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 Psycho's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79)
179_죽음의 덫(4)
갑작스레 나타난 새로운 세력, 프랑스.
그들의 존재로 잉카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저런 자들이 나타났는데, 그런데도 정녕 우리가 에스파냐에 굴욕스러운 항복을 해야 합니까?”
한 장군이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에스파냐의 요구사항은 잉카의 멸망 아닙니까! 정녕 그 요구를 듣는다고요?”
잉카의 황제, 사이리 투팍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야. 그대도 알잖나.”
에스파냐는 잉카를 이어받고 싶어 했다.
미타 제도같은 잉카의 제도를 이용해 원주민들을 착취하기 위해선, 탈 없이 잉카를 흡수해야 했다.
그리하여 에스파냐가 잉카에 제시한 항복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사이리 투팍은 스스로 잉카의 황제 자리에서 내려와, 옛 잉카의 수도이자 현 에스파냐의 점거지역인 쿠스코에서 생활할 것.’
사실상 스스로 나라를 멸망시키라는 조건.
그러나 에스파냐는 사이리 투팍이 평생 부유하고 안온한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했다.
사실, 투팍은 이미 그쪽에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망국의 황제 노릇은 이미 지긋지긋했다.
‘카스트로만 아니었더라도 진작에 항복했겠지.’
사이리 투팍의 이복동생, 돈 디에고 데 카스트로.
그는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을 주장했다.
에스파냐의 공세가 최근 들어 약해졌다.
틀림없이 그들 본국에 변고가 생긴 것이다.
끝까지 버티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리 말하던 것이, 카스트로 왕자였다.
‘아마 오늘도···.’
사이리 투팍은 힐끔 왕자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평소라면 주전파의 선두인 왕자 아니었던가.
게다가 오늘은 프랑스라는 변수도 등장했다.
그런데도 왕자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아주 조용히, 골몰에 잠겨서 말이다.
“폐하! 프랑스라는 희망을 받아들이시지요!”
장군이 다시금 소리쳐 투팍의 정신을 일깨웠다.
“그러니까, 장군. 말했듯이-.”
투팍이 무어라 대답하려던 그때.
“이제 그만하지요.”
왕자의 입이 마침내 열렸다.
“뭐라고?”
투팍은 휘둥그레한 눈으로 왕자를 쳐다보았다.
왕자는 신음 섞인 목소리로, 투팍에게 말했다.
“프랑스를 겪은 시간을 짧았지만, 그걸로 충분합니다. 우리가 에스파냐를 상대로 승리한다면, 프랑스가 또 다른 에스파냐가 될 것입니다. 그들이 등장해서 우리의 승률이 높아졌다? 그 반대입니다. 그들이 등장했으니, 누가 승리하든 우리는 승자의 노예가 되게 된 것입니다.”
카스트로는 영리했고, 현실 파악에 능했다.
프랑스가 그들을 야만인 취급하는 걸 잘 알았다.
그들은 에스파냐의 정복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잉카보다 강했다.
“하다못해 우리 잉카의 전력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강했다면 또 몰랐을 겁니다. 그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게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러나,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 한 줌의 프랑스군이 우리보다 몇 배는 강력하니, 협상의 여지는 없겠지요.”
에스파냐를 상대하며 유럽의 사고방식을 배웠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누가 이기든, 우리는 노예로 전락합니다. 그 주인의 이름이 변하는 것뿐. 그렇다면 차라리, 피를 덜 흘리는 방향을 선택할 수밖에 없겠군요.”
프랑스의 등장으로 인해, 왕자는 꿈에도 하고 싶지 않았던 말을 내뱉어야만 했다.
차라리 자기 심장을 후벼파고 싶다고 생각하며, 카스트로가 말했다.
“그럴 바엔 지금 에스파냐에 항복을-.”
그러나 말은 끝맺어지는 일이 없었다.
바로 그 순간, 정말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는 희한한 소식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바다에 희한한 백인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거대한 배를 타고, 에스파냐 포로를 내밀며 선물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잉카는, 더욱 커다란 혼란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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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해변에 등장한 난데없는 불청객.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왕자가 찾아왔다.
호킨스와 드레이크만 배에서 내려 그를 맞았다.
“우리의 선물이 흡족했으면 좋겠군요.”
호킨스가 여유만만한 작태로 이야기했다.
왕자는 피로에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원하는 게 뭡니까?”
“잉카와의 동맹을 원할 뿐입니다. 그래서 선물까지 가져온 것 아니겠습니까?”
호킨스는 무척이나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는 잉카가 그의 제안을 거절하리라곤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이 선물은 잉카가 에스파냐와의 해전으로 이룩한 공적이라고 발표해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바다 한가운데서 잡은 이들이라, 우리가 잡았다는 건 아무도 모르니까요. 에스파냐 정부 역시 잉카가 이루어낸 업적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호킨스의 말에, 왕자가 이를 바득 걸었다.
군공을 넘겨준다는 듯 선심 쓰는 게 가증스러웠다.
‘선물은 무슨, 이건 협박이나 다름없지 않나!’
호킨스의 말뜻을 해석하자면 이랬다.
‘혹시 에스파냐랑 평화협정이라도 할 생각은 아니지? 우리가 에스파냐 선원을 잡아서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그게 가능할 것 같아?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우리와 손잡고 맞서 싸우는 게 나을걸?‘
정말이지, 백인들에겐 정을 붙일 수가 없었다.
분노로 입술을 깨문 왕자에게 호킨스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잉카에도 나쁜 제안은 아닐 겁니다. 영국은 든든한 구원군이 되어줄 수 있을 테니까요.”
호킨스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그러나 그건, 왕자의 정보와 차이가 있었다.
“잠깐만요. 영국이라고요? 프랑스가 아니라?”
“예? 그게 무슨 소립니까?”
호킨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프랑스가 여기서 왜 나오는 겁니까?”
영문을 모른다는 그 반응.
‘잠깐, 설마···.’
그 반응으로, 왕자는 한가지 가정을 떠올렸다.
왕자는 아주 조심스럽게 호킨스를 떠봤다.
“이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에스파냐의 최대 적수는 프랑스란 이야기를 말입니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 여쭤봤습니다만···.”
그 말에, 호킨스가 코웃음을 쳤다.
“한참 낡은 정보로군요. 프랑스는 에스파냐를 상대로 지지부진한 전쟁을 이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반면 우리 영국은, 에스파냐를 상대로 승리했지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프랑스가 이곳에 올 가능성은 없는 겁니까?”
호킨스는 어림도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우리 여왕 폐하쯤 되니까 포토시까지 군대를 보냈지, 프랑스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러니 헛생각 말고, 우리와 손을 잡는 것이 좋을 겁니다.”
이쯤에서 왕자는 확신을 했다.
‘역시, 저들은 저번의 육군과 별개의 세력이야. 그뿐만 아니라,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
프랑스의 육군과 영국의 해군.
각기 다른 경로로 잉카에 접근한 두 국가.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아직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순간, 왕자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그건 섬광처럼 내려온, 태양신의 계시와 같은 계획이었다.
‘어쩌면, 잉카가 살길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왕자는 순간 망설였다.
지금 떠올린 계획은 지나치게 위험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이대로라면 잉카는 멸망한다.’
순순히 평화협정에 사인하고 멸망할 바에야, 위험한 도박을 해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망설임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왕자는 아주 대담하게 말을 꺼냈다.
“귀하의 동맹 제안을 알겠습니다만, 잉카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고 계십니까?”
“예? 그야···.”
호킨스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말해, 이곳 원주민들의 정신적인 지주라는 것을 제외하면 잘 모르겠군요.”
“삼촌!”
옆에서 드레이크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였으나, 호킨스가 그의 머리를 꾹 누르며 말했다.
“너는 조용히 해, 임마. 내가 배에서 말했지?”
드레이크가 불만을 담아 입을 다물었다.
“그렇군요. 우리 잉카 제국은.”
왕자는 잔잔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으나, 티는 나지 않았다.
“육군만큼은, 에스파냐에 크게 밀리지 않습니다.”
그건 되지도 않는 거짓말이었다.
상대의 무지에 모든 것을 건 도박.
“호, 그렇습니까?”
호킨스는 흥미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적의 적이 강하다는 건 좋은 소식입니다만, 사실 쉽게 믿기진 않는군요. 에스파냐군은 강력하지 않습니까.”
왕자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이어 나갔다.
“그들은 강하지만, 소수입니다. 그에 비해 잉카 제국을 따르는 용맹한 전사는 셀 수 없이 많지요.”
그건 과거의 영광이었다.
그 전사들 대다수는 땅에 묻힌 지 오래.
“게다가, 잉카에 합류한 에스파냐의 탈영병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에스파냐의 총과 칼 등을 가지고 왔지요.”
확실히 그랬으나, 그들은 한 줌에 불과했다.
“게다가 잉카는 이 지역의 복잡한 지형에도 능숙하지요. 덕분에 잉카 육군은 에스파냐에 크게 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에스파냐에 당하고만 있던 이유는 하나뿐이지요.”
육군은 강한데 전투에선 밀렸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지 않은가.
“해군이 약했다는 말입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에스파냐의 함선은 강력했고, 그들이 해안에서 포격을 이어가면 육군은 대항할 수가 없었습니다.”
호킨스는 알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해군이니 해군의 위력을 잘 알았다.
‘땅개가 아무리 강해 봐야, 해군에겐 안 되지.’
“그래서 동맹을 맺기 전, 알고 싶습니다. 영국은 잉카의 부족한 해군 전력을 채워줄 수 있습니까?”
그 질문은 호킨스에게 퍽 반가운 것이었다.
오직 해군으로만 이루어진 그들에게, 해군 전력만이 부족한 동맹 대상이 나타났으니 말이다.
“물론입니다. 물론 함선의 숫자가 적으니 잉카의 해안 전부를 지켜줄 순 없겠으나, 에스파냐의 전함을 사냥해줄 순 있습니다. 에스파냐 본국의 충원이 오지 않는 한, 그들의 신경을 긁고 전력을 분산해주는 정도는 충분하겠지요.”
호킨스의 호언장담에 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제가 보기엔, 영국과 잉카 제국의 힘이 합쳐지면 충분히 에스파냐를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그거 좋군요.”
호킨스가 기분 좋게 대답했다.
“우선 폐하께 보고드리고, 논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호킨스와 화기애애한 인사를 나눈 왕자는, 곧장 발걸음을 옮겨 수도를 향했다.
그러나 그 목적지는 왕의 대전이 아니었다.
그는, 프랑스가 묵고 있는 숙소를 찾았다.
“음, 무슨 일입니까?”
프랑스 지휘관이 오만한 태도로 왕자를 맞았다.
형식상 존댓말은 하고 있었으나, 의자에 기대어 앉아 다리를 벌리고 앉은 그 모습은 아무리 봐도 예의 있는 태도는 아니었다.
그에 비하면, 협박을 하던 호킨스가 차라리 신사적일 정도였다.
“먼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우리 잉카 제국의 장단점에 대해서입니다.”
“말씀해보시지요.”
“먼저 제국의 최대 장점은 강력한 해군입니다.”
그 말에, 지휘관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네까짓 것이?’라고 말하는듯한 시선이었다.
왕자는 다시금 힘있게 이야기했다.
“에스파냐 해군을 상대로도 크게 밀리지 않습니다.”
“글쎄요, 쉽게 믿기진 않습니다만···.”
왕자는 다시금 거짓말을 시작했다.
조금 전 호킨스에게 늘어놓은 이야기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야기였다.
“어차피 에스파냐는 해군 전력 대부분을 은을 수송하는 데 쓰고 있습니다. 소수의 함선으로도 그들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저희 전사들은 에스파냐의 배가 연안에 있을 때, 배를 탈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잉카의 수많은 시민이 우리의 편이니 어렵지 않았지요.”
“으음···.”
그제야 프랑스 지휘관이 몸을 바로 세웠다.
“하지만 함선의 운용은 다른 문제인데-.”
“에스파냐 출신 탈영병들이 있습니다.”
왕자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들이 배를 운용합니다. 게다가 이곳의 해안선은 무척이나 복잡하고, 암초 또한 많습니다. 수천 년 간 이 땅에서 살아온 우리 잉카 사람들에겐 문제가 되지 않지만, 에스파냐는 그렇지 않지요. 이 때문에 해군은 전혀 밀리지 않습니다.”
듣고 보니, 그럴 법한 이야기였다.
지휘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경청했다.
“문제는 육군입니다. 해군이 강하다 하나, 에스파냐군이 강철 검과 총을 들고 진격하니, 영토를 지킬 수가 없습니다. 해군이 강해 봐야 소용이 없지요.”
그 말에 지휘관이 충분히 동감할 수 있었다.
해군보다 육군이 중요한 건 자명한 사실 아닌가.
‘해군이 아무리 잘나봐야 육군이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지.’
그런 지휘관에게, 왕자가 물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프랑스 육군은 얼마나 강합니까?”
프랑스의 지휘관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물론 우리는 강력하지요, 왕자님. 전투 수행 능력이 높을 뿐 아니라, 행군 능력 또한 뛰어납니다. 저 머나먼 북쪽에서 이곳까지 이처럼 단기간에 행군하지 않았습니까? 유럽 최고의 군대라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그 허세 섞인 과시에 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잉카에게 부족한 육군을 프랑스가 채워줄 수 있다면, 승리는 어렵잖겠습니다.”
“하하, 이를 말입니까.”
그리하여 얼마 뒤.
왕자는 양국에 기쁜 소식을 전했다.
논의 결과, 잉카가 그들과 동맹을 체결하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강대한 잉카에게 유일하게 부족한 것.
그것을 채워줄 나라와의 동맹이니, 나쁜 것은 없었다.
동맹의 조건은 비교적 공정했다.
잉카의 저력을 들었으니, 조건을 후려칠 수 없지 않겠나.
“우리 프랑스가 요구하는 조건은 간단합니다.”
“영국은 잉카에 많은 걸 요구하지 않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내세운 동맹 조건은 같았다.
“”포토시 은광의 소유권을 넘겨주십시오.””
잉카는, 둘 모두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영국과 프랑스 모두에게, 은광의 소유권을 보장했다.
성립할 수 없는 이중 동맹.
그리하여, 제국을 건 위험한 도박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