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69)
69화
14장. 성검인가, 마검인가
9시간 전, 성황청.
추기경 의회는 긴급히 토벌대를 조직하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엘펜하임 교국 북부에서 발생한 던전 싱크였다.
던전의 이름은 ‘성마(聖魔)의 검이 봉인된 언덕’으로, 굉장히 특이한 특징을 두 가지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 특징은 해당 던전이 교국의 영토 안에서 주기적으로 생성을 반복한다는 점이었다.
60년마다 대규모 싱크를 일으키며 화려하게 탄생하는 던전.
벌써 5주기째이기에 공략법이 있다는 점은 이 시대의 행운이었다.
두 번째 특징은 초동 대처에 따라 난이도가 극과 극으로 갈린다는 점이었다.
잘하면 이미 토벌된 D급 던전보다도 평화롭게 클로징이 가능했다. 하지만 잘못하면 S급 이상의 참상을 마주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지난 3주기와 4주기의 토벌 기록은 극명하게 갈렸다.
3주기에서는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던 반면, 4주기에서는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고 끝났다.
성황청은 해당 던전의 난이도를 S급으로 상정하고 대응했다.
그리하여 현재, 대회의장에는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긴급 소집되었다.
성황청의 핵심 사령부인 추기경들과 이번 토벌을 맡게 될 세 기사단의 지휘 계급들이었다.
아직 회의는 시작 전이었다. 원형 극장 같은 장소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림이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 참전하는 기사단이 천명, 성신, 축원이라지요? 교단에서 가장 큰 전력을 자랑하는 기사단들입니다.”
“축원 기사단장 막시무스 경이 총지휘를 맡으려나요? 잔뼈가 굵은 양반이니 믿음직스럽군요.”
“게다가 천명이면 일레온 경의 기사단 아닙니까. 이번 주기에도 D급 수준으로 처리가 가능하겠습니다. 허헛.”
“그렇죠! ‘청염의 기사’라면 믿을 수 있다마다요!”
4주기의 성공 덕분인지 다들 결과를 낙관했다. 대화의 양상이 특정 인물을 치켜세우는 잡담으로 흘러갈 때였다.
“듣자 하니 검사성부에서 성흔양도 몇 명 합류시키려나 봅니다.”
“허허, 전투도 없을 텐데 인력 낭비하고는. 합류 인원은 누구랍디까?”
“한 명만 확정된 상태입니다. 그 왜, 저번에 이단자들을 몰살시켜서 마왕의 의식을 막은 성기사가 있잖습니까.”
“아아, 테실리드 아르젠트 말씀이시군요!”
“마침 저기 오네요.”
제 말 하는 때를 기다린 것처럼, 화제의 주인공이 대회의장에 등장했다.
순간 그를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은 깜짝 놀란 채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살아 있는 성예술품이라 평해졌던 미모는 신의 보우하심 아래 훌륭하게 정변했다.
갓 스물을 넘긴 테실리드 아르젠트는 독보적인 미청년으로 자라났다.
어떤 색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은발과 석고 같은 하얀 얼굴, 그리고 백색 성기사 제복이 어우러져 성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냥 잘생김이 아니라 신이 내린 잘생김. 과연 ‘엄격한 질서와 선’의 편애를 한 몸에 받는 신의 총아다웠다.
테실리드는 훤칠한 다리를 뻗어 기품 있고 절도 있는 동작으로 제자리를 찾아 앉았다.
구태여 튈 만한 행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그에게 달라붙는 시선은 끊이질 않았다.
경외, 선망, 약간의 질시.
테실리드 아르젠트는 누가 보더라도 특별한 존재였다.
신의 축복을 상징하는 은발, 성흔 각인에 의해 각성된 압도적인 신성력, 그리고 본래부터 타고난 오러의 재능까지.
성황청의 최종 병기라 불리는 성흔양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강한 인물이다.
이대로라면 몇 년 안에 성황청의 최고 강자가 될 것은 자명했다.
게다가 대외적인 명성은 또 어떠한가. 최근 그는 주가를 엄청나게 올린 참이었다.
몇 개월 전, 그는 혼자서 큰 재앙을 막는 업적을 세웠다.
던전에 숨어서 몰래 사특한 의식을 하던 이단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산제물로 바쳐가면서까지 마지막 의식을 완성하려고 발버둥 쳤다.
자칫하면 해당 던전이 마왕 카르페이오스의 영토로 복속되어 그의 힘이 커질 수도 있었던 위기. 여기서 테실리드는 결단력을 보여주었다.
이단자들이 제물로 바쳐지기 전에 그가 먼저 목숨을 거둠으로써 의식을 멈춘 것이다.
이단자 심판과 마왕 세력 저지. 일거양득의 업적에 성황청은 크게 기뻐하며 테실리드의 공을 치하했다.
자연히 엘펜하임 교국에 그의 명성이 퍼졌다. 다만, 본인은 언급을 싫어했지만.
테실리드의 존재감 탓에 회의장이 잠시 조용해졌을 때였다.
붉은 복식의 추기경이 나와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올해 국무원장으로 발탁된 카틀레야 길레트였다.
“제반 사항은 다 전달받으셨을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중요한 부분이니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핵심 설명이 이어졌다. 공식 석상답게 존대였다.
“던전의 보스는 ‘성마의 검’. 주인이 되기에 적합한 자가 잡으면 성검으로서 기능합니다. 영웅, 발쿠스 오드렉 경도 여기서 검을 얻으셨죠.”
자격 입증이 확실한 사람인 셈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15년 전에 소천(召天)했다.
“문제는 자격이 없는 자가 성마의 검에 손을 댔을 경우입니다. 이때는 검이 그자를 숙주 삼아 살육을 벌입니다. 마검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심지어 피를 먹을수록 강해지는 성질이 있어 토벌에 시간이 걸릴수록 끔찍한 참상을 초래하게 될 겁니다.”
이쯤 설명이 나왔으면 공략법은 확실했다.
성마의 검에 제일 먼저 손댈 사람. 딱 그 한 사람만 제대로 선발하면 된다.
카틀레야가 어느 때보다 준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반드시 자격과 신념을 갖춘 이가 검을 뽑아야 합니다. 그 역할을 담당할 사람은…….”
“맡겠습니다, 제가.”
단호한 음성이 회의장을 울렸다.
카틀레야 추기경의 말을 자르고 일어선 사람은 20대 후반의 준수한 청년이었다.
회의장에 수런거림이 퍼졌다.
“오오, 일레온 오드렉 경!”
“역시 그가 나서는구려. 믿고 있었다오!”
“청염의 기사라면야 적격자로 손색이 없고말고.”
“아무렴, 일레온 경은 발쿠스 님의 후예가 아니오?”
그가 성마의 검을 잡는 것에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일레온 오드렉은 자타가 공인하는 성황청의 간판 성기사였기 때문이다.
그를 칭송하는 말은 참으로 많았다.
성황청의 제1검, 신의 대행자, 기사도의 화신, 완벽한 성기사, 교단의 왕자님 등등.
검술 실력이 출중하여 젊은 나이에 기사단장에 올랐고, 상시 매너 있는 언행으로 여성들을 대하니 추종자가 넘쳐났다.
심지어 용모 또한 동화에 나올 법한 금발과 벽안!
교국 여성들 사이에서는 일레온이 최고의 신랑감으로 통한 지 오래였다.
일레온 본인도 자신의 위상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발쿠스 님의 뒤를 잇는 성검의 주인이 탄생하겠구려.”
“조만간 청염의 기사가 아니라 성검의 기사라고 불러야겠소.”
이런 찬양 일색의 분위기가 몹시 만족스러웠다.
‘성검의 주인.’
그의 명성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줄 수식어. 이 얼마나 떨리는 울림인가.
일레온은 잘생긴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
카틀레야 추기경은 깊은 눈으로 일레온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일레온 경. 경의 훌륭함은 저를 포함한 모두가 인정하는 바입니다. 뛰어난 검술 실력, 고결한 품성, 정의로운 신념까지. 그대는 모든 것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요.”
“과찬이십니다. 이번 임무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카틀레야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여러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인 만큼, 교단은 보다 안전한 선택을 하고자 합니다.”
“예?”
“일레온 경은 그만 앉으셔도 됩니다.”
“…….”
일레온은 방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멀뚱히 서 있었다.
그사이 카틀레야 추기경의 시선이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갔다.
“테실리드 아르젠트 경.”
“…….”
이 시점의 호명이란 큰 반향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무려 청염의 기사를 제치고 선택받은 것이니까.
웅성거림 속에서 테실리드 본인도 조금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예를 차렸다.
“예, 추기경 예하.”
“그대가 성마의 검을 뽑도록 하세요.”
“교단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순명은 성기사의 미덕. 테실리드는 가타부타 말없이 담백하게 받아들였다.
한편 일레온은 아직까지 자리에 앉는 것을 잊은 상태였다.
‘내 역할을 뺏겼다.’
비교군처럼 회의장 양 끝에 나란히 서 있자니 더욱 깊은 분함과 패배감이 그의 전신에 엄습했다.
그러나 보는 눈이 많았으므로 겉으로 드러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저 테실리드를 꿰뚫을 것처럼 노려보았다. 청염이라는 별명의 근원인 벽안이 불타오르는 듯했다.
테실리드는 눈동자만 굴려 일레온 쪽을 보았다.
‘적의…….’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시선을 받는 대상인 테실리드는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청염의 기사’는 세간의 평가와 사뭇 다른 본성을 가진 인물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총지휘는 축원 기사단장인 막시무스 경이 맡아주시길 바랍니다. 출전은 한 시간 뒤. 만반의 준비를 갖춰 임무를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오십시오.”
카틀레야의 손이 성호를 그었다.
“‘엄격한 질서와 선’의 가호가 함께하길.”
회의가 파하자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일레온에게로 모여들었다.
누가 뭐래도 그는 현재 교단에서 가장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였다. 오늘같이 그가 의기소침해질 법한 날 위로를 해서 점수를 따두어 나쁠 것은 없었다.
“일레온 경,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경이 적격자라는 사실은 모두가 다 압니다. 다만 테실리드 경이 워낙 확실하고 안전한 선택이다 보니까요.”
“그렇죠. 아무래도 은발이 신의 축복을 상징하다 보니까…….”
위로하려고 꺼낸 말이었으나 일레온에게는 역효과였다. 그의 속이 비틀렸다.
하지만 이제껏 쌓아 올린 대외적인 이미지를 잃을 수는 없었다. 일레온은 이럴 때일수록 신사적이고 해사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은발이 신총(神寵)을 증명한다는 이야기는 낡은 낭설이 아닙니까.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머리색이라는 것은 조금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사람을 볼 때 눈을 보는 편이라.”
“커흠, 커흠.”
구태의연한 정론으로 반박하는 것만큼 사람을 민망하게 하는 게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테실리드 경이 훌륭한 기사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테실리드 경은 나무의 녹음 같은 눈과 성정을 가진 기사지요.”
선한 평가였지만 일레온 자신만 아는 은근한 후려침이 포함되어 있었다.
‘내 벽안에 비하면 그자의 눈은 초록색에 불과하지.’
그는 금발 벽안인 제 외모에 대단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때였다.
“일레온 경.”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들 만큼 깊은 울림을 가진 음성.
사람들의 집중이 단번에 일레온에게서 목소리의 주인에게로 옮겨갔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