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22
22화 변화의 바람(1)
“그래서······.”
주양태 회장이 현우를 노려봤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선 노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긴 탓에 기분이 좋지 않을 뿐이었다.
“샤오 가문의 별장을 초토화하고. 서른 명에 가까운 샤오 가문 소속 헌터들을 몰살. 거기에 가주의 둘째 아들인 샤오 윤의 골통을 부숴버렸다는 이야기렸다.”
“예.”
“이유를 말해 보거라.”
주양태 회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쪽에서 제가 포섭한 장인을 납치했습니다. 아무리 샤오 가문이라도. 그건 명백히 선을 넘은 행위라고 생각했죠.”
“장인?”
겨우 장인 하나 때문에 이런 일을 벌였나.
그런 표정으로 주양태 회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단순한 장인이 아니고. 박태민 명장의 아들입니다.”
“박태민 명장의 아들이라······.”
주양태 회장은 지긋이 눈을 감았다.
박태민 명장.
그 역시도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10년 전에 자취를 감춘 명장.
천무그룹 쪽으로 포섭하려 해봤지만. 고집이 너무 강한 탓에 실패했다. 그는 어떤 길드나 가문에도 소속되길 원하지 않았다.
여러 방법을 사용해봤지만.
결국 그의 경계심과 원망만 샀을 뿐이었다. 사라지기 전에 천무그룹의 손에 확보하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던 인재였다.
“실력은 확실한 게냐.”
아무리 피를 이었다곤 해도.
그의 재능과 실력까지 이어받았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실제로 주양태 회장 본인의 혈육들 또한, 본인보다 한참 못했으니까.
“박광철 장인이 세공해준 겁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현우는 대답 대신 세공이 완료된 ‘세이렌의 순수한 눈물’을 주양태 회장에게 내밀었다.
“흠.”
완벽한 수준의 세공.
주양태 회장은 장인은 아니지만. 수많은 희귀한 아티팩트를 수집하고 목격해왔다. 이 정도라면 박태민 명장에 견줄만한 세공 실력임은 확실했다.
“한데 별장과 소속 헌터들이야 그렇다 쳐도. 샤오 가문의 둘째 아들까지 죽일 필요가 있었느냐?”
“녀석을 살려두지 않는 편이. 천무그룹에 이득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이 내린 결론입니다.”
“천무그룹에 이득이라······.”
주양태 회장의 눈빛에 흥미가 서렸다.
“그 판단에 확실한 근거가 있었겠지?”
“예.”
솔직히 샤오 가문의 차남을 죽인 책임을 현우에게 묻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샤오 가문과 천무그룹은 어차피 동아시아의 패권을 다투는 사이다.
녀석은 굳이 한국에 기어들어 왔고.
그것도 모자라 감히 천무그룹과 엮이려 들었다. 그 결과 천무가의 혈통을 이은 현우에게 죽임을 당했으니.
이 정도면 자살이다.
적어도 주양태 회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 자세히 설명해봐라.”
“샤오 윤이 죽기 전에 몇 가지 쓸만한 정보를 토해내고 갔습니다. 그중에는 현재 샤오 가문이 한국에서 추진하는 사업에 대한 것도 있었죠.”
물론 샤오 윤에게 들은 건 아니다.
그러나 현우가 정확하게 기억하는 미래의 정보인 만큼. 샤오 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정확하고 가치가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샤오 가문이 추진하는 사업이라면. 설마 제약공장을 이야기하는 것이냐.”
“예.”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이대로 녀석들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천무그룹의 앞길에 큰 걸림돌이 될 겁니다.”
“고작 제약공장 따위로 말이냐?”
“제약공장 자체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그곳에서 녀석들이 무엇을 생산하려 드는지가 문제겠죠.”
“천무그룹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한국에서. 주제도 모르고 제 가문의 비전 독약이라도 생산할 계획인가.”
“아닙니다.”
차라리 독약이면 낫다.
샤오 가문이 준비하고 있는 계획은 그보다 한 단계 더 음험했다.
“섬신단이라는 영약을 생산할 겁니다.”
“영약?”
“저렴하지만 효능은 굉장히 뛰어난 영약인 모양이더군요. 효능만 놓고 보면 일전 샤오 윤이 바쳤던 황옥고와 얼추 비슷한 수준인 것 같았습니다.”
“황옥고라면······.”
마나를 보강하는 영약이다.
주양태 회장의 인상이 구겨졌다.
“샤오가문 녀석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마나를 보강하는 효능을 지닌 진귀한 영약을 한국에서 생산하려 들지 않을 텐데.”
“샤오 가문을 위한 영약이 아닙니다.”
섬신단의 효능은 분명 뛰어나다.
마나를 보강하는 영약의 희귀성에도 불구하고. 가격 역시 D급 헌터들도 빠듯하게 모아서 구매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금액이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녀석들을 위한 게 아니면 설마 시중에 판매할 생각인가. 그렇다곤 해도 굳이 이쪽에서 공장을 운영할 이유는 없을 텐데.”
“섬신단에 심각한 부작용이 있더군요.”
녀석들이 남 좋은 일을 할 리가 없다.
“섭취한 즉시 마나가 보강되는 효과를 보겠지만. 차츰 섬신단을 지속적으로 섭취하지 않게 되면. 효능이 오히려 반대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건······.”
주양태 회장이 인상을 썼다.
대강 들어도 심각한 문제였다.
“섬신단이 국내에 퍼진다면. 불과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샤오 가문의 영약에 의존하는 헌터들이 대거 발생할 겁니다.”
그게 불러올 결과는 간단했다.
수많은 헌터들의 목줄이 샤오 가문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는 소리였다.
‘실제로 이것 때문에 상당히 고생했다.’
세 가문이 인류를 배신하고.
샤오 가문에서 본색을 드러냈을 때.
녀석들은 은밀하게 손에 쥐고 있던 목줄을 당겼고. 수많은 헌터들이 본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녀석들의 지시를 따라야만 했다.
“간과할 수 없겠군.”
주양태 회장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국내 전반적으로 퍼진다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폭주하게 된다. 아무리 하급 헌터들이라곤 해도 그들은 사회의 일원이다.
처음부터 SSS급으로 시작하는 헌터는 없다. 결국, 어떤 헌터든 초보 시절을 거쳐 베테랑으로 성장하는 법.
샤오 가문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한국의 헌터 사회가 아래에서부터. 녀석들의 손아귀로 들어가는 대참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증거는 확보해 두었느냐?”
“아쉽지만 거기까진 못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애초에 샤오 가문은 그 정도로 미련하지 않다. 한국 지부로 사용할 예정이었던 녀석들의 별장엔 어떤 자료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남아 있다고 해도.
그쪽에서 오리발을 내밀면 그뿐이다.
‘마음 같아선 그냥 부숴버리고 싶지만.’
확실한 명분이 필요하다.
이게 개인의 생사를 건 결투라면 모르겠으나. 가문간의 전면전으로 번지게 되면, 반드시 타 가문에서 개입하게 된다.
천무그룹은 동아시아 최강.
그러나 샤오 가문 또한 여러 가문과 길드와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만약 천무그룹이 명분 없는 싸움을 벌이면 고립될 뿐이다.
“이거 골치 아파졌군.”
“조부님.”
현우는 조용히 주양태 회장을 불렀다.
“뭘, 그렇게 고민하십니까?”
“······그럼 뾰족한 수라도 있느냐.”
“예.”
고개를 끄덕이는 현우.
“결국 문제의 근원은 샤오 가문. 그렇다면 샤오 가문을 박살 내면 전부 해결되는 일 아닙니까.”
“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게 가문 사이의 전면전으로 발전하게 된다면. 분명 개입하려 드는 녀석들이 있을 테니.”
“조부님 답지 않으십니다.”
“뭐라?”
주양태 회장이 현우와 눈을 마주쳤다.
그의 눈빛에 서서히 노기가 서리고 있었다.
“그럼 나다운 방식은 뭐라 생각하느냐.”
“녀석들이 공장을 세울 때까지 기다리고. 계획이 본격적으로 실행되기 직전. 무력으로 모조리 무너뜨리는 겁니다.”
“하!”
콧방귀를 뀌긴 했지만.
그의 노기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렇게 된다면 전면전이다.”
“언젠가 샤오 가문은 무너뜨려야 합니다. 녀석들은 이번 일로 이미 천무그룹에 이빨을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한 번 이를 드러낸 개는 언젠가 문다.
“어차피 증거는 녀석들의 제약공장을 뒤집으면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일이 벌어진 후엔 어떤 가문이 샤오 편으로 돌아서는지.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겠죠.”
“호오.”
“그 녀석들 또한 천무그룹의 적이 될 겁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간 반드시 말입니다.”
배신자 세 가문.
녀석들은 분명 이미 서로 작당을 끝내놓았을 것이다. 다니엘 블랙의 철저함은 누구보다 현우가 잘 알고 있었다.
“실패한다면 사죄로 끝날 일이 아니다. 아직 확실한 증거도 확보하지 못했는데. 이번 일에 제 목을 내놓을 녀석은 없겠지.”
“압니다.”
이 문제를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건.
천무그룹 전체에서 현우가 유일했다.
오직 그만이 미래를 알고 있으니.
이제부터 샤오 가문이 어떤 수를 취할지. 언제나 한 걸음 앞서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을 테니까.
“제가 시작한 문제이니. 제 손으로 직접 마무리 짓겠습니다. 조부님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말이죠.”
“······네 녀석의 뜻이 그렇단 말이지.”
주양태 회장은 제 턱을 쓰다듬었다.
그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윽고 천천히 그의 고개가 현우를 향해 끄덕여졌다.
“좋다. 네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면. 막을 이유도 없겠지. 그리하도록 하거라.”
샤오 가문과의 마찰.
그건 방금 현우가 이야기한 대로. 그로부터 비롯된 문제였다. 시작한 본인이 매듭을 짓겠다면 말릴 이유는 없었다.
‘샤오 가문의 차남이 목숨을 잃은 건. 사실 작은 문제는 아니겠지만. 현우 녀석의 말이 맞다면 큰 문제로 만들려 들진 않을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게 현우의 말대로라면.
지금부터 흐름은 천무그룹 쪽에 있다.
그걸 확인하는 것은.
이번 일의 수습을 위해. 샤오 가문과 이야기를 나눈 후라도 늦지 않다.
“그리고 안 그래도 조만간 따로 이야기하려 했는데. 데뷔전도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이제 네 공략팀을 만들 거라.”
개인 공략팀.
그것 역시 현우가 기다리던 이야기였다.
“팀원은······.”
“내가 밥까지 떠 맥여주랴?”
주양태 회장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순식간에 그의 눈빛이 매섭게 변모했다.
“그럼, 제가 원하는 대로 하겠습니다.”
“네 녀석이 알아서 하거라.”
손을 휘휘 젓는 주양태 회장.
현우는 이게 축객령이라는 것을 알았다.
“참.”
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주양태 회장이 그를 잠시 불러세웠다.
“일전에 그런 이야기를 했지.”
“무슨 이야기 말씀이십니까?”
“네 가치를 증명한다면. 그 가치에 합당한 보상을 쥐여주겠다고. 내 분명 이야기했을 것이다.”
확실히 그런 이야기를 했다.
데뷔전 때도 그랬고. 벌써 몇 번이나 주양태 회장에게 원하는 것을 받아내지 않았던가.
“실력 있는 장인을 영입했으니. 그 또한 천무그룹에 대한 공헌이라고 할 수 있을 터. 이번에도 약조했던 대로. 네게 합당한 보상을 줄 생각이다.”
“보상······.”
현우의 눈이 반짝였다.
여기까진 생각지도 않았는데.
확실히 회귀 이후 재물복이 따라붙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현우의 입꼬리가 저절로 씰룩였다.
“비고의 제2구역을 개방해주겠다. 앞으로 네가 공략팀을 운용하는 데에 필요한 물건을 자유롭게 가져가거라.”
비고의 제2구역.
듣던 중 반가운 이야기였다.
역시 주양태 회장이라고 할까.
언제나 현우가 보여준 것 이상으로 후한 보상을 내려주고 있었다.
‘간만에 쇼핑 좀 해볼까.’
당장 앞으로 다가온 목표는 하나.
앞으로 3주 후에 갑작스럽게 열릴 ‘독룡의 둥지’ 게이트. 그곳에서 이미 손에 넣은 이무기의 알을 부화시키는 것이다.
남은 3주 동안.
아주 바빠질 것 같았다.
***
“그러니까.”
주영미는 무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녀의 표정엔 별다른 감정이 서려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주건우는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네 공략팀을 만드는 게 아니라. 현우의 공략팀에 들어가고 싶다. 결국, 네 이야기는 그런 뜻이구나.”
“네.”
주건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솔직히 어머니가 실망할 만한 말이었다.
천무그룹의 모든 혈족은 데뷔전 이후 자신의 공략팀을 만든다. 이걸 전통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한 명의 예외도 없었다.
“흐음······.”
주영미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윽고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일단 이유를 말해보려무나.”
“네?”
“이유를 말해보라고 했단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침착한 반응.
주건우는 순간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눈을 깜빡였다. 어머니가 이렇게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화를 내거나 실망하실 거라 생각했는데.’
주건우는 꿀꺽 침을 삼켰다.
“데뷔전 이후로 제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걸 알았어요. 아직 저는 남들을 이끌기보단 배워야 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해요.”
“천무가의 일원답지 않은 대답이구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주영미는 분노한 기색을 보이진 않았지만. 주건우를 바라보는 시선이 굉장히 복잡하게 변했다.
“주, 준비 없이 망신당하고 싶진 않아요. 지금 이대로라면 어머니가 붙여주실 팀원들도 저를 무시할 테고요.”
그건 사실이었다.
천무그룹 내엔 이미 대련과 데뷔전에서 벌어졌던 일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벌써부터 현우의 팀원이 되고 싶어하는 이들이 줄을 서 있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하지만 주건우에겐······.
“바꾸고 싶어요.”
“무엇을 말이니.”
“주변의 시선과 이런 제 자신까지도요. 현우 형의 옆이라면. 분명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에요.”
“······.”
주영미는 한참 말이 없었다.
“좋다.”
이윽고 그녀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맨입으로 너를 맡길 수는 없지. 내게도 체면이라는 게 있고. 천무그룹 내에서 보는 이들의 눈도 있으니.”
그녀에게 있어 주건우는 전부다.
그만큼 성의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
“김 실장님.”
“예, 이사님.”
“흑룡포를 가져오세요.”
“흐, 흑룡포 말씀이십니까?”
김태훈 실장이 깜짝 놀랐다.
뛰어난 장인의 손을 거친다면.
최고의 방어 무구로 거듭날 수 있는 전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소재. 10년 전, 주영미가 직접 사냥했던 SS급의 마족. 흑룡 파프니르가 남긴 아이템 중 하나였다.
“이번 일로 현우가 실력 좋은 장인을 손에 넣었다고 하니. 이쪽에선 흑룡포 정도는 보내줘야. 내 성의와 진심이 느껴지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