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74
74화 아르카임, 그리고 베헤모스(1)
러시아 첼랴빈스크.
미공략 던전 아르카임이 위치한 근교로 출발하기 직전. 로마노프 가문 공략팀으로 발탁된 정예 헌터들은 하나같이 신기한 눈으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야··· 저게 다 뭐래냐?”
천무그룹의 심볼.
푸른 용이 문양이 그려진 다섯 대의 대형 트레일러. 게이트 브레이크가 발생하지 않은 이상. 저런 대형 트레일러로 동원할만한 물자는 요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광경도 충분히 기묘하지만.
나름 산전수전 다 겪어본 베테랑 헌터들만 모아놨음에도. 그들 중 누구 하나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진짜 요소는 따로 있었다.
“그 무슨 신기전이라던가. 한 30년 전까지 천무그룹에서 사용하던 대마족 화포 같은 거라고 하던데.”
“미친, 무슨 전쟁하러 간데?”
“그러니까 말이야.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올 때. 저 물건들이 우리를 조준하고 있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는데.”
“이봐, 소름끼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기 때문일까.
그들의 수다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아니면 아예 던전을 공략할 생각이 없는 걸지도 모르지. 지금 아르카임 내부에 전대 가주 알렉세이가 숨어 있다면서.”
“컨테이너로 입구라도 막으려는 건가.”
나름 추측까지 동원해가면서. 그들은 현우의 계획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마구 펼치고 있었다.
“아니지 멍청아 잘 생각해보라고. 신기전이 아무리 구세대 병기라고 해도. 아르카임 입구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돈 되지 않겠어?”
“오오, 정말 그럴지도···.”
고개를 끄덕이는 헌터.
하지만 곧 그는 끄덕이던 고개를 우뚝 멈추고 다시 떠오른 의문을 입에 담았다.
“근데 입구를 무너뜨리면 공략 보상은?”
“아, 그것도 그렇네.”
“아무래도 멍청이는 너 같은데.”
“뭐라고?”
서로를 노려보던 찰나.
두 사람의 사이로 누군가 끼어들었다.
“오늘 따라 다들 말이 많군.”
“쓰읍, 대장님···!”
이반 블론스키.
이제 로마노프 가문에 고작해야 열 명 남짓 남아 있는 비혈통 SSS급 헌터 중에 하나. 그리고 로마노프 가문에서 이번 아르카임 공략팀의 지휘를 맡은 사람이 바로 그였다.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어서 후송 차량에 타라. 한가롭게 시간을 지체할수록 그 배신자 녀석에게 여유를 주는 꼴이란 것. 너희들도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네, 넵!”
헐레벌떡 그의 지시에 따르는 헌터들.
뒤따라 후송 차량에 탑승하려던 이반은 저도 모르게 슬쩍 고개를 돌렸다. 천무그룹의 심볼이 대문짝만하게 박힌 트레일러가 눈에 들어왔다.
약 20년에 달하는 오랜 세월.
헌터로 일선에서 활동하며 여러 던전과 게이트를 공략했던 그마저도. 저 천무그룹의 도련님이 대체 무엇을 꾸미는지. 당최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대체 뭘 할 생각인지.’
이반은 흘끗 트레일러를 노려봤다.
그러나 지금 그걸 생각해봤자 의미 없다. 어차피 아르카임에 도착해 공략을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밝혀질 일.
그는 떠오르는 의문을 애써 무시하며.
가벼운 몸놀림으로 후송차량에 올라탔다.
***
미공략 던전 아르카임.
도착한지 두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공략이 시작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가주인 소피아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으나. 공략팀 사이에선 슬슬 볼멘소리가 튀어나오는 중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다섯 대의 대형 트레일러에 실려 있던 신기전을 비롯해. 여러 물자들을 꺼내 설치하고 정리하는 데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현우의 목적은 지금 당장 아르카임 내부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로서는 준비를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었다.
“잠시 괜찮겠소?”
로마노프 가문의 호법장로.
총 다섯 명의 노인 중에서 한 명이 휘적휘적 현우 쪽으로 걸어왔다.
주위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가 현우의 앞에서 총대를 메고 볼멘소리를 시작할 모양이었다. 아무런 잡음 없이 공략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이 또한 예상한 일이었다.
“···뭡니까?”
“로마노프의 태상호법 드미트리 로마노프라고 하오. 그간 소문이 자자했던 천무그룹의 잠룡을 이리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소.”
“저도 반갑습니다.”
태상호법.
총 다섯 명으로 이루어져 있는 로마노프 가문의 호법장로 중에서도. 가장 배분이 높은 이에게 주어지는 칭호였다.
현우는 불쑥 손을 내민 드미트리와 가볍게 악수를 나누었다.
대강 그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간단하게 인사만 나누려 말을 걸어온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용건이 남으셨습니까?”
“음.”
드미트리가 까딱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희끗한 짧은 수염으로 뒤덮인 턱을 몇 번 쓰다듬었다. 현우의 수준을 가늠이라도 해보려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그간 미공략 던전으로 남아 있던 바벨을 공략하셨다고 들었소. 록펠러 가문의 원조를 받긴 했다지만. 그래도 엄청난 위업을 달성한 것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오.”
단순한 칭찬은 아니겠지.
현우는 그에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혀를 차며. 곁에 있던 류한나에게 눈짓을 보냈다.
자신이 드미트리를 상대하고 있을 테니.
가서 신기전을 포함해. 베헤모스 공략에 필요한 준비를 마치라는 뜻이었다.
다행히도 류한나는 찰떡같이 알아듣고. 주건우와 함께 박광철 장인 쪽으로 이동했다.
“운이 따라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번엔 소피아님께서 그 경험을 높게 사주신 덕분에 이 자리에도 서게 된 셈이고요.”
“하하, 겸손하기까지. 역시 우리 가주님께서 눈여겨본 실력자다우시오. 이번 일에도 틀림없이 큰 도움을 주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겠소이다.”
“그렇게 될 겁니다.”
공략···.
아니, 토벌이 끝나면. 주현우라는 사람이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을 하늘에 감사하게 여기게 될 테니까.
“혹, 실례되는 질문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럼 하지마시죠.”
현우는 단호하게 말했다.
대충 무슨 질문이 튀어나올지는 알고 있다. 여기까지 왔으면서 왜 아르카임 내부로 진입하기를 꺼리냐. 뭐, 그런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겠지.
그건 현우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원래 내 계획은 녀석들이 베헤모스를 깨울 때까지. 조용히 여기서 진을 치고 기다리는 거다.’
그 편이 안전하다.
어차피 베헤모스를 깨우지 않고서 공략은 성립될 수 없다. 그러나 녀석이 깨어나기 전에 아르카임 내부로 진입해서는 안 된다.
‘베헤모스가 깨어나는 순간. 아르카임 내부에 있는 모든 헌터와 기생 마족들이 밖으로 워프 되니까.’
결국 힘을 들여 들어간다고 해도.
베헤모스의 심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심지어 그때 이미 베헤모스는 깨어나서 날뛰며 진격을 시작했을 시점일 테니.
여기서 녀석이 깨어나자마자. 준비한 공성병기를 사용해 잠시 저지하고. 그 틈에 빠르게 녀석의 등에 위치한 아르카임을 통해 신체 내부로 진입···.
‘그리고 심장을 파괴한다.’
그게 바로 현우가 생각한 베헤모스 공략의 정석이자. 가장 적은 피해와 물자로 이번 토벌을 성공시키는 방법이었다.
알렉세이는 덤이다.
따지고 보면 현우보단 로마노프 가문 측에서 신경을 써서 잡아야 할 녀석이니. 그 부분에 있어선 손 안대고 코푸는 격이 되겠지.
“그럼 언제 공략을 시작할지. 내 그것만 물어보고 싶소. 우리 측 공략팀 인원들도 하염없이 대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소.”
“아직 준비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현우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신기전의 설치에는 앞으로 조금 더 시간이 걸린다. 애초에 아르카임의 내부로 지금 당장 진입해야 할 이유도 없다.
“준비가 완료되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최대한 철저하게 대비해서 희생을 줄이는 편이 로마노프 가문 측에도 좋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맞는 말이지만. 대체 언제까지 기약 없이 기다리기만 하라는 거요?”
“태상호법님···!”
소피아가 그를 노려봤다.
그러나 태상호법 드미트리는 물러나지 않았다. 가주의 의견을 존중하긴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마냥 기다리고 싶진 않았다.
“가주님의 말씀이 있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내가 한 마디를 해야 할 것 같소.”
빤히 그를 바라보는 현우.
자신보다 한참 낮은 배분일 텐데. 위축되지도 않는 그의 모습에 드미트리는 왠지 모를 묘한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그 역시도 물러날 수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저 안에 로마노프의 배신자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거요. 여기서 계속 시간을 끄는 것은 녀석에게 준비할 시간을 더 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오.”
“맞는 말씀입니다.”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우리가 상대해야 할 건. 안에 숨어 있는 알렉세이 로마노프뿐이 아닙니다. 그 전에 미공략 던전이라는 전대미문의 공간을 안전하게 통과해야 하죠.”
알렉세이는 그 다음이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알렉세이 로마노프의 건은 이쪽의 일이 아니다.
“제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그겁니다.”
현우는 그 점을 공고히 했다.
드미트리가 잠시 할 말을 물색하는 사이. 현우는 바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먼저 진입하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그 말은···.”
“저희 준비가 끝날 동안. 만약 로마노프 가문이 공략에 성공한다면. 소피아님과 약속했던 계약도 없던 걸로 해도 좋습니다.”
“우리가 못해낼 거란 말씀이오?”
“그런 뜻이 아닙니다.”
현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된 밥에 숟가락만 얹고 간다면. 세상 사람들이 주현우라는 이름은 물론이고. 천무그룹까지 비웃게 될 테니까요.”
“···좋소!”
드미트리 역시 바라던 바였다.
“우선 우리 공략팀을 먼저 선발대로 진입시키겠소. 무슨 준비를 더 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배신자 알렉세이 정도는 찾아낼 수도 있겠지.”
그 후엔 천무그룹의 도움 따윈 필요 없다.
공략권에 관련된 것도 배신자 알렉세이만 확보 된다면. 다시 이쪽에 유리한 조건으로 바꿀 수 있을 테니.
“후회하지나 마시오!”
***
이반 블론스키.
그는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태상호법 드미트리 로마노프.
그 영감이 시킨대로 선발대로 진입하긴 했지만. 이곳은 평범한 던전이 아닌 세계 7대 미공략 던전.
오랜 기간 공략에 실패한 던전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그가 마지막으로 아르카임에 도전했을 때. 실패 요인은 한 가지. 어떻게 해도 보스룸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주위 정찰만 해놓는다.”
“태상호법 님께선 배신자 알렉세이를 탐색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라고 명령하시지 않았습니까?”
“상관없어.”
이반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만큼은 천무그룹의 주현우. 그 샌님처럼 생긴 도련님의 말이 맞았다. 준비 없이 마구잡이로 달려들다간 화를 입는다.
“천무그룹 도련님이랑 우리 태상호법께서 대체 무슨 기싸움을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우린 그냥 사이에서 해야 할 일만 잘하면 그만이다.”
“괜찮을까요?”
“어차피 이번 공략 보상은 천무그룹 쪽에서 전부 가져가기로 되어 있어. 괜히 나서서 손해볼일 만들지 말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갈 거다.”
천무그룹의 도련님.
흔히 잠룡이라 불리는 그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기행을 펼치고 있는 지는 알 방법이 없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놓고.
단순히 기싸움이나 하기 위해서. 쓸데없는 일에 돈과 물자를 낭비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분명히 뭔가 있다.
오랜 헌터 생활로 단련된 직감이. 여기선 괜히 객기를 부리면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최대한 안전에 유의해서 움직인다.”
그리고 대략 30분 후.
주위 지형을 기록하고 있던 공략팀 헌터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음, 이거 이상한데.”
뭔가 이질감을 느낀 건지.
그는 의구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던전 내부를 한 바퀴 둘러봤다. 지하 미궁을 그대로 형상화해 놓은 것 같은 풍경.
여기까진 달리 이상할 게 없었다.
이질감을 느낀 지점은 바로 기록이었다.
“내부가 완전 미로나 다름없네요. 이전에 던전 생성 이후에 선발대가 기록했던 지도 랑도 완전히 다른 것 같고···.”
“잠깐, 지금 뭐라고 했나?”
“어, 그게···.”
“선발대가 기록했던 것과 다르다고?”
이반은 인상을 쓰며 단말기를 낚아챘다.
과연 헌터가 말한 그대로였다. 10년 전에 이루어진 기록 작업이었지만. 절대 오차가 있을 리가 없다.
‘이건 지난 공략에서 한 달에 걸쳐 만들어낸 정교한 지도다. 조금의 오차야 발생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단말기 화면에 떠 있는 두 개의 지도는 완벽히 다른 형태를 띄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심상치 않은 느낌.
그러나 여기서 후퇴한다면 태상호법이 분노하며 길길이 날뛸 것이 분명했다. 결국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우선은 입구 쪽으로 다시 후퇴한다. 아무래도 배신자 알렉세이와 그 추종자들이 무슨 일을 벌인 모양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팀원들이 돌아오는 대로···.”
쿠구구궁···!
딛고 있던 땅이 흔들렸다. 공략팀 전원이 화들짝 놀라는 순간. 그들이 던전이라고 생각했던 공간 전체가 흔들리며 움직였다.
“이런 미친···!”
상상조차 하지 못한 전대미문의 사건.
미처 뭔가를 해보기도 전. 이반을 포함한 공략팀 헌터 전원이 강제 워프의 빛에 휩싸여 사라졌다.
***
“무, 무슨···!”
태상호법 드미트리가 숨을 집어삼켰다.
아르카임의 지면이 융기하고 있었다.
아니, 지금까지 아르카임이라는 던전이라고만 생각했던 이 지역 전체가. 서서히 솟아오르며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저건 마족···?”
상식을 벗어난 상황.
드미트리는 저도 모르게 입을 반쯤 벌리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으─으─오─오─!]초거대 마족···.
베헤모스가 거대한 몸을 일으키며 울부짖었다. 매머드와 고릴라를 반반 합쳐놓은 것 같은 육중한 몸체.
상식을 벗어난 상황.
그러나 그 순간, 상식 밖의 상황을 유일하게 대비하고 있던 한 사람이 지체 없이 움직였다.
“박광철 씨. 지금입니다.”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
드미트리의 고개는 자연스럽게 주현우가 있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콰과과광!
아르카임 주변에 설치 후. 지금까지 조용히 대기하고 있던 신기전이 길쭉한 포신에서 일제히 위력적인 불벼락을 뿜었다.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예측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여덟 개의 포구에서 빠르게 뻗어나간 불꽃이 허공을 가르며 베헤모스를 향해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