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72
72화 귀환(2)
“아무리 그래도 대련이라니···.”
주영미는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주양태 회장의 성격을 천무그룹의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단순히 대련이라고 포장한다고 해서. 설렁설렁 손속에 사정을 둘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만약 그녀의 아들 건우가 대상이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주양태 회장의 의지를 꺾으려고 시도했을 것이다.
“녀석이 걱정이라도 되는 모양이지?”
“···이번 대련에서 현우가 심한 부상이라도 입게 되면. 또 당분간 건우가 본가에서 한량이 될 테니까요.”
“핑계가 또 늘었구나.”
주양태 회장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말은 저렇게 하고 있지만. 주영미가 이제는 현우를 자신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아니라면 감히 아버지인 주양태 회장의 결정에 토를 달지 않을 테니까.
타인에겐 한없이 냉정한 것이 자신을 닮았지만. 자기 품속에 들어온 이에 대한 태도는 꼭 제 어미를 닮았다.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군.’
주양태 회장은 쯧 하고 혀를 찼다.
주책 맞게 감상에 젖어들기나 하고. 10년만 젊었더라도 머릿속에 스치지도 않았을 상념들이었다.
“그럴 일은 없을 테니. 괜한 걱정 말아라.”
“하지만···.”
그래도 주영미는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아버지랑 대련을 펼치기엔 현우는 아직 많이 부족해요. 많이 성장했지만, 만약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으신다면. 정말로 목숨이 위험한 경우가 나올지도 몰라요.”
“현우 그놈이 말이냐?”
주양태 회장은 콧방귀를 뀌었다.
딸의 걱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애지중지하는 아들 건우 녀석도 그렇고. 주영미는 어려서부터 너무 자신의 품 안에 들어온 사람을 감싸고 도는 경향이 있었다.
“녀석은 천무그룹의 힘을 유용하지 않고 바벨을 공략했다. 물론, 그 과정에 록펠러 가문의 도움이 있었다곤 하나. 세계 7대 미공략 던전에 도전하는 것조차. 아무나 시도하려 드는 일이 아니지.”
그리고···.
주양태 회장은 한 마디를 삼켰다.
‘사막 투기장의 라이트닝 펀치.’
바벨이야 언젠가 공략될 거라고 생각했다.
최초 공략 타이틀의 주인공이 현우가 된 것은 의외긴 했지만. 사실 그것만으로는 그의 실력을 백 퍼센트 확신하긴 어렵다.
던전 공략은 일신의 무위도 중요하지만.
공략법과 순간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할 때도 잦으니까.
주양태 회장이 주목한 쪽은···.
현우가 라이트닝 펀치로서 보여준 실력. 그리고 창천신공에 기반을 두어 창안해낸 것으로 추측되는 새로운 스킬들이었다.
‘그리고 그 푸른 번개···.’
솔직하게 인정하자면.
이번 대련은 순수한 호기심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단순히 현우의 실력을 확인하고자 하는 호기심은 아니었다.
라이트닝 펀치의 정체가 현우가 맞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주양태 회장은 오랜만에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창천신공의 발전 가능성.
언제부터인가 이미 완성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던. 평생을 바쳐 만든 신공절학의 다음 단계의 편린을 엿본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느낌을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었다.
“이건 건우 녀석에게도 많은 자극이 될 거다. 지금 등을 보고 달리고 있는 목표가. 어느 정도 거리에 있는지. 그 정도는 정확하게 보고 달려야 하지 않겠느냐.”
“그건···.”
주영미는 입을 우물거렸다.
그의 말이 백번 옳았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보고 있거라.”
주양태 회장은 휙 몸을 돌렸다.
정말 오랜만에 그의 가슴은 기대와 즐거움으로 맥동하고 있었다.
***
천무그룹의 연무장.
“흠.”
주양태 회장은 고개를 까딱였다.
검은 무복으로 갈아입고 자신의 앞에 선. 손자 주현우의 기세는 심상치 않았다. 적어도 그가 예상하고 있던 것보단 훨씬 정제되고 안정된 기도가 느껴졌다.
“그동안 바깥으로 나돌기만 한 것은 아닌 모양이구나. 확실히 샤오 가문 때와는 기세부터가 달라졌어.”
“노력했으니까요.”
현우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걸 단순히 노력이라고 간단하게 말하고 넘어가긴 뭣하지만. 대련을 앞두고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도 없어 보이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좋은 설명은 직접 보여주는 거다.
“선공은 양보해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사양하진 않는다.
여기서 다섯 초식 정도를 양보받는다면. 시작부터 최대한 대련의 흐름을 이쪽으로 당겨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이기기 위한 대련이 아니다.
주양태 회장이라는 벽을 넘어서기 위해.
지금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더 높은 경지로 다가가기 위한 발판을 확고히 다지기 위한 통과의례일 뿐.
“갑니다.”
현우는 마나를 끌어 올렸다.
탐색전 따위는 필요 없다.
무조건 첫 일격부터 가능한 모든 것을 때려 박아야 한다. 그렇게 하고도 주양태 회장을 넘어설 수 있을 거란 확신은 들지 않았다.
파팍! 현우의 신체 주위에서 푸른 번개가 튀어 올랐다. 아니, 그것은 번개의 형상을 띈 응축된 불꽃이었다.
‘번개와 불꽃···.’
근본적으론 닮은 기운이다.
애초에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이 다룬 최초의 불꽃이란 결국 번개에서 비롯되었단 이야기도 있지 않던가.
주양태 회장이 눈을 얇게 떴다.
현우가 다루고 있는 권능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감과 안력을 극도로 집중해서 현우의 기술을 살핀 그는 작게 숨을 내뱉었다.
탄성을 흘릴 뻔했지만.
천무그룹의 회장으로서 가까스로 체통을 지키려는 이성이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창천신공의 창염.
그리고 푸른 번개와 창염을 융화시키는 또 하나의 기운. 거기에 세 가지 힘을 동시에 다루며 생기는 과부하를 식히는 묘한 냉기까지.
‘총 네 가지의 권능을 다루는 건가.’
이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아니, 애초에 가능 불가능의 여부를 떠나. 일단은 최소 몇 년간은 현우 외엔 아무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저 힘의 근본이 되는 권능은 오직 혈통을 통해서만 아랫세대로 이어질 테니까.
“···그 힘은 뭐라고 부르느냐.”
“저는 일단은 우레불꽃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창천신공의 권능인 창염을 제 방식대로 응용해서 발전시켰죠.”
“우레불꽃이라···.”
고개를 끄덕인 주양태 회장.
응용과 발전.
평소라면 헛소리라 치부했겠지만. 눈앞에 결과가 있는 지금은 그저 호기심이 솟아오를 뿐이었다.
“좋은 이름이군.”
그의 평가가 떨어짐과 동시에.
현우의 두 발이 지면을 박찼다. 순식간에 흐릿해진 신형이 주양태 회장의 눈앞에 나타났다.
선공은 양보한다.
극렬하게 날뛰는 우레불꽃이 주양태 회장을 집어삼킬 듯이 부풀었다. 그러나 그는 피하지 않았다. 정면에서 우레불꽃을 찢어발기며 현우의 앞으로 뛰어들었다.
“이렇게 하면 어쩔 테냐?”
턱, 하고 주먹이 잡혔다.
반사적으로 주먹을 뒤로 당겼지만. 마치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것처럼. 현우의 주먹은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 괴물 같다.’
으득···!
흑린갑에 뒤덮인 현우의 주먹이 불길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이대로 잡혀 있다간 흑린갑 채로 주먹이 박살 날 지도 모른다.
답은 정해져 있다.
현우는 주양태 회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대신. 그가 자신을 놓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꽈과광! 이미 단단히 붙잡힌 주먹을 비롯하여. 현우의 전신을 우레불꽃이 내달렸다. 인피니티 코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한한 마나. 그 제한 없는 힘이 단숨에 주양태 회장을 압박했다.
아무리 주양태 회장이라도.
그 힘을 정면에서 아무런 대비도 없이 맞고 버틸 수는 없었다. 그는 현우의 주먹을 밀며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하···!”
주양태 회장의 입에서 유쾌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검게 그을린 주먹을 가볍게 털었다.
무서운 성장력이다.
주양태 회장은 머지않아 주현우가 자신과 비슷한 수준까지. 빠르게 뛰어 올라올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건···.
주양태 회장이 진정 원하는 바였다.
“내 직접 한 수 가르쳐주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는 마나를 끌어 올렸다.범상치 않은 기세가 연무장 전체를 훑었다.
만약 S급 이하의 헌터가 있었다면. 이 기세만으로 실금했을 지도 모른다. 압도적인 마나에 피부가 따끔해질 정도였으니
‘아수라보다 훨씬 강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느껴지는 기도만으로도 비교조차 허락하지 않는 수준이었다. 현우가 긴장감을 인식하며 주먹을 그러쥔 순간.
팡! 주양태 회장의 몸이 쏘아졌다. 지면을 박차는 것조차 보이지 않았다. 현우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켜며 두 팔을 들어 올려 방어 자세를 취했다.
거의 본능에 가까운 대처.
창천십팔무(蒼天十八武)
제16초식 용호상박(龍虎相搏)
창천십팔무 중에서도 난타에 특화된 스킬이 주양태 회장의 주먹을 통해 펼쳐졌다. 고작해야 1초도 되지 않는 찰나. 현우를 향해 15회의 권격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
순식간에 열다섯 합.
그 여파로 현우가 전신에 두른 창염갑이 뒤틀려 박살 났다. 주양태 회장의 주먹과 맞닿은 팔의 손목은 산산조각이 난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으하하!”
귓가에 웃음소리가 울렸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주먹. 현우가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방어가 크게 흔들렸다. 뒤로 반 보 물러나며 연거푸 치닫는 권격을 가까스로 흘려냈다.
‘부서졌다.’
오른팔을 가로지르는 통증.
직전의 일격으로 최소한 뼈에 금이라도 간 모양이었다. 한없이 정도라면 회복할 수 있겠지만. 지금 한가롭게 포션을 딸 여유는 없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버텼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주양태 회장은 지금까지 현우가 겪지 못한 초속의 공간에 있었다.
하지만···.
‘한 단계 위로···.’
따라잡을 수 있다.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 이전엔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면. 지금의 주양태 회장은 손을 조금만 더 뻗으면 닿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생각한 직후.
돌연 주양태 회장이 손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제야 현우는 참고 있던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대련은 여기까지다.”
그리고 깨달았다.
방금까지 숨조차 참으며 주양태 회장이 쏟아내는 주먹을 받아내고 있었다는 것을. 의식과 몸이 다시 평범한 시간으로 돌아오며 현우는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훌륭하구나!”
주양태 회장의 한 마디.
괜히 코끝이 찡해지는 것 같았다.
슬쩍 코를 문지르니 피가 묻어 나왔다. 역시, 그냥 감동 때문에 느껴진 감각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내 너를 인정하도록 하마.”
“그 말씀은···.”
“천무그룹의 차기 회장자리. 네 녀석이 여기서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 자리가 네놈의 것이 될 수도 있을 게다.”
그건···.
천무그룹 전체에 한바탕 폭풍을 일으킬 가능성이 충분한. 상당히 충격적인 선언이었다.
***
주양태 회장과 대련 후.
오른팔은 박살 났지만 얻은 것은 많았다.
박살난 오른팔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완전히 잘려나간 것도 아니었으니. 새롭게 손에 넣은 재생의 불꽃을 사용해서 회복해도 됐겠지만···.
류한나와 주건우.
두 사람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으라며. 호들갑을 떨어댄 덕분에 비싼 포션을 들이부어 치유할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의외인 일이 있었다면.
그 치유 과정에 사용된 비싸고 희귀한 포션들이. 전부 고모인 주영미의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걸까.
그렇게 사흘 정도 지났을 무렵.
본가로 찾아온 의외의 손님이 있었다.
소피아 미하일로브나 로마노바.
그리고 그녀의 방문보다 더 놀라운 소식도 하나. 그녀의 입에서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가주에 오르셨다고요?”
생각보다 놀라운 소식이었다.
본래라면 얼어붙은 요툰헤임 던전에서 목숨을 잃었어야 했을 소피아다. 솔직히 그녀의 생존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로마노프 내부의 불씨가 될 거라곤 생각했지만. 설마 그 불씨가 이렇게 대형 불꽃이 되어버릴 거라곤 예상하지 않았다.’
그녀가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로마노프의 권좌를 차지할 정도로 수완이 뛰어난 사람이었을 줄이야.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가문의 권력이 교체되었으니. 한창 눈코 뜰새 없이 바쁘신 와중일 텐데. 이렇게 한국까지 직접 찾아오신 데엔 이유가 있겠죠.”
“그게 실은···.”
소피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지난 몇 달간 있었던 일을 현우에게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알렉세이 로마노프의 실각.
그리고 전대 가주였던 미하일 로마노프의 외동딸. 소피아 미하일로브나 로마노바가 가문의 새로운 가주로 올라선 과정.
솔직히 그건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에 나온 이야기였다.
“···해서. 배반자 알렉세이는 현재 추종자들을 이끌고 아르카임으로 도주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아마도 던전 내부로 진입해 농성을 이어나갈 생각인 모양입니다.”
익숙한 지명.
현우는 헛웃음을 흘렸다.
‘아르카임이라면···.’
유럽과 시베리아를 가르는 우랄 산맥.
그 근처에 위치한 도시 첼랴빈스크에서 남쪽으로 조금 더 떨어진 지역. 본래 같은 이름을 지니고 있던 원형의 고대 유적지에 생성된 던전의 이름이었다.
또한···.
세계 7대 미공략 던전.
그중에서도 로마노프 가문이 공략권을 소유하고 있는 던전이기도 했고. 현우가 마침 다음 목표로 생각하고 있던 곳이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 현우는 최대한 심각한 표정으로 소피아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공략 던전이라면 쉽진 않겠군요.”
“그래서 제가 직접 천무그룹에 방문한 겁니다. 우선은 본론부터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최초의 바벨 공략자 주현우 님께 손을 빌리고 싶습니다.”
최초의 바벨 공략자.
듣기 나쁘진 않은 별호였다. 적어도 라이트닝 펀치 같은 낯뜨거운 이름으로 불리는 것보단 훨씬 듣기 좋았다.
“제 손을 빌리고 싶단 말씀은···.”
“아르카임의 공략권을 드리겠습니다. 만약 공략에 성공하실 땐 최초 공략 보상 역시 주현우 님께서 가져가시면 됩니다.”
“거저는 아니겠군요.”
지금 아르카임엔 로마노프의 전대 가주인 알렉세이 로마노프가 숨어 있다. 아르카임을 제대로 공략하기 위해서는 일단 녀석을 처리해야 할 것이다.
“이쪽에서도 가능한 인력을 모두 동원할 생각입니다. 저희 로마노프 가문의 목적은 하나. 배신자 알렉세이 로마노프의 목뿐입니다.”
결국 거래 조건은 명확했다.
로마노프 가문의 배신자 알렉세이 로마노프를 처리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면. 그 대가로 아르카임의 공략권과 최초 공략보상을 넘겨주고 공략도 함께하겠다는 이야기.
여기까지 봐도 크게 나쁜 거래는 아니다.
또한 알렉세이 로마노프야···.
어차피 언젠가는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던 인물 중에 하나였으니.
소피아의 손으로 처리하지 못한 이상.
직접 손에 피를 묻히는 것쯤이야. 현우에게 있어서 꺼림칙할 일도 축에도 들어가지 못하니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알렉세이 로마노프.
그가 블랙 가문과 내통하고 있던 가문의 배신자였다는 것. 결국 그 이야기는 아르카임의 공략 정보 또한 녀석의 손에 쥐어져 있을 거라는 소리였다.
‘알렉세이 로마노프, 그 녀석이 괜히 아르카임에 숨어든 게 아니다. 단순히 농성하기 위함이라면 훨씬 좋은 곳이 얼마든지 있었을 테니.’
아르카임은 단순한 던전이 아니다.
물론, 세계 7대 미공략 던전이라는 점에서 이미 단순한 던전은 아니겠지만. 현우가 알고 있는 미래에서 공략이 완료된 아르카임은 최초 공략 이후 아예 사라졌다.
그 까닭은 간단했다.
아르카임은 던전이 아니다.
지금까지 던전이라고 착각했을 만큼. 거대한 마족 ‘베헤모스’의 일부가 바로 아르카임이라는 던전의 진짜 정체였다.
그리고 아르카임 공략은···.
인류가 상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재앙으로 연결되었다. 그게 현우가 알고 있던 미래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아마도 블랙 가문이 관여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전생에서 아르카임은 결국 로마노프 가문 측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공략을 시도했었다.’
결과적으로 놈들은 해냈다.
물론, 그게 던전의 공략 성공이 아니라. 잠들어 있던 베헤모스를 깨우는 결과로 이어졌을 뿐이었다.
그 결과는···.
몸 길이만 250미터 가량에 달하는 거대 마족 베헤모스의 폭주로 이어졌고. 결국 녀석은 근처 도시 첼랴빈스크를 초토화 시키는 재앙을 일으켰다.
‘그뿐만이 아니었지.’
로마노프 가문의 전력을 투입했지만.
몸길이만 25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마족베헤모스. 그 전대미문의 재앙을 막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블랙 가문의 지원을 받으며.
로마노프는 소모전으로 베헤모스의 체력을 갉아먹었고. 몇 개의 도시가 더 박살이 난 후에야. 수도 모스크바를 불과 50키로 남긴 지점에서 녀석을 멈출 수 있었다.
“좋습니다.”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카임··· 그러니까 베헤모스를 토벌하긴 해야 한다. 그러나 현우로서는 그 재앙을 반복할 생각도 이유도 없었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지금 로마노프 가문의 상황은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주현우의 협력을 통해 가려운 곳을 긁을 수만 있다면. 거기에 딸려오는 웬만한 조건쯤이야 감수해야 했다.
“조건은 하나.”
현우는 검지를 들어 보였다.
“전적으로 제 판단을 믿으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