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72
정도마신 71화
화진우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그것은 날카로운 예기를 내뿜는 하나의 보검이었다.
어느새 사완악의 신형이 설린의 앞에 나타나 화진우의 검을 쳐 냈던 것이다.
사완악은 비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자, 소원대로 네 앞에 왔다. 어디 아비의 복수를 해 보거라.”
“이놈!”
화진우는 고성을 지르며 검날을 뒤집어 땅에서부터 하늘로 튀어 오르듯 검을 찔러 갔다.
사완악이 고개를 돌려 피해 내자, 그의 검날이 다시 회전하며 뚝 떨어져 사완악의 어깨를 베어 갔다. 매화낙섬(梅花落暹)이라는 초식이었다.
이때 사완악은 오른손의 검 대신 왼손을 들어 손바닥으로 화진우의 검 면을 중앙에서 우측으로 가볍게 밀어내듯 흘려 보냈다.
화진우는 자신의 검이 너무나 쉽게 무위로 돌아가자 내심 당황했다.
하지만 상대는 불구대천의 원수.
화진우는 이를 악물며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나비처럼 춤추듯 찔러 가는 매화접무(梅花蝶舞), 아홉 번의 변화를 일으키는 매화구변(梅花九變), 상대의 눈을 어지럽히는 매화빈분(梅花頻紛), 꽃잎이 날리듯 초식이 쏟아지는 낙매분분(落梅紛紛)까지.
그야말로 화산파 무공의 정수가 담긴 초식들이 줄줄이 펼쳐졌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후기지수들의 얼굴은 점점 굳어졌다.
폭풍같이 전개되는 매화검법은 분명 보는 것만으로도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사완악은 놀랍게도 오른손은 검을 쥔 채 뒷짐을 지고, 왼손만으로 화진우의 검을 모두 쳐 내거나 흘려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사완악의 모든 동작은 매우 부드럽고 여유로워서, 마치 나무 막대기를 열심히 휘두르는 어린아이와 놀아 주는 듯한 모습이었다.
“겨우 그 정도 실력으로 복수를 한다고?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아비의 죽음이 별로 원통하지는 않았나 보군.”
“닥쳐라!”
사완악은 죽기 살기로 초식을 전개하는 화진우를 보며 재밌다는 듯 말했다.
“지금 너의 검을 막고 있는 나의 무공이 무엇인지 말해 줄까?”
사완악은 다시 한번 매화검법의 초식을 흘려 보내고는 말했다.
“유풍유권이라는 권법이야. 특별히 너를 위해서 구득소 사부에게 배운 무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지.”
“이…… 이노옴!”
사완악의 말에 화진우는 머리가 뜨거워져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무공에 자신의 모든 공격이 막히고 있었다.
화진우는 사완악이 무공으로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의 복수는 실패했다고.
“아아아아!”
화진우는 단전에 남아 있는 모든 내공을 긁어모으듯 끌어올려 사완악을 향해 필사적으로 검을 찔러 갔다.
사완악의 눈에서 순간 이채가 흘렀다.
동시에 사완악의 손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강맹한 힘이 뻗어 나와 화진우의 검과 격돌했다.
“컥!”
짧은 비명이 화진우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화진우의 신형은 훌훌 줄이 끊어진 연과 같이 뒤로 튕겨 날아갔다.
땅에 쓰러진 그를 향해 후기지수 중 몇몇이 다급히 달려가 상세를 살폈다.
숨은 끊어지지 않았으나 그는 정신을 잃었고, 크게 내상을 입은 듯 창백해진 얼굴이었다.
“염라대사의 파신마장……! 사완악, 네놈은 정녕 사대악인의 복수를 위해 강호에 나온 것이로구나!”
양천상의 외침.
그리고 뒤를 이어서 한 여인의 음성도 울려 퍼졌다.
“다들 뭐 하는 거죠? 화진우 도사가 당하는 것을 보고도 모르겠어요?”
여인은 바로 독화 당소윤이었다.
그녀는 사완악에게 당한 일로 악감정이 가득했기에, 사대악인의 제자라는 것을 알자 누구보다 앞장서서 말했다.
“저자를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고요! 저자는 무공이 고강하고 사이한 술법을 익혔다고 하니 일대일로 싸울 필요 없어요. 모두 힘을 합해 저 악마 같은 자를 상대해야 해요.”
당소윤의 말에 한 청년이 사완악을 향해 신법을 전개하며 말했다.
“당 소저의 말이 옳다. 내가 선봉을 서겠다!”
달려가는 사내는 팔 척 장신에 거대한 체구를 지니고 있었는데, 바로 황보세가의 소가주 황보정이었다.
황보정은 평소 영리하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용맹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는 사완악이 사대악인의 제자라는 것이 확실해지고 화진우가 쓰러지는 것을 보자,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달려들었다.
황보세가의 천왕권(天王拳)이 권풍을 일으키며 사완악을 덮쳐 갔다.
하지만 그 위력적인 권법 앞에서 사완악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고, 겨울의 북풍처럼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먼저 강을 건넌 것은 네놈들이다.”
사완악은 조금 전 화진우를 쓰러뜨렸던 파신마장의 첫 번째 초식, 마룡일효를 다시 전개했다.
단순할 정도로 간결하지만 그만큼 빠르고 강맹한 초식.
힘과 힘의 격돌이었다.
그리고…….
쾅!
황보정의 거구가 하늘을 날아 땅에 처박혔다.
그런데 이때였다.
“죽엇!”
하나의 날카로운 창이 사완악의 목을 꿰뚫을 기세로 튀어나왔다.
그 창은 황보정의 거구에 가려 숨어 있었고, 나타나는 순간 화살보다 빠르게 쏘아졌다.
하지만 사완악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까딱 움직였다.
기습적으로 나타난 창끝이 아슬아슬하게 허공을 갈랐다.
사완악은 기습적으로 창을 찌른 상대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너였군.”
사내는 아까 전, 염라대사 영환에게 사부의 원한이 있다고 외쳤던 장위라는 자였다.
“진심으로 나를 죽일 생각이었네?”
장위는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물론이다! 사대악인의 제자를 죽여 내 사부의 원한을 조금이라도 갚을 것이다!”
그의 말에 사완악의 눈에서 이채가 번뜩였다.
“좋아, 좋아.”
퍽!
“커헉!”
돌연 장위가 피를 뿜으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어느새 사완악이 그의 가슴에 일장을 적중시켰던 것이다.
“장위!”
후기지수들 중 누군가 참담한 얼굴로 그의 이름을 외쳤다.
그리고 붉어진 눈으로 사완악을 노려봤다.
“사완악! 가만두지……!”
하지만 소리를 버럭 지르던 그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완악을 바라보는 모든 후기지수들은 귀신이라도 본 듯 표정이 굳어졌다.
그것은 사완악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기운 때문이었다.
‘도대체 이 엄청난 기운은……!’
사완악은 지금까지 그들이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입에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그 눈빛에서는 가슴이 섬뜩해지는 살기가 담겨 있었고, 전신에서는 숨이 막힐 듯한 기운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흡사…… 운룡무왕 양천상.
강호 팔대고수로 꼽히는 맹주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기운이었다.
사완악은 후기지수들을 훑어보고는 말했다.
“나에 대해서 한 가지 말해 주지.”
사완악은 여전히 입으로만 미소를 지을 뿐, 눈은 전혀 웃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 나를 강제하고 명령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런 상황이 오면 나는 반드시 상대가 원하는 반대의 행동을 하고 싶어지는 성격이지.”
순간, 사완악의 동공 깊은 곳에서부터 흉폭(兇暴)한 빛이 일렁였다.
“너희들이 합심해서 나를 죽이고자 하니, 나는 반드시 너희 모두를 죽여야겠다. 그리고…….”
사완악의 시선이 맹주 양천상에게로 향했다.
“네 주인은 쥐새끼처럼 숨어 있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끄집어내 주마.”
후기지수들은 이런 상황에도 순간 의아함을 느꼈다.
천하의 정도맹주에게 주인이라니?
그리고 숨어 있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그때 사완악의 등 뒤에서 목이 메는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사 공자님…….”
사완악은 그 목소리에 몸을 빙글 돌려 설린을 바라봤다.
“아, 당신이 있었지.”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린 문주, 오직 당신만 나를 살리려고 했으니 당신만은 살려 주지. 하지만 이제 일을 돌이키기엔 늦었어. 당신의 설득이 저들에게는 마지막 기회였지만 저들은 그것을 놓쳐 버렸으니까.”
설린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안 돼요, 그러시면 안 됩니다. 사 공자님은 그런 분이……!”
설린은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사완악이 그녀의 수혈을 짚어 잠들게 한 것이다.
사완악은 설린을 멀리 던져 버리고는 다시 돌아섰다.
“이제 방해꾼이 사라졌군.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사완악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갔다.
후기지수들은 그 당당하고 압도적인 기세에 침음을 삼키며,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고 오히려 주춤 물러섰다.
사완악은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그들을 바라봤다.
“왜들 그래? 막상 싸우려니까 겁이 나나? 정파의 미래라고 하더니, 사대악인의 제자가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는 건가?”
그런데 그때였다.
“응?”
사완악은 자신의 피부에 아주 미세한 무언가가 닿는 것을 느끼며 잠시 멈춰 섰다.
“설마 알아차린 건가요?”
한 여인의 음성.
사완악은 그 목소리가 매우 익숙했다.
바로 사천당문의 독화 당소윤이었다.
당소윤은 감탄하며 말했다.
“솔직히 놀랍군요. 절정의 고수도 알아차리지 못할 감각이었을 텐데. 물론 달라질 건 없어요. 이미 늦었으니까요.”
사완악은 그녀의 말에서 무엇인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독인가?”
당소윤의 얼굴에는 사완악을 두려워하는 표정이 조금도 없었다.
“사천당문에는 세 가지의 금지된 독이 있죠. 그 위력이 너무 강하고 순식간에 죽음에 이르러 해독을 할 수 없기에 금지되었죠.”
당소윤은 이어서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금지된 것은 아니에요. 살인을 저지르는 악인이나, 세가를 위협하는 침입자에게는 이런 독을 사용할 때도 있죠.”
사완악이 담담히 말했다.
“꼭 내가 지금 그 금지된 독 중 하나에 중독되었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당소윤의 얼굴에 한 줄기 미소가 떠올랐다.
“무형삼보천형독(無形三步天刑毒)이라는 이름이에요. 이름대로 아무 형체도 없고, 중독돼도 처음에는 아무 이상이 없죠. 하지만 세 걸음. 딱 세 걸음을 움직이는 순간 당신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을 느끼며 죽게 될 거예요.”
그 순간, 사완악의 표정이 크게 흔들렸고, 후기지수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천당문이 정파의 가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들이 독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극독은 자체적으로 금지해 두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상황의 이야기일 뿐.
사람들에게 가장 싸우고 싶지 않은 문파를 고르라 한다면 십중팔구 사천당문이었다.
그만큼 그들이 금지하고 있는 독들이 무섭다는 뜻이었다.
사완악은 당소윤을 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해독약! 해독약은!”
“세가에 있어요. 살고 싶다면 그 검을 내려놓고 순순히 묻는 말에…….”
그 순간.
“당소윤, 물러서라!”
양천상의 고함이 들려왔다.
당소윤은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빼려 했지만, 곧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미소를 머금은 사완악의 신형이 어느새 그녀 바로 앞에 당도해 있었던 것이다.
“어, 어떻게? 말도 안 되는…… 끅!”
사완악의 손은 그대로 당소윤의 목을 잡아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당소윤은 숨이 막혀 발버둥을 치면서도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해독약 없이는 절정의 고수도 스스로는 절대 해독할 수 없는 무형삼보천형독일진대…….
이때 사완악이 그녀의 의아함에 답해 주듯 말했다.
“나 만독불침이거든.”
당소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만독불침이라니?
하지만 사완악은 그에 대한 설명 대신 무언가를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을 느끼며 죽는 독이라. 받은 대로 돌려줘야 하는데, 아쉽게도 나에게는 그런 독이 없군. 그래도 그와 비슷한 결과를 낼 수 있는 수법은 있지.”
순간, 당소윤은 왠지 모골이 송연해졌다.
“군림혼혈공.”
“…….”
“이것도 강호에서 금지된 무공이니 어느 정도 보답은 되겠군. 내가 겪어 봐서 아는데, 쉽진 않을 거야.”
“그, 그게 무슨…….”
다음 순간, 당소윤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