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67
정도마신 66화
“그러고 보니 자네들과 꼭 말해 보고 싶었던 주제가 있었지.”
양천상은 취기가 오른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후기지수들의 주목을 이끌었다.
“바로 비무와 실전의 차이. 그리고 무공의 상성에 관한 것이네.”
양천상의 입에서 무공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취기와 피곤함이 싹 날아가는 듯, 후기지수들의 눈빛은 그를 잡아먹을 듯 반짝였다.
양천상은 흡족한 얼굴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열망이야말로 우리 정도무림의 미래가 밝다는 뜻이겠지. 자,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비무와 실전의 차이가 크다는 말은 모두 귀가 닳도록 들어 봤을 텐데, 자네들 중 실전을 경험해 본 사람이 있다면 손을 들어 보게.”
스무 명의 후기지수 중 여덟 명이 손을 들었다.
양천상은 그들을 향해 재차 물었다.
“그것은 정말 제대로 된 실전이 맞았는가? 한 번의 실수로 자네들이 중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상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을 말하는 걸세.”
그러자 모두가 손을 내렸다.
견정대에 속한 후기지수들은 각 문파에서 가장 귀중히 여기는 후계자들이었다.
그만큼 각별한 대우와 관리를 받기도 했고, 어려서부터 무공 수련에만 매진했으니 어떤 위험에 노출될 일도 없다시피 했다.
양천상은 쯧, 하며 작게 혀를 찼다.
“세상 모든 이치는 음양에서 비롯된다더니…… 무림이 안정되고 평화로우니 이런 단점이 있을 수밖에.”
사완악은 양천상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까 나도 그런 실전을 겪어 본 적은 없군.’
사완악이 지금까지 제대로 무공을 펼쳐 본 것은 사부들과의 싸움뿐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영겁사령존의 힘으로 사부들의 내공을 빼앗기도 했고, 사실 사부들은 자신을 함부로 죽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구득소와 영환 대사, 채보령은 확실히 사완악에게 깊은 정이 들어 있었고, 사마소는 어떻게든 자신이 강호에 나가길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양천상이 고개를 돌려 사완악을 쳐다봤다.
“자네는 왜 손을 들지 않는가?”
사완악은 갑작스러운 지목에도 당황하지 않고 양천상을 쳐다봤다.
“자네가 육사괴와 싸워 제압한 일을 들었네. 육사괴는 결코 만만치 않은 자들이니, 그야말로 제대로 된 실전이었을 것 같은데.”
“아!”
후기지수들은 그 말을 듣고는 일제히 사완악을 바라봤다.
그들은 이제 사완악이 육사괴와 싸워 이겼다는 사실을 의심하지는 않았으나, 싸움의 양상이 어땠는지 자못 궁금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완악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건 맹주님께서 말씀하신 제대로 된 실전이 아니었습니다.”
양천상이 재밌다는 듯 눈을 살짝 크게 떴다.
“호오? 육사괴 정도는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대단하지 않았다는 뜻인가?”
사완악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건 아니고, 그때는 소림사의 현 자 배 스님이 동행했었지요. 위험한 상황이 오면 그분이 도와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으니 진정한 실전은 아니었습니다.”
현 자 배 스님이라는 말에 후기지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완악의 무공도 매우 뛰어난데, 거기에 소림사 방장과 같은 항렬의 고수가 있었다면 육사괴가 그리 무섭지는 않았을 것이다.
양천상은 조금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비록 혼자 한 일은 아니라 해도 그들을 제압한 것은 대단한 일이네. 자네는 나이에 비해 뛰어난 무공을 성취하고도 겸손함까지 겸비했으니 앞으로 더욱 발전할 걸세.”
양천상의 극찬에 후기지수들은 부러움과 인정의 눈빛, 그리고 일부는 약간의 질투의 시선으로 사완악을 바라봤다.
양천상은 다시 말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아무리 수련을 하고 비무를 많이 한다고 해도 진짜 실전의 상황과는 다르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네. 예를 들어 이번 비무 대회의 결승을 생각해 보지.”
양천상은 조용히 앉아 있는 청운과 사완악을 한 번씩 번갈아 본 후 말했다.
“사실 내가 보기에 청운과 사완악, 두 사람의 실력은 누가 낫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차이가 없었네. 하지만 결승 비무는 처음부터 청운에게 매우 유리한 경기였지.”
후기지수들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양천상을 쳐다봤다.
“청운이 유리했던 이유는 무공의 상성 때문이지.”
어느새 객잔 안의 후기지수들은 마치 사부에게 가르침을 받는 제자들처럼 진지한 자세로 양천상의 말을 듣고 있었다.
“사완악의 정유검법은 후발제인의 검법이었네. 상대의 날카로운 공격을 흘려 내고 허점을 찾아 반격하는 유형이지. 하지만 무당파의 태극권은 수비적인 균형을 유지하며 서서히 밀고 들어가 점점 더 크게 압박하는 권법. 그렇기에 반격의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네.”
양천상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강조하며 말했다.
“물론 자네들이 익힌 무공들은 매우 뛰어난 상승의 공부이니, 절정의 경지를 넘어서면 상성 같은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비무와 실전의 다른 점이라네. 만약 사완악의 검이 목검이 아니라 예리한 보검이었다면 어땠을까? 혹은 눈이나 목, 급소 등을 기습적으로 공격해서 상대의 방어를 어지럽혔다면, 혹은 내공의 제한을 두지 않고 온 힘을 모아 일격필살의 초식을 휘둘렀다면? 청운 도사, 자네 생각은 어떤가?”
청운은 양천상의 질문을 받고는 신중히 생각한 끝에 말했다.
“싸움의 양상이 완전히 달랐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지. 누가 이기는가를 떠나서 전혀 다른 종류의 상황이 펼쳐진다는 말일세. 그런 면에서 사파의 고수들을 매우 조심해야 하네. 솔직히 정파의 무공이 그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네만, 그들의 실전성은 자네들의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네. 그들은 오직 상대를 어떻게 죽일 수 있는지 생각하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야 상대의 허를 찌를 수 있는지 연구하네. 암기나 독공도 서슴지 않고, 사이한 술법을 쓰는 자들도 있네. 정도맹과 사천회의 전쟁 때, 수많은 정도맹의 젊은 고수들이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도 희생되었던 이유일세.”
양천상은 돌연 사완악을 다시 바라보더니 말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으니, 사완악, 자네 내 공격을 한번 받아 보겠나?”
양천상의 제안은 실로 갑작스러웠다.
하지만 후기지수들은 곧 눈을 빛냈고, 매우 부러운 눈길로 사완악을 바라봤다.
사완악은 분위기상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방어를 하면 되는…….”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양천상이 사완악을 향해 왼손을 뻗으며 펼쳤는데, 그 손에서 한 줌의 모래가 사완악의 눈을 향해 뿌려졌다.
후기지수들은 모두 경악했다.
아무리 그래도 천하의 양천상이 기습도 모자라 시정잡배와 같이 모래알을 던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완악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훈련은 사부들 중 잔혹신풍 구득소가 가장 즐겨 하는 장난이었다.
아니, 구득소는 이보다 훨씬 치졸하고 비겁한 수법들을 사용했었고, 덕분에 언제나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은 사완악에게 습관처럼 배어 있었다.
사완악은 내공을 일으키며 소매를 휘둘러 날아오는 모래알들을 가볍게 날려 보냈고, 동시에 몸을 뒤로 빼며 상대의 다음 공격을 대비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구경하는 후기지수들 입에서 헉 소리가 튀어나오고, 사완악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양천상의 검이 엄청난 살기를 내뿜으며 전광석화와 같이 사완악의 목을 찔러 오고 있었던 것이다.
양천상이 이토록 진심을 다해 초식을 전개할 거라고는 장내의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안 돼!’
사완악은 속으로 소리를 지르며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순간, 양천상의 검 끝은 놀랍게도 사완악의 목젖 한 치 앞에서 정확히 멈추었다.
“……!”
귀신이 다녀간 듯한 적막이 객잔 안에 맴돌았다.
후기지수들은 양천상이 진심으로 사완악을 죽일 것 같다고 느꼈고, 이에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섬뜩해져 숨 쉬는 것을 잊을 정도였다.
사완악과 양천상의 두 눈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잠시 후, 양천상은 칼을 내리고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어떤가? 확실히 다르지 않은가?”
그 순간, 객잔 안을 싸늘하게 만들었던 무거운 기운이 씻은 듯 사라졌다.
사완악은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고개를 숙이며 공손히 말했다.
“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양천상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좋아, 좋아. 정말 강단이 있는 친구로군.”
그리고 양천상은 후기지수들 전체에게 말했다.
“자네들도 간접적으로는 느꼈겠지. 허를 찌르는 수단, 그리고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 비무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명심하게. 물론 안타깝게도 자네들이 이런 실전을 경험할 기회는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네. 무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이 정도무림의 유일한 맹점이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는 자네들의 숙제일세. 나 역시 자네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네.”
양천상은 창밖의 어두운 하늘을 보고는 말했다.
“시간이 많이 늦었군.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들 쉬는 것이 좋겠네. 내일부터 또 부지런히 이동해야 할 테니.”
“감사합니다, 맹주님!”
“감사합니다!”
후기지수들은 모두 포권을 취하며 양천상에게 존경을 표했다.
양천상은 너무 그러지 말라는 듯 손을 휘휘 젓고는 숙실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 * *
사완악은 잠시 객잔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마터면…….’
사완악은 고개를 내려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남들은 알 수 없는 미세한 떨림.
사완악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제대로 붙을 뻔했잖아.’
사완악 역시 양천상이 그 정도의 살기와 위력으로 초식을 전개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사완악이 놀란 것은 양천상의 공격 때문이 아니었다.
그 공격에 저절로 반응할 뻔한 자신 때문이었다.
‘강호 팔대고수라…… 쩝, 아쉽긴 하네.’
사완악은 입맛을 다시다가 문득 뒤를 돌아봤다.
“정말 귀도 밝으시네요.”
설린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계세요?”
“무슨 생각을 하냐고?”
사완악은 설린을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예?”
“문주, 정유문에 서신을 보낼 방법이 있나?”
“여기는 큰 마을이니 가능하죠. 왜요?”
“그 녀석들한테 전할 말이 있어서.”
설린은 사완악이 말하는 그 녀석들이 누군지 바로 알아들었다.
“빠른 건 하오문 지부를 통하는 게 좋지만……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니 그럴 시간은 없을 것 같고, 표국을 통해서 전한다면 객잔 주인에게 부탁해 놓아도 되지 않을까요? 아주 중요한 서신만 아니라면요.”
“오호, 그거 좋은 방법이군.”
사완악은 그렇게 말한 뒤 객잔 쪽을 한 번 바라봤다.
‘조금 헷갈린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