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이후에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을 텐데, 인지했나?”
“일주일 동안 매일매일 하루가 되돌아갔어.”
튜토리얼 기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세상의 섭리를 거스르는 재앙이 일어났었다.
일주일간의 루프.
100회차는 차원의 틈을 집요하게 뒤진 끝에, 회귀 능력을 각성하기 전의 자신이 있는 시공을 찾아낸다.
그는 다른 무엇도 돌아보지 않은 채 곧장 성황청 한복판에 난입했다.
마침 그곳에서는 월삭을 기념하기 위한 번제가 한창이던 터. 그는 성황청의 모든 인간과 더불어 과거의 자신을 태워 죽여 버린다.
수많은 인간 제물까지 바쳐 가며 지극정성을 다해 번제를 올린 참이다.
불타는 성황청 한복판에서 100회차는 마지막으로 신에게 간절히 바랐다.
부디 회귀가 끝나기를.
무려 회귀 능력을 각성하기 전의 자신을 죽였다.
시간선이 분화하기 전의 시점에 개입하여 회귀의 싹을 원천적으로 잘라냈다.
인과율의 법칙이 작용하여 모든 시간선의 자신이 소멸되어 버리길 염원했다.
그러나 회귀 세계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회귀자가 되지 않은 테실리드 아르젠트’의 죽음을 무효로 돌려 버렸으므로.
제 존재가 사라지기는커녕 하루가 되돌아갔다.
100회차 테실리드는 뭔가 실수가 있었으리라 생각하며 다시 과거의 자신을 죽였다.
하지만 또 하루가 돌아갔다.
뭔가 부족했겠거니 생각하며 또 과거의 자신을 죽였다.
하지만 또 하루가 돌아갔다.
또 죽였다.
또 돌아갔다.
또…….
그렇게 총 일곱 번을 반복했을 때 그는 문득 깨달았다.
지금 제 꼴이, 멍청하게 세상을 계속 구하던 때와 다를 바 없음을 말이다.
그는 광소를 터뜨리며 광대놀음을 집어치우기로 했다.
세상을 구할 수 없다면 자기 자신이라도 구해보고자 했던 100회차의 발버둥은 그렇게 끝났다.
이 처참한 회고를 담아 그가 말했다.
“그래, 맞아. 내 마지막 희망을 세계가 기만했지.”
마른 웃음이 울리다가, 어느 순간 뚝 그쳤다.
“세상도 구할 수 없고, 나도 구할 수 없고. 어쩌라는 건지.”
“…….”
“그러다 문득 생각했어.”
“…….”
“나의 구원은 죽음과 닿아 있지. 그렇다면 세계의 구원은?”
“…….”
“어쩌면…… 멸망이야말로 구원이지 않을까?”
리드가 왼손을 제 눈앞에 들어 올렸다.
스르륵 내려간 소매 탓에 팔 안쪽에 새겨진 성흔이 비쳤다. 본래 흰색이었어야 할 그것은 검게 변질되어 있었다.
내가 타락자의 낙인에 시선을 빼앗긴 동안, 그가 다섯 손가락을 천천히 말아쥐었다.
“그래, 바로 그거였어. 세계를 멸망시키면 세계에 속한 나도 멸망할 테니까.”
손등의 뼈마디가 하얗게 도드라지도록 움켜쥔 손아귀.
그 안에서 뭔가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환각이 보이는 듯했다.
“깨닫고 보니 너무 기쁜 거야. 전부터 나는 이 세계가 정말 싫었거든.”
“…….”
“내가 그토록 발버둥 치며 열 번이나 구한 세상을 내 손으로 망가뜨릴 생각을 하니까 정말이지……. 너무…… 너무나…….”
“…….”
“기대돼…….”
나른하게 곡선을 그리는 입매 위로, 붉은 두 눈이 은은한 광기를 발한다.
“이제 회귀는 끝이야. 그리고 나는 이 마지막 생을 정말 즐겁게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아.”
“…….”
“제대로, 완벽하게 부숴 버릴 거거든. 더 이상 어떤 시간선도 생성하지 못하도록, 아예 차원계에서 지워 버릴 거야.”
그는 세계와 함께 순장할 계획이었다. 이보다 더 화려하고 웅장한 장례식 준비가 있을까.
“아일렛 로델라인.”
나직한 음성이 내 온 신경을 단번에 그에게 집중시켰다.
그가 앉아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광기를 갈무리한 그가 웃고 있었다.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해 한껏 꾸며낸 것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미소였다.
“너는 내 편이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내게로 와.”
그의 손이 나를 향해 뻗어졌다. 에스코트를 제안하듯이.
이곳은 긴 나무 의자들이 늘어선 예배당.
그가 앉은 의자와 내가 앉은 의자 사이에는 통로만큼의 거리가 있었다.
“여기로 와서 내 손을 잡아. 나와 함께하자.”
“…….”
그러나 그 간극은 마치 건널 수 없는 강과 같았다.
내밀어진 손을 외면하고 그와 시선을 똑바로 맞췄다.
“힐러가 필요해?”
“글쎄. 있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딱히 필요하진 않지.”
“그런데 왜?”
“세상에는 필요 없어도 곁에 두고 싶은 게 있지.”
그가 다시 말했다.
“네가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어, 아일렛 로델라인.”
“…….”
부딪쳐 온 진심에 숨이 막힌다. 나는 입을 벌려 내 숨통을 막고 있는 것을 토해냈다.
“테실리드 아르젠트.”
내 음성에도 그와 같은 힘이 있는 것일까. 그의 시선이 집요할 정도로 내게 고정되었다.
“나는 세상을 망가뜨리려는 너를 편들 수 없어. 하지만.”
그에게 대칭되도록 손을 뻗었다.
“만약, 만약에…….”
“…….”
“미약한 가능성일지라도, 회귀를 끊어낼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면……. 나와 함께 노력해 볼 생각은 없어?”
“…….”
우리는 서로를 향해 손을 뻗은 채, 각자의 손을 잡아주길 바랐다.
한참의 시간 후, 내게 돌아온 것은 픽 하는 웃음소리였다.
“같이하자는 그 노력 속에는 세상을 구하는 노력이 포함되겠지?”
“…….”
“미약한 가능성으로 말이야.”
부정할 수 없었다.
천 년을 희망고문 당해온 그에게는 내 말은 기만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다음 순간 나는 그가 화를 낼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아일렛 로델라인. 그런 것으로 나를 회유하려면, 너는 좀 더 일찍 내게 나타나야 했어. 적어도 94회차가 끝나기 전에.”
“…….”
“어떡하지? 너의 존재와 세상의 구원을 기껍게 거래할 만한 나는 모조리 죽어버렸어.”
“…….”
“그러게, 왜 이제야 나타난 거야?”
그가 먼저 손을 거두었다.
“유감이야, 아일렛 로델라인.”
“…….”
예상대로다.
세계의 멸망만이 목적인 100회차 테실리드. 그를 상대로는 회유도 타협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생각해, 테실리드.”
“…….”
“내 손을 잡아.”
“…….”
힘주어 말했다.
“아직 늦지 않았어.”
그의 눈이 조금 커지는 것이 보였다. 매끈한 눈동자 위로 선명한 빛이 떠올랐다.
“흥미로운걸. 이미 천 명 이상을 죽였는데 아직 늦지 않았다고?”
그 이채의 의미는 광기였다.
“아아, 그러고 보니 너는 모르는 게 없었지. 이렇게 타락한 배교자를 품으려는 걸 보면 이 시간선의 미래가 엄청나긴 한가 본데.”
사실이다.
100회차 주인공이 개입하기 시작한 17회차의 시간선.
이곳에 종말이 오는 순간까지 그가 죽일 사람의 숫자는 가히 천문학적이다.
그가 기뻐할 만한 이야기를 발설해 버렸다는 데에 당황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흥미를 더 파고들었다.
“미래가 궁금해?”
나는 알고 있다.
세계의 미래도, 너의 미래도.[‘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흠칫합니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깜짝 놀랍니다.] [‘천기누설 감찰관’이 눈을 부릅뜹니다.]테실리드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것이 확실한 대답이 되었다.
기대에 부응하기로 했다.
“이 회차에서.”
한 마디를 뱉고 입을 다물어야 했다. 꽉 문 잇새로 신음이 흘러 나가지 않도록 온 힘을 다했다.[‘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천기누설 감찰관’이 허튼짓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너는.”
너는 세상을 멸망시킬 것이다. 그리고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열 번이나 세상을 구한 것에 대한 참작이라곤 전혀 없이, 한 번의 멸망에 대한 책임을 몹시 끔찍하고 비참한 형태로 질 것이다.
세계의 적이 되어, 토벌대상으로 선포되고, 다섯 명의 인간들을 영웅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몸으로 나락에 떨어져서 종신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하릴없이 101회차를 기다려야 하게 되는, 빌어먹을 원작의 종장.
거기서 내가 본 너의 최후를 뭐라고 정의해야 할까?
실패했다고?
아니, 고작 그런 단어로는 부족하다.
“너는…….”
턱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천기누설 감찰관’이 당장 멈추라고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제발 그만두라고 외칩니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자신의 입을 틀어막습니다.]“파멸할 거야. 끔찍하게.”
저주나 다름없는 예언을 뱉어낸 직후.
“흡!”
거대한 신성이 내 폐부를 짜부라뜨릴 듯 짓눌렀다. 순식간에 진탕이 된 내장이 피를 역류시켰다.
울컥, 손 틈새로 새빨간 선혈이 쏟아져 나왔다.[‘천기누설 감찰관’이 화를 내며 가슴을 두드립니다.]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길게 탄식합니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안타까운 표정을 짓습니다.]다급히 힐을 썼다. 그러나 신성력이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천기누설’ 페널티를 받습니다.] [ 당신의 3대력이 봉인됩니다. 남은 시간: 23시간 59분.] [ 초월 스킬 ‘신성 강림’이 봉인됩니다. 남은 시간: 23시간 59분.]힘을 다 잃었다.
“이런, 아일렛 로델라인.”
다정한 음성이 귀를 울렸다.
“친절하기도 하지. 금제가 걸린 미래를 친히 예언해 주다니.”
“…….”
“고마워. 역시 너는 내 편이군.”
부드러운 미소에 나도 모르게 기대감을 품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물론 어리석은 짓이었다.
“많은 참고가 되었어. 분발해서 더 철저하게 세상을 부숴 버리도록 할게.”
“……하.”
지독한 허탈함에 눈두덩을 손으로 덮어 눌렀다.
그래, 알고 있었다. 역시 회유는 부질없는 시도였다.
100회차 테실리드의 갈증은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고서는 달래지지 않는다.
설령 지금 가려는 길에 자신의 구원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는 세상의 멸망을 위해 저를 내던질 것이다.
이것은 그를 기만하고 배신하고 이용한 세상이 쌓은 업보이기도 했다.
응당하고 정당한 복수극이다.
그래, 솔직히 독자이던 시절의 나는 100회차의 너를 긍정하고 응원했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세계, 이 회차에 떨어져 너의 대척점에 서 있는가.
혼란스러워하는 내 귓가로 그의 음성이 울렸다.
“수만, 수십만, 수백만을 죽이고 너를 다시 보러 와야겠군. 그때도 너는 내게 같은 손을 내밀지, 아니면 다른 눈으로 나를 볼지, 정말 기대돼.”
그가 몸을 일으켰다.
“네가 17회차의 벌레 곁에서 뭘 할 수 있는지 지켜보지.”
“…….”
“대화 즐거웠어, 아일렛 로델라인. 밤이 깊었으니 잘 자.”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