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차원 쐐기(1)
“끄르륵···.”
피거품을 뿜어내며.
블러드 서커는 현우를 노려보았다.
당장에라도 저 건방진 것을 작은 육편으로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싶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으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내상이 심각하다.’
혈령수라의 의식에 빙의했을 뿐인데.
그 영혼의 연결을 타고 일격의 여파가 그대로 전해졌다. 간단히 말하면 방어조차 하지 못하고 녀석이 전력으로 발한 일격을 제대로 얻어맞은 셈.
본체의 상황은 자세히 살펴보아야 알 수 있겠지만.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하면 지체할 수록 회복이 어려워질 부상이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잠룡.”
으득, 그녀는 어금니를 씹었다.
뜻한 바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그녀가 섬기는 주인, 다니엘 블랙의 계산을 매번 벗어나는, 주현우의 변수다운 능력을 일부 확인한 셈이었다.
‘너무 우습게 봤나.’
그러나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이 또한 이득이라고 치부하긴 어려웠다.
이건 그녀로서도 쉬이 회복할 수 없는 심각한 부상에 해당했으니까. 적어도 며칠은 본신의 내상을 다스리는 데에 집중해야 회복이 가능하리라.
“방금 그건···.”
퉤, 하고 그녀는 입안에 고인 핏덩이를 내뱉었다. 내장조각이라 생각되는 것들이 섞여 튀어나왔다.
이 혈령수라는 망가졌다.
고작 일격만으로 그녀가 직접 통제하는 혈령수라를 망가뜨린 것은 물론, 본신까지 타격을 주었다니.
그녀는 저도 모르게 일어나는 전율을 숨기며 말을 이었다.
“···분명히 본좌의 허를 찌른 일격이긴 했느니라. 하나, 고작 그것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이미 벌어진 일을 수습하긴 불가능할 거란 말이지.”
“방금 말했던 것 같은데.”
끝까지 이죽거리는 그녀를 향해.
현우는 성큼, 가까이 다가가 손을 뻗었다. 우악스런 손길이 그녀의 의식이 머물고 있는 혈령수라의 목을 잡아들었다.
“방법이 없다면 만들면 그만이라고.”
“말이야 당연히 쉽겠···.”
“말에는 의지가 담겨 있고. 힘은 그 의지를 현실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천무그룹과 내겐 그럴만한 힘이 있지.”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현우는 서서히 마나를 움직였다. 막대한 마나가 그의 의지에 따라 이동하며 블러드 서커의 기감을 압박했다.
그건 다분히 과시적인 행동이었고.
그 과시는 그녀에게 역시, 현우가 의도한 대로 확실하게 먹혀들었다.
“···!”
심상치 않은 힘.
그제야 블러드 서커는 지금 자신의 상황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서 더 이상 시간을 끈다면, 정말로 목숨까지 위험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잠깐, 이건···.’
그 짧은 순간 그녀는 현우의 마나 속에서. 언뜻 익숙하게 느껴지는 기운의 잔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네놈, 설마···!?”
경악하는 눈빛.
그러나 현우로서는 그녀가 쓸 만한 정보를 흘리지 않을 거란 사실을 파악한 이상.
쓸 데 없이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며 그녀와 마주하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현우는 바로 혈령수라의 목을 쥐고 있던 손아귀에 힘을 더했다. 억척스런 마나가 흡사 압착기처럼 사방에서 머리통을 죄이기 시작했다.
“끄극···!”
그녀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결국, 블러드 서커는 제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혈령수라와 의식의 연결을 끊어버리고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퍼억─!
그와 동시에 혈령수라의 머리가 목 위를 기점으로 폭발했다. 폭죽의 불꽃처럼 핏물이 사방으로 비산하여 응접실을 더럽혔다.
“갈 때도 더럽게 가네.”
그렇게···.
블러드 서커는 도망갔다. 남은 것은 반쯤 핏물이 되어 바닥을 더럽히는 혈령수라의 잔해 뿐.
“쯧···.”
현우는 손에 묻은 핏물을 털며 언짢은 기분으로 혀를 찼다.
그래도 녀석이 도주하기 직전.
본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확실한 타격을 주었으니.
적어도 오늘부터 며칠 정도는, 현우로 인한 내상을 회복하느라 움직이지 못하리라. 그게 현우와 천무그룹에겐 절호의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그 사이에 사태를 해결해야한다.’
서울은 이미 습격 받았다.
아직 두 눈으로 직접 현장을 확인하진 못했으나. 아까 느꼈던 진동의 근원부엔 분명, 빈말로도 좋다고는 평가하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져 있으리라.
그러니 이건···.
“···사이좋게 한 대씩 주고받은 꼴이군.”
동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고작 그 정도로는 만족스러운 교환이 아니라. 현우의 입장에선 뒷맛이 조금 씁쓸하긴 했다.
이윽고 현우는 고개를 돌려 응접실 창밖을 바라봤다.
여기서 감성이나 자기반성에 젖어 있는 것보다는 한 시라도 빨리 움직이는 편이 이득이다.
“그럼, 가볼까.”
더 이상 늦어지기 전에.
현우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
별채에서 나온 직후.
현우의 눈에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저녁노을보다 훨씬 짙고 끔찍한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는 하늘이었다.
새로운 페이즈.
아무래도 그건 게이트 브레이크 현상처럼. 환경 자체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거대한 이벤트인 모양이었다.
처음 타나토스에게 그 단서를 전해 들었을 때부터.
과연 새로운 페이즈에선 어떤 결과가 펼쳐질 것인지. 현우가 품고 있던 궁금증이 확실하게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여기서부턴 나도 알 수 없다.’
현우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로 돌아와 두 번째 기회를 손에 넣은 이후. 정말 오랜만에 긴장이라는 감각을 느껴보는 것 같았다.
“저건···.”
그리고.
주위를 살피던 현우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붉게 물든 하늘 이상으로 기이한 하나의 구조물이었다.
저걸 구조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면에서 하늘 끝까지 이어진 하나의 거대한 쇠사슬. 이는 분명, 평범하지 않은 이상 현상의 증거물 중에 하나였다.
[저건 차원 쐐기입니다.]대답은 타나토스에게서 나왔다.
“차원 쐐기라···.”
처음 들어보는 기믹이다.
애초에 저건 게이트 브레이크로 발생하는 현상이 아닐 테니. 현우가 가진 미래의 기억을 통해서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어?”
일단 현우는 걸으면서 물었다.
우선 주건우와 류한나, 두 사람과 합류할 생각이었으니. 그 사이에 시간을 아껴서 설명을 들어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새로운 페이즈의 시작과 함께. 전 세계엔 도합 일곱 개의 차원 쐐기가 등장합니다. 저건 그 중에 하나이며. 지속적으로 마족의 군단을 소환하는 매개입니다.]“게이트 같은 건가.”
[비슷하지만 다릅니다.]타나토스의 홀로그램이 좌우로 몸뚱이를 흔들었다.
[만일 차원 쐐기를 파괴하지 못하고 충전이 완료된다면. 주위 일대의 환경이 이계(異界)로 완전히 변이하게 되는 동시에 외신의 편린이 강림할 겁니다.]외신(外神).
현우는 저도 모르게 인피니티 코어가 위치한 심장 부근을 매만졌다. 그게 정확히 뭘 의미하는 지는 모르겠으나.
“간단하게 말하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는 소리군.”
그저 환경이 변하고 마족이 어슬렁거리는, 게이트 브레이크와는 비교조차 하지 못할 결과가 나올 거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어쨌든 이 현상을 끝내기 위해서는, 소환되는 마족의 군단을 뚫고. 저기 보이는 차원 쐐기라는 것을 파괴할 필요가 있겠네.”
[예.]솔직히 이건···.
그가 현우에게 있어선 과거. 그리고 이 세계에 있어선 본래의 미래에 일어났을 한 가지 사건을 연상케 했다.
서울 방어전.
전생의 현우가 실패했던 현장이자. 최후를 맞이했던 마지막 전장. 이는, 당시의 풍경과 매우 흡사한 상황이었다.
‘차원 쐐기라.’
다만, 현우가 기억하는 서울 방어전에선 저런 거대한 사슬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가 알고 있는 미래와는 무언가 달라진 걸까.
아니면 블랙 가문이···.
“형!”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사했구나!”
“도련님, 다행입니다.”
주건우와 류한나.
안 그래도 두 사람은 현우가 별채를 나서기 전부터. 그를 찾아 이쪽으로 황급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저거, 역시나 블랙 가문의 그 블러드 서커라는 녀석이 벌인 일이야?”
하늘을 가리키며 묻는 주건우.
자세히 설명할 시간도 아까운 상황이라. 현우는 일단 말로 설명하기 보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다행히 주건우도 더는 묻지 않았다.
여기서 담소를 나눌 이유도 없으니. 현우는 바로 아공간 포켓에서 몽환의 열쇠를 꺼내어 페일 라이더를 불러냈다.
“타자, 일단 움직이면서 이야기해.”
어디로 향하는지.
그건 누구도 구태여 물을 필요가 없었다.
지상에서 하늘 위로, 마치 SF 영화 속의 궤도 엘리베이터처럼 길게 이어져 있는 거대한 사슬···.
‘차원 쐐기’가 지면에 내리꽂힌 장소 외엔 향할 곳이 없다는 것을, 이들 둘 모두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조부님께선?”
“누구보다 먼저 현장으로 향하셨어. 이건 희망사항이긴 한데 우리가 도착할 때쯤이면 이미 상황이 종료되어 있을 지도 모르겠네.”
“···그럼 다행이겠지.”
주양태 회장.
그가 보유한 일신의 무력은, 동아시아를 넘어 현시점 세계 최강이라 칭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저쪽도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 사실을 모두가 안다는 점이 문제다.
더구나 블러드 서커가 주양태 회장이 현재 본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일을 이렇게 그대로 강행한 것을 보면, 분명히 사태는 주양태 회장만으로는 막지 못할 사이즈일 가능성이 높다.
“빨리 움직이자.”
예감이 그리 좋진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좋은 예감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법. 현우는 이번만큼은 예감보단 자신감을 믿고 나아가기로 했다.
***
서울 김포국제공항 인근.
차원 쐐기가 박혀 있는 인천, 계양구의 천마산과는 꽤나 떨어진 거리지만. 아쉽게도 이곳이 현재 차원 쐐기와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최전선 지역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수없이 밀려드는 마족 군단 덕분에, 벌써 협회에서 형성한 방어선이 부천 인근까지 밀려났기 때문이었다.
“주현우님!”
서민욱.
현 한국 헌터협회장인 그가 임시로 세워진 대책 본부에서 현우를 향해 뛰어나왔다. 표정을 보니 역시, 상황이 그리 좋지 않게 흘러가는 모양이었다.
“···협회장님.”
“이거, 결국 블랙 가문이 일을 낸 겁니까?”
이미 부산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그는, 굳이 현우가 상황을 설명할 필요도 없이 추론만으로 결론에 도달한 듯했다.
“그런 것 같군요.”
“쓰읍···.”
서민욱은 입맛이 쓴지 침을 삼켰다.
이윽고 그는 한층 어두워진 표정으로 주위 헌터들에게 눈짓을 보냈고. 그들은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었는지. 몇몇 그룹으로 나뉘어 일사분란하게 흩어졌다.
“상황은 어떻죠?”
“다행히 아직은 사태가 치명적이진 않은 것 같습니다. 아니, 사실 천무그룹에서 가장 먼저 나서준 덕분에 골든타임이 생겼다고 해야겠군요.”
수없이 밀려드는 마족 군단에도.
여직까지 전선이 부천 인근에서 유지될 수 있던 까닭은 하나.
주양태 회장을 비롯한 천무그룹 소속의 고위 헌터들이 누구보다 빠르게 전선 지원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우선 저희는 민간인 수습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대피가 끝나는 즉시 높은 등급의 헌터부터 차례로 방어선 전투에 합류시킬 예정입니다.”
“알겠습니다.”
주양태 회장.
그리고 주영미 이사는 이미 각자 천무그룹 헌터들을 이끌고 쏟아지는 마족 군단을 토벌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천무그룹은 소수정예.
적어도 이들이 있는 전선은 강하게 마족 군단을 밀어붙이고 있으나. 전선 전부를 커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여기서 내가 할 일은···.’
오직 하나 뿐이다.
이 사태를 끝내는 조커 카드가 되는 것.
현우는 회귀 직전···.
승리를 눈앞에 두고 한껏 방심한 다니엘 블랙이 지나가듯 꺼낸 한마디를 떠올렸다.
만약 주양태 회장이 자신을 빨리 발견했다면, 괴물을 둘이나 상대할 뻔했다는 이야기.
과거로 돌아오면서.
주양태 회장이 자신을 빨리 발견하진 못했으나. 현우는 오히려 스스로 그것보다 훨씬 나은 미래를 개척해왔다.
그리고 그 결과···.
‘많은 것이 바뀌었다.’
주양태 회장은 생존했고.
정체를 숨기고 있던 천무그룹 내부의 배신자. 주형석 이사가 이빨을 드러내기 훨씬 전에 축출해내는 것도 성공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러 가문과 확실한 협력 관계를 맺었음은 물론. 블랙 가문의 손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일곱 개의 세계급 유물은, 이미 네 개나 현우가 독점하고 있다.
그러니 이건, 회귀 이후.
그간 현우가 한 걸음씩 걸어온 전진의 궤적에 블랙 가문이 전력을 다해 맞부딪히는 승부가. 기존에 예상했던 것보다 약간 빨리 시작되었을 뿐이다.
“제게 계획이 있습니다.”
“계획이라면···.”
“저 사슬을 파괴할 겁니다.”
꿀꺽, 서민욱이 침을 삼켰다.
“하지만, 지금 천마산 인근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마족이 깔려 있는 상황입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고.”
두 번째의 서울 방어전.
이미 현우가 기억하고 있던 미래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것이 사실이지만. 전혀 대비가 안 되어 있던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는 지점이 한 가지 있으니.
그건 바로 현우의 존재 그 자체였다.
“현재 협회가 유지하고 있는 방어선 중에서. 저 사슬과 가장 가까운 최전선의 위치, 그것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이번엔 확실하게 후회 따위는 남기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 시점부터.
현우는 이 사태를 방어전이 아닌, 본격적인 반격전으로 반전시킬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