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83
83화 페이스 체인저(1)
“배신자라니···.”
이와카미 미코.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금 뜻밖의 이야기군요.”
“솔직히 저는 미코님이 짐작하고 계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게 제안한 호위 임무도 그것 때문 아니었습니까?”
이와카미 가문의 계승제.
직접 와보기 전까진 추측이었지만. 이렇게 방문하고 나니. 이젠 확실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문제는 내부에서 터진다.’
혈마인의 무위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이와카미 가문 본가 전체는 교토 주위에 둘러져 있는 것보다. 훨씬 섬세한 결계로 보호받고 있다.
더구나 계승제라는 특수한 기간.
이와카미 본가의 방비는 현우라도 페일 라이더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뚫기 어려울 정도로 단단했다.
그러니 계승제까지 본가에 남아 있는 인물 가운데. 혈겁을 일으킬 예정인 혈마인이 섞여 있을 것이다. 이건 이제 거의 확신에 가까운 추측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제가 가문 내부에 배신자가 존재할 거라고 짐작했을 거라니. 주현우님께선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셨죠?”
미코의 질문.
현우는 어깨를 으쓱 추켜올렸다.
“이와카미 가문의 계승제가 아주 중요한 의식이라고. 방금 미코님이 제게 설명하지 않으셨습니까.”
“분명히 그랬죠.”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의식에서도. 가장 중요한 무녀 후계자의 호위를 외부인에게 맞길 생각을 하시는 것부터가 꽤나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게 현우가 확신한 이유였다.
이와카미 가문 내부에 미코, 그녀조차 정확히 특정하지 못한 배신자가 있다. 그게 아니면 특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존재이거나.
그녀가 보기에 가능성은 둘이지만.
현우가 보기에 가능성은 하나뿐이다.
‘이와카미 가문의 배신자. 바로 그 녀석이 혈마인의 정체다. 그리고 전생에 일어났던 혈겁은 녀석의 본래 의도가 아니었을 확률이 높아.’
혈겁 이후 발견된 혈마인의 시체.
만약 전생이었다면 그게 녀석의 정체에 가장 근접한 단서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직 혈겁이 벌어지기 전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진 않다.
“허면, 주현우님께선 벌써 저희 가문 내부의 배신자가 누구인지.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셨단 말씀입니까?”
“그렇게 해드릴 수 있다는 겁니다.”
누군가 한 명은 배신자다.
그리고 현우에겐 그 배신자를 솎아낼 수 있는 정보와 기술이 있다.
길어도 하루 정도면 이와카미 가문의 본가를 모두 둘러보고 배신자가 누구인지 파악 가능하다.
‘가장 의심스러운 건···.’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실종자.
혈겁에서 확실하게 죽은 이들은 제외하고. 그들이 배신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블랙 가문의 개입을 확신하고 있는 만큼···.
‘실종자 중에 블랙 가문의 혈족이 있을 확률이 굉장히 높다. 그것도 제대로 된 섭혼술을 사용할 정도로 뛰어난 녀석이.’
블랙 가문의 실력자는 파악하고 있다.
그러니 일단 녀석을 찾아내기만 한다면. 그 후에 대응하는 것은 그리 복잡한 일이 아니다.
“확실한 증거와 정체까진 이 자리에서 밝힐 수 없지만. 적어도 미코님께서 납득할 만한 방법 정도는 말씀드리도록 하죠.”
“···일단 들어보겠어요.”
“타나토스.”
현우의 곁에 검은 구체가 떠올랐다.
타나토스의 홀로그램이었다.
[예, 마스터.]“너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드려.”
[그럼 간략히 저, 타나토스와 비공정 페일 라이더에 대해. 마스터가 요구하신 대로 설명해드리겠습니다.]빙글, 공중에서 회전하는 홀로그램.
이와카미 미코는 깜짝 놀란 듯이 두 눈을 깜박였다.
“이, 이건···?”
[제 이름은 타나토스. 마스터께 귀속된 비공정 페일 라이더의 인공의식입니다. 그리고 방금 마스터께서 말씀하신 ‘방법’은 바로 저를 이용하는 겁니다.]타나토스의 설명은 간단했다.
자신의 기능을 사용하여 저택 내부의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분석할 수 있다는 이야기.
그러나 이와카미 미코는 설명을 들은 후에도.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방법을 전부 말씀드린 건 아닙니다. 이건 그냥 미코님께서 납득하실 만한 이유를 하나 더해드린 것뿐이죠.”
둘러대기 귀찮기도 하고.
사실대로 이야기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만약 여기서 제가 가진 카드를 전부 보여드리면. 그건 거래가 아니게 되지 않겠습니까.”
“확실히 그건 그렇군요.”
미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호위 이야기는 이후에 나누기로 했지만. 이것도 어떻게 보면 미코님이 제안하신 것처럼. 호위 임무의 일부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네?”
“결국, 호위는 위험 요소를 배재하기 위한 역할 아닙니까. 지금 제가 미코님께 제안한 것도. 이와카미 가문 내부의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길 중에 하나니까요.”
현우는 씨익 웃어보였다.
‘내 호위는 조금 색다를 거다.’
호위의 궁극적인 임무.
그건 대상을 위협으로부터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협엔 잠재적인 것과 가시적인 것. 두 가지 모두가 포함될 테고 말이다.
하지만 현우에겐···.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위협 역시도. 이미 알고 있는 가시적 위협에 해당했다. 또한 그걸 막을 방법 역시 가지고 있다.
“늦어도 내일까지는 이와카미 가문의 배신자를 찾아드리죠. 그 후에 처분은 직접 정하시면 됩니다.”
진정한 호위는 미리 위험을 없애는 것.
이와카미 가문의 혈마인.
계승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부터. 현우는 녀석의 존재를 이와카미 가문에서 지워버릴 생각이었다.
***
혈마인은 내부에 있다.
그게 바로 현우가 내린 결론이었고.
이젠 그 결론이 사실이란 것만 증명하면 끝이다.
“흐음···.”
현우는 턱을 매만졌다.
이와카미 본가를 한 바퀴 둘러본 결과. 특별히 눈에 띄는 사람은 없다. 겉보기에는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어선 안 되므로. 여기선 타나토스의 분석 능력을 시험해볼 차례였다.
[마스터의 뜻에 따라 이와카미 가문 저택 전체를 탐색 범위로 지정. 내부의 모든 인간을 스캔하겠습니다.]아니나 다를까.
타나토스가 실행한 전방위 스캔이 끝난 순간. 녀석의 입에선 현우가 기다리고 있던 소식이 들려왔다.
“이야기 해봐.”
[저기, 이 사내는 이와카미 가문의 혈족이 아닙니다. 그에게선 이와카미 가문의 피에 흐르는 권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현우의 시선이 타나토스가 허공에 생성한 홀로그램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엔 현우가 알고 있는 사내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이와카미 타카유키.’
현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녀인 미코 한 사람을 제외하면. 이와카미 가문에서 가장 큰 권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신주(神主) 칸누시.
동시에 지금까지 갖고 있던 의구심과 손에 넣은 정보가. 마치 톱니바퀴처럼 머릿속에서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혈마인이 일으킨 혈겁에서 살아남았던. 몇 안 되는 이와카미 가문의 생존자들의 증언은 모두 흡사했다.’
혈마인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했으며.
이와카미 가문 본가의 결계가 해제되고 겨우 도망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게 생존자 전원의 공통적인 증언이었다.
그리고 이와카미 타카유키.
그 역시도 결국 시체를 확인하지 못했던 혈겁의 실종자 중에 하나였다.
다만 그가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은 이유.
그건 단순히 이와카미 가문의 신전(神殿)에서 그의 것으로 추정되는 치사량 급의 혈흔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정답이 나왔군.’
이른바 혈마인으로 불렸던···.
이와카미 가문의 혈겁을 일으킨 장본인. 전생에선 끝끝내 그 정체를 확실하게 밝히지 못한 재앙의 근원.
막상 마주한 진실은 놀라웠다.
아니, 놀랍다기보단 흥미롭다는 쪽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까.
현우는 저 노인.
그러니까 이와카미 가문의 칸누시 지위를 가진 이와카미 타카유키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눈앞의 정보와 몇 가지 추측.
그리고 타나토스의 분석까지 더해.
현우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저 사내 이와카미 타카유키는 다른 이들이 알고 있는 진짜 ‘이와카미 타카유키’가 아니다.
‘누군가 이와카미 타카유키로 위장해. 이와카미 가문을 전복시키려고 하고 있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진짜 타카유키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만에 하나 그가 진짜라면, 타나토스가 그를 이와카미 가문의 혈족이 아니란 분석을 내놓을 리 없을 테니까.
그리고···.
현우는 이와카미 타카유키를 흉내 내는 녀석의 진짜 정체를 어렵지 않게 유추해낼 수 있었다.
상대의 외모는 물론이거니와.
혈통 고유의 권능까지 완벽하게 흉내 내는 것이 가능한 이가 딱 한 명. 전생의 기억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페이스 체인저.’
상대의 스킬과 권능을 모방하는 ‘카피캣’ 스킬을 가진 블랙 가문의 혈족.
또한, 네크로맨서를 포함한 몇몇 인물과 함께. 블랙 가문의 사흉(四凶)이라 불리는 강자 중에 하나.
전생에서도 상당히 까다로운 상대였지만.
지금의 현우는 그때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즐겁게 이 자리에서 웃음이라도 터트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만나면 반갑지.’
페이스 체인저.
굉장히 까다로운 상대긴 했으나. 전생에서 상대했던 녀석의 전술은 언제나 한 가지 맹점을 가지고 있었다.
맹점은 심플했다.
바로 정체를 먼저 파악 당하면. 오히려 녀석 쪽이 불리해진다는 것.
서울 방어전 초반엔 신출귀몰한 페이스 체인저의 전략에 몇 번 당하기도 했지만. 결국에 가짜는 진짜와 다른 점이 드러나기 마련.
‘녀석은 세 번째 전투에서 김태훈 실장을 카피했지만. 주영미의 예리한 감각만큼은 속이지 못했고. 그대로 전신의 뼈가 부러져 죽었다.’
평소 관찰력이 뛰어나고.
관계가 가까운 사람이라면 충분히 변화를 인지할 수 있다.
물론 그때 주영미 정도를 제외하면.
그의 변장을 간파해낸 이가 없었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녀석이 어떤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는지. 이렇게 사전에 파악하는 데 성공했으므로. 녀석은 다 잡은 고기나 다름없었다.
“타나토스.”
“저 녀석을 집중 추적할 수 있어?”
[물론입니다.]바로 여기부터···.
주현우라는 변수를 통해.
녀석의 계획과 미래는 착실하고 완벽하게 어긋나기 시작할 것이다.
***
다음 날.
이와카미 가문 본가의 본채. 그곳에 가문의 중역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무녀 이와카미 미코의 호출 때문이었다.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그녀가 대뜸 꺼낸 논제가 굉장히 민감한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군. 외부인에게 차기 무녀인 하나코님의 호위를 의뢰하겠다니···.”
이와카미 타카유키.
그는 불쾌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물론, 혼잣말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대놓고 중얼거린 말이었으니.
당연히 미코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녀는 평온한 표정으로 타카유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고요해진 가운데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칸누시께선 불만이 있으신가봅니다.”
“그렇소이다.”
타카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와카미 가문의 가주는 대외적으로는 무녀. 그러니 이 자리에서 결정권을 가진 것은 이와카미 미코다.
“제 딸아이의 호위를 결정하는 자리에요.”
“하나코 아가씨께선 미코님의 따님이기도 하지만. 그보단 차기 무녀 후보라는 직위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오.”
그러나 타카유키는 물러나지 않았다.
외부인이 개입할 수록. 그가 계승제에서 하나코의 몸을 차지할 계획엔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변수는 가능한 통제해야 한다.
심지어 그 변수가 천무그룹의 주현우라면. 더더욱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연에 차단하는 편이 안전하리라.
“이와카미 가문의 칸누시로써 외인에게 아가씨의 호위를 맞기겠단 판단엔 동의할 수 없소. 차라리 내가 직접 아가씨를 호위하는 편이 좋을 거요.”
“그리 해주신다면 마음이 놓이겠지만. 칸누시께선 이번 계승제를 주관하시는 분인데. 어찌 그런 일을 하시겠습니까.”
고개를 젓는 미코.
그녀는 곧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또한 오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안건은 호위에 대한 것뿐만이 아닙니다. 더욱 중요한 이야기를 먼저 끝내도록 하죠.”
“···더 중요한 이야기?”
타카유키가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미코는 대답 대신. 곁에서 대기하고 있던 종자를 향해 가볍게 고갯짓을 했다.
드르륵─
본채의 미닫이문이 열리고.
기다리고 있던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정장.
그리고 어깨에 수놓인 청룡 문양. 아무리 보는 눈이 없는 자라도. 그가 천무그룹의 혈족임을 단번에 알아볼 법한 차림새.
“실례하겠습니다.”
바로 주현우였다.
그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타카유키는 홱하고 미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찌 가문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자리에 저런 외인을 들이신단 말이오!”
“안 됩니까?”
대답은 현우에게서 나왔다.
“미코님이 방금 말씀하신 중요한 이야기. 그게 바로 제가 이 자리에서 해결해드릴 문제라. 저 없이는 진행할 수 없을 텐데요.”
“그게 무슨···.”
당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
타카유키뿐만 아니라 가문의 중역들은 하나같이 현우를 의아한 시선으로 보았다. 그 시선 속엔 아주 미약하지만. 적의가 서려 있기도 했다.
현우는 지금 자신에게 시선을 보내는 이들을 모두 기억에 새겼다. 적의가 서려 있는 녀석들은 잠재적인 적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이중에 한 명.”
현우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배신자가 있습니다.”
동시에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배신자라니!”
“그건 천무그룹의 의견이오?”
“미코님, 이건 아무리 히로시 도련님의 은인이라도. 쉽게 넘길 수 없는 무례한 발언입니다!”
현우는 소란이 잦아들길 기다렸다.
침묵은 가장 좋은 무기다.
현우가 그대로 입을 다물어버리자. 멋대로 웅성이던 이들의 말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주위가 고요해지고 나서야.
현우의 입술이 다시 떨어졌다.
“저는 확신이 있는 일에 대해선. 가급적 질질 끌지 않는 편이라. 이 자리에서 확실히 의심할 여지를 없애드리죠.”
“의심할 여지라니···.”
이와카미 타카유키.
뭐라 말을 이어가려던 그의 시선이 현우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일순 현우의 신형이 흔들렸다. 깜짝 놀라며 그 자리에서 일어난 타카유키. 그의 어깨 부근에 서늘한 감촉이 닿아 있었다.
타카유키는 흠칫 고개를 돌렸다.
현우가 당황한 그를 향해 낮게 속삭였다.
“···네가 배신자다. 페이스 체인저.”
이와카미 타카유키···.
아니, 페이스 체인저의 뺨이 움찔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