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 Immortality RAW novel - Chapter 30
29화. 혼천칠황신검(魂天七皇神劍) (1)
일 대(一代) 혼천야장의 역작 혼천칠황신검(魂天七皇神劍). 검령이 깃든 일곱 자루의 검은 누구의 손에 들어가냐에 따라 무림 최강의 기보가 될 수도, 혹은 최악의 살인 병기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세 자루의 천룡검(天龍劍)을 다루기 위해서는 각 검에 맞는 용신기(龍神氣)를 익혀야만 했다. 용신기는 곧 검령과의 계약이다. 백광뇌룡의 뇌룡기, 적우화룡의 화룡기, 그리고 묵혼혈룡의 혈룡기까지. 검령과의 계약은 단순하다. 담보물. 각 검령이 원하는 무언가를 담보로 힘을 빌린다. 그리고 혈룡의 담보는 곧 계약자의 적혈(赤血).
우웅- 우웅-
검명이 울렸다. 두 눈이 붉게 물들고 묵혼혈룡의 검식이 뒤를 이었다.
붉은 검강이 번뜩일 때마다 천지가 진동했고 거센 혈풍이 불어닥쳤다. 적어도, 두 고수의 대결을 지켜보는 유운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크윽, 이 빌어먹을 묵룡아, 제발 내 말 좀 들어!”
기세 좋게 검을 맞댄 것과 달리, 정천은 무척이나 고전하고 있었다. 거환을 만만히 봤거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능력은 차고 넘쳤다. 중단전에서 화수분처럼 넘쳐흐르는 내공의 홍수를 어떻게든 막아내려 안간힘을 쓰다 보니 도저히 대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런 빌어먹을.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그만 멈춰!’
발단은 혈룡기였다. 상단전의 혈룡기를 발현함과 동시에 중단전의 자연기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당히 제어될 줄 알았던 자연기가 묵룡과 제대로 어우러지지 못하고 맹폭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콰쾅!
정천의 불안정한 상태를 인지한 거환도 요리조리 몸을 날리며 기회를 엿봤다. 늙은 여우의 노련함이 돋보이는 순간! 영점을 조절하지 못한 화살은 애꿎은 땅만 팰 뿐이다. 지금의 정천이 그랬다. 무수히 많은 검기가 날아들었지만, 그 어느 것도 거환의 몸에 닿지 않았다.
빠르고 날카롭다. 하지만 적중하지 않으면 그 어떤 의미도 없다. 얼굴이 새빨개진 채 검기를 날리는 정천은 답답함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혈룡기와 자연기는 서로를 돕기는커녕 지 잘났다고 서로의 힘을 뽐낼 뿐이었다. 덩달아 묵룡도 말썽이었다. 마치 ‘감히 내 몸에 담을 놈들이면 똑바로 된 놈들로 데려와!’라고 말하는 듯.
“놀랍기 그지없군요. 하단전을 잃어 혈룡기의 무리한 운용으로 진원지기를 갉아먹고 제풀에 꺾일 거라 여겼는데, 제 착각이었습니다.”
거환은 적잖이 놀랐다. 닿지는 않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강맹한 기운이었다. 현재 정천의 혈룡기의 가장 큰 단점은 그 짧은 지속 시간에 있다. 무한정으로 혈룡기를 사용한다면 상대의 공격으로부터가 아닌 자신의 피가 고갈되어 자멸할 테니까. 대공자가 칠공자를 대적할 이로 자신을 선택한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이 그것이다. 혈룡기의 강력한 검기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길어봐야 일각이다.
쾌검은 중검을 이길 수 없다.
빠르게 휘두를수록 빠르게 내공이 소진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심지어 하단전이 파괴되어 오랜 시간 검을 휘두른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데 벌써 한 시진 가까이 무한정으로 검기를 쏟아내고 있음에도 정천은 멀쩡해 보였다.
“그렇지만… 꼴을 보아하니, 아직 새로운 힘에 대한 적응이 필요해 보이는군요.”
“닥쳐, 말 시키지 마.”
정천은 한 번 숨을 고른 후, 묵룡을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진기를 운용하며 거환을 살폈다.
‘예상대로, 아직은 지켜볼 생각이야.’
정천은 거환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 그는 감히 공격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아는 그 누구보다 신중하다. 아무리 불안정해 보여도 이것 자체를 함정으로 보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정천은 마음 놓고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오래 끌 생각은 없다.
‘찾았다!’
명치 아래 한 치, 거궐(巨闕). 자연스레 진기를 통과시켜야 할 혈로가 좁혀져 있었다. 마차 바퀴도 기름칠을 제때 해주지 않으면 녹이 슬어 잘 굴러가지 않는 것처럼, 심법의 운용도 진기의 흐름이 방해되지 않도록 제때 해주어야 한다. 물론 무영심공은 그 어느 신공보다 뛰어난 심법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하단전을 중심으로 운용되는 심법이다. 새로이 얻은 중단전을 단련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새로운 심법이 필요할 것 같군.’
그렇다고 지금 당장 새로운 중단에 맞는 심법을 연구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지금은 먼저 눈앞의 상황을 처리하는 게 급선무였다.
“몸에 문제가 생기셨나 보군요.”
신중하게 정천을 관찰하던 거환은 지금이 기회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동시에 그의 도가 허공을 가르며 정천을 향해 매섭게 날아갔다. 일도양단의 기세로 정천의 몸을 위아래 두 동강 내려는 순간.
후웅-
혈류도는 정천의 잔상만을 베었을 뿐이었다.
“이제 제대로 한판 붙어볼까?”
어느새 거환의 뒤편에서 나타난 정천. 자신감에 찬 그의 눈을 본 거환은 직감했다. 자신의 판단이 한발 늦었다는 것을.
“무언가를 얻으셨나 보군요.”
“그럼, 그럼. 그 어느 때보다도 몸이 가벼워졌는걸?”
언젠가 사부는 말한 적이 있었다. ‘그림자는 빛을 따른다. 하지만 빛이 될 수는 없다.’라고. 공기는 인간을 숨 쉬게 하고, 불은 인간을 따뜻하게 하며 물은 만물의 생명을 책임진다. 하지만 인간의 신체는 공기가, 불이, 혹은 물이 될 수 없는 법이다.
‘자연기를 체내에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다를지도.’
일반적으로 인간이 자연기를 축기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직 이 무림에 단 하나, 정천뿐이었다.
“잘 봐둬. 이게 바로 자연의 순리니까.”
공기가 팽창했다. 피부가 아려올 정도의 압력이 가해졌다. 대지의 기운이 진동했다. 그리고 파동을 타고 열화가 일었다. 이제 더 이상 그의 피는 담보가 될 필요가 없었다. 자연의 기운이 그 자리를 대신해 줄 테니까. 드디어 자연기와 혈룡기가 하나로 융화되기 시작했다.
츠츠츠츠-
휘몰아치며 융화된 자연기와 혈룡기가 자연스레 묵룡의 검신을 타고 흘렀다. 묵룡이 말하고 있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담아주지.’라고.
빛이 번쩍였다. 거환은 그렇게 느꼈다. 그저, 빛이 번쩍였다고.
이제는 그림자의 검이 아닌, 한껏 빛을 머금은 광검(光劍)이 거환의 폐부를 꿰뚫었다. 쾌검은 중검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광속의 검에 중검은 반응할 수 없었다.
“허허. 역시 칠공자는 참으로 재미있군요. 쿨럭!”
거환은 자신의 몸을 꿰뚫은 묵룡을 내려다봤다.
“과거에도 그랬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봉착할 때마다 한 단계 올라섰었지요. 대공자께서 그대를 한 수 아래로 보면서도 두려워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위기가 없을 때 그대는 나태의 극을 달리지만 말입니다, 큭큭.”
“원래 천재는 위기에 강한 법이라고.”
거환은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천재다. 힘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기어코 방법을 찾아내 대공자에게서 살아남은 인간이다.
“심검(心劍)을… 보신 겝니까?”
“심검? 몰라, 그런 거. 단지.”
정천이 씨익 웃었다.
“내 의지대로 자연이 응해줬을 뿐이라고. 그건 그렇고. 아오, 어지러워.”
머리가 핑 돌았다. 어떻게든 중심을 잡고 안간힘을 써가며 버티지만 몸이 휘청거린다.
거환에게서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선 채로 목숨이 다한 것.
‘아직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많겠는걸.’
중단전이 텅 빈 느낌이다. 광검 한 방에 내기가 완전히 바닥이 났다. 물론 자연은 다시 그의 단전을 채워줄 것이다.
‘더 키워야 해. 이렇게 한 방에 메마르지 않도록.’
과거 사부가 암시해주었던 자연검에 대한 실마리는 대충 얻었다. 이대로 쌓아나가면 될 문제다.
“후우, 유운. 나 좀 잘게. 조금만 기다려.”
스르륵.
정천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그런 그를 유운은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무영문… 칠공자.”
떠올라버렸다.
‘무명(無名)의 무영문. 무림이 다시 한번 뒤집힌다면, 그 환란의 중심에는 그들이 있을 게다.’
할아버지가 해주셨던 말 그대로다. 무영문의 일곱 번째 공자, 정천. 유운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앞으로 다가올 환란에서 이 사내가 어디에 서 있을지.
스슥-
유운이 고개를 홱 돌렸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 누군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유운은 재빨리 정천을 엎어 들고 몸을 피했다.
삐익-!
흑의 무복을 갖춘 누군가가 거환을 발견하고 호각을 불자 같은 복식의 사내 십수 명이 다가왔다.
“대주, 찾았습니다.”
대주라 불린 사내가 거환에게 다가갔다. 얼핏 보면 가만 서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생명이 다했음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대주는 그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없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거환의 마지막을 기렸다.
“대주, 칠공자를 쫓을까요?”
주위를 둘러봤다. 곳곳의 움푹 파인 땅과 으스러진 바위들, 그리고 무너져 내린 고목들까지. 두 고수의 대결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철수한다.”
지난번 무림맹을 속이기 위해 제갈영을 쫓다 칠공자를 마주쳤을 때와 마찬가지다. 그림자는 그림자의 역할을 할 뿐. 그의 명령에 거환의 시신을 수습한 흑의인들이 사라졌다.
“후우….”
유운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혹여라도 주위를 수색할까 조마조마했지만 흑의인들은 그대로 장내를 벗어났다.
“다행이다.”
“다행은 쟤네들이 다행이지. 도망치지 않았으면 나한테 죽었을 텐데 말이야.”
“헉! 뭐야! 언제 깼어?”
아래를 내려다본 유운. 정천과 눈이 마주쳤다.
“아니, 뭐 다리가 이렇게 부실해. 푹신푹신해야 누워 있는 맛이라도 있지.”
그렇다. 아래를 내려다봤다. 고목 아래, 자신의 다리를 베고 누워 있는 정천을.
“이런, 미친!”
유운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얼른 정천을 밀어낸 유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고, 나 죽네!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환자를 이렇게 대해도 되는 거야?”
“뭐? 환자 좋아하네.”
유운은 똑똑히 목격했다. 겉으로는 한량 그 자체인 이 인간의 진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물론 자신이 정확히 가늠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빙산의 일각일지라도 그 가공할 무위를 두 눈 똑똑히 지켜봤다.
‘무영문의 칠공자.’
감히 비교할 대상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은 단 한 명.
‘아버지와 겨룬다면….’
유운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지금 자신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가정을 하고 있는지. 백도 무림의 정점에 선 아버지와 이깟 한량…인 줄 알았던 인간을 비교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혼자 뭔 생각을 그리하고 있어? 왜? 이 형님의 무공에 완전 매료된 거야?”
“헛소리도 좀 적당히 해라. 형님은 무슨….”
형님?
유운은 자신의 몸을 둘러봤다. 지금은 남장을 한 상태.
‘설마 아직도 내가 사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거야…?’
그럼 그때의 기억은…. 그 입맞춤은 정말로 꿈이 되어버리는 거였다.
‘무림맹주의 금지옥엽, 천유화 아가씨. 이걸로 작별이야. 안녕. 그동안 즐거웠어.’
이상한 공간 속의 정천은 분명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심지어 그 꿈을 자주 꾸었다. 그런데 그게 단지 꿈일 뿐이었다고……?
“어이? 뭔 생각을 그리 심각하게 하는 거야?”
갑자기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보는 유운을 보며 정천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됐어. 가자.”
쌀쌀맞은 어조로 앞서 걷는 유운.
“뭐야, 갑자기.”
이래서 여인이란 동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갑자기 나빴다. 아주 오락가락하는 게.
“어이,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고 가는 거야?”
유운이 멈춰 섰다. 그러고 보니 대체 왜 자신이 당연히 정천과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심지어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채로. 마침 정천이 목적지를 알려줬다.
“가볼 데가 있어.”
“어디?”
“네 검의 검령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곳.”
‘봉황신검의 검령이 찾아온 거야.’
문득 기억이라 믿었던 꿈속의, 혹은 꿈이라 믿었던 기억 속의 정천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대체 어떤 게 현실인 거야?’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확 물어볼까?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느냐고. 내가 여인인 걸 모르느냐고. 혹시 그때 그 기억 속에 들어왔었느냐고.
하지만 유운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먼저 알릴 필요는 없다. 여인의 자존심이라고 할까.
“따라와. 자꾸 바보 같은 표정 짓고 있지 말고.”
씨익.
언제나와 같이 정천은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