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23
23화 변화의 바람(2)
“이것 참······.”
주건우가 건넨 물건.
그게 뭔지 정확히 알아본 현우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흑룡포.
10년 전, 게이트를 찢고 나타난 SS급 마족 흑룡 파프니르가 드롭한 소재로. 회귀 전엔 현우가 어떻게 해도 손에 넣을 수 없었던 아이템 중에 하나였다.
‘원래대로라면 최고의 방어구로 가공돼서 주건우가 사용하게 된다.’
설령 파괴되어도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면 스스로 복원되고. 모든 종류의 공격에 대해 압도적인 방호력을 제공하는 최고의 소재.
덕분에 다른 건 몰라도.
흑룡포로 만든 방어구 하나 만큼은 주건우를 부러워했던 기억이 선명했다.
“어머니가 형한테 주는 선물이래. 뛰어난 장인을 포섭한 걸 축하한다고 하시더라. 꽤 희소성이 있는 소재인 것 같던데······.”
“꽤가 아니라 엄청난 물건이지.”
현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주영미가 이 정도의 소재를 선물이랍시고 보내올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덕분에 그녀에 대한 평가를 대폭 수정해야 할 것 같았다.
“박광철 씨라면 이 물건의 진가를 알아보시겠죠.”
“이, 이런 귀한 물건을!”
박광철의 눈이 반짝 빛났다.
마치 원하던 장난감을 손에 넣은 아이처럼. 그는 천진한 웃음을 지으며 흑룡포를 들고 요리조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캬!”
이윽고 그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역시 SS급 마족이 드롭한 소재답군! 척 보기에 하늘하늘한 천 같아도 불에 안 타는 것은 물론이고. 가공되지 않은 소재 상태에서도 물리나 마법 저항력이 장난 아닌 수준이요.”
“장비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하! 그거야 두말하면 잔소리지!”
박광철은 자신 있게 말했다.
“우리 도련님께서 원하시는 형태만 말씀하시면. 내가 전력을 기울여서 만들어드리겠수다. 어떤 종류의 방어구든 이야기만 하쇼!”
“당장 떠오르는 건 없네요.”
“그럼 아예 내게 맡겨보는 것도 괜찮을 거요. 내가 이렇게 산적 같아 보여도 나름 미적 감각이 꽤 뛰어난 편이거든.”
씨익 미소를 지은 박광철.
그는 이내 손에 든 흑룡포와 현우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망토를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엔 도련님 원판이 워낙 좋아서. 뭘로 만들어서 두르든 잘 어울릴 거요.”
“그건 좀······.”
박광철의 말에 잠깐 망토를 휘날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흑룡포로 만든 망토라면 활용도는 뛰어날 테지만. 아무래도 그 꼴을 하고 당당히 돌아다니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되도록이면 평범한 걸로 해주시죠.”
“······평범한 거라.”
박광철은 약간 실망한 표정이었다.
미적 감각이 꽤 뛰어난 편이라더니. 완전히 믿고 맡겼다간. 남부끄러운 무언가가 탄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인으로선 그리 반갑지 않은 요구지만. 도련님이 원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 평범한 코트나 양복 같은 디자인이라면 도련님 마음에 들겠소?”
“그 정도면 괜찮겠네요.”
코트를 휘날리는 모습도 뭔가······.
조금 과하다는 느낌은 없지 않지만.
그래도 망토보다는 훨씬 낫다. 흑룡포 정도의 최고급 소재로 내복을 만들어 달라고 할 수도 없으니.
이쯤에서 만족해야겠지.
“형, 나 그럼······.”
조심스럽게 주건우가 현우를 바라봤다.
현우에게 건넨 흑룡포는 단순한 선물이 아니다. 주건우를 잘 봐달라는 주영미의 뇌물이라 봐도 무방하리라.
현우는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공략팀에 온 걸 환영한다.”
아예 주건우가 제 발로 굴러들어왔으니.
지금껏 주영미도 만만치 않았겠지만. 현우는 그 이상으로 주건우를 제대로 굴리면서 단련시켜줄 생각이었다.
‘인간 개조를 해줘야지.’
팔다리가 박살 나도 투쟁 의지를 불태우며.
천무그룹의 위용을 마족과 배신자 세 가문에게 새겨주던. 녀석의 본모습을 일깨워줄 수많은 방법이 현우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
“이사님.”
주건우가 물러간 이후.
김태훈 실장은 조용히 주영미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여전히 그녀의 판단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현우 도련님께 흑룡포까지 선물하시다니. 이건 너무 과한 호의를 베푸시는 것 아닙니까?”
“과할지도 모르죠.”
주영미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직도 그녀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하지만 이건 결국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도 해요.”
“미래를 위한 투자라면······.”
“나는 건우가 천무그룹의 3대 회장이 되길 바라지만. 솔직히 최근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잖아요.”
태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냉정하게 본다면 주영미의 말이 맞았다. 감히 그녀의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가 없었을 뿐.
“그렇다고 아예 포기한 건 아녜요.”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기회는 온다.
하지만 그때가 되었을 때. 주건우 본인에게 준비가 되어 있어야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자기보다 뛰어난 현우와 다니다 보면. 아무리 둔한 건우라도 느끼는 바가 있겠죠. 아버님 말씀대로 언제까지 품에 안고 살 수는 없기도 하고.”
태훈은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번 일로 현우에게 또다시 빚을 질 수는 없잖아요. 고모로서 체면이 서질 않으니까요.”
주영미의 입에선 더는 ‘녀석’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단순히 황옥고라는 희귀한 선물을 받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벌써 행보가 범상치가 않아.’
주현우는 그간 골칫거리였던 국내의 샤오 가문 인원들을 단숨에 해치운 것은 물론이고. 가주의 차남까지 그대로 절명시켜버렸다.
그가 샤오 가문의 행적을 추적해달라 부탁했을 때만 해도. 주영미는 일이 이렇게 흘러갈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어떻게 보면 무대뽀 기질이지만.
그 무대뽀 기질을 실현할 실행력과 재능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게 그녀가 본격적으로 현우를 달리 보기 시작한 계기였다.
“이사님께선 정말 그걸로 괜찮으십니까.”
“뭐가요?”
“굳이 현우 도련님의 팀이 아니라도. 태우 도련님이나 아라 아가씨의 팀도 고려해볼 수 있었을 겁니다.”
최근 열정적으로 여러 던전을 공략해 나가고 있는 주아라의 공략팀이나. 천무그룹 내에서도 손꼽히는 전력을 갖춘 장손 주태우의 공략팀도 선택지에 있긴 했다.
그러나 주영미는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의 아래에서 힘을 키워야 한다면. 건우에겐 천무그룹의 다른 녀석들보다는 현우가 훨씬 낫겠죠.”
나름 건우에게 호의적이기도 하고.
황옥고 같이 희귀한 비약을 덜컥 건네줄 정도니. 적어도 주건우에게 해가 되는 일은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주건우 역시도 그녀의 품에 머무는 것보다. 주현우의 밑에서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는 편이 좋을 테고.
‘무엇보다 현우와 붙여 놓는다면.’
주태우나 주아라.
두 사람의 공략팀보다 훨씬 폭넓은 경험과 전과를 세울 가능성이 높았다.
그는 단순히 던전이 아니라.
경쟁 가문을 공략하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건우 때문이라도. 나는 당분간은 현우를 살필 수밖에 없어요. 그 아이가 위험해진다면, 우리 건우 역시도 위험해진다는 이야기가 될 테니까.”
“······절대 그리되지 않도록. 저희도 심혈을 기울여 살피겠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놓으시죠.”
“글쎄요.”
주영미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실 주현우에게 가장 가까운 위험은 외부가 아닌 천무그룹 내부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
“현우 쪽이야 알아서 잘 할 테고. 김 실장님은 진석 오빠나 형석 오빠 쪽의 움직임이나 잘 살펴주세요.”
“두 분께서 현우 도련님을 견제할 거라고 보시는 겁니까.”
“당연하죠.”
주영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이제부터 그녀의 두 오빠는 주현우를 견제할 것이다. 본인의 자식들은 물론이고. 언젠간 자신들의 자리까지 넘볼 수도 있을 테니까.
“조만간 그룹 내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거에요.”
소란스러워 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리고 주영미는 불어오는 바람의 중심에 주현우가 서 있으리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대비해서 나쁠 건 없죠.”
뛰어난 두 오빠······.
아니, 이미 세상에 없는 주일석까지 포함. 세 오빠 밑에서 아득바득 자리를 지켜온 그녀의 직감이었다.
***
주건우와 박광철이 돌아간 후.
드디어 현우는 혼자 이무기의 알과 마주할 수 있었다.
‘앞으로 3주.’
그동안 이걸 부화 대기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알의 표면에 손을 얹었다.
사람의 체온보다 약간 서늘한 온도.
그러나 내부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알의 표면에선 미약한 맥동과 분명한 온기가 느껴졌다.
“여기서 그 이무기가 나온단 말이지.”
지금은 타조알 정도의 크기인데.
현우의 기억 속의 이무기는 거의 집채만 한 크기였다. 단순히 크기만 괴물처럼 큰 것도 아니었다.
녀석의 전신은 웬만한 오러보다 강인한 비늘로 뒤덮여 있었고. 거기에 샤오 가문의 직계 혈족조차 중독시킬 수 있는 극독까지 뿜어댔으니.
샤오 가문 공략 당시.
가주나 직계 혈족을 상대하는 것보다. 본가 입구를 지키던 이무기를 상대하면서 더 많은 희생자가 나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젠 내 손에 들어왔지.’
요 며칠간은 여유가 없었지만.
앞으로 3주라는 시간이 주어져 있다. 현우는 그 시간 동안 이무기의 알을 부화 대기 상태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자토스의 모래시계 파편.
그러니까 인피니티 코어라고 명명한 중심에서. 현우는 무한한 마나를 서서히 끌어 올렸다.
─두근
이무기의 알이 현우의 마나에 반응했다.
조금씩 마나를 흘려보내자.
“······!”
마치 끝이 없는 항아리처럼.
알은 현우의 마나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현우는 계속해서 마나를 흘려보냈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흐름을 조절했지만. 이젠 마음을 놓고 있는 힘껏 때려 붓고 있었다.
조금씩 알이 빛나기 시작했다.
부화 대기 상태에 근접하고 있단 신호였다.
샤오 가문이 무려 세 명의 고수를 갈아 넣고. 겨우 만들어낸 결과를 현우는 홀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알의 맥동이 강해진다.
전력으로 뜀박질한 심장처럼. 빠르게 울리던 박동과 함께 알이 품은 빛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순간.
알의 맥동이 잦아드는 게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걸로 알이 부화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는 것을.
하지만 현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궁금했다.
‘여기서 더 넣으면 어떻게 되려나.’
현우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부화 대기 상태가 되었음에도. 알은 계속해서 현우의 마나를 게걸스러울 정도로 탐하고 있었다.
샤오 가문이야 어땠는지 모르지만.
현우에겐 끝이 보이지 않는 마나가 있다.
녀석이 더 이상 마나를 요구하지 않을 때까지. 현우는 계속해서 마나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이변이 느껴졌다.
마치 항아리가 가득 차서.
물을 부어도 넘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오······.”
알에도 변화가 있었다.
현우의 마나에 반응해 빛을 발하던 조금 전과는 달리. 이제는 미약하지만 스스로 푸른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마치 마나연공법의 코어처럼.
알의 심부에 일종의 마나 핵이 생성된 모양이었다.
‘이건 기대해봐도 되겠는데.’
당장은 모르겠지만.
부화를 성공한 후의 이무기에게. 현우의 기억을 넘어서는 큰 변화가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
그렇게 3주가 지났다.
3주라는 시간은 길진 않았지만. 현우에겐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혀, 형······ 나 죽어!”
그리고 현우뿐만 아니라.
주건우 역시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반쯤 강제적이긴 했지만.
그는 착실하게 현우의 단련에 따라오긴 했다. 단지 그 방식이 극도로 단순하게. 신체단련실에서 까무러칠 때까지 뜀박질을 시키는 게 문제일 뿐.
“현우 형─!”
털퍼덕 자리에 드러눕는 주건우.
“더 이상은 무리야! 죽을 것 같다고!”
“사람은 그렇게 쉽게 안 죽어.”
“지, 진짜 죽을 것 같단 말야!”
“그럼 내 손에 죽던가.”
주먹을 붕붕 휘두르는 현우.
주건우는 숨을 삼키며 입을 다물었다.
창천신공의 호흡을 유지하며 달리기.
처음엔 할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걸 몇 시간을 반복하니. 결국은 마나도 체력도 완전히 고갈되어 죽을 맛이었다. 아니, 정말로 죽을 것 같았다.
“마나가 전부 고갈되어봤자 별일 없어. 그저 죽을 것처럼 메스껍고. 죽을 것처럼 컨디션이 안 좋아질 뿐이지.”
그게 죽을 것 같은 느낌 아닌가.
주건우는 몽롱한 의식 속에서 그런 생각을 떠올렸지만. 본능적으로 입 밖에 내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런 나약한 소리를 내뱉어 봤자.
현우에게 한 대 얻어맞을 일을 만드는 것뿐이란 사실을, 지난 3주간 직접 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충분히 쉬었지?”
“으으······.”
“그럼 다시 뛰자. 네가 저번에 섭취한 황옥고의 효능을 완벽히 흡수하려면. 이 속도로 2주는 더 뛰어야 해.”
“······!”
주건우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근성은 있는 녀석이다. 죽을상을 지으면서도 그는 러닝머신 위로 비척비척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향한 현우의 시선이 정지했다.
“슬슬 움직일 때가 됐네.”
[(속보) 서울 구룡산 인근 게이트 발생······ 재해 여파로 중독된 시민만 5천. 한국헌터협회 국가 재난 사태 선포.]기다리던 소식.
[오늘 오전 서울 구룡산에 발생한 게이트에 한국헌터협회가 S+등급 판정과 함께. 국가 재난 사태를 선포했습니다. 현재 게이트 발생 지역 반경 3km에 대피령이 떨어졌으며. 중독된 피해자들만 5천여 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협회는 SS급 헌터 서민욱과······]드디어 독룡의 둥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