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 Psycho's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37)
147_007: 첩보전쟁(7)
아직 몸이 으슬거리는 초봄.
감시탑의 안쪽으로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먼저 한가지는 분명히 말씀드려야겠군요.”
콘월 의원이 덤덤히 말하며, 왼팔을 짚었던 오른손을 치웠다.
칼에 찔려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아마 처음부터 적당한 연기였겠지.
“저는 첩자는 아닙니다. 부러 영국에 위험을 초래하려 했던 것도 아니고요.”
“그래, 물론 그렇겠지.”
내가 답했다.
그의 이름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런 방향의 의심을 하진 않았다.
“자네가 외국의 스파이일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 다만, 아룬델 백작을 자극한 뒤, 그를 붙잡아 공을 세우려 한 것이겠지. 아닌가?”
나는 이곳에 오기 전, 아룬델 백작의 행동에 당황했다.
그가 아는 정보대로라면, 나는 포위망을 좁히지 못했다.
내가 첩자를 의심하는 지금은 오히려 기회가 아닌가.
실제로 그는 중요한 정보를 주는 척, 내게 접근하려 했다.
‘그런 계획이 아니라면 그런 답을 적어내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방심했다.
적당히 장단을 맞추며, 놈을 확인해보려 했다.
그런데 놈은 갑자기 정신을 잃고 날뛰기 시작했다.
공방을 습격하고 물건을 탈취해 에스파냐로 가려 시도한 것이다.
“아룬델 백작의 행동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어. 자칫 에스파냐의 손에 물건이 들어가 국가에 커다란 위협이 될 뻔 했지. 이곳에서 그대와 대화하기 전까지, 나는 그 돌발 행동의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콘월 의원을 가리켰다.
“그대가 아룬델 백작을 자극한 거야.”
어째서 내가 도착했을 때, 그들은 싸우고 있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대는 나와의 회의 직후부터 아룬델 백작을 몰아세웠다. 초조해진 백작이 들키는 건 시간 문제라고 생각해, 일을 저지르도록. 그리고 가장 극적인 상황에서 그대가 공을 세울 수 있도록.”
콘월 의원은 잠깐 내 말을 곰곰히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내 처연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폐하의 말이 맞습니다. 생각해보니, 제 행동이 나라의 위기를 유발했던 것 같군요.”
순순히 인정하는가 싶었으나, 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제가 일부러 그를 유도한 것은 아닙니다. 회의 이후, 아룬델 백작이 의심스러워져서 그를 추궁한 것 뿐이에요! 이런 결과가 날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우습지도 않는 변명을 늘어놓는군. 그딴 같잖은 변명을 하는 걸 보면, 내가 알아채는 건 그대의 예상 밖이었나 보지?”
내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룬델 백작은 자네가 그를 첩자로 의심한 게 6개월 전이었다고 말했어.”
그렇게 이전부터 백작을 첩자라고 의심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첫 회의때 내게 말하지 않았지?
결국 제 잇속을 챙기기 위한 계략으로 볼수밖에 없었다.
“···후우.”
콘월 의원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멍청한 아룬델 백작은 도움이 되질 않는군요.”
“그렇다면···!”
“하지만 정말로, 일부러 이 영국을 위험하게 만든 것은 아닙니다. 딱히 폐하를 속일 생각도 없었고요.”
콘월 의원은 그제야 덤덤히 제 속내를 털어놓았다.
“폐하께선 의원들을 첩자로 의심하지 않으셨잖습니까. 그걸 말을 들은 뒤, 여기서 고발해봐야 피곤해지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증이 없었으니까요. 제가 직접 물증을 확보해 폐하께 제 충성을 보이려 한 것은 맞지만, 그 이상의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 정보가 에스파냐에 넘어가 큰 일이 날 수도 있었어!”
“멍청한 아룬델 백작이 훔친 건 기껏해야 폐하께서 주문 제작하신 유리병일 뿐이었습니다. 속에 들어있는 건 중요한 물건도 아니고, 비린내 나는 청어 조림이었지요. 제 추격에 겁먹은 백작이 헛짓거리를 한 겁니다. 심지어 그 하찮은 병조차 제가 확보했는데, 이게 대체 어떤 문제가 되겠습니까?”
콘월 의원이 제 품에서 유리 병을 꺼냈다.
틀림없이 내가 제작한 병조림이었다.
안도와 짜증이 섞인 한숨이 터져나왔다.
‘다행이지만, 화가 나는군.’
콘월 의원의 머리가 나쁘진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오만했고, 상대를 과소평가했다.
모든 게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다고 생각하는 남자.
그의 오만 때문에 큰 일이 벌어질 뻔 하지 않았나.
“폐하, 저를 써주십시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지,
콘월 의원이 당당히 내게 요구했다.
“제 능력은 충분히 보여드렸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폐하의 허락 없이 아룬델 백작을 자극하긴 했으나, 전부 인정받고 싶은 조급한 때문이었습니다. 저를 인정하고 받아주신다면, 충실한 폐하의 손발이 되겠습니다.”
“하, 내 손발이 된다고? 그대가?”
“장담컨데 저는 이 영국 최고의 두뇌입니다. 손해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가 정중히 허리를 숙여 청했다.
태생적으로 뛰어난 외모와 흠잡을 데 없는 태도가 겹쳐지니호소력 있었으나, 내게 먹히지는 않았다.
‘그가 인재라는 건 틀리지 않지만, 너무 오만해.’
그를 겪은지 얼마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비범한 두뇌를 과시하고, 모두가 자신의 밑에 있다고 생각하는 자.
이대로 곁에 두면, 나까지 속여먹을지 모른다.
호킨스 역시 건방지긴 하지만,
그는 최소한 나를 제 뜻대로 조종하려 들지는 않았다.
저리 건방진 자를 그대로 받아줄 수는 없지.
그렇다고 그냥 버리기에도 아깝고···.
‘좋아. 받아주긴 하되, 한 번은 밟아줘야겠군.’
순간 머릿속에 망치가 떠올랐으나, 이내 지워버렸다.
그의 오만은 자신의 지적 능력에 대한 과신에서 나온다.
무력으로 밟아봤자, 그다지 반성하진 않겠지.
‘그러면 내가 놈보다 똑똑하단 걸 증명한다?’
순간 지력 대결이라도 할까 했으나, 이내 관뒀다.
우스꽝스러운 짓거리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자보다
내가 더 똑똑하리라는 확신도 들지 않았고.
‘나만 아는 지식을 잘 이용해본다던가?’
그리 생각하던 중, 문득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폐하께선 의원들을 첩자로 의심하지 않으셨잖습니까.’
그래, 놈은 내가 그를 의심했다는 것을 모른다.
···재미있는 장난질이 하나 생각났다.
“그대는 스스로가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자신이 모두의 우위에 서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렇지 않나?”
“그럴 리가요, 폐하. 저는···.”
“날 속일 생각은 말게. 나는 다 알고 있으니까. 그대는 이미 온몸으로 그대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고 있다네.”
콘월 의원이 아주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미친 것처럼 보이기라도 했나 보지?
“내 말이 믿기지 않나? 그렇다면 그대의 구두를 보고 내가 자네의 유학 사실을 알았다는 것도 믿지 못하겠군.”
“예? 아니, 대체 무슨···.”
“그 구두!”
내가 그의 말을 가로채고 손가락질했다.
그는 영국에서 흔히 신는 둥근 구두코의 구두를 신고 있었다.
밑창엔 가죽을 덧댄, 어딜봐도 평범한 신발이었다.
그러나 나는 구두를 보며 말했다.
“구두 자체는 꽤나 닳은 흔적이 있으나, 구두코만은 맨질맨질하군. 구두의 앞코가 땅에 닿는 일이 거의 없었단 뜻이야. 이건 둥근 구두코가 아니라, 끝이 뾰족하고 긴 구두코에 더 익숙하다는 증거지.
선왕인 에드워드는 개신교의 신봉자, 그는 사치스러운 뾰족 구두코를 금지시켰어. 그러니 그대가 뾰족 구두코에 익숙하단 것은 그대가 외국에서 생활했다는 증거지.”
“쎄상에, 그게 대체···.”
콘월 의원은 귀신이라도 보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대체 어떻게 그걸 아시는 겁니까?”
물론, 내가 알 리가 있나.
내가 아는 건 콘월 의원이 오랜 유학 생활을 했다는 것.
해외에서 뾰족 구두코가 유행중이라는 것.
그리고 영국에선 그렇지 않다는 정도 뿐이다.
구두코가 닳은 정도로 구분 같은 건 당연히 못한다.
‘하지만 콘월 의원은 모르겠지.’
나는 콘월 의원에 대한 모든 사소한 정보를 알고 있다.
그를 첩자로 의심해서 샅샅이 조사했으니까.
이 정보를 토대로, 셜록 홈즈식 추리를 해나간다.
이미 알고 있는 정보에 근거를 끼워맞추는 엉터리 추리쇼지만
생전 처음 이런 걸 접하는 사람은 혼이 나갈 수밖에 없을걸?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그런데, 그대의 오른 손을 보게. 굳은 살의 모양이 특이하군. 아하, 이것 보게. 손톱에는 잉크로 검게 변색된 흔적도 있어. 자네 나이를 감안하면, 자네는 대학생이었겠군. 대학생이고, 외국에서 오래 유학했다. 가능성이 높은 건 이탈리아의 파도바 대학이나 블로냐 대학이겠지? 하지만 자네 말에 묻어나는 옅은 이탈리아 중부 지방 엑센트를 생각해보면, 파도바 대학이겠군.”
이탈리아 중부 지방 엑센트 따윈 모른다.
하지만 알게 뭔가, 본인도 그런게 묻어나는지 어쩐지 모를텐데.
힐끔 바라보자, 콘월 의원은 무척 혼란스러워 보였다.
정말 내 능력이 대단한지, 아니면 모종의 수단으로 그를 속이는지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하긴, 여기까지는 어떻게든 내가 미리 입수할 수 있는 정보이긴 하니까.’
만약 내가 모든 의원이 신상을 알고 있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준.
그렇다면, 여기선 감시하지 않고서야 모를법한 이야기를 해볼까.
“자네 외투의 진흙자국. 왼쪽 끝에 그건 몸싸움으로 생긴 게 아니야. 이 곳의 흙과는 토질이 다르니까.”
토질 따위 알게 무엇인가.
조금 전의 격투로, 콘월 의원은 완전히 흙투성이었다.
“그 자국은 마차에서 마부의 옆에 앉아 진창이 된 도로를 지났을 때만 생기는 자국이거든. 이 런던에서 마부 옆에 앉아 도로를 헤멨다라, 그래. 어제 시장을 갔군.”
감시인이 어제 그러더라고.
“그곳에서 자네 손에 들린 단검을 새로 샀고, 이후 친구 집에 가서 식사를 했지. 메뉴는 그대가 이탈리아에서 자주 먹던 스튜였어. 자, 슬슬 지치는데 근거까지 전부 말해야 하나?”
내 말을 끝으로, 잠깐 정적이 돌았다.
이내, 침을 한 번 삼킨 콘월 의원이 말했다.
“···이건 마술입니까?”
“아니, 과학이지. 상대의 외양을 보고 추리하는, 아주 간단한 종류의 관찰법이라네.”
그의 얼굴에서 경이와 감탄이 느껴졌다.
“저도, 배울 수 있는 것입니까?”
“글쎄, 관찰력을 키운다면 언젠가는 가능하겠지.”
나는 대충 얼버무린 뒤, 콘월 의원에게 말했다.
“어때, 이래도 내게 자네가 필요할 것 같나? 자네가 조금 전 뭐라고 했더라? 그대가 이 나라의 최고의 두뇌라고?”
내가 살짝 비웃음을 흘리자, 그가 얼굴을 붉혔다.
“폐하께서 저보다 뛰어나시다는 건 알겠습니다. 어쩌면, 제가 너무 오만했을지도 모르겠군요.”
“오만했지. 내게 필요한 것은 제멋대로 움직이는 손발이 아니라, 시키는대로 앞을 보고 소리를 들어줄 눈과 귀거든.”
콘월 의원의 어깨가 축 쳐졌다.
이제 내가 그를 뽑으리라는 확신을 잃어버린 듯 했다.
‘그래, 최소한 이 정도는 되야 날 물지 않겠지.’
나도 모르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눌렀다.
당장이라도 그를 주워가고 싶지만, 아직 시기상조였다.
‘한 번 눌렀다고 바로 데려가면 없어보이잖아.’
나는 헛기침을 하고, 천천히 그에게 말했다.
“다음에는 멋대로 일을 꾸미지 말고, 내게 정직히 보고해 그대의 능력을 증명해보게.”
그 말의 뉘앙스를 눈치챘는지, 콘월 의원이 얼굴이 단박에 밝아졌다.
그는 무어라 되묻지 않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콘월의 의원 프랜시스 월싱엄의 이름을 걸고 다시는 폐하를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맹세하겠습니다.”
“한번쯤 기대해보지.”
나는 도도히 말한 뒤, 몸을 돌렸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더 이상 표정을 숨길 자신이 없어서였다.
‘프랜시스 월싱엄을 얻었다.’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치세를 만든 공신 중 하나.
여왕을 향한 모든 암살 음모는 그의 손에 저지되었다.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의 반란 모의도, 가톨릭 교도들의 반란도, 외국의 지원을 얻은 암살 음모도, 전부.
그는 영국을 기반으로 에스파냐와 프랑스, 신성로마제국과 폴란드, 헝가리, 심지어 러시아까지 자신의 첩자를 깔아놓았고, 그건 그대로 여왕의 눈과 귀가 되었다.
에스파냐의 모든 움직임은 그의 손 안에 있었다.
‘아직은 어리지만, 말 그대로 아직일 뿐이야. 그를 키우면, 유럽의 정보를 영국의 손아귀에 쥘 수 있다.’
나는 들뜬 걸음으로 발을 옮겼다.
이보다 좋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
···심문한 아룬델 백작이 토해낸 정보를 듣기 전까지는.
“뭐라고?”
“크흐흐, 이미 틀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룬델 백작이 기분 나쁘게 낄낄거리며 말했다.
“이미 에스파냐는 모든 걸 준비했습니다. 영국에서 에스파냐로 보낸 첩자는 결코 돌아오지 못할 겁니다. 절대로!”
손 끝이 차갑게 식어갔다.
‘존 디···.’
그와 연락이 끊긴 지, 벌써 보름째였다.
그는 과연 무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