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385
상남자 385화
앉아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핀 유현은 굳은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내일 그룹전략실 주관 감사가 있습니다.”
“……”
그러곤 퍼져있던 공포심을 한 곳으로 모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먼저 현 상황을 직시할 필요가 있었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전원 감봉 수준의 징계를 받을 겁니다.저희뿐만 아니라 목포 공장 조립 작업소 전체, 그리고 공장장까지 타격을 입게 되겠죠.”
“그, 그 말은 목포공장에게 완전히 찍힌단 거 아닌가?”
민달기의 말에 유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더 구체적으로 파고들었다.
“네.당분간 휴가와 외출까지 금지될 가능성이 큽니다.”
“헉.”
“상시 감사에 시달리며 지내야 하는 건 당연하고요.벌타로 업무량은 더 주어지겠죠.”
유현의 강한 발언에 장내가 술렁였다.
또 다시 불만어린 목소리가 튀어나오려던 순간, 유현이 손뼉을 쳤다.
짝.
굳은 표정을 푼 유현이 미소졌다.
표정의 변화만으로 얼어붙은 분위기에 틈이 생겼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그런 말이 나오나? 다 죽게 생겼는데?”
울상이 된 마종현 반장에게 유현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죽기는 왜 죽어요.감사는 무사히 통과할 겁니다.”
“뭐라?”
마종현 반장의 눈이 휘둥그래졌고, 사람들의 시선이 단번에 모였다.
“한 주임.무슨 대책이라도 있어?”
조기정의 물음에 유현이 고개를 끄덕인 후 들고 있던 서류를 펄럭였다.
“그럼요.제가 감사가 온단 걸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
얼떨떨해 하는 사람들에게 유현이 빠르게 설명했다.
“우선 세부 감사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감사 목적은 연태 공장 수준 평가, 평가자는 감사팀 1파트, 평가 통과 기준은 24시간 동안 250개의 재조립품 완성입니다.그리고…….”
유현의 말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의 머릿속엔 물음표가 떠올랐다.
불가능한 수치가 계속 나열된 탓이다.
그런데 유현이 너무 태연하게 말하다 보니 다들 말은 못 꺼낸 채 듣고만 있었다.
유현도 당연히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내일 이 내용을 알았다면 절대 불가능한 수치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왜냐고요? 이건 작년도 최우수 평가를 받은 부산 공장 재조립 작업반보다 훨씬 난이도 있는 조건이니까요.”
“미치겠네.”
다들 기절할 무렵, 유현은 선수 친데 이어, 반전을 꾀했다.
할 수 있단 생각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우린 오늘 이 내용을 알고 있죠.못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아,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
“아뇨.무조건 됩니다.”
“자신감으로만 될 일이 아니야.”
민달기 기장의 말에 유현은 빙긋 미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부 미리 세팅해 놓으면 됩니다.공장장, 관리소장의 목이 달렸는데 그 정도도 지원 안해줄 거 같습니까?”
“그, 그게 무슨 말인가?”
유현은 놀라 묻는 마종현 반장을 스쳐지나갔다.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릴만큼 집중된 상황에서 유현이 구체적인 안을 내놓았다.
그 모습이 흡사 스티브 잡스의 애플 발표회 장면을 연상시켰다.
“미리 다 정하자고요.조립반에서는 내놓을 물품들이 뭔지 미리 다 정해놓고, 저희는 필요한 부품 미리 다 구해놓고.측정기나 분석기계는 공장에서 더 올리고요.”
“허.그게.”
“뻔히 답을 알고 있는데, 왜 안보고 시험을 쳐야합니까.답지를 보고 치면 되죠.”
“그래도 쉽지는 않아.”
마종현 반장의 말대로 결코 쉬운 숫자는 아니었다.
환경이 좋아졌다 한들, 250대를 하루 만에 재조립 해야 하는 미션은 그대로였다.
“알고 있습니다.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죠.자, 만약 우리가 성공하면 어떻게 될까요?”
“…….”
다들 침묵했으나 유현의 눈빛은 더욱 강렬해졌다.
여기 있는 모두가 할 수 있단 강한 마음을 먹어야 비로소 성공할 수 있는 미션이다.
유현은 최선을 다하잔 상투적인 말 대신 희망적인 비전을 보여줬다.
“성공하면 S급이란 걸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겁니다.연태 공장은 전원 S급이 다니는 최고의 공장이 되는 거죠.”
“…….”
거기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당근을 제시했다.
“포상과 지원이 쏟아질 겁니다.수당 또한 등급에 맞게 커질 거고요.작업반이 아니라 작업소로 승격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허.”
모두가 눈이 뒤집힐 만한 내용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들려왔다.
유현은 곧게 뻗은 검지를 앞으로 내밀었다.
“단 하루.하루만 노력하면 되는 겁니다.이보다 쉬운 게 어디 있습니까?”
“…….”
너무나 당연하게 뱉는 유현의 말에 사람들이 눈을 껌뻑였다.
컵 안에 반 밖에 남지 않은 물이지만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
시선을 달리하며 반이나 남은 물이 된다.
압박감으로 다가온 24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밤을 샐 각오로 하루만 노력하면 일 년 내내 노력한 것보다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다.
그걸 뻔히 아는데 손 놓고 있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유현이 뱉은 이 말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뜨거운 열망을 심어주었다.
유현은 반짝이는 눈빛들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여러분.눈 딱 감고 하루만 고생합시다.감사 보고서는 제가 쓰겠습니다.어떻게든 통과하게 만들테니, 여러분들은 하던 대로 재조립 작업만 해주시면 됩니다.”
“될까?”
“머물러서 죽을 겁니까.일어서서 쟁취할 겁니까.”
유현은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서 주먹 쥔 손을 높이 들었다.
동시에 사람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옳소.우리 해봅시다.”
“공장부터 빨리 세팅하시죠.”
“전 조립반 동기한테 연락해보겠습니다.”
“이삿짐은 정리 끝나고 풀자고요.”
분위기가 삽시간에 변했다.
당연한 것처럼 받아 들였고, 알아서 움직였다.
그 중엔 유현과 각을 세우던 마종현 반장도 있었다.
덥썩.
마종현 반장이 다가와 유현의 손을 잡았다.
눈빛엔 미안함과 고마움이 한 가득이었다.
“감사 보고서 쓰는 거 정말 만만치 않을 텐데, 괜찮겠나?”
“그 정도는 제가 해줘야죠.다른 사람들은 재조립 한다고 더 고생일거 아닙니까.”
“내가 자네에게 그동안 너무했지?”
“지금 이럴 여유 없습니다.반장님은 빨리 관리소장님께 지원요청하세요.목포 공장 트럭 바로 확보해주시고요.”
“아, 그래야지.무조건 해보자고.”
고개를 턴 마종현 반장은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그러곤 옆에 있는 민달기를 끌며 말했다.
“혹시라도 감사 보고서 작성하는데 어려움 있으면 민 기장에게 말해.예전에 다른 반이 하는 걸 도운 적이 있어.”
“네.그럼 좋죠.”
유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민달기가 고개 숙였다.
“업데이트 되는 항목을 바로바로 알려줄게.정말 어려울 텐데 잘 부탁하네.”
유현에게 당부를 남긴 두 사람은 대열에 합류에 각자의 역할을 했다.
유현이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어느새 옆에 다가온 조기정이 유현의 옆구리를 찔렀다.
“한 주임, 감사보고서 그거 이미 작성 다 되어 있지?”
“네? 무슨 소리입니까?”
“내가 널 몰라? 또, 꼼수 부리는 거 다 알아.”
이렇게 감 좋은 사람이 자기 일 시켜먹는 건 왜 몰랐을까?
피식 웃은 유현이 그의 손을 잡았다.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잘 되는 게 중요하지.주임님만 믿습니다.”
“흠흠.내가 좀 활약해야 할 거 같긴 해.”
“당연하죠.개발팀으로 가게 된 실력, 마음껏 뽐내주세요.”
“그럼 몸 좀 풀러 가 볼까.”
유현의 말에 조기정의 입꼬리가 길쭉이 올라갔다.
이래저래 참 다루기 쉬운 사람이었다.
그날 밤 늦게까지 공장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공터 앞에는 목포 공장에서 온 트럭들이 한동안 자리했다.
트럭에서 내린 예비 부품은 강종호의 지휘에 따라 창고로 들어갔다.
재조립 물품 이력은 고무줄로 머리를 질끈 묶은 조기정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는 머릿속으로 내일 작업 상황을 그리며, 민달기 기장과 토론했다.
졸지에 물과 기름 같던 사람들이 어울리며 녹아들었다.
흐뭇하게 미소지은 유현은 숙소로 돌아왔다.
지금 유현에겐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달칵.
숙소 안에서 노트북을 펼친 유현은 여태식 전무에게 받은 울산 신축공장 감사 보고서를 확인했다.
그룹전략실 양식이 들어있는 내용으로, 사전문항은 그대로 복사해도 될 만큼 디테일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유현은 연진섭 차장이 추가로 보낸 보고서를 확인했다.
작년 부산 재조립 작업반 감사 평가 때 작성된 내용이었다.
감사팀이 주관해 양식은 다를 수 있었다.
그러나 목적이 같은 만큼 개요나 목표, 타임테이블 등은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을 정도로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감사 항목 백여 개에 대한 코멘트도 잘 정리되어 있었다.
날짜와 항목만 고치면 이 부분도 재활용이 가능했다.
물론 새로 써야 할 부분도 있었다.
세부적인 재조립 물품 수량이나 종류, 불량 이력이나 수리 내역 등은 작업기간 동안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해야 했다.
번거로울 수 있는 이 부분은 민달기가 돕기로 했다.
“잘 정리해서 보내주려나?”
유현이 잠시 시계를 봤을 때였다.
지이잉.
타이밍 좋게 민달기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목포 공장에서 온 물건 추린 내용 메일로 보냈어.내일 업데이트 되는 내용도 실시간으로 보낼 거야.그러니 걱정 말고 숙소에서 보고서 작성에만 전념해줘.
메일을 확인해 보니 내일 조립반으로부터 받을 예상 물품 항목이 포함되어 있었다.
깔끔하게 정리가 된 건 아니지만 물건별 불량 이력이 주르르 나열되어 있어 가져다 쓰기 좋았다.
확실히 감사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놓치는 부분이 별로 없었다.
“이 정도면 더 손 댈 것도 없겠네.”
피식 웃은 유현이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왠지 재미난 감사가 될 것 같았다.
유현이 워낙 조여 놓아서 그런지 사람들은 새벽까지 쉬지도 않고 준비했다.
덕분에 물건이 오면 바로 작업할 수 있는 완벽한 환경이 갖춰졌다.
심지어 물건 이력에 딱딱 맞는 대체부품까지 바로 가져다 쓸 수 있게 해 놓았다.
여기서 더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정신력으로 버티는데도 한계가 있다.
무릇 리더라면, 구성원들이 최선을 다할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다음날 아침.
공터에 모인 반원들 앞에서 유현이 마종현 반장에게 휴식을 제안한 이유였다.
“반장님.반원들 잠이 부족할 거 같은데 출근시키지 말고 재우시죠?”
“안돼.그러다 감사 뜨면 어떻게 하나.”
“목포 공장에도 아직 도착 안했습니다.조립반에서 물건 확인하고 이곳까지 넘기는데도 한참 걸리잖아요.오후나 되어야 시작할 겁니다.”
“그래도 이쪽 먼저 올 수도 있지 않나.”
잠시 생각한 후, 유현은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대비하기 위해 보안책을 제시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어떻게?”
“위쪽에서 왔을 때 연태리에 오기위해선 저수지를 둘러싼 산 끝자락에 있는 다리를 지나야 해요.거기 보초를 서면 최소 20분은 벌 수 있을 겁니다.”
CCTV를 사용하면 좋겠지만, 큰 길이 뚫린 이상 그것도 소용없었다.
인원도 많은데다가 몇 시간만 버티면 되는터라, 보초를 서는게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다.
듣고 있던 민달기가 반색했다.
“그거 괜찮겠네.두 명이면 차 안에서 돌아가면서 자면 되지 않나.”
“네.그것도 나쁘지 않고요.”
“아니, 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마종현 반장은 아예 혀를 내둘렀다.
같은 방법으로 당했단 건 절대 모르는 눈치였다.
저벅.
옆에서 듣고 있던 조기정과 강종호가 한 발씩 뒤로 물러났다.
둘 다 켕기는 게 있는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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