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20
20화 장인(3)
몇 시간 후.
“도련님!”
벌컥─!
현우가 기거하는 방의 문을 연 류한나.
그러나 그녀의 눈앞에 대뜸 보인 광경은, 무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는 현우의 모습이었다.
“시, 실례했습니다.”
어느새 상당히 탄탄해진 근육.
한나의 눈에 몰라보게 달라진 현우의 모습이 뜻하지 않게 담겼다. 그녀는 헉, 하고 숨을 삼키며 물러나 다시 문을 닫았다.
‘매일 신체 단련을 꾸준히 하시더니.’
고작 몇 주가 지났을 뿐인데.
벌써 전신에 균형이 제대로 잡힌 것은 물론. 날렵하면서도 탄탄한 근육을 만든 것을 보니.
천무가의 신체단련실이 제공하는 효과를 봤다고 해도. 남들보다 몇 배는 빠른 성취를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됐습니다. 들어오시죠.”
“예.”
한나는 얼굴에 손 부채질을 몇 번 하곤.
마음을 가다듬으며 다시 현우의 방문을 열었다.
“그······.”
살짝 어색한 분위기.
한나는 짐짓 헛기침했다.
“신체 단련의 효과가 제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 같군요. 빠른 성취를 이루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렇게 티가 날 정도면. 하루도 안 거르고 열심히 한 보람이 있네요.”
빙긋 웃는 현우.
그러나 그의 표정은 곧 진지하게 변했다.
“한나 씨가 이런 적은 처음인데. 뭔가 심각한 문제라도 생긴 모양이네요. 일단 차분히 말씀해보시죠.”
“그게······.”
방금 목격한 광경이야 어쨌든. 지금 그런 것 따위를 신경 쓰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현우가 짐작한 대로 예상치 못한 심각한 문제가 생겼으니까.
“박광철 씨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현우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다 할 만한 반응이 없자. 한나는 두 눈을 끔뻑이며 현우를 바라봤다.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니라서요.”
“이미 알고 계셨단 말씀입니까?”
“어느 정도는요.”
“······.”
한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몰랐지만. 지금 현우의 차림새는 외출을 앞둔 사람 같았다. 이미 박광철 장인의 소식을 짐작하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외출 준비를 하셨던 겁니까?”
“네, 방금 고모님께 미리 부탁해놨던 정보도 들어왔겠다. 안 그래도 이야기하고 나가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딱 맞춰서 잘 오셨네요.”
“정보라니······.”
한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까지 박광철 장인을 포섭하고 싶었던 게 아니란 말인가. 갑작스럽게 실종 소식을 들었을 텐데. 현우는 예상외로 아주 침착했다.
“박광철 씨의 소재. 아직 모르고 있죠?”
“예, 아직입니다.”
“그럴 줄 알았죠.”
어깨를 으쓱한 현우.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샤오 가문 때문입니다.”
“예?”
“박광철 씨가 사라진 이유요.”
“그게 무슨······.”
한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뜬금없이 여기서 샤오 가문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실은 고모님께 미리 부탁했던 정보가 바로 그거였거든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계속 샤오 가문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크노스 경매 이후로 고모님께서 계속 녀석들을 추적해 주셨죠. 현재 국내에 들어와 있는 샤오 가문 소속 헌터들의 소재는 전부 파악됐어요.”
그리고 녀석들이 박광철을 데려갔단 것도.
이미 주영미 측에서 제보해주었다.
“잠깐······.”
한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럼 이미 샤오 가문에서 박광철 씨를 납치할 거란 사실을 알고 계셨다는 겁니까?”
“거기까진 아니고요.”
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녀석들이 박광철을 노릴 거라는 사실까지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건 회귀 전에도 한 번 일어났던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현우가 한발 빠르게 박광철을 포섭했음에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그를 납치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곳은 한국.
샤오 가문이 아닌 천무그룹의 본진이니까.
‘뭐, 내겐 오히려 좋다.’
대체 무슨 배짱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녀석들이 이렇게 나온 덕분에 이쪽엔 명분이 생겼다.
이제 막 준비 단계에 있는 샤오 가문의 한국 지부. 그걸 제대로 만들어지기도 전에 모조리 박살 내버릴 수 있는 명분.
“그럼 가볼까요.”
빌미도 생겼겠다.
녀석들이 밥상을 차리기도 전에.
일단은 상다리부터 부숴버려야겠지.
***
서울 외곽.
샤오 가문의 별장이자.
앞으로는 한국 지부의 중심이 될 저택.
그곳에서 샤오 윤은 은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직까진 모든 게 계획대로였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박광철은 확보했다.
협조적인 태도는 아니지만. 샤오 가문엔 강철 같은 의지도 쉽게 무너뜨리는 독이 한두 개가 아니다.
“천무그룹의 그 애송이가. 여기를 직접 제 발로 찾아오도록 만들어야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거다.”
아직 천무그룹 전체와 싸울 순 없다.
하지만 천무그룹 내에서 변변찮은 입지를 가진 3세라면 손 봐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만약 목숨을 잃는 정도라면 큰 문제가 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충분히 무마할 수 있다.
샤오 가문과 천무그룹의 오해에서 비롯된 불미스러운 마찰. 그 정도로 이야기하면 전면전이 벌어지는 일은 없으리라.
천무그룹 측에 좋은 경고도 되겠지.
‘아무리 천무그룹 놈들의 신공과 스킬이 대단하다고 해도. 우리 가문의 비전 독에 당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독의 종류는 다양하다.
샤오 가문이 중국 내의 수많은 가문과 길드를 모두 밟고 정점에 설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가문이 다루는 수많은 비전 독의 존재 덕분이었다.
수 천 가지의 독.
그중에 단 몇 가지만 통해도. 생사가 오가는 전투에선 가히 치명적이다. 그건 천무그룹 일가 역시도 마찬가지다.
“일단 섭혼향을 준비해 둬라.”
“예?”
“섭혼향을 준비하라고.”
섭혼향.
그건 단순한 독이 아니었다.
조금만 흡입해도 기혈의 흐름이 막히는 것은 물론. 오랜 기간 노출되면 높은 확률로 마나를 완전히 잃게 될 수도 있다.
일반인에겐 전혀 효과가 없지만.
헌터에겐 그만큼 치명적인 효과도 없다.
“또 한 번 같은 말이 내 입에서 나오게 되는 순간. 네 녀석 머리통이 얼마나 단단한지 확인해주마.”
“죄, 죄송합니다.”
고개를 푸욱 숙이는 헌터.
그러나 결국 그는 한 마디를 더 내뱉으며 샤오 윤의 심기를 거스르고 말았다.
“하지만 도련님. 천무가의 일원에게 섭혼향을 잘못 사용했다간. 천무그룹과 전면전을 치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정말로······.”
콰앙─!
재차 질문을 내뱉은 헌터의 머리통이 홱 하고 돌아갔다. 샤오 윤의 장이 턱을 정확하고 빠른 속도로 타격했기 때문이었다.
“어이.”
“예, 도련님!”
샤오 윤의 부름에 곁에 있던 헌터 하나가 긴장한 표정으로 부복했다.
“이제부턴 네가 여기 책임자다.”
“······예!”
중국의 수많은 헌터 중에서도. 총합 1만 명이 넘지 않는 S급에 도달한 헌터. 그런 실력자를 단 일격으로 정확하게 혼절시켰다.
그 자리에 있는 샤오 가문 소속의 헌터들은 새삼 실감했다. 성격이 개차반인 망나니라고 해서. 실력까지 망나니 수준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괜히 겁먹을 필요 없다. 고작 사생아 따위와 시비가 붙었다고 해서. 천무그룹 전체가 움직이진 않을 테니까.”
샤오 윤은 이미 주현우에 대해 상당히 많은 정보를 수집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가 천무그룹 내에서 입지가 약하다는 것도. 정보를 통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만약 운이 좋다면 이무기의 알을 되찾을 수도 있을 거다.’
박광철 장인이 목표긴 했지만.
이무기의 알보다는 훨씬 가치가 떨어진다.
이곳에 찾아온 주현우를 무력과 독으로 적당히 구슬리면. 둘 모두를 손에 넣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번 일만 잘 풀리면. 나를 한국 지부 따위로 보낸 아버님께. 깊은 인상을 남겨 드릴 수 있겠군.”
샤오 윤이 히죽 웃는 그때였다.
쿵─!
저택의 지면이 강하게 흔들렸다.
“도, 도련님!”
바깥에서 대기하던 헌터 하나가 허겁지겁 저택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방금 이변의 원인을 목격한 모양이었다.
“저기 바깥에!”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샤오 윤의 눈에 익숙한 인영이 하나 들어왔다.
“주현우······!”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샤오 윤은 그와 마주할 수 있었다.
***
“악연이군.”
비죽 웃음을 흘리는 샤오 윤.
그는 날카로운 살기를 숨기지 않고. 현우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고작 두 번 만난 사이에 악연은 무슨. 그쪽에서 먼저 내가 포섭한 장인을 납치했잖아. 크노스 경매에서도 설레발 쳤던 건 그쪽이었고.”
“혼자인가?”
“그럼 애인이라도 데려왔어야 했나.”
현우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샤오 윤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이런 상황에도 농담을 던질 여유가 있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뭐가?”
“네놈에 대한 정보는 이미 전부 확보했다. 혹시 모르나 해서 말해주는 건데. 네놈의 실력이 이 자리에서 사지 멀쩡하게 걸어나갈 수 있는 수준은 아니야.”
“이무기의 알을 손에 넣지 못했던 게. 어지간히도 분했던 모양이네. 그러니까 돈을 충분히 준비하지 그랬어.”
비아냥거리는 말투.
“그래.”
샤오 윤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녀석의 자신감도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조금만 있으면 주제를 파악하게 될 테니까.
“데뷔전에서 꽤 활약했다지. 아직 현실을 제대로 모르는 모양인데.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다. 콧대만 높은 천무가의 애송이 새끼야.”
샤오 윤은 자신이 있었다.
창천신공 2성의 경지는 헌터로 따지면 C급에 준한다.
습득한 스킬에 따라서 B급과 견줄 수도 있겠지만. 어느 쪽이든 샤오 윤엔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심지어 이쪽엔 서른 명에 가까운 S급 이상의 헌터들까지 있다. 쪽수부터 비교가 안 되는 전력이다.
“목숨까진 취하지 않겠다.”
샤오 윤의 동공이 세로로 찢어졌다.
그의 신체 주변에 검붉은 마나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샤오 가문의 직계 혈통만이 사용할 수 있는 독기를 품은 마나였다.
“대신 병신을 만들어주마.”
“병신이라.”
현우는 겨우 웃음을 참았다.
물론, 샤오 윤은 위협적인 상대다.
이번 생에서는 초면이지만. 회귀 전, 중국에 있는 샤오 가문 본가를 때려 부수던 당시. 현우는 녀석을 직접 상대해본 적이 있었다.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역시 독이다.’
샤오 가문의 모든 것은 독에서 시작해 독으로 끝나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 독을 경계할 필요가 전혀 없다.
세이렌의 순수한 눈물.
박광철이 녀석들에게 납치되기 전. 이미 오전에 세공이 끝난 그 아티팩트를 전달받은 후였으니까.
“네놈 혼자서 온 게 실수였다. 아무리 이곳이 한국이라도. 샤오 가문은 네깟 녀석이 생각하는 것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야.”
“그래?”
현우는 슬며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럼 보여줄게.”
혼자서도 충분하다는 것을.
코어가 회전한다.
아자토스의 모래시계 파편으로부터 비롯된. 무한한 마나가 현우의 기혈을 타고 전신으로 퍼졌다.
마나는 곧 불꽃으로 화했고.
현우의 두 팔을 기점으로 발화한 푸른 불꽃은, 불과 몇 초 만에 전신을 넘어 일렁일 정도로 거대하게 타올랐다.
“······!”
샤오 윤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그의 안면을 후끈하게 만들 정도의 열기. 그리고 저 거대한 불꽃의 크기가.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창천십팔무(蒼天十八武)
제4초식 낙화유수(落花流水)
창염이 푸른 꽃잎으로 화해 휘날린다.
“이게 내 대답이다.”
샤오 윤 역시도.
천무가에 전해지는 창천무의 열여덟 초식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과거 두 가문 간의 비무에서 직접 목격한 적도 있었다.
“뭐야, 저거.”
그러나 완전히 달랐다.
저건 절대 제4초식 낙화유수가 아니다.
적어도 그의 기억이 맞다면.
같은 스킬이 아닌 게 분명했다.
제4초식 낙화유수는 본래 창염으로 이루어진 꽃잎을 휘날리며. 전방위에서 하나의 상대를 압박하는 기술.
그 마저도 창염을 꽃잎처럼 전방위에 전개해야 하기에. 창천신공으로도 소비하는 마나를 제대로 통제하기 어려운 스킬이다.
“뭐, 뭐냐고······!”
샤오 윤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현우에게서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이건 그가 아는 낙화유수가 아니다.
현우의 무한한 마나.
그리고 뛰어난 응용력과 만난 결과.
창천무 제4초식 낙화유수는 이름 그대로. 하늘 위에 흩날리는 무수한 꽃잎의 비로 변모했다.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광경이겠지만. 샤오 윤 본인과 샤오 가문의 헌터들에겐 전혀 다르게 보였다.
현우의 손끝이 지면을 향했고.
바람에 휘날리듯 상공을 하늘하늘 떠돌던 꽃잎비가 우뚝 움직임을 멈췄다. 그 순간, 샤오 윤은 저도 모르게 하늘에서 시선을 떼고 현우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눈 마주치면 어쩔건데. 새끼야.”
“이······!”
샤오 윤이 뭐라 소리치려 했지만.
느긋하게 그 틈을 내줄 현우가 아니었다.
두두두두─!
청명하게 푸른 불꽃의 비가.
샤오 윤과 서른 명의 샤오 가문 헌터들은 물론이고. 샤오 가문의 한국 지부가 되어야 할 건물 전체를 향해. 거센 소낙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