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581
상남자 581화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보였던 두려움은 이제 없었다.
그나저나 케빈 시스트롬은 왜 유현을 따로 만나자고 한 걸까?
답은 이어진 그의 말에서 들을 수 있었다.
“스티브, 당신께 도하 씨에 대해 할 말이 있습니다.”
“뭡니까?”
“저희 인스타그램에서 도하 씨를 고용하고 싶습니다.”
“도하를요?”
놀라 묻는 유현에게 케빈 시스트롬이 빠른 목소리로 답했다.
“당신 회사에 도하 씨가 받을 연봉 2년 치를 금전적으로 보상하겠습니다.도하 씨에게도 적지 않은 연봉을 제공할 거고요.”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나?
유현이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짓자, 멀뚱히 있던 나도하가 귀를 펄럭였다.
유현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나도하에게 통역해 줬다.
“너 여기 남았으면 좋겠다는데?”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잠시만.”
인스타그램이 워낙 일손이 모자라다 보니 마음이 급한 건 유현도 이해했다.
유현은 일단 상대가 어느 정도로 진지한지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도하가 받을 연봉은 얼마입니까?”
“10만 달러(약 1억 2천만 원)부터입니다.숙소 지원도 하고요.”
“꽤 많네요.숙소 지원은 특히 매력적인 제안이고요.”
대답한 유현은 바로 옆에 있는 나도하에게 의견을 전달했다.
“너 여기 남으면 연봉 1억 넘게 준대.집도 주고.”
“1억이요?”
“너 일 잘했나 보다.”
유현은 미소 지으며, 놀란 나도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의 활약 덕분일까?
나도하에게 주는 평가가 후한 느낌이었다.
유현은 딱 그 정도라 생각했다.
하지만 케빈 시스트롬의 마음은 유현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사실 저흰 10만 달러도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10일 만에 어떻게 그걸 알 수 있습니까?”
“도하 씨가 저희 서비스의 백 엔드부터 프론트 엔드까지 잡아 준 오류가 10개가 넘습니다.심지어 서버 구축과 해킹 위험까지 방지해 줬죠.고작 10일 만에요.”
“대단한 건가요?”
“대단한 거죠.도하 씨는 전천후예요.지금껏 해 놓은 것만 해도 그 정도 연봉은 주고도 남습니다.”
애초에 손해 볼 장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유현은 이 부분을 나도하에게 설명했고, 나도하는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의미를 오해했는지 케빈 시스트롬이 조급한 목소리를 냈다.
“만약 도하 씨가 남겠다고 하면, 지분 1퍼센트를 추가로 건네겠습니다.”
“지분 1퍼센트요?”
“네.아직은 종이 쪼가리이지만, 가입자 추세를 보면 저흰 성장 가능성이 다분합니다.도하 씨로서도 결코 손해 보는 일은 아닐 겁니다.”
말이 1퍼센트지, 회사의 일부를 주는 일이다.
공동 창업자끼리도 1퍼센트에 틀어지는 마당에, 영어도 안 되고 배경도 없는 동양인에게 선뜻 지분을 건네는 건 말이 안 됐다.
그만큼 케빈 시스트롬이 나도하를 높게 평가한다는 의미다.
“…….”
유현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브레이크 없이 직진하는 케빈 시스트롬을 보며 꽤나 놀랐다.
냉정하게 따져 봐도 나도하의 입장에선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유현은 나도하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도하야, 너 일 너무 잘해서 돈 더 주고 싶다나 봐.”
“1억에서 더요?”
“어.추가로 지분 1퍼센트 준대.”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인스타그램의 1퍼센트가 네 몫이라는 거야.지금은 그리 크지 않지만, 인스타그램이 이대로 성장한다면 수십, 수백억 가치가 될 수도 있어.”
“헐.”
유현의 가감 없는 말에 나도하가 입을 쩍 벌렸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케빈 시스트롬에게도 같은 내용을 전했다.
진심을 꺼내는 상대에게 굳이 숨기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유현의 말을 들은 케빈 시스트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1퍼센트가 100만 달러가 될 수도 있다고요?”
“네.전 인스타그램이 그 이상으로 성장할 거라 믿습니다.도하에게도 그 부분을 말한 거고요.”
“허! 어떻게 대표인 저보다 더 과감하십니까?”
인스타그램의 가입자가 폭증하고 있지만, 아직까진 찻잔 속 태풍이었다.
직원 4명만으로 운영하는 만큼 이곳의 재정 상황은 열악했다.
당연히 할 수 있는 질문에, 유현은 적당히 둘러댔다.
“한국에서도 요새 인스타그램이 뜨고 있거든요.”
“그렇긴 한데…….그, 그럼 도하 씨는 어떻게 합니까?”
유현은 여전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나도하를 보며, 현진건이 전화로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네가 선택할 일이야.직접 가 보고 결정해.고민되면 연락하고.
‘자식.말해 주지.’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케빈 시스트롬이 현진건에게 이미 귀띔한 듯했다.
현진건은 유현보고 결정하라고 했지만, 이건 유현의 몫이 아니었다.
유현은 케빈 시스트롬에게 양해를 구한 후, 나도하를 바라봤다.
“도하야, 네 생각은 어때?”
“뭐가요?”
“여기 남는 거.형 생각엔 나쁘지 않다고 봐.”
“…….”
더블와이를 위해선 아깝긴 하지만, 나도하 개인을 위해선 이보다 좋은 환경은 없다.
실리콘밸리에서도 성공이 보증된 로켓에 올라탈 기회는 흔치 않은 까닭이다.
이를 통해 나도하는 훨씬 크고 멋진 날개를 펼칠 수 있을 터였다.
유현은 나도하가 지레 걱정하는 부분부터 안심시키고자 했다.
“할머니 문제라면 내가…….”
“아뇨.전 형 따라갈 거예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도하가 강한 눈빛을 빛냈다.
그러고는 케빈 시스트롬에게 양팔을 교차해 엑스 자를 만들어 보였다.
“케빈, 노.”
“정말 안 되겠어요?”
“노, 노.”
나도하의 의지는 완고해 보였다.
얘는 지금 자신이 무슨 복을 걷어찼는지 알까?
황당해하는 유현에게 나도하가 다시 말했다.
“형, 전 확고합니다.할머니 때문이 아니라, 더블와이를 위해서 갈 거예요.”
“후회 안 하겠어?”
“그럼요.”
유현은 이런 나도하의 의지를 케빈 시스트롬에게 전했다.
그는 아쉬워하면서도 나도하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언제든 연락하면 도움을 주겠다는 말도 했다.
실리콘밸리의 천재 CEO라 불릴 그의 인성을 볼 수 있는 단면이었다.
건물 밖으로 나온 나도하가 뒤를 힐끔 봤다.
옆에서 걷던 유현이 물었다.
“아쉬움이 좀 남아?”
“조금요.더 배울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쉬워요.”
“그래도 자신감은 많이 생긴 것 같은데?”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싹 가진 것만 봐도 달라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나도하는 전처럼 움츠리지도 않았고, 걸음걸이도 당차졌다.
유현의 직감이 맞는지 나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밑바닥부터 끝까지 쭉 해 봤거든요.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알겠더라고요.특히 트래픽 관리 부분은 우리도 신경을 써야 할 거 같아요.”
“고작 10일 만에 그걸 다 파악했다고?”
“별거 아니에요.그동안 해 온 걸 살짝 응용한 건데요, 뭘.”
유현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나도하를 보며, 현진건이 첫날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유현아, 도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놈이야.
현진건과 케빈 시스트롬, 2명의 IT 천재는 나도하의 잠재력을 꿰뚫고 있었다.
이는 과거 함께했던 유현조차 몰랐던 능력이었다.
그런 대단한 동생에게 유현이 슬쩍 물었다.
“진짜 인스타그램의 지분 안 아까워? 아까 말했듯이 큰돈이 될 수도 있는데?”
“네? 아, 네.안 될 수도 있잖아요.”
“너도 겪어 보니 잘될 거 같지 않든?”
“…….”
인스타그램은 아직 규모가 작지만 성장률만큼은 다른 SNS를 압도했다.
심플함과 감성을 앞세운 그들에겐 특별함이 있었다.
적절한 투자만 이뤄지면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 낼 여지가 다분했다.
나도하도 어렴풋이 알겠는지 고개를 떨구었다.
표정은 감췄지만, 무거워진 발걸음만큼은 감추지 못했다.
그의 속마음을 확인한 유현은 괜히 더 짓궂게 말했다.
“아깝구나?”
“아, 아니에요.제 돈도 아닌데요, 뭘.”
나도하는 돈을 떨쳐 버리려는 듯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피식 웃은 유현이 나도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식.이 형이 그 지분 줄게.”
“네? 그게 무슨 …….”
“있어.대신, 더블와이를 잘 부탁한다.”
유현은 멀뚱하게 바라보는 나도하를 뒤로하고 휴대폰을 들었다.
연락처를 검색해 찾은 이름이 화면에 떠올랐다.
폴 그레이엄.
유현의 에어비앤비 지분 일부를 팔아 인스타그램 지분을 사 줄 투자자였다.
이를 통해 인스타그램은 부족한 자금을 확보해, 인원을 확충할 터였다.
잘만 풀린다면, 과거보다 더 성장하는 회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날 유현은 나도하와 함께 현진건의 집에서 밀린 회포를 풀었다.
잔칫상이 펼쳐진 거실엔 현진건과 현진수, 유현과 나도하, 이렇게 4명이 모였다.
유현은 그간 자신이 했던 일을 간략히 공유했고, 또 나도하의 숨겨진 뒷얘기를 들었다.
이야기는 나름 실리콘밸리의 마당발인 현진수가 주도했다.
“도하가 인스타그램에 갔을 때…….”
“그랬어?”
나도하가 인스타그램에 들어간 건 현진건 덕분이었지만, 인스타그램 직원들과 나도하의 관계를 단숨에 좁혀 준 건 현진수의 공이었다.
덕분에 나도하는 시작과 동시에 제대로 된 업무를 맡을 수 있었다.
무척 가벼워진 표정의 나도하가 공을 돌렸다.
“진수 형 덕을 많이 봤어요.또 저녁마다 진건이 형이 코칭해 줘서 도움을 많이 받았고요.”
“웬 코칭?”
유현의 물음에 현진건이 어깨를 으쓱였다.
“나라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잖아.어깨너머로 배운 모바일 서비스에 대해 좀 알려 줬지.난 운만 띄웠고, 도하가 다 알아서 했어.”
“아니에요.한국에선 절대 알지 못했던 내용이에요.특히 풀 스택 엔지니어링을 하기 위해…….”
“그건 네가 백부터 프론트, 서버까지 경험이 있어서…….”
유현은 정확히 무슨 얘기인지 몰랐지만, 대단히 유용한 시간임은 알았다.
정신없이 토론하고 있는 두 천재에게 유현이 잔을 내밀었다.
“자, 좋은 뜻인 거잖아.한 잔 해.”
잔을 부딪친 나도하가 불쑥 물었다.
“그런데 형은 어떻게 그렇게 대단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거예요?”
“누구?”
“스티브 잡스요.대통령도 만나기 힘든 사람이라던데요?”
스티브 잡스는 미국에 처음 오는 나도하도 잘 알 만큼 유명했다.
설명해 주자니 내용이 길고, 그 과정을 이해시키기가 어려웠다.
유현이 난감해할 때 현진건이 나섰다.
“네 형이 그만큼 대단한 사람이야.나도 덕 많이 봤고.”
“정말요?”
“그럼.유현이 아니었으면 우리 회사도 없었어.”
단호하게 말하는 현진건을 보며 유현이 황당해했다.
“그게 뭔 소리야?”
“맞잖아.비단 우리 회사만 그래? 에어비앤비도 마찬가지잖아.”
“에어비앤비도요?”
현진건의 말이 이어질수록 나도하의 눈은 더 커졌다.
에어비앤비가 실리콘밸리에서 뜨고 있는 회사라는 건 그도 잘 알았다.
그런 나도하에게 현진건이 확인 사살을 했다.
“그래.내일 간다며.거기 가서 확인해 봐.네 형이 얼마나 대단한지.”
“헉! 내일 간다는 곳이 에어비앤비였군요.”
“그렇긴 하지.”
유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도하가 방방 뛰었다.
“우와! 대박! 형, 대체 인맥이 어디까지예요?”
“…….”
놀란 표정의 나도하를 보며 유현이 할 말을 삼켰다.
‘지분까지 있다는 걸 알면 까무러칠 거 같은데?’
유현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무척 고민이었다.
유현이 에어비앤비 창업주들과의 만남을 가장 뒤로 미룬 이유가 있었다.
앤드리슨호로비츠의 투자 심사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 창업주들은 요구사항에 맞춰 제안서를 만들고, 시스템을 구축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제 어느 정도 준비가 끝난 상황이라, 그들이 유현을 당당히 초대했다.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유현은 나도하와 함께 에어비앤비 사무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