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 Psycho's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219)
219_[외전] 원점에 서다 (1)
그 후 2년.
해리는 섭정으로 잘 적응했다.
여왕은 자신의 업무를 하나하나 왕자에게 넘겼으며,
나중에는 모든 일을 해리에게 맡기고 남편과 티타임을 즐겼다.
그건 섭정이란 이름을 썼으되, 실상 후계자에게 왕위를 양도하는 것과 일절 다름없는 과정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 나았다.
생전 양위하는 법이 흔치 않은 서양에서, 이토록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권력을 양도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덕분에 해리는 어머니의 용인 아래에 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선 정말 양위를 하고 떠나고 싶어질 정도인데···.’
여왕은 그리 생각했으나, 그것만은 불가능했다.
아직도 의회는 여왕의 결정을 결사반대했기 때문이다.
나이야 물러날 때가 되었다 한들, 신체는 한창때 아니던가.
결코 이대로 물러나게 둘 수는 없다는 게 의회의 주장이었다.
“그들이 물러나게 두지 않는다면, 내가 떠나야지.”
그렇기에, 여왕은 당초 계획했던 여행을 준비했다.
제까짓 것들이 내가 나라에 없으면 어쩌겠나.
결국 해리를 왕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건 이 영국과 내 아들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야.”
여왕의 굳은 결심을 말릴 수 있는 건 누구도 없었다.
그 남편만이 유일하게 말릴 가망이 있는 자였으나,
안타깝게도 페르디난트는 움직이지 않았다.
되려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태도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2년 뒤.
떠나는 날의 아침이 밝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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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해리는 말을 멈추었다.
목 끝까지 올라온 질문을 속으로 삼켰다.
이미 수백 번 물어보았고, 그 답을 들은 질문이었으니까.
‘정녕 떠나셔야겠습니까?’
해리가 삼킨 말을 알았던지,
여왕은 그를 돌아보며 안쓰러운 듯 미소를 보냈다.
“해리, 너는 그간 정말 잘 해왔단다.”
여왕이 생각하기에, 해리는 훌륭한 후계자였다.
해리는 사이코는 아니었으되, 기발한 발상을 하고 있었다.
타고난 배려심과 화법은 이끄는 자로서 아랫사람의 존경심을 살만했고, 왕으로서의 다른 능력도 절대 뒤떨어지진 않았다.
미숙한 점은 많았으나, 부족한 점은 많지 않은 아들이었다.
“네 유일한 단점은 성급함 뿐이니, 항상 네 자신을 경계하렴.”
못내 어머니다운 잔소리를 꺼내놓은 뒤, 여왕은 후회했다.
“아니, 오늘 같은 말 할 이야기는 아니었구나.”
그런 말 없이도 해리는 틀림없이 잘할 것이다.
마지막 순간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런 말로 끝낼 순 없었다.
작별 인사는 그래서는 안 되었다.
여왕은 다시금 고개를 들어, 해리에게 말했다.
“네가 태어나던 날, 난 네게 세상을 주겠노라 약속했단다.”
하늘빛이 푸른 부둣가에서, 여왕은 아들에게 말했다.
“나는 주겠다고 했으니, 그건 맡겨둔 것도, 언젠가 되찾으러 올 것도 아닌 네 것이란다. 그러니 네 마음가는대로, 네가 원하는 색으로 마음껏 칠해보렴.”
여왕은 아들을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그 누구의 참관도 없었으나, 이건 둘만의 양위식이었다.
해리는 웃는 듯, 우는 듯 어머니에게 인사했다.
“반드시 무사히 돌아오셔야 합니다. 반드시요.”
해리에 이어, 여왕은 다른 신하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험난한 여정에 맞는 작별 인사를.
“으음, 폐하께서 이렇게 떠나신다니. 해리 전하께서 저 같은 해적을 필요로 하실지 모르겠군요.”
호킨스는 아쉬운 듯 한숨을 쉬었으나, 이내 깔끔히 물러났다.
한때 욕심으로 가득 찬 그였으나, 지금의 그는 그때와 달랐다.
떠나는 여왕을, 미래를 뒷세대에 물려주려는 뜻을 이해했다.
“제 미숙한 조카가 폐하를 잘 모시길 바랄 뿐입니다.”
자신보다 훌륭한 해적이 되어줄 조카를 바라보며,
호킨스는 그렇게 여왕을 보내주었다.
“폐하께서 원하시니 감히 막지 않겠습니다. 다만 무사하시길”
와이어트는 언제나 그렇듯, 여왕의 뜻을 따랐다.
이해할 수 있든, 없든, 그는 변함없는 여왕의 충신이었다.
“돌아오실 때는 동방의 서적을 가져와 주셨으면 좋겠군요.”
왕실의 과학 고문, 존 디는 태연한 작별 인사를 내뱉었다.
그러나 그 별것 아니라는 듯한 무덤덤한 인사는 되려, 여왕이 별일 없이 영국으로 돌아오리라는 마법처럼 느껴졌다.
그건 마법을 믿지 않는 마법사의 기원이었다.
“폐하···, 정녕 그러셔야겠습니까?”
여왕이 총애하는 신하 중에선 월싱엄,
그만이 여왕이 떠나가는 것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금부터 여왕이 떠나는 곳은 미지의 영역, 정보를 다스리는 그의 발길조차 닿지 않는 곳이었다.
“가겠다고 말했네. 그대도 이해하지 않나.”
하지만 여왕의 단호함에, 그는 결국 승복해야만 했다.
월싱엄은 이 영국에서 두 번째로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고,
조만간 첫 번째로 머리가 좋은 사람이 될 터였다.
그는 여왕을 붙잡을 수 없단 것을 이해했다.
그렇게, 모든 작별이 끝났다.
‘이곳에 그 또한 있었다면···.’
여왕은 잠깐 씁쓸한 추억에 잠겼다.
이곳에 있었다면 누구보다 여왕을 걱정했을, 또한 새로운 왕이 될 해리를 자랑스러워했을 누군가를 떠올렸다.
‘아니, 그와의 작별 인사는 이곳에서 하지 않기로 했잖아.’
여왕은 배에 올라, 부둣가를 향해 망치를 들어 올렸다.
어느새 여왕의 상징이 된 망치를 보며, 시민들이 아우성쳤다.
“여왕 폐하, 만세!”
“신이시여 여왕을 보호하소서!”
여왕에 대한 예우와 존경과 안타까움이 담긴 함성.
‘그날이 생각나네.’
여왕이 갑자기 영국의 런던에서 여왕으로 눈을 뜨던 날.
그날과 같은 함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신이시여, 여왕을 보호하소서!”
애타는 아우성과 함께,
배가 힘차게 돛을 올렸다.
이윽고, 배는 힘차게 나간다.
영국을 떠나, 저 먼 곳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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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까지 가는 길을 생각보다 수월했다.
어언 7개월이 넘는 항해는 절대 짧지 않았으나,
그 항로는 안정되어 있었고, 뜻밖의 위기도 없었다.
“동방과의 무역로는 이미 안정되어 있으니까요. 이번 항해를 대비해서 특별히 철저히 준비하기도 했고 말입니다.”
이번 항해를 책임진 선장, 드레이크의 말이었다.
그 말대로, 그가 이끄는 함선은 엄청난 편대였다.
미지의 남방대륙을 탐사할 함선들과 여왕의 순행을 호위할 함선들이 혼재되어 있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하는 건 어디까지나 중간 점까지.
마카오에 도달하자, 드레이크와 여왕은 헤어질 때가 왔다.
“차라리 제가 계속 폐하를 수행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드레이크는 영 떠나기 마땅치 않은 기색이었으나,
여왕은 단호했다.
“나는 남방대륙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는다네. 그러니, 부디 나를 대신하여, 그 대륙을 찾아주게.”
내키지 않아 보이는 드레이크에게 여왕은 여러 차례 당부했다.
‘호주는 놓치기엔 너무 아까운 땅이야.’
거주하는 원주민도 거의 없는, 말 그대로의 신대륙.
사람이 거주하기 알맞은 환경에, 각종 광석 또한 풍부하다.
차지하는 게 임자인 땅에 마땅히 깃발을 꽂아야지 않겠나.
“남방대륙을 찾으면, 마카오로 연락을 넣어주게.”
여왕은 마카오에서 호주 탐사를 지휘할 생각이었다.
“폐하의 뜻이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드레이크는 결국 잠깐의 재정비를 거친 후,
여왕의 뜻에 따라 호주를 향해 떠나갔다.
그리고 여왕은, 마카오에 상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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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 폐하 만세!”
마카오에선 환호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분명 몇 개월 전, 런던을 떠날 때와 같은 느낌의 환호였다.
‘이거 원, 이게 영국인지 중국인지 모르겠군.’
여왕은 쓴웃음을 흘리며 생각했다.
과거의 마카오는 서양인과 주민들이 어울려 살던 곳이었다.
마직이라는 무덤 등지의 땅에, 소수의 포르투갈인이 살던 형세.
그러나 여왕의 주도로 동서무역이 본격화되자, 사정은 달라졌다.
현재 마카오는 동/서양 무역의 중심지였고, 작은 런던이었다.
‘이래서야, 의원들이 마카오를 영국 땅이라 여기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
아닌 게 아니라, 여왕이 이곳에 순행을 왔을 정도 아닌가.
그렇다면 누군가는 의아해할 수도 있다.
아니, 상황이 이리되도록 청나라는 무얼 하고 있는가.
자신의 땅을 두 눈 뜨고 뺏기기 전에, 수를 써야 하지 않나?
그에 대한 답은, 청나라의 황제에게 있었다.
“청나라의 황제가 바뀌었다지? 큰 어려움은 없는가?”
여왕은 배에서 내리기 전,
자신을 맞이하러 온 영국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는 마카오에서 머무는 영국 관리로, 일대 무역의 담당자였다.
“아무 불편 없습니다. 현 황제는 무척이나 편리합니다.”
관리가 답했다.
“그는 간섭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주변 군벌에게 뇌물을 좀 주기만 하면, 장사에 방해받을 일이 없지요.”
여왕은 이제는 흐릿해져 가는 역사 지식을 되살려보았다.
‘현재 청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만력제인가?’
지금의 시대는 중국에겐 참으로 불운한 시기였다.
연속으로 암군이 배출되는 시기였으니 말이다.
본래 영국과 청의 무역이 시작되던 시기,
청나라의 황제는 암군이었던 가정제였다.
도교에 홀렸고, 간신을 신뢰했으며, 색욕에 빠졌고,
불로장생을 찾아 헤매는 그림 같은 암군이 바로 그였다.
가정제는 무능했기에, 영국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초콜릿을 미친 듯이 흡입했다고 한다.
가정제가 요절한 뒤, 다음 황제가 된 건 용정제였다.
그는 제법 괜찮은 황제였으나, 아비를 닮은 색욕이 흠이었다.
그 역시 재위를 이어받은 지 얼마 가지 않아, 요절했다.
이후 왕이 된 것이 바로, 만력제.
그는 어찌 보면 가정제보다도 더한 암군이었다.
‘파격적이지.’
말 그대로, 그는 파격적인 암군이었다.
만력제는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거나 뇌물을 받지 않았다.
간신에게 지나친 권력을 주어 국정을 휘두르게 두지도 않았다.
분명 도교에 빠지지도 않았고, 색욕에 미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암군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어떠한 업무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현 중국의 황제는 신하들과 함께하는 어떠한 회의에도 참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하들이 따라다니며 애원을 해도, 서류 한 장 서명해주는 일이 없고요. 덕분에 코앞에 반란군을 막을 병사들이 있는데도, 군 출정 명령을 받지 못해 토벌하지 못할 지경이라고 합니다.”
“황당한 일이지.”
여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력제 덕에 청나라의 업무는 마비되었다.
그가 왕으로서 해야 할 어떠한 일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일을 대신해줄 다른 대리자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에게야 좋은 일이지.’
지금 이 명나라에 영국의 여왕이 도착했다.
영국으로선 자신의 땅에 온 것뿐이라지만,
명나라에겐 말도 없이 타국의 군주가 방문한 격이 아닌가.
본래라면 마땅히 여왕을 만나보려 해야 했다.
어떻게든 저 먼 섬나라의 여왕을 복속시키고, 서열 관계를 확실히 하는 것이 그들의 법도에 맞았다.
‘입조를 시키거나, 조공을 받으려 했으면 골치 아팠겠지. 이 내가 청나라의 밑에 들어갈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여왕이 그럴 생각이 있다고 한들, 자존심 강한 영국인들이 이를 용납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데 다행히도, 만력제 덕에 국정이 마비된 상태였다.
덕분에 여왕은 골치 아프게 명나라 황제와 입씨름할 필요 없이, 무사히 명나라에 입성할 수가 있었다.
‘명나라를 내 발로 걸어올 날이 오다니. 재밌네.’
여왕이 기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었다.
신하들 중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여왕이 목표하는 여행의 목적지는 이곳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마카오를 거쳐, 조선으로 간다!’
앞으로의 목적을 생각하며, 여왕은 기운차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