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75
75화 아르카임, 그리고 베헤모스(2)
베헤모스가 깨어났다.
태상호법 드미트리 로마노프를 비롯.
로마노프 가문 측의 인원들이 갑작스러운 이변에 일동 혼란에 빠진 그때.
현우와 천무그룹의 공략팀만은 침착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타이밍이 좋군.’
그 이변이···.
지금까지 현우가 기다려 마지않고 있던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으─으─오─오─!]베헤모스가 거대한 몸을 일으키며 울부짖었다. 녀석이 네 다리로 지면을 딛자. 마치 지진이라도 발생한 것처럼. 지면이 한바탕 뒤흔들렸다.
역사상 가장 거대한 마족.
베헤모스를 두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다.
만약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마주쳤다면. 머릿속이 잠시 백지가 되어버릴 만큼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지는 거구였다.
그러나 현우와 공략팀에겐 아니었다.
“이야, 도련님이 말씀하신 대로구만!”
박광철이 눈을 반짝 빛냈다.
이번에 새롭게 개조한 신기전을 비롯해. 다양한 공성병기들을 다룰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난 모양이었다.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진 반신반의 했는데. 정말로 아르카임의 진짜 정체가 초거대 마족이었을 줄이야!”
그는 작게 탄성을 흘렸다.
현우는 그를 향해 픽 웃으며 물었다.
“준비는 완벽한 겁니까?”
“후후··· 아주 깜짝 놀라실 거요!”
박광철은 이를 드러내며 장담했다.
그가 이렇게 자신할 정도라면. 위력은 의심해볼 것도 없이 충분할 게 분명했다. 현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아까 던전으로 입장했던 선발대. 그 사람들은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일단 안전을 확인하고 발포해야하는 거 아냐?”
주건우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베헤모스가 깨어난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에 대해. 현우는 이미 모두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아르카임 내부로 진입한 헌터 전원.
알렉세이 로마노프를 포함한 그 추종자들과 함께. 아르카임 바깥으로 워프 되었을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지금 노리는 것은 베헤모스의 진격을 저지하는 것뿐. 설령 그들이 아직 내부에 남아 있다고 해도. 이 포격은 그들의 안전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베헤모스가 몸을 전부 일으켰다.
지금이 녀석이 가장 무방비할 때다.
“박광철 씨. 지금입니다.”
현우는 손을 들어올렸다.
드디어 떨어진 신호에 박광철이 흥겨운 표정으로 무언가를 쥐었다. 이 주변에 설치한 신기전과 공성병기를 한 번에 컨트롤 할 수 있는 조작 단말이었다.
“발사!”
꾹, 하고 버튼을 누르는 박광철.
과연 그의 말대로 화들짝 까진 아니었지만. 가히 누구라도 놀랄만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콰과과광!
아르카임 주변에 설치 후. 지금까지 조용히 대기하고 있던 신기전이 일제히 불벼락을 뿜었다.
총 여덟 개의 포구에서 뻗어나간 불꽃이 허공을 가르며 베헤모스에게 쇄도했다.
노리는 곳은 베헤모스의 오른쪽 뒷다리.
현우가 알고 있는 미래의 정보에 따르면. 녀석의 네 개의 다리 중에서도 가장 무게 중심이 취약한 부위였다.
“휘우! 이거 정말 장관이구만!”
박광철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게이트 브레이크 사태에서나 사용되던 천무그룹의 고정식 마도공학 화포 신기전.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 설치된 물건은···.
박광철 장인의 손길을 거친 작품.
이전의 신기전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위력과 특별함을 가진 최고의 신식 마도병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불과 몇 초가 지났을 무렵.
격렬한 폭음과 함께.
베헤모스의 오른쪽 뒷다리에 신기전에서 뿜어진 불꽃이 한 개도 빠짐없이 모두 작렬했다.
“으쌰! 좋아쓰!”
박광철이 쾌재를 불렀다.
박광철이 자신한 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그─우─우─!]녀석의 거체가 크게 요동쳤고.
이내 지면으로 무너지듯이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완전한 무력화는 불가능하다.
전생의 베헤모스 토벌에서 엄청난 피해가 나왔던 이유. 그건 녀석의 거체와 상상을 초월하는 맷집에 더해. 한 가지 요소가 더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부의 심장을 부수지 못한다면.
녀석은 재생의 불꽃을 두른 아수라처럼. 죽지 않고 계속해서 신체를 재생하며 파괴적인 전진을 반복할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지금 여기부터가···.
본격적인 베헤모스 공략의 시작점이다.
***
불과 몇 분 전···.
알렉세이 로마노프.
그는 드디어 깨어난 베헤모스의 등 위에서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아래가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이곳에 서니. 왠지 모를 전능감 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흐흐흐···!”
모든 계획은 순조롭게 흘러갈 것이다.
진격하는 베헤모스의 발아래.
러시아는 전례 없는 공포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유일하게 베헤모스의 목줄을 쥐고 있는 그에게··· 굴복하게 되겠지.
오직 그걸 위해서.
알렉세이는 베헤모스를 수도인 모스크바 근처까지 진격시킬 생각이었다. 우선 압도적인 공포를 느껴야 순종을 택할 테니까.
그리고 모스크바 근교에서.
베헤모스의 진격을 잠시 멈추고 러시아 정부와 협상을 시도. 녀석들의 세력을 이용해 로마노프를 다시 되찾고 놈들마저 발밑에 두는 것.
그게 알렉세이의 계획이었다.
‘이미 베헤모스는 깨어났다.’
계획은 이제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걸로 로마노프 가문은 물론.
그동안 로마노프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러시아 정부까지. 알렉세이의 손아귀에 놀아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던 중.
“알렉세이 님!”
“뭐냐.”
“그, 아래쪽에 이상한 것들이···.”
추종자의 말이 채 끝나기 전.
알렉세이의 계산에 존재하지 않던 일이 일어났다. 고막을 찢을 듯이 울리는 격렬한 폭음. 화들짝 놀라 알렉세이를 비롯한 일당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쿠구구궁···!
베헤모스의 거체가 흔들렸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미처 파악을 마치기도 전에 기우뚱 지면이 오른쪽을 향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베헤모스가 쓰러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무슨···?!”
겨우 중심을 잡은 알렉세이.
그는 황당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아무래도 베헤모스가 공격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허!”
헛웃음이 터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베헤모스는 길이만 250미터에 달하는 초거대형 마족이다. 녀석에게 유효한 공격을 가하려면 적어도 마도공학 공성병기 정도는 가져와야 한다.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알렉세이는 몸을 날려 베헤모스 아래를 보았다. 그리고 경악할 만한 광경을 마주하고 말았다.
어딘가 낯익은 마도공학 병기.
벌써 몇 년도 전에 일선에서 사라진 걸로 알고 있던. 천무그룹의 마도공학 화포 신기전이었다.
“천무그룹···!”
알렉세이 로마노프.
그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이제야 다시 순조롭게 계획이 실행되는 중이었는데. 빌어먹을 천무그룹이 이번에도 또 다시 훼방을 놓으러 왔구나!’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알렉세이는 그 자리에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천무그룹이 대체 어떻게 베헤모스의 정보를 파악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의 판단은 빨랐다.
“전원 아르카임으로 돌아가라!”
어차피 베헤모스는 무적이다.
심장을 파괴하지 않는 이상.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부수며 돌진할 뿐. 지금 입은 상처도 금방 재생하고 일어날 수 있다.
‘심장만 보호하면 된다.’
그렇다면 무조건 이쪽이 유리하다.
외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베헤모스의 진격을 저지시키는 것뿐.
또한 베헤모스 체내에 기생하던 마족들도 슬슬 외부에서 활동할 시간이 되었다. 시간은 압도적으로 이쪽의 편이다.
베헤모스가 회복하면 끝이다.
놈들이 여기서 또 하나의 예상을 벗어난 수를 꺼내들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
드미트리 로마노프.
가문의 태상호법인 그는 지금 채면도 잊고 입을 벌리며 경악했다.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두 번이나 일어났다.
‘말도 안 돼.’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까지 던전이 변화했다는 선례는 없었다. 심지어 단순히 형태가 변형된 것도 아니고. 초거대 마족으로 변모하여 일어선다니.
듣도 보도 못한 일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방금 전까지는 전 세계 그 누구도 상상조차하지 못했던 일이다. 드미트리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기에···.
‘천무그룹의 정보력은 대체 얼마나 대단한 수준에 이르렀단 말인가!’
베헤모스가 쓰러지는 광경을 보고.
드미트리는 경악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척추에 찌르르한 감각이 내달렸다.
그는 어렵지 않게 그 감각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전율.
대체 언제 마지막으로 느껴본 것인지 모를 감각을 인식하며. 그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대단하군···.”
그러나 몇 초 지나지 않아.
조금씩 이성이 돌아옴과 동시에 그는 먼저 내부로 진입했던. 로마노프의 정예 헌터들로 이루어진 공략팀을 떠올렸다.
‘지금 정신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여기서 그들을 잃을 수는 없다.
“잠시 공격을 멈춰주시오!”
이 상황에 자존심을 부릴 순 없다.
태상호법이란 체면은 내려놓고 드미트리는 황급히 현우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아직 저 안에 우리 선발대가 있소!”
“알고 있습니다.”
“내가 잘못된 판단을 내렸지만. 그들은 단지 이 멍청한 늙은이의 명령에 따랐을 뿐! 아무런 죄가 없으니. 내 간곡히 부탁하겠소이다!”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내부로 진입한 헌터들은 무사할 겁니다. 저 마족이 깨어남과 동시에 밖으로 안전하게 워프 되었을 테니까요.”
“아직까지 라면···.”
“여기서 어영부영 하다간. 정말 걱정하시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단 이야기죠. 정신 차리고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으, 음.”
드미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못미더웠지만.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난 후에서야. 그는 주현우를 완벽하게 신뢰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뭘 해야겠소?”
“조금만 있으면 저 녀석의 몸에 기생하고 있던 마족들이 쏟아져 나올 겁니다. 로마노프 측은 거기에 대비해주시면 됩니다.”
“게이트 브레이크 현상과 비슷하겠군. 대기 중인 헌터들에게 최대한 빨리 방어 진형을 세우라고 하겠소.”
다행히 그의 판단은 빨랐다.
“그럼 여긴 부탁드리겠습니다.”
현우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할 생각이오?”
“녀석의 내부로 진입할 겁니다.”
“하지만 저기까지 올라갈 방법이 마땅치가 않을 텐데···.”
거대한 베헤모스의 몸체.
아르카임의 입구는 여전히 그 등에 위치하고 있다. 저기까지 올라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다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지금부터가···.
현우가 미리 준비해온 공략법이 빛을 발할 차례다.
첫 단추를 제대로 꿰었으니.
이제부턴 녀석들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계속해서 터트려줄 생각이었다.
“덕춘아.”
“쉭!”
품속에서 덕춘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요즘 들어 움직일 일이 별로 없었던 녀석이지만. 이번에야말로 이무기라는 이름의 진가를 발휘할 때였다.
현우의 뜻을 알아들은 걸까.
“쉬이익!”
녀석은 현우의 팔뚝을 물었다.
쭈욱 마나가 빨려 들어가는 감각. 현우는 인피니티 코어에서 비롯된 무한한 마나를 녀석의 몸으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덕춘이의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허어···.”
드미트리가 입을 떡 벌렸다.
순식간에 베헤모스의 3분의 1정도 크기로 거대해진 이무기. 덕춘이의 모습에 그는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무, 무운을 빌겠소.”
고개를 끄덕이고 이무기의 머리에 올라타는 현우. 드미트리 로마노프는 꽤나 오래전에 우연히 보았던 헐리우드산 영화 한 편을 떠올렸다.
거대한 고릴라와 괴수가 싸우는 영화.
‘···오래 살고 볼일인가?’
1970년 발생한 대전이 이후로.
로마노프의 태상호법 자리에 오를 때까지. 이렇게 놀라움의 연속이었던 날은 처음이었다.
***
한편···.
아르카임의 내부.
베헤모스의 체내에선 격렬한 사투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이 쓰레기 같은 배신자 놈들···!”
이반 블론스키.
오늘만 해도 벌써 두 번째.
그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상식이 부정되는 상황을 마주해야만 했다.
“흐흐! 그러니 줄을 잘 섰어야지!”
그는 저 녀석을 알고 있었다.
로마노프 가문의 혈족.
그러나 방계 중에서도 피가 옅어 권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놈이다.
아르카임의 입구라도 다시 확보하려던 공략팀의 앞에 녀석이 나타났을 때. 솔직히 금방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녀석의 힘은 예상 이상이었다.
대체 무슨 수로 힘을 불린 건지는 모르나.
나름 SSS급에 베테랑 헌터라고 자부하고 있던 이반 본인을 비롯. 로마노프의 최정예나 다름없는 공략팀원들이 속절없이 밀려나고 있었다.
‘위력만큼은 SSS급 헌터 이상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녀석의 기술의 완성도나 센스는 여전히 저질이다. 그러나 마나와 권능은 이반조차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했다.
“흐흐흐!”
절망스러운 상황.
녀석이 눈이 붉은 안광을 흩뿌렸다. 기이한 상황이었지만 거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죄다 얼려서 얼음 파편으로 만들어주마. 특히 재수 없었던 이반 네놈은 팔다리부터 얼려 부숴줄 테니. 기대하고 있어도 좋다!”
호기롭게 외치며 양손바닥을 뻗는 녀석.
빙백신장(氷白神掌).
로마노프 가문의 상징과도 같은 스킬이나. 방계의 덜떨어진 권능으로는 사용할 수조차 없는 기술이다.
‘이런 미친···!’
극한의 기운이 전진한다.
이반은 재빨리 마나를 끌어올려 호신강기를 형성했다. 여기서 막지 못하면 그의 공략팀은 전멸한다.
‘막아낼 수 있나?’
예측은 부정적이다.
한 번은 어찌 막는다 해도. 완벽하게 막아내지 못하는 이상 소용없다. 결국 잠깐의 시간을 버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외의 방법은 없다.
호신강기가 요동친다.
타오르던 강기가 크게 흔들리더니. 극한기와 맞닿은 부분부터 얼어붙기 시작했다. 상대의 호신강기를 얼리는 수준의 극한기···.
전대 가주인 창성 미하일 로마노프.
적어도 그의 수준이 되어야 가능할 정도의 기예다. 저런 방계의 애송이 따위가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닐 텐데.
“크으으!”
사고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호신강기가 대부분 얼어붙었다.
이젠 그의 피부 위로 서리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면 불과 몇 초 후엔 전신이 얼어붙을 판이었다.
‘적어도 지원이 올 때까진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그게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선발대인 그의 역할은 그뿐이다. 그렇다면 오직 한 가지 목적에만 의식을 두고 이를 악물어 버틸 뿐.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순간부터.
살을 애는 것만 같던 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게슴츠레하게 눈을 떴다.
그리고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전진하던 한기가···.
모조리 불타 녹아 사라지고 있었다.
“아···.”
이반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뜻밖의 인물이 서 있었다.
“···천무그룹의 잠룡!”
“다행이 늦진 않았군요.”
현우는 시선을 옮겼다.
상처를 입고 쓰러진 헌터가 여럿. 그리고 마나가 고갈되어 달뜬 숨을 몰아쉬고 있는 이들도 몇 보였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현우는 짧게 말했다.
그러나 그 한 마디엔 절망으로 치우쳐 있던 주위의 분위기를 충분히 움직일 만한 힘이 있었다.
최초의 바벨 공략자.
천무그룹의 잠룡.
그라면 이 불합리한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무언의 희망이 공략팀 사이에서 퍼져나갔다.
“여기부턴 제가 맡겠습니다.”
현우는 아공간 포켓에서 포션 몇 개를 꺼내 이반에게 건넸다. 모두 한 눈에 봐도 값이 꽤나 나갈 법한 상등품이었다.
“상처를 돌보고 조금 쉬면서 체력을 회복하고 계시죠. 이 녀석들을 쓸어버리고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으니까요.”
방계의 배신자를 향해 돌아서는 현우.
그의 전신에서 격렬한 푸른 불꽃이 발화하며 주위에 맴돌던 한기를 걷어냈다.
‘···끝내주게 멋진 등장이군.’
이반 블론스키.
그는 멍하니 현우의 등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