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68
정도마신 67화
그날 이후, 견정대가 태산까지 도착하는 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다.
굳이 한 가지를 꼽자면, 정도맹주 양천상과 견정대의 후기지수들이 더욱 친밀해졌다는 것 정도일까.
양천상은 그들을 정도의 미래라고 생각하여 아낌없이 많은 가르침을 주었고, 후기지수들은 그런 맹주를 마음속 깊이 존경하고 흠모하게 되었다.
정도맹에서 태산까지는 아주 먼 거리는 아니었기에, 견정대는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했다.
“오악독존(五岳獨尊)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거 같아요.”
설린은 태산의 산세를 보며 감탄을 터뜨렸다.
오악(五岳)이란 중원에 있는 다섯 개의 명산(名山)을 말했다.
그중 태산은 동악(東岳)이라 불렸으며, 신령한 기운이 오악의 으뜸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이었다.
그리고 직접 본 태산은 과연 그 위용이 대단했다.
산맥은 크고 웅장했고, 봉우리는 구름에 가려 신묘했으며, 깊이 들어갈수록 험준함은 대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절로 들게 만들 정도였다.
“과연 장보도만으로 이 크고 험준한 산에서 어떤 장소를 찾을 수 있을까요?”
“일반적으로는 쉽지 않겠지. 하지만 이건 시험이니까. 장소를 찾는 것보다 그곳에 펼쳐진 진법을 파훼하라는 것이 주였고.”
“아! 제 질문이 바보 같았네요.”
설린은 사완악의 말에 깨닫는 바가 있었다.
이건 진짜 장보도가 아니라 맹주 양천상의 시험이다.
찾지도 못할 장소를 준비했을 리는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산을 올랐을까?
‘그래도 이상하기는 하군.’
사완악은 주변을 보며 생각했다.
견정대는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고, 어느새 사람이 다닐 만한 평범한 산길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선두에서 장보도를 따라 대원들을 인솔하는 청운은 조금도 헤매지 않고 거침없이 나아갔다. 아무리 지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곳을 익숙하게 찾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그로부터 다시 반 시진 후.
이제는 다른 대원들도 어느 정도 의아함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돌연 청운이 걸음을 멈추며 앞을 가리켰다.
“지도에 표시된 곳은 저 동굴 같습니다.”
과연 청운의 말대로 그 앞에는 하나의 커다란 동굴이 있었다.
대원들은 무의식적으로 가장 뒤에서 따라오던 양천상을 돌아보았다.
양천상은 대단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청운 도사는 어려서부터 무당산에서 자라 산길에 매우 밝군. 맞네, 바로 저곳이 내가 준비한 장소일세.”
견정대 후기지수들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청운 도사님, 그럼 어서 가 봅시다.”
성격 급한 황보세가의 소가주, 황보정이 말했다.
그는 몇 시진 동안 험준한 산속을 올라오느라 상당히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후기지수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재촉하는 눈빛으로 청운을 바라봤다.
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지요. 하지만…….”
청운은 양천상을 살짝 바라본 뒤 후기지수들에게 당부했다.
“지금부터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병기를 사용하시는 분들은 준비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후기지수들은 청운의 말뜻을 바로 알아듣고는, 각자 자신의 병기를 꺼내 고쳐 잡았다.
동굴 안에 준비된 양천상의 시험을 대비하는 것이었다.
물론 사완악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검을 뽑지 않았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청운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먼저 동굴로 걸어갔다.
대원들은 그 뒤를 따랐다.
동굴은 어두웠고,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견정대는 주위를 경계하며 천천히 이동했다.
“이건…….”
동굴의 끝에 다다른 후기지수들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 끝은 막다른 벽이 아니라 새로운 공간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설린은 그 공간으로 나와 주변을 살펴보고는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마치 잘 가꾸어진 정원 같아요. 햇빛도 잘 들고, 어떻게 동굴 안에 이런 공간이 있을까요?”
새로운 공간은 매우 넓은 공터였고, 설린의 말대로 거친 산속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정원처럼 생긴 곳이었다.
정원의 주변은 높은 절벽으로 에워싸여 있었고, 입구와 출구는 오직 그들이 들어온 동굴뿐이었다.
후기지수들은 주변을 둘러봤지만 그 외의 별다른 것은 없었다.
그런데 이때, 사완악이 재밌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하, 이런 곳에 벌레 한 마리도 없는 게 아주 신기하군.”
“엇?”
“그러고 보니…….”
사완악의 말에 후기지수들은 큰 위화감을 느꼈다.
정말 그들의 눈에도 벌레 한 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따스한 햇빛과 꽃, 잘 자란 풀포기와 나무.
그런 공간에 나비든 개미든, 혹은 어떤 동물이든, 어떤 생명체도 없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갑자기 누군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입구가 없어졌다!”
후기지수들은 그 말에 빠르게 뒤를 돌아보았는데, 모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그 외침대로 조금 전 자신들이 이 공간으로 들어왔던 동굴의 입구가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청운은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진법입니다.”
후기지수들은 이것이 양천상이 준비한 시험이라는 것을 깨닫고, 청호단 무인 두 명의 호위를 받으며 서 있는 양천상을 바라봤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시종일관 자애롭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정도맹주 양천상의 표정이 지금은 마치 생사대적을 만난 사람처럼 무섭게 굳어져 있었고, 약간의 살기마저 흩뿌리고 있었다.
‘맹주님께서 직접 준비하신 진법인데, 왜 저렇게 무서운 표정을 짓고 계신 것일까?’
그 표정을 본 후기지수들의 마음에는 이러한 의아함이 솟아올랐다.
이때 양천상의 입에서 무거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다들 짐작하겠지만 이곳은 진법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네. 그리고 우선 자네들에게 사과할 것이 있네.”
사과?
후기지수들은 일순 어리둥절한 얼굴로 양천상을 쳐다봤다.
“이 진법은 자네들을 시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세.”
양천상의 말은 점점 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양천상은 한 사람을 쳐다보며 말했다.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네.”
후기지수들은 양천상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 대상은 바로, 사완악이었다.
“사완악, 자네는 언제 정유문의 문도가 되었는가?”
“…….”
사완악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양천상을 쳐다봤다.
후기지수들은 양천상이 갑자기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몰랐으나, 무엇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양천상이 다시 말했다.
“몇 달 전, 정유문은 인근의 흑도 방파인 흑사방과 시비가 붙었지. 미안한 말이지만 정유문은 초대 문주이신 설영충 대협의 정유검법을 제대로 이어받지 못하고, 그 힘과 세력을 많이 잃은 상태였네. 반면 흑사방은 제법 뛰어난 고수들을 주축으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곳이었지. 정유문에게는 아주 큰 위기가 찾아온 것이었네.”
이곳의 후기지수들은 대부분 명문대파나 그에 준하는 곳 출신이므로, 이런 정유문의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양천상은 그런 후기지수들에게 물어보듯 말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지. 정도맹 비무 대회 본선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지닌 설린 문주와, 무림일룡이라 불리는 청운과 비슷한 실력을 지닌 사완악이 있는데, 감히 흑사방 따위가 어떻게 정유문을 압박할 수 있었을까?”
후기지수들은 양천상의 말을 듣고는 크게 이상함을 느끼고 사완악과 설린을 쳐다봤다.
“설린 문주, 말해 보게. 사완악은 언제 정유문의 문도가 되었는가?”
“그건…….”
설린은 양천상의 질문에 거짓을 말할 수 없었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맹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사 공자님은 그때 저희 정유문에 오셔서 저를 대신하여 흑사방과 비무를 했습니다. 그리고 정유문의 문도가 되었습니다.”
양천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그럼 불과 몇 달 전에는 설린 문주의 실력이 지금과 같지 않았다는 뜻이고, 사완악은 정유검법을 배운 지 몇 달 만에 지금의 성취를 이루었다는 뜻이로군?”
설린이 대답했다.
“맞습니다. 믿기 어려우실 수 있겠지만, 사실 현재의 정유검법은 사 공자님께서 복원해 주신 것입니다.”
“복원을 했다?”
“아까 맹주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본 파의 정유검법은 사조님의 비전을 제대로 이어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사 공자님께서는 그런 정유검법을 토대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정립해 주신 것입니다.”
양천상은 재밌다는 듯 말했다.
“설린 문주가 믿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한 이유는, 하나의 뛰어난 무공을 창안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기 때문이겠지. 물론 정유검법은 그 토대가 매우 훌륭한 상승의 검법이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는 다르지만…… 어쨌든 자네는 소실된 무공을 복원할 만큼 아주 뛰어난 통찰력을 지녔다는 뜻이겠군.”
사완악은 입가에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양천상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래서 지금 무슨 말을 하시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후기지수들은 사완악의 어조가 다소 무례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양천상은 불쾌함 대신 오히려 더 짙은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궁금해서 말일세. 그렇다면 자네의 본 무공은 정유검법이 아니라 다른 무공이라는 뜻이고, 비무 대회에서 봤던 것보다 더 뛰어나다는 말이겠지. 그래서 묻고 싶네. 자네의 사부는 누구인가?”
후기지수들의 얼굴에도 궁금증이 떠올랐다.
도대체 사완악의 진짜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누구에게 어떤 무공을 배운 것일까?
하지만 사완악은 미소를 지은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양천상이 재차 물었다.
“왜 아무 말이 없는가? 설마 자네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무공의 천재란 말인가? 사부도 없이 무공의 깊은 이치를 깨달아 이미 비전을 잃어버린 정유검법에 정수를 채워 넣어 대무당파의 태극권과도 맞설 수 있는 엄청난 무공을 만들었단 소리인가?”
사완악은 양천상의 물음과 후기지수들의 시선에도 침묵을 지켰다.
그러던 어느 순간, 사완악이 피식 웃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들켜 버렸네.”
양천상이 물었다.
“무슨 말이지?”
사완악의 얼굴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맞아. 나 천재야.”
“뭐라?”
“하늘에서 뚝 떨어진 무공의 천재라고. 내 아버지는 평범한 나무꾼이셨는데, 나는 어릴 때 아버지의 도끼질을 지켜보다가 불현듯 무공의 이치를 깨달았지. 그리고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매우 훌륭하셨는데, 밥을 든든히 먹어야 힘이 강해진다는 말에서 내공의 이치를 깨달아 버렸거든. 그래서 혼자 수련을 시작했지. 주먹도 좀 휘둘러 보고, 나무 막대기도 휘둘러 보고. 결국 권법이나 검법이 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거 아니겠어?”
“…….”
순간, 양천상은 할 말을 잃은 듯 사완악을 쳐다봤다.
그건 이 공간에 있는 모든 후기지수들과 설린도 마찬가지였다.
설마하니 사완악의 입에서 이런 대답이 튀어나올 거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양천상의 음성에는 은은한 분노와 위엄이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