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66
정도마신 65화
두 명의 사내는 흰색 무복을 입고 허리에는 긴 칼을 차고 있었으며, 걸음걸이는 오랜 수련을 쌓은 사람처럼 보폭이 힘차고 일정했다.
현종은 멀리서 그들의 소매에 ‘정(正)’이라 새겨진 푸른색 자수를 발견하고는 작게 말했다.
“정도맹의 청호단(靑護團)이군.”
“청호단?”
“청(靑)은 청룡을 뜻하지. 맹주님의 직속 호위단이다.”
청호단은 말 그대로 맹주의 수족 같은 단체였다.
구성원이 많지는 않으나 한 사람 한 사람이 뛰어난 고수였고, 오직 맹주의 명령만을 수행하는 자들이었다.
그런 청호단이 찾아왔다는 것은 평범한 일은 아닐 터.
그들은 사완악의 예상대로 설린 앞으로 다가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청호단입니다. 정유문의 설린 문주와 사완악 소협 맞으십니까?”
설린은 조금 긴장한 얼굴로 답했다.
“네. 무슨 일이시죠?”
청호단 무인이 말했다.
“맹주님께서 두 분을 찾으십니다. 함께 가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현종과 사완악, 설린은 서로를 마주 봤다.
현종이 물었다.
“소림사의 현종이라 합니다. 혹시 무슨 일 때문인지요?”
청호단의 무인은 소림사라는 이름에도 별다른 반응 없이 말했다.
“청호단은 맹주님의 말씀을 전할 뿐입니다.”
“만약 거절한다면?”
두 번째 질문은 사완악이 한 것이었다.
청호단의 무인은 잠시 고개를 들어 사완악을 바라봤다.
순간, 매서운 눈빛이 번뜩였다.
하지만 사완악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찰나의 정적이 흐른 뒤, 청호단의 무인이 다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렇게 전달드려야겠지요.”
“호오?”
사완악은 청호단 무인의 대답이 꽤 마음에 들어 설린을 보며 말했다.
“뭐, 나야 문주님이 결정하는 대로 따라갈 뿐이지만.”
설린은 사완악의 그 말에 다시 한번 큰 감동을 느꼈다.
‘사 공자님은 언제나 내 체면부터 생각해 주시는구나.’
기실 설린이 문주이기는 하지만, 무공으로 보나 입은 은혜로 보나 설린은 사완악이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해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완악은 대소사를 결정함에 있어서 철저하게 설린의 뜻대로만 행동했다.
정유문의 문주라고 해 봤자 강호에서는 큰 힘이 없지만, 사완악 같은 고수가 이렇게 행동하니 다른 사람들도 설린을 존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맹주님께서 찾으신다니 응당 가야지요. 안내해 주세요.”
“예.”
청호단 무인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 뒤, 현종에게 말했다.
“맹주님은 다른 분은 찾지 않으셨습니다.”
현종은 그 말에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예. 저는 개인적으로 맹주님을 찾아뵈러 가는 것입니다.”
“…….”
청호단의 무인은 순간 대꾸할 말이 없는 듯 현종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앞장서 나갔다.
사완악은 그 뒤를 따르며 감탄을 터뜨렸다.
“내가 살면서 두 명의 땡중을 알게 됐는데, 처음 알았던 땡중은 무식하고 힘만 셌거든. 그런데 이번 땡중은 말재주가 참 뛰어나단 말이지. 같은 소…… 스님인데 참 다르단 말이야.”
사완악은 하마터면 같은 소림사 출신이라고 말할 뻔했다가 말을 고쳤다.
그가 말한 첫 번째 땡중은 사부인 염라대사 영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 현종은 다른 것에 크게 놀랐다.
“완악, 네 입에서 힘이 세다는 말이 나오다니. 혹시 존사님이신가?”
현종은 사완악이 사부에게 배운 무공의 뿌리가 소림사의 무공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응? 아, 뭐…….”
“법명이 어떻게 되시지? 나중에 꼭 가르침을 받고 싶군.”
“그래, 나중에 기회가 되면.”
사완악은 더 이상 대답하기가 곤란하여 말을 아꼈다.
‘현종과 설린 앞에서는 말을 조심해야겠다.’
신천마뇌 사마소가 사완악에게 자주 하던 말이 있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관계가 오래되고 깊어지면 허점이 생길 수 있다는 것.
‘성격은 거지같아도 틀린 말은 안 하는 양반이란 말이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세 사람은 큰 전각 앞에 도착했다.
전각의 현판에는 웅혼한 글씨체로 ‘맹주전(盟主殿)’이라 쓰여 있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청호단의 무인은 맹주전에 먼저 들어갔다가 잠시 후 다시 나와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현종 대사님은 다음에 다시 오시거나 어느 정도 기다리셔야겠습니다. 맹주님께서 일단은 설린 문주님과 사완악 소협만 들어오라고 하시는군요.”
이렇게까지 나오자 현종도 어쩔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러고는 사완악과 설린에게 가 보라는 듯 눈짓을 보냈다.
그렇게 사완악과 설린은 맹주전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방문을 여는 순간, 두 사람은 뜻밖의 상황과 마주했다.
그 안에는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완악은 곧바로 그들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이들은 모두…….’
바로 비무 대회에 참가했던 강호의 후기지수들.
그중 본선에 올랐던 후기지수들로, 아까 대화를 나누었던 청운도 있었다. 사완악과 설린을 합하면 정확히 스무 명이었다.
그리고 가장 상석에는 바로 정도맹의 맹주 양천상이 앉아 있었다.
양천상은 두 사람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왔군.”
설린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예, 맹주님께서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일이신지요?”
양천상은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손으로 빈 의자를 권하며 말했다.
“일단 앉게.”
사완악과 설린이 빈자리에 앉자, 양천상은 스무 명의 후기지수들을 짧게 훑어보고는 말했다.
“이미 다들 알겠지만, 내가 이곳에 부른 자네들은 모두 이번 비무 대회에서 본선까지 진출한 사람들이네.”
양천상의 진중한 음성이 이어졌다.
“바꿔 말하면, 자네들이야말로 향후 이삼십 년의 강호를 책임질 인재들이란 뜻이지. 하여 나는 그대들을 위해 특별한 시험을 한 가지 준비했네.”
특별한 시험?
후기지수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현재의 강호는 사천회의 힘이 약해지면서 태평성대가 이어지고 있지만, 무림이란 바다와 같아서 잔잔한 물결이 언제 성난 파도가 될지 모르는 곳이네. 자네들의 무공은 이미 나와 같은 기성세대가 젊었을 적보다 더 발전했지만, 강호의 경험은 오히려 많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네.”
양천상은 이어서 말했다.
“이 시험을 통해 앞으로 무림을 이끌어 갈 자네들이 문파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경험을 하고, 서로 협력하며 친분과 신의가 두터워지길 바라네. 합격한다면 자네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포상도 준비되어 있네. 참고로 개인의 합격은 없고 오직 모두가 합격하거나 모두가 실패하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네.”
후기지수들은 이 갑작스러운 시험이 과연 무엇일지 매우 궁금해하는 얼굴이었다.
양천상은 품에서 지도 한 장을 꺼내 허공에 펼쳐 모두에게 보이며 말했다.
“시험은 간단하네. 이건 태산(泰山)의 장보도이네. 이 장보도를 따라 목적지에 도착하면, 하나의 진법이 펼쳐지 있을 것이네. 그 진법을 파훼하면 자네들을 위해 준비해 둔 선물이 있을 것이네.”
이때 후기지수들 중 한 사내가 손을 들었다.
“오, 질문이 있다면 자유롭게 하시게.”
사내는 연회장에서 사완악과 손을 섞은 적이 있던 점창일섬 진철영이었다.
“그럼 이 시험은 저희끼리만 가는 것입니까?”
양천상은 그의 질문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나와 청호단이 함께할 것이네. 다만 나는 불의의 사고를 대비하는 것일 뿐, 될 수 있으면 어떤 일에도 개입하지 않을 것이네.”
양천상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물론 기회를 봐서 내가 자네들에게 무공 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들은 도와줄 생각이네. 자네들의 사문에는 미리 허락을 구해 놓은 일이네.”
오오-!
후기지수들의 얼굴에 설렘이 떠올랐다.
운룡무왕 양천상은 정도맹의 맹주이기 이전에 천하 팔대고수 중 한 사람이다.
아무리 명문대파라 해도 그 정도의 고수가 모두 있을 수는 없는 법이었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직접 가르침을 받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그야말로 천금 같은 기회.
“물론 원하지 않는 사람은 이번 시험에 참가하지 않아도 괜찮네.”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언제 출발하게 됩니까?”
“이틀 뒤 바로 떠날 것이네.”
* * *
설린과 사완악 역시 양천상이 준비한 장보행 시험에 참가했다.
스무 명의 일행은 임시로 견정대(牽正隊)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정파를 이끌어 갈 대원들이라는 뜻이었다.
대주(隊主)는 비무 대회의 우승자, 무림일룡 청운이 맡게 되었다.
정도맹을 떠나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자, 설린과 사완악에게 먼저 인사를 하는 후기지수들이 생겨났다.
“죽림검파의 고단영이라 하오. 정유문의 검법이 매우 인상 깊었소이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검을 섞어 보고 싶소.”
“신영문의 왕현이라 합니다. 사완악 소협은 어떻게 수련을 해서 그렇게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습니까? 솔직히…… 저는 중소 문파에서 명문대파의 제자들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외의 문파 출신들이었다.
그만큼 사완악이 무림일룡 청운과 자웅을 겨루며 준우승까지 이루어 낸 결과는 그들에게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칠 일째 되는 날, 그동안 빠르게 이동한 견정대는 하루 편하게 휴식하는 의미로 객잔 하나를 빌려 많은 요리와 술을 주문했다.
“크! 이제야 살 것 같군.”
자리에 앉자마자 술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 사완악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설린은 술과 음식을 보자마자 진심으로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완악을 바라보며 풋 하고 웃음을 짓다가 말했다.
“현종 대사님도 함께 오셨다면 좋았겠죠?”
양천상과 현종은 사실 초면이 아니었다.
양천상은 현종이 소림사의 원로원이 심혈을 기울여 키워 낸 소림 수호승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번 시험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행을 불허했다.
사완악이 대꾸했다.
“나보다 술이 조금 약하기는 하지만, 재미는 있었겠지.”
설린은 그 와중에도 현종과의 승부욕을 불태우는 사완악을 보며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참 신기해요.”
사완악은 어느새 음식을 입에 가득 넣은 채 우물거리며 눈빛으로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사 공자님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이 모두 문득 신기해져서요. 사 공자님 같은 사람을 알게 된 것도…… 그리고 덕분에 제가 이런 사람들과 친분도 쌓을 수 있다는 것도요.”
“덕분까지야?”
“제 능력으로는 상상도 못 할 일들이죠.”
설린은 사완악에게 받은 은혜가 너무 많아서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갚을 수 있을지 민망할 정도였다.
물론 사완악은 그런 것 따위는 아무 관심 없다는 듯 요리를 집어먹기 바빴다.
설린은 그런 사완악을 조용히 바라봤다.
‘정말 알 수 없는 분이다.’
이때, 두 사람과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설린은 고개를 돌려 그 자리를 쳐다보고는 말했다.
“그나저나 저기에도 참 신기한 분이 계시네요.”
“음?”
“맹주님이요.”
사완악은 설린의 시선을 따라 힐끗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정도맹주 양천상이 견정대의 대원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맹주님이 이렇게 소탈하고 친근한 분이신지 전혀 몰랐어요.”
사완악도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양천상이 지난 칠 일 동안 보여 준 모습은 정말 색달랐다.
그는 견정대의 후기지수들과 똑같은 밥을 먹고, 똑같은 잠자리를 가졌다.
심지어 하루는 산속에서 야숙을 했는데, 그때는 밤에 불침번을 자처할 정도로 권위 의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휴식을 취할 때면 후기지수들과 함께 싸고 독한 술을 마셨고, 친구처럼 떠들고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것은 곤륜파의 제자, 강호 팔대고수, 정도맹의 맹주라는 이름들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이따금씩 무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매우 심도 깊은 조언을 해 주었고, 대상이 명문대파의 제자이든 아니든 전혀 차별하지 않았다.
견정대의 후기지수들은 이 같은 양천상의 모습에 처음에는 매우 놀라고 당황스러워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를 마음 깊이 존경하며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확실히…… 이상해.’
사완악은 속으로 어떤 생각에 곰곰이 잠겨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마치 사완악의 마음이 들리기라도 한 것처럼, 양천상이 문득 고개를 돌렸고 사완악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찰나지간, 양천상의 눈에서 이채가 흘렀고, 갑자기 객잔 전체가 울릴 만큼 큰 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