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32
32화 선빵필승(2)
“현우 형!”
천무그룹 본가의 신체단련실.
현우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먼저 와서 운동을 하고 있던 주건우가 그를 반겼다.
“드디어 폐관수련이 끝난 거야?”
“응.”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갈 데가 있어. 바로 준비해.”
“지금 바로?”
커다란 원판을 허리춤에 주렁주렁 매달고. 누가 봐도 무식하게 턱걸이를 하고 있던 주건우.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응, 지금 바로.”
“이제 막 느낌 오기 시작했는데······.”
아쉽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는 주건우.
지난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녀석은 신체단련실에서 각종 운동이란 운동은 모조리 해본 모양이었다.
폐관수련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약간 통통한 인상이었던 주건우의 몸엔 현우 못지않은 근육들이 탄탄하게 붙어 있었다.
“한 세트만 더 하고 가면 안 돼?”
“어차피 따라오면 몸을 쓰게 될 거야.”
“······오늘은 상체만 하는 날인데. 예전에 형이 분할 운동은 철저하게 하라고 했잖아.”
“그럼 맞고 따라올래?”
현우가 가볍게 주먹을 치켜들자.
주건우는 후다닥 기구에서 내려왔다.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원판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부딪혔다.
“씻고 옷 갈아입고 올게!”
“10분 준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주건우는 빠르게 달려 현우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여전히 말은 잘 통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현우의 눈이 얇아졌다.
경황이 없었기 때문일까.
주건우는 지금부터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다. 설마 막상 도착해서 빼는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어차피 주양태 회장의 반 암묵적인 허락을 받고 진행하는 일이다. 명분도 있는 일에서 도망치려고 들진 않을 테지.
“도련님.”
“한나 씨도 왔네요.”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임무가 생겼어요.”
류한나의 눈이 반짝 빛났다.
현우가 폐관수련에 들어간 3개월간.
그녀는 특별한 임무 없이 본가에서 계속 기다리는 신세였다.
물론, 이무기인 덕춘이를 살피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젠 슬슬 직접 몸을 움직이고 싶었다.
“회장님께서 이례적으로 본가에 일주일이나 머물며 도련님을 기다리셨는데. 아까 독대에서 뭔가 특별한 말씀을 남기셨던 거군요. 어디로 향하실 예정입니까?”
“샤오 가문의 제약공장으로 갈 겁니다.”
“제약공장이라면······.”
류한나의 표정이 아리송해졌다.
“설마?”
이윽고 한 가지 추측을 떠올리고.
그녀는 저도 모르게 숨을 집어삼켰다.
샤오 가문의 제약공장이라면 알고 있다.
현우가 폐관수련에 들어간 3개월 전. 주양태 회장이 직접 설립을 묵인하기로 약속했던 샤오 가문의 한국 진출 발판.
“설마가 그 설마죠.”
보통 일은 아니겠지.
류한나의 눈빛에 기대감이 서렸다.
***
“쉽지 않군.”
샤오 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벌어진 몇 가지 사건들로 인해. 샤오 가문의 장래는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이번 제약공장 계획이 실패한다면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샤오 가문이나.
샤오 준 본인이나 말이다.
‘영약의 판매 루트는······.’
서류를 들여보던 샤오 준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다. 천무그룹은 이번 제약공장 사업을 묵인하기로 했지만. 샤오 준이 부딪혀야 하는 난관은 그뿐이 아니었다.
“기종 유통망을 이용하긴 어렵겠어.”
이미 한국 내에 뻗어 있는 각종 제약사들.
당연하게도 녀석들은 샤오 가문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한 텃세를 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높은 회사들은 대개 천무그룹의 계열사였다.
주양태 회장의 묵인이 있다곤 하지만.
그건 묵인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엔 이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해야 본격적으로 계획을 실행할 수 있으리라.
앞으로 정확히 3년.
아버지에게 자신 있게 약조했지만.
이런 진행 속도로는 계획의 실현은 훨씬 더뎌질 게 분명했다. 샤오 준은 꾸욱 아랫입술을 씹었다.
“계획이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을 경우. 다소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천무그룹과 다툼을 벌여서 한국 내에서 영향력을 확보하는 수밖에 없겠어.”
성공 가능성을 점치기 어려운 도박이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도 고려해야 했다.
만약 이무기만 손에 들어왔다면. 이미 주양태 회장도 중독시킨 마당에 녀석들과 전면전에 큰 부담을 느끼진 않았겠지만.
멍청한 샤오 윤 덕분에 이무기는 천무그룹 쪽으로 흘러들어 가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천무그룹 측에서 아직 이무기의 부화 조건을 모르고 있을 거라는 부분이었다.
마구잡이로 시도해서 가능한 일도 아니다.
알을 부화 대기 상태로 만드는 과정에도. 막대한 양의 마나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독을 다루는 드래곤 급 마족의 정수를 그대로 흡수시켜야 할 테니.
‘우리 샤오 가문 역시도. 블랙 가문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부화 조건은커녕. 그 가치조차도 전혀 몰랐겠지.’
녀석들의 손에 들어가버린 것은 아쉬우나.
이무기의 정확한 부화 조건을 모르는 이상은 무용지물이다. 그렇다면 녀석들이 알아내기 전에 되찾으면 그만이다.
조금 돌아가는 셈이 되겠지만.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천무그룹을 치면. 결국 이무기의 알은 샤오 가문의 손으로 돌아오게 된다.
‘조금 돌아가는 것뿐이다.’
그러니 여기서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샤오 가문의 명운이 지금 샤오 준의 손안에 달려 있었다.
가주인 샤오 리도 그걸 알고 있으니.
가장 신뢰하는 그에게 한국 지부와 제약공장의 운영을 일임했으리라. 이번 일만 잘 끝내면 가주의 자리가 더 가깝게 다가올 것이다.
꾸욱 주먹을 쥐는 샤오 준.
그때였다.
“지부장님!”
벌컥, 집무실을 열고 들어오는 헌터.
뜬금없는 방문에 샤오 준의 사색이 뚝하고 끊겼다. 그러나 그는 감정적인 샤오 윤과는 달랐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잠깐 나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세히 설명하세요.”
샤오 준이 얼굴을 찌푸렸다.
“아, 아니 실은······.”
헌터는 꿀꺽 침을 삼켰다.
그는 안절부절 눈동자를 굴리더니. 이내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천무그룹 녀석들이 찾아왔습니다.”
“뭐라고요?”
샤오 준의 얼굴이 구겨졌다.
***
“오, 이제 나오셨네.”
두 명의 남녀를 거느린 검은 정장 차림의 청년. 샤오 준을 보자마자 녀석의 입꼬리가 기분 좋게 휘어졌다.
샤오 준은 그 녀석과는 반대로. 자기도 모르게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의식적으로 다잡았다.
저 녀석이 누군지는 안다.
크노스 경매에서 이무기의 알을 가로챈 천무그룹의 3세. 그리고 샤오 가문 한국지부가 될 별장을 박살 내고 동생인 샤오 윤의 목숨을 거두어간 망나니 같은 놈.
물론, 그 과정에는 동생인 샤오 윤의 멍청한 실책도 한몫을 했겠지만.
지금까지가 우연이든 필연이든. 주현우라는 녀석은 자꾸만 샤오 가문의 앞길을 막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샤오 준의 앞에까지 나타났다.
샤오 준은 좋지 않은 예감을 느꼈다.
“주현우 님.”
유창한 한국어로 샤오 준은 그를 불렀다.
지금까지 그가 벌인 모든 일을 떠올렸음에도. 샤오 준의 표정에는 별다른 감정이 드러나 있지 않았다.
오히려 은근한 미소까지 띠며.
샤오 준은 한 걸음 주현우에게 다가갔다.
“내 이름을 아는 모양입니다?”
“하하,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 샤오 준.
그와 마찬가지로 주현우에게서는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주먹을 뻗으면 서로 닿을 거리가 되었지만. 특별히 경계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속내를 짐작하기가 어렵군.’
그러나 먼저 출수해서는 안 된다.
막무가내로 쳐들어온 것은 분명 예의가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걸 빌미로 놈의 목숨을 취할 정도는 되지 않는다.
마찰을 빚을 거라면 확실해야 한다.
그래야 천무그룹에서도 샤오 가문 측에 책임을 물을 명분이 사라질 테니까. 샤오 준은 그것만을 생각하며 조용히 기회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최근 한국내에서 주 소협의 이름을 모른다면 간첩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물론, 저는 중국인이지만 간첩은 아니기에 소협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지요.”
“아, 그러시구나.”
현우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씰룩였다.
조금만 방심했더라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한국인도 아니고 간첩마냥 교활한 계획을 진행하고 있는 주제에 못하는 소리가 없었다.
‘혓바닥을 놀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네.’
솔직히 칭찬해주고 싶었다.
회귀 전에 보았던 샤오 준에게선 저런 연기의 재능은 볼 수 없었다. 녀석과는 눈을 마주침과 동시에 서로 살초를 퍼부었으니까.
색다른 기분이었다.
또한 그 꼴이 우스꽝스러웠다.
“사실 이름뿐만이 아닙니다.”
샤오 준은 까딱 고개를 끄덕였다.
“주 소협께서 구룡산 게이트 공략에 성공하고. 일대의 5천 명이나 되는 시민을 중독에서 해방시켰다는 것도 알고 있죠.”
“그 이야기가 중국까지 들어갔나요?”
“소문은 언제나 빠른 법 아니겠습니까.”
“다른 소문도 있었을 텐데.”
비꼬는 듯한 말투.
말 안에 담긴 가시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샤오 준은 아둔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입가의 미소를 지우진 않았다.
“최근 제 아우와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죠. 그에 대해서는 이미 주양태 회장님과 가주님꼐서 이야기를 끝내신 걸로 압니다.”
“그러니까. 아무 감정도 없다?”
“부끄러운 이야기일 지도 모르지만. 샤오 가문은 혈육 간의 정이 그리 끈끈한 곳은 아닙니다. 당장 제 아래의 동생만 해도 수 십이니까요.”
샤오 준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계속 빙빙 둘러갈 순 없다.
이제 슬슬 본론을 꺼낼 차례였다.
“이곳엔 어쩐 일이십니까?”
샤오 준은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
천천히 마나를 끌어 올렸다. 정말 전쟁을 벌이자고 온 것이라면 기습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으니까.
“여긴 샤오 가문의 제약공장입니다.”
“그거야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이죽이는 현우.
샤오 준의 눈썹이 살짝 떨렸다.
“한국 정부에도 정식으로 인가를 받은 사유지죠. 천무그룹 분들의 방문은 반갑지만. 오늘 방문에 대해선 아무 연락을 받지 못해서 말입니다.”
“뭐, 특별한 볼일은 아닙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현우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그냥 견학이나 한 번 해보려고요.”
“견학······.”
“마침 한국 지부 담당자도 있는 것 같고.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안내를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샤오 준은 마른 침을 삼켰다.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는 대답이었다. 대체 무슨 꿍꿍이를 가진 건가 싶기도 했다. 예의도 없이 다짜고짜 찾아와서는 제약공장을 견학하고 싶다니.
더구나 그 안내를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샤오 준에게 부탁했다. 그냥 우연히 만나서 라는 이유만으로는 부족한 기행이다.
‘아니, 정말로 견학만 원하는 건가?’
샤오 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 의도야 무엇이든.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주현우라는 남자. 도통 종잡을 수 없는 광인이라고 밖엔 생각할 수 없었다.
***
“어떻습니까.”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 샤오 준은 주현우를 공장 안으로 들였다. 그러나 일행까지 들이지는 않았다. 그는 조심스러운 성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쪽 업계엔 식견이 없어서 직접 봐도 잘은 모르겠지만. 짧은 시간 만에 세운 공장치고는 굉장히 공을 들였다는 건 알겠네요.”
“맞습니다.”
샤오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들이 중국에서 공수해온 설비죠. 다른 사업에 대해선 함부로 말씀드릴 수는 없겠습니다만. 제약 분야에서 샤오 가문의 위업은 그야말로 독보적입니다.”
설비부터 인력과 기술까지.
샤오 가문은 1970년대 최초의 게이트가 발생한 이래. 게이트와 던전에서 나오는 새로운 소재들을 누구보다 앞서 포션이나 영약으로 가공해 왔다.
“그리고 그 바탕엔 기술에 맞춰 발전시킨 최고의 설비들이 있죠. 이 제약공장의 설비들만 해도. 아프리카의 작은 국가 정도는 쉽게 살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풍은 아니었다.
최근 해외에 지부를 설치하기 시작한 샤오 가문은, 정말로 아프리카에서 돈과 무력으로 몇몇 국가들을 매수했으니까.
‘만약 천무그룹이 버티고 있지 않았다면. 한국도 진작 그렇게 되었겠지.’
현우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그리고 여기서 녀석들의 계획을 저지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국내 헌터의 태반 이상이 녀석들에게 목줄이 채워질 것이다.
“하긴, 한국 헌터들을 전부 중독에 빠뜨릴 영약인데. 샤오 가문에서 설비에 투자를 아낄 이유는 없겠죠.”
“예?”
샤오 준이 놀란듯 되물었다.
웃음으로 감추고 있던 그의 표정 위에 찰나의 순간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현우는 그 짧은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한국 헌터를 전부 중독시켜 샤오 가문의 노예로 만들 계획이니까. 공장의 보안도 설비의 내구도도 철저해야겠죠.”
“···지금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현우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대신 그의 팔이 크게 휘둘러졌고. 곁에 있던 커다란 철제 원통이 그대로 박살 났다. 강철로 만들어진 배양기가 마치 종잇장처럼 찌그러져 연기를 내뿜었다.
“그런데 이런 건······.”
샤오 준의 눈이 부릅떠졌다.
갑작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콰앙─!
샤오 준이 입을 뻐금거리는 순간.
또 하나의 설비가 그대로 파편으로 화했다.
“예상 못했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