭘 더 원하지?”
당소윤이 독이 바짝 오른 음성으로 빠르게 말했다.
“당신의 언행은 매우 불경하고 무례해요. 당신이 지게 된다면 이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그 점을 사과하세요. 그리고 두 번 다시 우리 앞에서 건방을 떨지 않겠다고 머리를 조아리고 선언하세요.”
그것은 매우 치욕스러운 조건이었다.
사완악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어라? 머리까지 조아리고?”
“왜요? 갑자기 자신이 없나요?”
“흠…… 좋아, 대신 내가 이긴다면 반대로 내가 요구하는 것을 그쪽이 들어줘야겠지?”
“물론이다.”
대답은 남궁준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매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승리를 조금도 의심치 않는 얼굴이었다.
사완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조금 전 조건을 들으니 나 역시 사과를 받고 싶어지는군. 만약 내가 이 대결에서 승리한다면, 남궁 좀생이 너는 이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해라. 함부로 나와 정유문의 무공을 무시하고 비웃은 것에 대해서 말이야.”
“뭐야?”
남궁세가의 소가주에게 만인의 앞에서 무릎을 꿇으라니.
그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완악의 요구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이번에는 당소윤에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비웃으며 보고 싶다고 했던 광대권법을 사용하지. 대신 내가 이긴다면 당신도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 줬으면 좋겠군.”
“그게 무엇이죠?”
“당신이 강호 사대미녀라고 하던데?”
“그래서요?”
“그래서요는 뭐가 그래서요야? 얼마나 예쁘기에 그렇게 꽁꽁 싸매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거지. 어쩌면 그저 그런 용모인데 사천당문의 힘으로 헛소문을 낸 것일 수도 있잖아?”
“뭐, 뭐라고요?”
“그러니까 내가 이기면 이 자리에서 그 면사를 벗어. 내가 소문이 사실인지 평가해 주지. 솔직히 나만 궁금한 것도 아니잖아? 천하 사대미녀라는데, 남자라면 누구나 보고 싶어 하지. 안 그래?”
사완악의 말에 장내의 후기지수들은 자신도 모르게 헛기침을 내뱉고, 먼 산을 바라보듯 시선을 피했다.
“아, 그리고 앞으로는 나를 볼 때마다 고개를 조아리고 사 공자님이라고 부르도록.”
당소윤은 황당한 얼굴로 사완악을 쳐다봤다.
‘이거 뭐 하는 놈이지?’
사실 사완악이 예상한 대로 그녀는 남궁준휘에게 미리 부탁을 받은 상태였다.
남궁준휘가 사완악을 데리고 와서 소개하면, 육사괴를 제압한 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당소윤의 입장에서는 그리 어려운 부탁도 아니었기에, 남궁세가 소가주의 말을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당소윤 역시 정유문 따위의 제자가 그런 엄청난 일을 해냈다고는 전혀 믿을 수 없었기에, 어떤 놈이 그렇게 허풍을 떠는지 혼내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말 몇 마디면 진실을 실토하고 싹싹 빌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이 사완악이란 놈은 등장부터 지금까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첫인상은 조금 의외였다.
고급스러운 백의 장삼에 준수한 외모는 마치 부잣집의 귀공자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와 대조적으로 언행은 너무나 경박하고 무례했으며, 천지 분간을 못 하고 날뛰는 원숭이처럼 아무 말이나 내뱉는 것이 아닌가?
남궁세가의 소가주에게 좀생이라고 하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자신에게는 감히 이년 저년이라고 말하더니, 이번에는 미녀라는 소문이 헛소문일지 모르니 면사를 벗으면 자기가 평가를 해 주겠다는 개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사완악은 조금 전 당소윤이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뭐야, 설마 갑자기 자신이 없는 건가?”
으득.
순간 당소윤의 입에서 작게 이를 악무는 소리가 울렸다.
‘미친놈.’
당소윤은 면사 안에서 사완악을 노려보며 생각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뭘 믿고 이런 가망 없는 내기를 해?’
하지만 사완악이 어떤 조건을 요구하든 상관없었다.
남궁준휘 한 사람도 아니고 팽무강과 제갈근이 다 함께 공격을 하는데, 고작 정유문의 제자 따위가 막아 낼 재간이 있으랴.
더군다나 사완악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그저 평범한 삼류 무사 정도일 뿐이었다.
‘좋아. 나는 오늘 네놈이 무릎 꿇는 꼴을 꼭 보고야 말겠다.’
당소윤은 차가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당신은 정말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군요. 좋아요, 그렇게 하죠.”
이때, 지금까지 조용히 듣고 있던 제갈근이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빠지겠소.”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자 제갈근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무공을 연마하다가 약간의 내상을 입은 상태요. 사흘 뒤의 비무 대회를 위해서 회복에 집중해야 하니 이해 바라오.”
“그런 이유라면 할 수 없지.”
남궁준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제갈근이 빠지든 말든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자신 혼자서도 십 초 이내에 사완악을 제압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나와 팽무강 둘이서…….”
“잠깐 기다리시오.”
남궁준휘는 자신의 말을 자른 사람이 누구인지 고개를 돌렸다가 눈을 크게 떴다.
그는 허리에 검을 차고, 독수리 눈썹에 눈매는 매우 사납고 세모꼴의 얼굴형을 지니고 있는 청년 도사였는데, 남궁준휘와는 몇 번의 안면이 있는 자였다.
“제갈 소가주의 자리를 내가 대신해도 되겠소?”
남궁준휘는 뜻밖이라는 듯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진 도사께서 원하신다면 물론 가능하지요.”
놀란 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말을 꺼낸 청년 도사, 그는 바로 구파일방 중 하나인 점창파의 청년 고수 진철영이었기 때문이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묘하게 서로를 의식하는 면이 있어서 서로의 일에 좀처럼 참견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구파일방의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진철영이 갑작스럽게 나선 것이다.
이때 진철영이 사완악을 향해 말했다.
“나는 점창파의 진철영이다. 너, 조금 전 구파일방에 인재가 없다고 했나?”
그 순간, 사람들은 진철영이 나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까 전 사완악은 남궁준휘를 도발하는 과정에서 ‘구파일방이니 오대세가니 해도 막상 인재가 없는 건가?’라는 말을 내뱉었던 것이다.
사완악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내가 그랬었나?”
진철영의 미간이 꿈틀 움직였다.
“건방지군.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확인해 보겠다.”
사완악은 흔쾌히 끄덕였다.
“좋아. 점창파라면 구파일방 중 한 곳이니, 내 실력을 입증하기에는 더욱 좋겠군.”
그 말에 당소윤은 황당해하면서도 입가에 의미심장한 고소를 머금었다.
‘진짜 제정신이 아닌 놈이었구나. 진철영 도사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다니.’
남궁준휘나 팽무강, 제갈근, 모두 오대세가의 후계자에 걸맞은 청년들이다.
하지만 진철영은 그들보다도 확실히 한 수 위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내심 이번 대회의 우승도 노려 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의 그가 나섰으니, 사완악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 시합에서 이길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설린의 입에서도 우려 가득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사 공자님…….”
그녀는 사완악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지만 이 시합의 규칙은 너무나 불리했고, 상대들 역시 강호의 내로라하는 후기지수들이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완악은 설린의 속내는 전혀 모르는 듯, 설린에게 걸어가 받았던 검을 돌려주면서 해맑은 얼굴로 설린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 깜빡였다.
마치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듯.
그러고는 다시 자신이 그렸던 원 안으로 걸어가 말했다.
“자, 그럼 더 이상 시간 끌지 말고 바로 시작할까? 덤벼 봐, 말로만 대단한 척하지들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