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2)
2화
통탄을 삼키고 상황 파악부터 하기로 했다.
내 빙의체 ‘아일렛 로델라인’은 갑질 귀족의 사용인 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특정하기엔, 주인공한테 갑질한 악역이 한둘이던가. 무슨 귀족가인지 이름이라도 알아야…….
“어?”
그때 눈앞에 게임 지도처럼 대저택의 구조도가 펼쳐졌다.[ ‘길레트 백작성’
빈체스터 왕국 극동부에 위치한 길레트 백작령의 성.
참고: 백작 부부의 아들이 망나니이므로 조심할 것!]“아!”
바로 기억났다. 길레트 백작가의 망나니 영식!
본래 검술 명가의 자제였으나 재능이 없어서 돈으로 기사 작위를 산 영식이었다.
기사 수행이랍시고 던전을 들쑤시다가 죽을 뻔한 것을 선량한 주인공이 살려줬더랬다.
주인공은 대가를 바라지 않았지만 망나니는 보상하겠다며 그를 백작령까지 동행시켰다.
악덕 고용주의 자질이 있는 망나니와 호구 주인공이 만났으니 뒷일은 뻔했다.
망나니는 주인공을 용병처럼 부리더니 영지에 도착했을 때는 입을 싹 닦고 내쫓았다.
그리고 주인공이 백작성을 떠나자마자 근방에서 ‘던전 버스트’가 발생해서 길레트 영지는 마물에 의해 초토화된다.
맹맹한 사이다에 비해 고구마 구간이 참 긴 에피소드였다.
‘욱! 다시 떠올려도 그때 먹은 고구마가 올라올 것 같아!’
길레트 영지에 펼쳐질 재앙은 도망치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이와 같은 재앙이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대륙 곳곳에는 던전들이 종양처럼 퍼져 나가는 중이었다.
던전 버스트는 언제 어디서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흑흑, 원작이 시작되면 얼마 못 가 죽을 팔자구나. 하다못해 원작 내용이라도 줄줄 꿰고 있었다면…….’
지도가 사라지고 웅장한 도서관 같은 화면이 떠올랐다.[ ‘통합 서재’
책은 마음의 양식! 빙의자가 생전에 구매하거나 읽은 모든 책을 보관한다.
참고: 단, 정식 유통된 책에 한한다.]“우와, 대박.”
진짜였다. 초등학교 ‘바른생활 1-1’부터 죽기 전날 밤 구매했던 19금 피폐 역하렘 소설까지 야무지게 소장되어 있었다.
나는 재빨리 가나다라순 정렬을 했다.
‘있다, 있어!’
기특하게도 세구회가 완결까지 있었다. 이로써 생존 확률이 대폭 상승했다.
그래도 기왕이면 안전을 더 확실하게 보장받고 싶다.
내가 빙의한 몸에도 특별한 능력이 잠재되어 있으면 좋으련만.
“시스템, 뭐 더 없어?”
이미 두 번이나 필요한 걸 떠먹여 줬기에 슬쩍 기대를 가졌다. 응답하듯이 메시지가 떴다.[ 빙의 생명 보험 풀패키지 특전, ‘일시불 캐시’를 수령하세요.]“캐시?”
자본주의적인 어감을 입에서 굴렸을 때였다.[ ‘120,000,000캐시’
빙의자가 죽기 전에 가입한 보험 약관에 의거한 생명 보험금. 1억 2천만, 전부 캐시다.
참고: 빙의한 세계의 화폐로 캐시를 추가 충전할 수 있다.]“…….”
내 사망 보험금을 내가 캐시로 받는 기분이란 묘했다.
‘잠깐, 캐시가 있다는 것은……?!’
화면이 바뀌며, 의혹은 곧 실재가 되었다.[ ‘빙의자 전용 캐시샵’
빙의자의 생존 확률을 높여주는 특별한 상품이 한자리에! 돈만 있으면 난이도 S급 소설에서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속는 셈 치고 인기순 정렬을 해봤다.[ ‘전직 패키지(전투)’
판타지, 무협 세계관 빙의자들에게 꼭 필요한 상품. 오러, 마법, 신성력, 무공 등 작품 세계관에 맞는 전투 능력을 1종 선택하여 각성할 수 있다.
가격: 10,000,000캐시]“헉.”
뭐? 능력자가 될 수 있는 상품이라고?
내 본능이 외쳤다.
‘어머, 이건 사야 해!’
S급 난이도 세계관에서 능력 각성은 필수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구매했다. 다만 사용은 미뤄놓았다.
세구회에서 능력은 오러, 마법, 신성력이 있다.
마법과 신성력은 서로 충돌을 일으키는 능력이지만, 오러는 같이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대신 각성 순서에 따라 주능력과 부능력으로 나뉘었다.
뭘 먼저 각성할지는 소설을 다시 읽고 결정하기로 했다.
또 눈에 들어오는 인기 상품이 있었다.[ ‘고속 성장의 가호’
모든 능력 성취율을 2배로 끌어 올려주는 빙의 관리국 신들의 가호.
가격: 1,000,000캐시]내 본능이 두 번 외쳤다.
‘어머, 이것도 사야 해!’
그런데.[ 구매할 수 없습니다. 현재 상위 버전 상품이 적용 중입니다.][ ‘초고속 성장의 가호’
모든 능력 성취율을 5배로 끌어 올려주는 빙의 관리국 신들의 가호.
참고: 오버밸런스 판정을 받았지만 빙의 생명 보험 풀패키지 한정 특전으로 구성되었다.
가격: 비매품]‘와아, 돈 있어도 못 사는 한정 특전!’
죽기 전 스팸 메시지에 ‘예’를 눌러버린 손가락을 칭찬해 주고 싶어졌다.
그 외에도 어떤 상품들을 파는지 충분히 살펴본 후에 창을 닫았다.
전직 패키지, 초고속 성장의 가호, 통합 서재 덕분에 나는 의욕이 상당히 고무된 상태였다.
‘이 기세로 고구마 소설을 읽자!’
당차게 세구회 1편을 열었다. 일단 속독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빠르게 훑을 생각을 했다.
그러나 열심히 집중한 지 네 시간 만에, 완결을 보지 못한 채로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 77회차까지 회귀했는데도 안 끝나! 그리고 너무 고구마야!”
‘세상을 구할 때까지 회귀’라는 제목에 어울리게도 주인공은 괴로울 정도로 회귀를 반복한다.
침몰하는 배에 탄 인간군상이 으레 그러하듯, 멸망하는 세계의 인간들은 배신과 협잡을 일삼았다.
그런 곳에서는 적당히 나쁜 인성이 도리어 좋은 스펙의 조건이건만, 우리 주인공에게 부여된 설정값은 ‘신을 섬기며 기사도를 걷는 선량하고 신실한 성기사’였다. 고구마패스가 되기에 최적이었다.
물론 우리 고구마패스, 아니 우리 주인공도 사람이기에 매 회차마다 온갖 험한 꼴을 겪음에 따라 점차 타락해 간다.
초반까지 굳건하던 선한 성향은 믿었던 동료, 존경했던 상관, 주인공이 구해준 사람들, 다시 만난 가족 등의 상실과 배신으로 인해 중립 성향으로 기운다.
그러다 그가 누구보다 사랑하고 믿었던 성녀 히로인에게 연달아 세 회차나 뒤통수를 맞는 사건을 기점으로 악에 물들기 시작한다.
지금 읽고 있는 게 77회차인데 온통 고구마 밭이었다.
그나마 덜 답답한 회차가 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17회차를 꼽고 싶다.
왜냐면.
‘주인공이 회귀하자마자 지나가던 최종 흑막에게 살해당했거든!’
독자에게 고구마를 처먹일 새도 없이 주인공이 죽고 바로 18회차가 시작했다. 허망하기가 역대급인 회차였다.
‘그래도 인생 77회차쯤 되니까 세상을 구할 희망이 보이긴 하네.’
마음을 다잡고 원작을 마저 읽으려 했을 때였다.[ 원작의 ‘회차’ 배정이 완료되었습니다.]맞아! 무한 회귀물이니까 주인공이 몇 회차인지가 중요하지!
아까 시스템이 알려준 바에 의하면 지금은 원작이 시작하기 전인 튜토리얼 기간이랬다.
튜토리얼이 끝나야 원작이 시작하고, 원작이 시작해야 스무 살이 된 주인공이 회귀를 한다.
즉, 지금은 주인공이 풋풋한 1회차인 상태!
‘어쩌면 주인공도 나처럼 어린애일지도!’
회귀가 시작된 이후 생성되는 수많은 시간선들 중에서, 과연 나는 몇 회차에 배정될 것인가.
주인공이 세상을 구해줘야 나도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니 주인공이 많이 구르고 굴러 강해진 회차일수록 내 생존 확률은 높아진다.
‘아아, 신이시여! 제발 높은 회차로!’
메시지가 갱신되었다.[ 튜토리얼 후 진행될 원작의 회차는 17회차입니다.]이것은 17회차가 고구마가 덜했다고 함부로 말한 죗값일까. 아니면 무신론자 주제에 신을 부른 기만의 대가일까.
시작부터 세계관 최강인 최종 흑막한테 주인공이 벌레처럼 죽어버리는 회차라니!
하필이면! 하필이면!
최종 흑막이 전면에 등장하는 회차는 몇 되지도 않는데, 하필이면 그 17회차에 걸리다니!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절망의 비명을 질렀다.
“으아앙!”
원래 으아악 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꼬마 패치가 되어서 귀여운 소리가 나왔다.
우리 고구마패스는 70회차가 넘어서야 좀 쓸 만해지므로 17회차면 꼬꼬마나 다름없었다.
작중 신급 초월자로 묘사되는 흑막한테 비벼볼 수 있을 리 없었다.
나는 일찍이 깨달았다.
‘주인공은 없다고 생각하자. 믿을 건 나뿐이야! 살아남으려면 나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곧 이어진 시스템의 요구 사항도 이것이 정답임을 가리켰다.[ 시스템 둘러보기를 마쳤으므로 튜토리얼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슬기로운 빙의 생활을 위한 의무 교육 시간 (S급 빙의자용)
무시무시한 S급 난이도의 원작이 시작했을 때 살아남으려면 답은 스펙업뿐. 지덕체를 갈고닦아 세계관 100위 이내 실력자가 되자.
튜토리얼 종료까지 남은 시간: 3392일 2시간 15분
현재 순위: 1,000등부터 표시됩니다.
성공 보상: ???
실패 페널티: 사망]사망이라는 글씨가 무시무시하다.
괘, 괜찮아. 시간은 넉넉해!
양 주먹을 불끈 쥐고 의지를 다지던 그때였다.
벌컥!
“엄마야, 깜짝이야!”
별안간 다락방 문이 열리더니 웬 여자애가 나를 발견하고 눈을 번뜩였다.
“여기예요! 여기 있어요!”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