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1988 RAW novel - Chapter 25
제25화 여름휴가 (3)
무더운 1990년의 7월 하순이기에 휴가철이 되었다.
은하수 투자회사에서도 직원들이 조를 나누어서 여름휴가를 시작했다.
동수의 지시로 50개 종목에 주식투자를 하여 제법 높은 수익을 올렸기에 직원들이 여름휴가 비를 두둑하게 받았다.
동수는 사장실에 시원한 에어컨을 틀어 놓고 소파에 앉아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보통 사무실에는 선풍기를 많이 트는 데 비해서 은하수 투자회사는 에어컨을 설치하여 가동하고 있었기에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에어컨은 전기세가 많이 나오기에 관리비 걱정을 하는데 은하수 투자회사는 아니었다.
사장인 동수의 지시로 이렇게 에어컨을 설치하고 시원하게 틀어놓으면서 일하는 거였다.
밖이 더우니 직원들이 어지간하면 밖으로 잘 나가지 않으려고 했다.
상사라고 해서 눈치를 주거나 하지도 않았으며 시원한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일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었다.
이게 소문이 나면서 다른 층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크게 부러워했다.
은하수 투자회사는 월급도 많고 대우도 좋았다.
테헤란로에 있는 빌딩들에 입주해 있는 각종 사무실에서 일하는 회사원들이 은하수 투자회사에 들어오고 싶어 했다.
“흐음, 내년 1월에는 걸프전이 있지만 올해에는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없군. 9월에 집중호우로 인한 한강 대홍수만 조심하면 되겠어.”
지금은 7월 하순이라서 8월 초로 예정되어 있는 동수의 여름휴가를 다녀오고서도 한참 시일이 남아 있었다.
미래를 전혀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닥쳐올 위기이지만 동수는 전생의 경험을 통하여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이 다르다.
어떻게 하면 피해가 없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지 이미 생각해 두었다.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나름 대책을 마련해 놓아야 했다.
한강 대홍수는 큰 인명피해를 입힌 사건이다.
9월 9일부터 12일까지 이어지는 집중 호우로 한강이 범람하는 자연재해였다.
시간당 경기도 이천의 경우 59밀리였으며 중부 지방에는 1시간당 약 40밀리라는 엄청난 강수량을 기록한다.
행주대교 부근 북쪽 제방이 무너지고, 경기도 고양군 일대가 침수되어 막대한 피해를 입힌 사건이다.
입구정동 미래 아파트에 산다고 하더라도 지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 놓았다가는 자칫 침수될 수도 있었다.
테헤란로에 위치한 은하수 빌딩에도 어쩌면 침수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모르면 어쩔 수없이 당하겠지만 알고 있는데 굳이 무방비로 당할 생각은 없었다.
지시하여 나름 대책을 마련해놓을 거였다.
어쨌든 아직은 많은 시간이 남았기에 9월 초가 되면 지시를 해도 충분하다.
그리고 걸프전은 이라크가 쿠웨이트의 침탈이 계기가 되어 1991년 1월 17일부터 2월 28일까지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33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상대로 이라크와 쿠웨이트를 무대로 전개된 전쟁이다.
나스닥에 미국의 군수 회사들 주식을 매수해 놓으면 제법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똑똑!
노크소리가 나더니 사장실 문을 열고 수정이가 들어왔다.
고급 여성정장을 입었는데 얼굴 예쁘고 몸매가 좋아서 잘 어울렸다.
“재무이사, 어서 와요.”
“오빠, 한가해 보이네?”
“여긴 회사야. 사장님이라고 해요.”
“예, 죄송해요 사장님. 여름휴가는 어디로 가실 건가요?”
소파에 앉아 있던 동수가 벌떡 일어났다.
수정이를 쳐다보다가 전자동 커피머신이 설치되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수정이가 뒤따라와서 서자 동수가 머그잔을 놓고 말했다.
“재무이사, 뭐로 드릴까요?”
“저는 카푸치노로 주세요.”
꾸욱!
버튼을 누르자 머그잔에 카푸치노가 쏟아져 내렸다.
다 뽑은 카푸치노를 보고 머그잔을 집어 들어 수정이에게 내밀었다.
수정이가 머그잔을 들고 소파로 걸어갔다.
그제야 동수가 자신이 들고 있던 머그잔을 놓고 전자동 커피머신의 버튼을 눌러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을 뽑았다.
커피 향을 한번 맡고는 다가와 소파에 앉았다.
“아, 부드럽고 맛있어.”
전자동 커피머신에서 뽑은 카푸치노는 원두가 좋아서인지 부드럽고 향도 좋고 맛도 좋았다.
다방이나 커피숍이라는 곳에 가서 커피를 마셔 봐도 이런 맛과 향이 나진 않았다.
확실히 수준 차이가 났고 고급이었다.
“재무이사는 여름휴가를 어디로 가고 싶습니까?”
“저는 동해바다도 좋고 아니면 양평의 계곡도 좋아요.”
“그런 곳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곤란해요.”
“그럼 어디로 가실 건가요?”
“조금 특별한 곳이라 할 수 있는 제주도가 좋겠군요.”
“제주도? 거긴 주로 신혼여행을 가는 곳인데요?”
“후후후, 왜 꼭 제주도는 신혼여행만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아름다운 천혜의 자원이 넘치는 제주도인데 말입니다.”
수정이가 머그잔을 기울여서 카푸치노를 마셨다.
동수가 그런 수정이를 쳐다보았다.
“사장님,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름휴가로는 적합하지 않을 거 같은데요.”
“천만에요. 제주도를 둘러보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을 겁니다.”
“사장님도 제주도 한 번도 못 가보셔서 잘 모르시잖아요.”
“꼭 가보지 않더라도 관심만 있다면 얼마든지 알 수 있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제주도에는 구경거리도 많고 각종 특산물과 먹을거리도 풍부해서 좋아요. 그리고 아주 싼 부동산이기에 미래를 위해서 매입을 해두면 나중에 큰 시세 차익을 거둘 수도 있고 말입니다.”
“정말 제주도가 그렇게 가치가 있을까요?”
“물론이지요. 잘 모르면 나를 따라 가서 제주도를 구경해보고 하면 이해가 될 겁니다. 단순히 여름휴가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땅도 매입해 둬야 해서 꼭 이번에 가야 합니다.”
“아, 그럼 단순히 제주도에 여름휴가만 다녀오시려는 것이 아니군요.”
“물론이지요. 모든 것들이 사업과 연관이 있도록 생각을 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그건 그렇고 여름휴가는 며칠을 가실 건가요?”
“그래도 여름휴가를 제대로 즐기고 하려면 한 달 정도가 좋겠군요.”
“예? 한 달이나요?”
“그럼요. 일개 회사원이 아니라 사주이면서 동시에 사장인데 제대로 여름휴가를 보내려면 한 달 정도는 다녀와야지요.”
수정이는 멍한 표정으로 동수를 쳐다보았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포함하여 10일 동안 여름휴가를 다녀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훨씬 길다고 할 수 있는 한 달 동안 다녀오겠다니 놀라웠다.
일반 직원들도 다른 회사원들보다는 여름휴가가 일주일로 길었다.
두둑한 여름 휴가비는 덤이었다.
간부들은 10일이었기에 수이도 당연히 10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달이라니 놀라웠다.
테헤란로 주변의 각종 사무실의 회사원들은 은하수 투자회사의 여름휴가를 아주 부러워했다.
제주공항.
선글라스를 낀 동수가 여유롭게 여행용 하드 케이스 가방을 끌면서 걸어 나왔다.
좌우에는 어머니와 수정이가 밀짚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바캉스 차림이었다.
역시나 은색의 여행용 하드 케이스 가방을 끌었다.
건장한 경호원들이 포위하듯이 배치되었는데 4명의 백인 경호원들도 있었다.
경호원들도 여행용 하드 케이스 가방을 하나씩 끌면서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경호에 신경을 썼다.
관광객들이 호기심에 쳐다보거나 힐끔거렸지만 가까이 접근하지는 않았다.
노란색의 25인승 미니버스가 대기해 있었으며 여성 가이드도 서 있었다.
“사장님, 어서 오세요.”
“아름다운 제주도라고 들었으니 가이드를 잘 해주세요.”
“예, 좋은 곳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25인승 미니버스의 짐칸에 여행용 하드 케이스 가방을 넣고 탑승했다.
앞과 뒤쪽의 좌석에는 경호원들이 나누어 앉았다.
가운데 부분에는 동수와 어머니, 수정이가 앉았다.
경호 실장 한수가 조수석에 앉으면서 운전기사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기사님, 잘 아시겠지만 패키지여행처럼 바쁜 것이 아니기에 결코 과속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한 번 더 말씀을 드리지만 절대 시속 80 km/h 이상 달리시면 안 됩니다. 되도록 시속 60 km/h 정도로 안전하게 달려 주십시오.”
“으음, 알겠습니다.”
“나중에 사장님께서 팁을 두둑하게 주실 것이니 무조건 안전운전만 해주시면 됩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운전기사도 회사에서 사전에 안전운전에 신경을 쓰라고 이야기를 들었었다.
여성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그럼 먼저 용두암으로 가보겠습니다. 출발해 주세요.”
운전기사가 머리를 끄떡이더니 부드럽게 출발했다.
여성 가이드가 용두암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용두암은 제주시내 북쪽 바닷가에 있습니다. 높이는 10미터 가량의 바위로 오랜 세월에 걸쳐 파도와 바람에 씻겨 빚어진 모양이 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용두암이라고 불립니다. 전설에 의하면 용 한 마리가 한라산 신령의 옥구슬을 훔쳐 달아나자 화가 난 한라산 신령이 활을 쏘아 용을 바닷가에 떨어뜨려 몸은 바닷물에 잠기게 하고 머리는 하늘로 향하게 하여 그대로 굳게 했다고 전해집니다. 또 다른 전설은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소원이던 한 마리의 백마가 장수의 손에 잡힌 후, 그 자리에서 바위로 굳어졌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시간이 맞으면 용두암 주변에서 해녀가 작업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용두암을 잠시 구경하신 후에는 애월읍으로 이동하여 점심식사를 하겠습니다.”
모두들 여성 가이드의 설명에 머리를 끄떡였다.
보통 제주도는 2일에 걸쳐서 여행을 한다.
하지만 동수와 일행들은 5일에 걸쳐서 여행을 하도록 코스가 잡혀 있었기에 서둘 필요도 없고 느긋했다.
5일간의 제주도 여행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제주도를 둘러보면서 땅을 매입할 예정이다.
사실 동수는 미래에 제주도의 어느 지역이 크게 발전하는지 다 알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지금은 제대로 개발되지 않았고 땅도 아주 싸다.
얼마나 제주도 땅을 매입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후후후, 내가 다 독점해서 매입해 버리겠어.’
제주공항에서 그렇게 멀지 않았기에 안전속도로 달려도 금방 도착했다.
미니버스에는 운전기사와 함께 2명의 경호원이 남았다.
혹시라도 미니버스에 누군가 위험한 짓을 하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경호 실장 한수는 동수의 신변안전에 많은 신경을 쓰기에 조금이라도 위험을 자초하고 싶지는 않아서 이렇게 2명의 경호원을 배치했다.
4명의 건장한 백인 경호원들은 당연히 동수와 함께 한다.
그리고 경호 실장인 한수 자신과 한기, 윤기도 당연하고 2명의 경호원들을 더 데리고 온 거였다.
그렇기에 경호 인력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우와, 바다다.”
“아, 시원하다.”
바닷가에 있는 용두암은 생각보다는 별 거 없었다.
단순히 바닷가에 있는 바위가 용의 머리를 닮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족과 함께 하는 제주도 여행이기에 자세를 잡고 사진을 많이 찍었다.
여행에서 남는 것은 사진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진을 많이 찍는 것이 최고였다.
스미스가 사진을 잘 찍는다.
경호 실장인 한수도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찰칵찰칵!
“좋습니다.”
단체 사진도 찍고 독사진도 찍었다.
어머니와 수정이가 포즈를 취하였기에 멋있었다.
동수가 손목에 차고 있는 스위스 수제 시계를 보았더니 정오가 약간 지난 시간이었다.
애월읍으로 이동하여 점심식사를 하면 될 거 같았다.
모두들 대기해 있는 노란색의 미니버스로 돌아왔다.
2명의 경호원들이 운전기사와 함께 지키고 있었기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니버스가 다시 출발하여 한적한 길을 달렸다.
안전속도를 준수하면서 달렸기에 뒤따라오는 차가 있으면 양보를 해주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애월읍에 위치한 영호 식당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영호 식당은 제주 은갈치구이와 조림, 오분자기 전복 뚝배기 된장찌개가 유명하다.
오분자기라는 것은 떡조개의 제주도 방언이다.
‘으음, 역시 맛있군.’
“엄마, 이거 정말 맛있다.”
“그렇구나.”
“어머니, 맛있는 식당이니 많이 드세요.”
“그래. 아들도 많이 먹어.”
사람이 많은 것도 있었지만 푸짐하게 주문했기에 한상 가득이었다.
동수와 어머니, 수정이, 경호원들까지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전생에 제주도를 여행할 때 영호 식당이라는 곳이 유명했기에 찾아와서 먹어보았었다.
그때에도 아주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여행사에 알아보았더니 영호 식당이라는 곳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여행 코스를 결정할 때 영호 식당을 넣은 거였다.
어떻게 보면 동수에게는 추억이 있는 영호 식당이다.
동수가 원룸에서 죽기 전에도 영호 식당이 장사를 하고 있었으니 역사와 전통이 있는 그런 식당이라 할 수 있었다.
동수가 죽기 며칠 전에 음식 프로그램을 시청하다가 제주도의 영호 식당이 나왔었다.
제주도에 가서 먹어본 적이 있었기에 아는 맛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먹고 싶었지만 거동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좋지 않았었다.
그런 전생의 생각이 떠올랐기에 동수는 아예 작정을 하고 밥을 3공기나 비웠을 정도로 맛있게 배불리 잘 먹었다.
너무 맛있게 잘 먹다보니 과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속이 더부룩하지도 않고 채하지도 않았다.
구수한 숭늉을 마시면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상에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