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반격 준비(3)
파팡! 팡!
주양태 회장이 장내에 들어서자마자.
그를 향해서 수십 개의 플래시가 마구 터져 나왔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본디 공식 석상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천무그룹의 지존. 심지어 불과 이틀 전에 서울 근교에서 불미스러운 이변까지 일어났으니.
그가 오늘 할 것이라고 선언한 ‘발표’는 물론이고. 주양태 회장 본인의 거취 자체에 엄청난 이목이 쏠려 있는 상황이었다.
“회장님.”
“그래, 동철이 네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다. 거슬리긴 하지만 설마 내가 저것들에게 손을 쓰겠나.”
구동철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그는 휘적휘적 걸어 단상 앞에 섰다. 그를 향해 쏟아지던 플래시가 잠시 멈추었다. 대신, 다들 숨을 죽이고 주양태 회장의 말을 기다리는 듯했다.
“쯧···.”
주양태 회장은 혀를 찼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는 분명했다.
최근 천마산 인근에 나타난 이변에 대한 설명은 물론이고. 몇몇 국가와의 연락까지 완전히 두절된 지금, 이 초유의 사태에 대해. 천무그룹이 계획하고 있는 대처방안 따위를 듣고 싶어 하는 거겠지.
이런 상황을 미리 예상하고 있던 그였으나. 막상 직접 맞닥뜨리게 되니 그리 기분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많이들 모였군.”
주양태 회장이 입을 여는 순간.
팡! 파팡!
그를 향해 다시 한 번 플래시 세례가 터져 나왔다. 그는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미간을 좁히며 가볍게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이제 사진은 그만두지.”
그의 의념에 따라 마나가 움직였고.
이는 곧 물리력으로 화하여. 주양태 회장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몇몇 기자들의 손에 들려 있던 카메라를 순식간에 허공으로 띄워 올렸다.
수 십 개의 카메라가 허공에 둥실 떠올라 있는 광경. 그건 제아무리 SSS등급에 이른 헌터라고 해도. 쉽게 만들어낼 수 없는 광경임이 분명했다.
“간단하고 빠르게 끝내겠다.”
그건···.
발표라기 보단 선언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기자들 전원.
지금 그들이 여태껏 경험했던 기자회견 따위가 아닌, 오로지 주양태 회장에 의해서 주도되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무그룹의 후계자 자리에 내 손자인 주현우를 세울 것이다. 승계는 녀석이 준비되는 대로 가까운 시일 내에 이루어질 예정이다.”
그게 전부였다.
주양태 회장으로서는 최근의 이변에 대해 일일이 저들에게 설명해줄 이유가 없었고. 앞으로 천무그룹이 계획하고 있는 행보에 대해서 또한, 일절 외부로 알릴 생각이 없었으니.
“이상.”
정말 짧은 발표 후.
처음부터 바로 그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장내가 한바탕 소란스러워졌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재주까지는 없는 주양태 회장이었으나.
저들 제각각의 반응을 보아하니.
이게 그들이 기대하던 소식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 그게 전부입니까?”
“그렇다만.”
뭘 바란 거냐.
그런 눈빛으로 주양태 회장은 질문을 던진 기자를 바라봤다. 그는 주양태 회장의 시선에 일순 움츠러드는 듯했으나. 꿀꺽, 마른침을 삼키곤 용기를 내어 입술을 뗐다.
“지금 국내외로 상황이 굉장히 좋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룹 승계라니. 혹시, 천무그룹 내부에 말 못할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마치 문제가 있길 바라는 듯한 질문이군.”
주양태 회장이 날선 답을 돌려주었다.
그가 살짝 불쾌감을 내비친 것만으로도. 주위의 공기가 열 배 이상은 무거워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건···.
결코, 착각 따위가 아니었다.
“···무례한 질문은 삼가도록.”
구동철이 한숨을 쉬며 나섰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기자는 그제야 잊고 있던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내부 문제는 없다.”
“그, 그럼 어째서···.”
“천무그룹의 시작 또한, 대전이라는 재앙 속에서 이루어졌으므로. 바로 지금이 내가 뒤로 물러날 적기라고 판단했을 뿐이다.”
이는 사실이었다.
천무그룹 역시, 1970년 말의 대전이라는 전 세계 급의 재앙을 기회로 삼아 일어나. 한국부터 동아시아 전체를 호령하는 최강의 혈맹 기업으로 성장했으니까.
“하지만···.”
쭈뼛거리며 기자는 다시 물었다.
“승계 후보엔 분명 주영미 이사도 있었을 텐데. 아직 그룹을 이끌어갈 경험이 부족한 3세에게 바로 승계라니. 이번 승계 관련해서 그룹 내부에서 불거질 만한 문제는 전혀 없는 겁니까?”
“없다.”
주양태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정말···.”
“그리고 없을 것이다.”
뭐라 질문을 이으려던 기자였으나.
주양태 회장이 단호한 어투로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이걸로 모든 이들이 확실하게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게 된 셈이었다.
만일 이번 승계와 관련하여 그룹 내부에서 불만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주양태 회장의 선에서 모두 정리될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그리고 주양태 회장은 돌아섰다.
예정대로 자신의 할 말을 모두 끝냈으므로. 이제 더는 이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
“저기, 지, 질문!”
번쩍 손을 드는 여성 기자.
그녀는 몸을 오들오들 떨면서도. 기자로서 직업의식을 최대한 발휘해.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어 말했다.
“···저도 질문 있습니다!”
“허.”
헛웃음을 흘린 주양태 회장.
그러나 기자의 기개를 가상하게 여겼던 걸까. 그는 다시 걸음을 돌려 돌아왔고. 어디 한 번 질문을 해보라는 표정으로 까딱, 고개를 기울였다.
“위기를 기회라고 보셨다면, 지금까지 몇 번이나 공식적으로 승계를 발표할 시기가 있었을 텐데···.”
“흠.”
왜 하필이면 지금이냐.
기자가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으나.
질문의 핵심에는 그런 뜻이 내재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양태 회장의 추측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혹시,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닌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하지만 주양태 회장은 방금처럼 기세로 그녀를 압박하진 않았다. 오히려 의외라는 표정으로 기자를 주시할 뿐이었다.
“그 말대로다.”
이윽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지금, 승계를 발표한 이유.
그건 본래 주양태 회장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나. 아직,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하나 있었다.
“후계에게 천무그룹을 물려준 후. 나는 천무그룹을 떠날 것이다.”
가히 충격적이라 할 만한 선언.
주양태 회장의 차분한 태도와는 반대로, 기자들 사이엔 한바탕 혼란스러운 기색이 감돌았다.
“이상이다.”
혼란의 씨앗을 던지고.
그렇게 주양태 회장은 미련 없이 등을 돌려 그 자리에서 빠져나갔다.
***
한편···.
천무그룹 본가의 연무장.
“···.”
주영미 이사.
그녀는 곤혹스러운 광경 앞에서 침음성을 흘리며 멈춰 섰다.
최근 발생했던 이변 이후.
천무그룹은 내부는 물론이었고 국내외 정세까지 소란스러워진 상황이기에. 자신의 아들에게 평소처럼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그녀는 간만에 마주한 주건우의 몰골을 보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건우야.”
주건우.
지난 몇 년 사이 비약적인 성취를 경험한 그였지만. 두 번에 걸쳐 무리하게 코어를 혹사한 반동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육체가 회복되었다곤 해도 며칠 정도는 요양을 해야 한다고 들었다. 분명 그게 수석 치유사가 내린 처방이었을 텐데···.”
지금 두 사람이 마주친 곳은 회복실이 아닌, 연무장이었으니. 이미 처방은 한참 전에 어겼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만일 김태훈 실장을 통해 주건우의 근황을 전해 듣지 못했다면, 이런 꼴을 하고 있을 거라곤 꿈에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었다.
“여기서 뭘 하는 거니.”
“단련이요.”
힘없이 대답하는 주건우.
주영미는 기운이 빠져 추욱 처진 아들의 모습을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기운이 없는 이유.
그건, 최근의 부상 때문은 아니었다.
회복실에서 각종 포션과 영약을 들이부은 것은 물론이고. 현재 본가에 머무르고 있는 성녀까지 손을 보태주기도 했으니.
오히려 육체의 건강만을 따지면 회복실 신세를 지기 전과 비교하여 나아졌으면 나아졌지. 더 나빠진 부분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건, 부상 보다는···.’
심리적인 문제 때문이겠지.
아니, 문제라고 해야 할지도 애매했다. 이 경우는 자신을 몰아붙일 정도로 강한 열정 탓에 스스로를 혹사하고 있는 걸 테니까.
김태훈 실장의 보고에 따르면, 주건우는 하루의 대부분을 단련실이나 연무장에서 보내고 있는 듯했다.
아마 이번 일로 또 한 번.
자신의 한계를 마주했던 경험이 녀석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주영미는 제 관자놀이를 꾸욱 눌렀다.
만일, 과거였다면 이런 주건우의 모습에 기뻐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녀석의 변화를 마냥 달갑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지금 너는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고 있어.”
“알고 있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주건우.
그러나 기운이 빠진 모습과 다르게. 녀석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맑고 뜨거운 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열정으로 빚어진 빛.
하지만 그 목표가 다른 무엇도 아닌, 주현우라는 것을 알고 있는 주영미였기에···.
어머니된 자로서 순수하게. 지금 주건우가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열정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신을 혹사한다고 해서. 마주한 벽을 빨리 넘을 수 있는 건 아니란다. 모든 성취엔 심신 양면의 깨우침이 반드시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법이야.”
“그것도 알고 있고요.”
“조급함은 오히려 독이 된단다.”
주건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눈동자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주영미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런 대답도 지금 뿐.
주건우는 계속해서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으로 성취를 손에 넣으려 시도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고 보니.”
주영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지금까진 투쟁심도 찾아볼 수 없는, 유약한 아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역시 천무그룹 본가의 혈통은 어디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에 대한 해결법 역시.
주영미가 알기로는 단 하나 뿐이었다.
“너와 대련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구나. 기왕 이렇게 연무장에서 만난 김에, 그간의 성취도 확인할 겸해서 나와 한 번 주먹을 맞대보는 것은 어떠니.”
“···네!”
주건우가 눈을 빛냈다.
방금까지 방전된 로봇마냥 추욱 늘어져 있던 사람이라곤 생각하기 어려운 생기가 녀석에게서 느껴졌다.
‘최대한 가볍게.’
이건, 주건우가 자신의 성취를 체감할 수 있도록 적당히 봐주면서도. 성급 사이의 격차를 제대로 파악하고, 본인의 길을 올바로 찾아가게 만들기 위한 대련이다.
6성과 8성의 차이.
그건 주영미가 눈을 감고 한손으로 대련을 펼친다 해도. 손쉽게 우위를 점할 수 있을 정도의 격차다.
어렵진 않을 것이다.
주영미는 그렇게 확신하며 소매의 단추를 풀어 걷어붙였다.
“마냥 봐주진 않을 거란다.”
“원하는 바에요.”
고개를 끄덕이는 주건우.
그러나 완전히 대등한 조건으로 대련을 시작할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불과 몇 초도 걸리지 않아 끝날 테니.
“삼 초식을 양보하마.”
주영미는 까닥, 가볍게 손짓했다.
이는 대련의 시작 신호나 다름없었으므로. 바로, 주건우는 기수식을 취하며 코어에서 마나를 끌어 올렸다.
“갈게요.”
정직한 선언.
주영미가 쓴웃음을 짓는 찰나. 주건우의 신형이 늘어지듯 가속했다. 순식간에 달려든 녀석이 주먹을 뻗어냈다.
오른쪽은 허초.
왼쪽에서 날아드는 주먹이 진짜다. 그녀의 수준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공격이긴 했지만, 주영미의 입가에 떠있던 쓴웃음이 빠르게 사라졌다.
‘이 아이···.’
주영미의 눈이 커졌다.
허초를 막고 나서는 보다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건, 그녀가 알고 있던 6성의 경지가 아니었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연격.
양보한 세 초식 내에 그녀를 이겨보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주건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매서운 공세를 이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주먹을 막아냈을 때.
주영미는 주먹을 맞댄 오른손이 찌르르 울리는 감각에 놀라고 말았다. 조금만 더 방심하고 있었다면 정말로 밀려났을 지도 모른다.
“···훌륭해.”
양보한 세 초식이 끝나고.
이미 주영미의 눈빛도 변해 있었다.
7성의 경지는 이미 뛰어넘었다고 보아도 무방했고. 현재 8성 중반에 이른 주영미, 그녀조차도 방심하지 못할 정도로 날카롭게 연마된 기세가 느껴졌다.
변하고 있다.
아니, 이미 많은 것들이 변했다.
‘정말로 많이 컸어.’
천무그룹은 물론이고 주건우까지···.
이 모든 것이 단 한 사람, 주현우라는 존재로 인해서 바뀌었다.
주영미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서렸다.
그간 겪었던 고난과 시련이 충분히 녀석을 담금질한 걸까. 이 정도라면, 주건우는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벽을 넘어설 것이다.
어쩌면 그녀 까지.
가까운 시일 내에 넘어설 정도로 성장할 지도 모른다. 단 세 초식을 경험했음에도 그녀는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부터는 제대로 가주마.”
그렇다면.
그녀의 역할은 주건우와 주현우, 두 사람의 등을 밀어주는 것.
기꺼운 마음으로 주영미는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디뎠다. 적당히 봐주며 끝내겠다는 생각은 벌써 사라진지 오래였다.
“최선을 다해 배우렴.”
“···네.”
이렇듯.
천무그룹은 그 내부로부터 단단한 기틀을 다시 한 번 다져가며.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깜빡, 점멸하고 있던 의식에 다시 빛이 돌아왔고. 현우는 가볍게 제 고개를 털며 정신을 되찾았다.
[이걸로 몇 번째지?]존재가 물었다.
“글쎄.”
주먹을 쥐며 짧게 대답했다.
지금까지 몇 번의 죽음을 경험했는지.
굳이 그 횟수를 매번 세면서 덤벼들 이유가 없으니. 대략 50회쯤을 넘었을 때부터는 그냥 기억에 남겨두지도 않았다.
[하긴, 일일이 죽은 횟수를 세라는 것도. 네게 있어선 잔인한 일이겠군. 사과하지, 내가 너무 무신경한 질문을 던졌어.]“죽인 놈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하하, 그럴지도.]작게 웃는 존재.
그리고 놈을 향해 현우도 비슷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몇 번째인지는 모르겠지만···.”
매번 어떻게 죽었는지는 전부 기억한다.
수도 없이 반복된 죽음의 경험은, 매번 현우의 시야를 더 넓고 깊게 터주었고. 이제 시야는 현우가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트였다.
현우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 심연 전체가.
지금은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일부였던 것처럼. 확연하고 생생한 감각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