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180)
180화
“응, 비아. 너무 늦었지. 미안해.”
“아이……. 정말 아이야……?”
“응, 나야. 아이야. 이제 다 끝났어. 괜찮아, 비아.”
“내 친구, 아이……. 보고 싶었어…….”
모래를 그러쥘 힘조차 없어 보이는 손으로 비안카가 아일렛의 뺨을 더듬었다.
눈빛이 다치지는 않았냐고 묻는 듯했다.
“응. 나도…….”
울컥함을 꾹꾹 눌러 참으며 대꾸한 아일렛이 치유를 시전했다.
욕심껏 해후를 나누기에는 비안카의 몸 상태가 좋지 못했다.
기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긴장까지 풀렸으니 의식이 허물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비안카는 마음 놓고 아일렛의 품에 저를 내맡길 수 없었다.
아일렛의 어깨 너머로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저자는……!’
바로, 모리피스 마르셀리온.
그녀를 미끼라 부르며 웃던 하늘색 장발의 남자를 잊으려야 잊을 수 없었다.
비안카는 성녀를 납치하겠다던 모리피스와 오델리트의 작당 모의를 모두 들은 참이었다.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아이……!”
신호를 주기엔 늦었다.
위로 말려 올라간 모리피스의 얇은 입술이 작게 달싹였다.
“구속의 시간.”
진작부터 준비 중이었던 덫이 마침내 발동되었다.
아일렛이 친우와의 해우로 무방비해진 이 틈에!
촤르르륵!
거울에서 네 개의 사슬이 매섭게 뻗어 나왔다.
이에 아일렛의 반응은 본능적이었다. 아일렛은 즉시 몸을 반 바퀴 돌려 사슬이 비안카가 아닌 자신의 등을 향하도록 했다.
한 손은 비안카를 받쳐 안아야 했기에 대응할 수 있는 건 남은 한 손뿐이었다.
아일렛은 오른손을 뻗어 사슬 하나를 낚아챘다. 그리고 뒤따라 쇄도하는 나머지 사슬들의 궤도에 걸어버렸다.
이로써 사슬 세 개가 한데 얽혀 무력화되었다. 그러나 마지막 하나가 질기게 남아 아일렛을 노렸다.
철컥!
수갑이 아일렛의 오른 손목에 채워졌다.
“……!”
그 찰나의 순간, 지척에 있던 테실리드가 수갑의 사슬을 움켜쥐었다.
그는 마음먹기에 따라 그것을 가루가 되도록 부숴뜨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
“…….”
아일렛과 시선이 마주친 직후 어째서인지 악력을 풀었다.
촤르르륵!
테실리드의 손에서 미끄러진 사슬이 그녀의 몸을 가차 없이 거울 속으로 끌어당겼다.
“안 돼! 아이!”
비안카가 붙잡으려 했지만 그녀의 박약한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스르륵!
순식간에 아일렛이 거울 안에 먹혀 들어갔다.
“아이!”
“아일렛!”
“누님!”
아일렛의 가족과 동료들뿐 아니라 알현실에 있는 사람들도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당황했다.
‘이런, 미친.’
그때 로미나가 모리피스를 홱 돌아보며 이를 갈았다. 미치광이 마법사가 사고 친 것이 분명했다.
“모리피스 마르셀리온……!”
그러나 호통이 쏟아지기 전에 모리피스가 선수를 쳤다.
“허허! 이럴 수가! 거울이 폭주해서 성녀님이 갇혀 버린 것 같소이다!”
“……뭐요? 폭주?”
“과연 악마의 거울. 사특하기도 하지! 뭐, 걱정하지 마시구려. 내가 성녀님을 꼭 빼내드리겠다고 약속할 테니.”
모리피스의 손이 거울의 틀을 쥐자 아일렛의 동료들이 경계의 날을 세웠다.
그러나 모리피스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도발이나 다름없이 만면에 웃음을 띤 그가 테실리드를 똑바로 향했다.
현재 성검의 주인인 그가 교국군의 이인자였으므로.
테실리드는 감정이 거세된 듯한 무표정을 한 채 속으로 시간을 재고 있었다. 마치 그 안에 어떤 시간 한계선을 정해둔 듯이.
이를 알 턱이 없는 모리피스가 희희낙락하며 말했다.
“성녀를 거울에서 꺼낼 방법을 알아내려면 일단 이 거울을 내 생체실험실, 아니 연구실로 가져가야겠구려.”
“…….”
“뭐, 알고 있겠지만 어차피 선택의 여지는 없소. 이 거울을 작동시킬 수 있는 8써클 마법사는 나뿐이거든.”
그제야 테실리드가 허공에 풀어뒀던 초점을 모리피스에게 맞췄다.
“8써클?”
되묻는 말에 실낱같은 비웃음이 섞였으나 모리피스는 눈치 못 챘는지 뿌듯해하며 말을 마무리 지으려 했다.
“그렇소. 마탑주가 죽었으니 내가 세렌트라 대륙에 유일한 대마법사요. 그럼 이해한 것으로 알고 거울을 내 인벤토리에…… 응?”
모리피스가 멈칫했다.
“근데 왜 이렇게 거울이 새까맣지?”
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코팅이라도 된 듯한 거울.
이에 의문을 품은 모리피스가 거울에 제 얼굴을 들이민 순간이었다.
턱!
“……헉?!”
돌연 하얀 손이 거울 밖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커허억!”
모리피스의 목을 움켜쥐었다.
“모, 모리피스 님?!”
“끄아악!”
손은 그대로 모리피스를 무자비하게 거울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의 몸 곳곳에 얹혀 있던 소동물 키메라들은 경면에 부딪히듯 가로막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스르르륵.
“힉!”
거울로 빨려 들어온 모리피스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볼썽사납게 주저앉았다.
하늘색 정수리로 싸늘한 음성이 떨어졌다.
“모리피스 마르셀리온.”
“……!”
고개를 들자 성녀가 시린 빛을 띠는 페리도트색 눈동자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의자에 구속되지 않은 채였다.
오른손 하나를 제외하고 자유로운 손목과 발목이 보였다.
“크윽. 사슬 하나로는 성녀를 잡아두기 무리였구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계획적이라는 소리고.”
“헙.”
아일렛은 망설일 것 없이 신성력을 끌어 올렸다.
“속박하라.”
“히익?!”
아일렛은 속박 스킬에도 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평소에 쓰는 구속 스킬보다 등급이 높은 것을 보조 스킬까지 잔뜩 쌓아서 발동시켰다.
그러자 의자에서 네 개가 아닌 십수 개의 사슬이 폭발적으로 튀어나와 모리피스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209살 먹은 미치광이 마법사의 운동신경은 절망적이었다.
모리피스는 곧바로 사냥당한 짐승처럼 포박되어 의자에 거칠게 앉혀졌다.
“크흑! 이, 이럴 수가!”
1인실 감옥에 수감자가 생겼다. 거울은 만족한 듯 아일렛의 오른 손목을 구속하던 수갑을 풀어주었다.
모리피스는 몸을 뒤틀며 저항했다. 대마법사의 마력에 밀려 수갑과 족쇄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썩어도 8써클이라 이거지.”
“그렇소, 성녀. 기다려 보시구려. 곧 빠져나가 보일 테니!”
“허락해 줄 리가.”
“잉?”
아일렛이 알 수 없는 사슬의 끄트머리를 쥐고 입을 열었다.
“모리피스 마르셀리온. 얌전히 앉아 있어. 내가 되었다고 할 때까지.”
“……!”
냉랭한 명령조.
순간 모리피스는 제 안에 심어진 알 수 없는 장치가 작동하는 것을 느꼈다.
온몸의 솜털이 삐죽 서며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시전하려던 궁극 해방 마법은 손 틈의 모래알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어, 어떻게?”
모리피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언령? 그럴 리가. 성녀는 8계위, 나는 8써클. 같은 경지이니 내성이 작동해야 정상인데…….’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그의 목둘레로 낯선 촉감이 느껴졌다.
“이, 이건?”
아래를 내려다보자 가슴팍에 길게 연결된 사슬이 보인다. 그 끝은 성녀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현재 모리피스는 웬 가죽초커를 목에 딱 맞게 착용하고 있는 상태였다.[ ‘복종의 개 목걸이’
아낙시아가 파수견을 길들이기 위해 제작한 특수한 개 목걸이. 착용한 시점부터 대상은 당신을 주인님으로 여기며 극진히 섬기게 된다.
참고: 착용 순간 대상의 목둘레에 딱 맞게 사이즈가 변화한다.]가시덤불 숲에 진입하기 전, 늑대를 눈 감겨주고 아일렛이 얻은 아이템이었다.
“극진하게 섬긴다고 되어 있는데 성능이 별로네. 역시 8써클이라 내성이 있나.”
“대, 대체 언제?”
“언제일까.”
정답은 처음에 그를 거울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목을 쥐었을 때였다.
물론 친절하게 답해줄 이유는 없다. 서늘한 낯으로 아일렛이 취조했다.
“거울이 비는 순간 날 가두려고 수작을 부렸던데. 그래 놓고 뭐? 거울이 폭주해? 풀려면 연구실로 가져가야 해?”
모리피스는 눈알만 굴렸다.
“왜? 날 납치해서 성녀의 유수라도 재현해 보려고? 성녀는 흥미 있는 연구대상이라서?”
“어, 어떻게 알았지?”
뻔하다는 듯 아일렛이 비웃었다.
“유감스럽지만 후세는 오늘의 일을 성녀의 유수가 아니라 미치광이 마법사의 유수로 기억하게 될 거야.”
“힉! 나, 날 어쩌려고……?”
“글쎄……. 여기를 이대로 네 관으로 만들어줄까? 아니면 이단심판청에 넘겨버릴까? 그것도 아니면…….”
“…….”
꿀꺽. 본능적으로 세 번째가 가장 끔찍한 보기이자 유력한 자신의 미래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일렛은 상상의 여지를 남기기 위해 물러섰다.
“뭐, 고운 대접은 바라지 말아야겠지.”
모리피스에게 고정된 그녀의 눈은 인간 이하의 존재를 바라보듯 했다.
8써클 대마법사를 억제할 힘이 마땅찮다는 것을 치외법권 삼아서 제멋대로 일을 벌인 쓰레기.
죽은 오델리트도 똑같았다.
그녀는 성녀를 인질로 잡아서 교국을 협박하여 마혈석을 확보하는 공을 세우려고 모리피스의 행각을 묵인했을 것이다.
오델리트가 아일렛에게 거울의 존재를 모른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은, 전부 모리피스의 독단적인 짓이라고 책임을 면피하고 시치미를 떼기 위한 수작이었겠고.
일련의 상황을 모두 읽어낸 아일렛의 눈이 더욱 가라앉았다.
감히 비안카를 가둔 아낙시아, 성녀를 납치하기 위해 비안카로 수작을 부린 모리피스, 제 이득에 따라 방조한 오델리트.
각자의 방식으로 악랄하기 이를 데 없다. 악의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 정도다.
그래도 하나는 확실해서 좋았다.
‘이제 살아 있는 건 하나뿐.’
아낙시아와 오델리트를 처리했으나 아일렛의 안에는 아직 불완전 연소된 분노가 남아 있었다.
걸맞은 응징을 해줄 생각이다.
자신의 사람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만천하에 똑똑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
“내가 꺼내줄 때까지 거기 얌전히 있어.”
웅성거리기 시작한 거울 바깥을 향해 그녀가 돌아서려는데, 모리피스가 황급히 그녀를 불렀다.
“자, 잠깐만!”
“수작은 안 통해.”
아일렛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뇌까리자 모리피스는 더욱 절박해졌다.
“그, 그게 아니외다! 부탁이오! 바깥에 있는 내 새끼들이 제발 굶지 않게 해주시구려!”
“네 새끼……?”
그는 아일렛의 시선을 받는 데 성공했다. 모리피스가 퍽 애처롭게 애원했다.
“뱁새가 베아트리체, 고양이가 카탈리나, 다람쥐가 에스메랄다외다. 셋 다 날고기에 크림치즈와 블루베리 잼을 발라주면 아주 좋아하오.”
“…….”
아일렛은 못 들은 척 거울 바깥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았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