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99
99화 뇌제(1)
성대한 환영식은 끝났다.
티폰의 입장에선 조금 이르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녀석을 이 세계에서 퇴장 시킬 차례였다.
쉬이익─
페일 라이더의 탑승구가 열렸고.
그 너머로 열풍이 쏟아져 들어왔다. 현우는 화산의 열기를 정면에서 버티며. 천천히 비공정의 외부에 섰다.
‘여유가 없으니. 빠르게 끝낸다.’
궁니르를 들어 올리자.
코어에서 마나가 뭉텅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푸른 번갯불이 궁니르를 휘감으며 타올랐다.
파츠츠츠!
보기만 해도 위력적인 궁니르를 손에 쥔 채. 현우는 한 가지의 아이템을 추가로 몸에 둘렀다.
바로, 프레이야의 룬 망토.
사용자에게 은신과 능력 향상을 제공하는 신화 등급의 아티팩트였다.
‘이곳에선 해가 질 필요도 없어.’
화산으로 인해 온통 검은 구름으로 뒤덮인 환경. 당연하게도 지금 시칠리아 전역은 햇빛이 들지 않는 탓에, 낮이라도 한밤처럼 어두운 상황이다.
이윽고···.
현우의 손을 떠난 궁니르가 번개와 같은 속도로 티폰을 향해 날아갔다.
‘뿔이 박살난 틈을 노린다.’
그 결과를 믿어 의심치 않고.
현우는 뒤이어 허공을 향해 몸을 던졌다.
***
구속되어 있는 티폰.
주어진 여유는 그리 많지 않다.
선두에 서 있던 토르켈만 해도.
온몸은 물론이고, 이마에 핏줄이 돋아날 정도로 젖 먹던 힘까지 짜내고 있었다. 다른 헌터들의 상황이야 말 할 것도 없었다.
“끄으으,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 거야!”
누군가 볼멘소리를 내뱉은 그 순간.
하늘에서 푸른 섬광이 번뜩였다. 그리고 기다란 궤적을 그리며 티폰의 머리통에 작렬하는 뇌전.
뻐어엉─!
터져 나온 격렬한 푸른 뇌전과 함께.
파편이 되어 허공에 비산하는 한 쌍의 뿔. 녀석은 머리를 크게 흔들더니. 이내 지면을 향해 천천히 무너졌다.
“오오···!”
헌터들 사이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일순 희망이라는 감정이 그들의 주위로 퍼져나가는 분위기. 토르켈 역시, 잠시나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쓰러진 티폰의 상태를 살폈다.
[크으오오···!]그러나 녀석은 죽지 않았다.
놈이 고통에 몸을 비틀자. 헌터들이 쥐고 있던 십인추의 사슬이 격하게 요동쳤다. 그제야 이들은 퍼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직 살아 있다!”
“사, 사슬을 놓지 마라!”
당황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작 뿔을 부순 것만으론 부족하다.
녀석을 완전히 죽이기 위해선, 반드시 심장을 부숴야만 한다.
그걸 이들이 알 리가 만무했음으로 희망은 다시 금방, 정반대의 감정인 절망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러나···.
현우만큼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뿔을 파괴한 것 자체가.
놈을 한 순간이라도 제대로 자빠뜨리기 위함이었으니.
‘양쪽 가슴에 위치한 두 개의 심장. 그걸 신성, 혹은 번개 속성의 기술을 사용해서 동시에 파괴해야 한다.’
심장 두 개를 동시에 파괴.
그건 몸이 두 개가 아닌 이상. 아무리 현우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해볼 만은 했다.
창천십팔무(蒼天十八武)
제10개조식 천뢰신(天雷神)
전신의 기혈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이윽고 코어의 마나가 쭈욱 빨려 나가며. 신체 주변으로 푸른 우레불꽃이 폭사하듯 퍼져나왔다.
그리고 곧.
우레불꽃은 일점에 모여 응축하며, 하나의 거대한 형상으로 화한다.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뇌신의 형상이 허공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었다.
고오오오─!
굵직한 번갯불이 주먹을 향해 모여들었고. 들끓는 열기가 주위의 공기를 일그러뜨리며. 아른거리는 아지랑이를 만들어냈다.
“저건··· 마법인가?”
토르의 형제단 부길드마스터.
에릭 보른이 어처구니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비슷한 생각을 떠올린 것은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내가 볼 때는 마법은 확실히 아니지만. 설령 마법이라 우긴다 해도 믿을 만한 기술인 것 같소.”
토르켈이 혀를 내둘렀다.
이렇듯 압도적인 무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경외심을 갖게 하는 법.
교황청 소속의 헌터들은 물론이고. 이미 현우에 대해 알고 있던 토르의 형제단 또한, 입을 떡 벌리고 그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놀라운 광경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창천십팔무(蒼天十八武)
제7개조식 폭열뇌룡조(爆熱雷龍爪)
제7초식 열화지.
본래 지법(指法)에 해당하는 열화지를, 조법(爪法)으로 재해석하여. 오직 현우만 사용할 수 있는 우레불꽃과 결합한 새로운 개조 초식.
검지와 중지.
그리고 약지와 소지를 붙여. 용의 발톱과 같은 모양새를 취한 후. 현우는 떨어지던 힘을 그대로 더해. 티폰의 오른쪽 가슴을 향해 뻗어냈다.
“쉭!”
그 순간, 덕춘이가 구속을 풀며 작아졌고.
녀석의 전신이 무방비하게 훤히 드러났다.
그와 동시에···.
천뢰신의 형상이 움직였다.
퍼억─!
녀석의 살덩이와 뼈를 파고든 폭열뇌룡조. 이윽고 천뢰신의 주먹 또한, 왼쪽 가슴에 작렬하며 두 개의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됐다!’
이거라면 확실히.
심장까지 도달할 수 있는 위력이다.
[캬아악─.]티폰의 입에서 비명과 푸른색을 띄는 피가 왈칵 터져 나왔고. 이번에야말로 녀석을 확실히 쓰러뜨렸다는 예감에, 헌터들 사이에 희색이 돌았다.
그런데.
막상 두 개의 심장을 파괴하는 순간.
현우는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그건 이성과 통찰에 기반한 판단이라기 보단. 거의 동물적인 직감에 가까웠다.
지난 생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필사적으로 서울을 방어하기 위한 사투를 벌이던 시기. 현우는 이 직감으로 몇 번이나 목숨을 건진 기억이 있었다.
현우가 그 직감에 따라 몸을 뒤로 빼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이번에도 그의 직감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퍼퍽─!
피륙이 들끓는 소리.
현우는 왠지 모를 기시감을 느꼈다. 이건 일전 아론 크루거가 사용했던, 부패한 피의 결정의 효과와 비슷한 현상이었다.
‘···이것도 강화의 효과인가?’
변화는 빨랐다.
현우가 미처 자세를 다잡기도 전에. 녀석은 피륙을 꿈틀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십인추가 온몸에 휘감겨 있었으나.
그건 실오라기 따위에 불과했다.
녀석이 몸을 움직이자 십인추의 사슬과 함께. 헌터들이 그대로 녀석을 향해. 힘없이 끌려가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
“힘을 빼지 마라! 녀석을 잡아 둬!”
“안 돼! 그냥 놔버려!”
그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완벽히 부활한 티폰.
녀석이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현우를 향해 거대한 주먹을 휘둘렀다.
차라리 브레스 따위였다면 좋았을 것을. 현우는 뒤로 물러나며 충격에 대비했지만, 애초에 서로의 크기부터가 비교도 되지 않는다.
압도적인 질량이 현우를 덮쳤고.
기세를 전부 흘리지 못한 현우는 그대로 부웅 뒤로 날아가고 말았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그 찰나의 순간에도 뒤로 뛰어 충격을 줄였다는 걸까.
“주현우님!”
“현우 형!”
류한나와 주건우.
티폰과 함께 출현한 2차 웨이브의 마족을 상대하고 있던 두 사람이 동시에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그런데 두 사람은, 현우의 곁에서 우뚝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저, 저게 대체···.”
주건우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
두 쌍의 날개.
그리고 두 쌍의 뿔과 네 개의 팔까지. 모든 것이 두 배로 불어나기라도 한 것 같은 티폰이 그 자리에 있었다.
***
“아아···.”
성녀 아그네스 그레고리오.
그녀는 두 손을 맞잡고 탄식을 흘렸다.
예지에서 보았던 그대로다.
주현우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티폰은 이리 건재했으며. 이제는 그 아가리를 이쪽을 향해 들이밀고 있다.
이대로라면···.
그녀의 예지대로 무수한 헌터들이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예지를 바꾸어 보려 아무리 분투해보았자. 결국 이런 결말에 도달한다.
자그마한 희망의 불꽃.
짙은 어둠 속에서 밝아오던 불꽃이 꺼진 후엔, 본래 알던 어둠이라도 더욱 짙게 보이기 마련이다.
‘역시, 예지는···.’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나.
아그네스는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았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당장 가능한 것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겪었던 것과 다를 바도 없다. 막을 수 없는 예지 앞에서. 그녀는 항상 자신이 가능한 일을 수행할 뿐이었다.
그게···.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니까.
“다행히 심각한 상처는 아니군요.”
현우의 곁으로 빠르게 다가온 아그네스.
그녀는 그의 상태를 살피고 난 후에야. 겨우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 대처할 생각을 하시다니. 주현우님께선 참으로 뛰어난 감각을 보유한 것 같습니다.”
“저도 가끔은 제가 놀랍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웃어 보이는 현우.
아그네스는 그를 보며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건 그녀로서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일종의 희망과도 같은 감정이었다.
‘설마···.’
아직, 주현우에겐 방법이 있는 걸까.
그녀의 가슴 속에 몽글몽글한 무언가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잠룡! 괜찮소?”
그때, 토르켈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그는 티폰이 다시 일어서는 순간 까지. 십인추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굵은 손아귀가 다 터져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예, 괜찮은 것 같습니다.”
현우는 주먹을 몇 번 쥐락펴락 했다.
티폰이 휘두른 주먹에 맞긴 했지만. 지면에 부딪히기 전에 힘을 흩어낸 덕분에 거의 멀쩡했다.
“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어느새 몸을 모두 일으킨 티폰. 녀석은 방금 전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흉포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아무래도 녀석이 광폭화 상태에 들어간 모양이오. 처음 계획했던 그 아티팩트도 전부 무용지물이 되었고.”
토르켈이 그리 말하며 썬더브링어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 그의 표정에 전보다 훨씬 강한 긴장이 서렸다.
보스의 광폭화.
지금까지 게이트 브레이크 현상에서 그런 기믹이 목격된 바는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전례 없는 일은 일어나는 법.
그리고 토르켈 또한.
당장 중요한 것은 눈앞에 벌어진 일이지. 전례 따위를 따져봐야 바뀌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요, 단순한 광폭화가 아닙니다.”
그러나 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대체···.”
“광폭화라면 신체 능력의 향상만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녀석이 변하는 순간에 품고 있던 마나 자체가 거대하게 불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게 정말이오?”
토르켈의 얼굴이 굳었다.
단순 광폭화라고 해도 절망적이다. 그런데 심지어 광폭화가 아니라 품고 있는 마나가 불어났다니.
‘마족이··· 성장이라도 했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토르켈은 침음성을 흘리고 말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제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상황은, 토르켈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고 심각했다.
‘이건, 엄밀히 따지자면 아론 크루거가 사용했던 부패의 피와 비슷하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만약 이 자리에 현우가 없었다면. 이대로 전멸을 면치 못했을 테지만. 지금은 바로 그라는 최고의 변수가 있지 않은가.
“후우···.”
현우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마치 그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티폰이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붉은 눈동자를 현우에게 고정했다.
“이제 어찌해야겠소?”
“뭐···.”
흘끗, 현우의 시선이 아그네스를 향했다.
“미래를 바꿔봐야죠.”
혹자가 말하였다면 황망한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을 이야기.
그러나 그걸 말한 사람이 현우가 되니. 아그네스로서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방법이 있습니까.”
“예.”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살에 가까운···.
아니, 자살이라고 밖엔 표현할 말이 없는 방법이 되겠지만. 성녀가 사용하는 치유의 권능만 있다면, 이야기는 180도 달라진다.
‘두 번의 반전은 만들지 않는다.’
블랙 가문이 손을 쓴 이상.
여기서 또 예상외의 뭔가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반전을 경험하는 것은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재생이든 부활이든 모든 것이 의미 없게 만들어 버리면 그만이다. 일격으로 티폰을 그 자리에서 소멸시키는 것···.
당연히 쉽진 않은 도박이지만.
한 없이 승률을 높일 방법은 있었다.
“다만, 성녀님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제 도움 말씀이십니까?”
“오직 성녀님만이 해주실 수 있는 겁니다.”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반드시 성녀만이 지금 현우를 도울 수 있다. 너무 무모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무모하지 않고선 안 된다.
‘궁니르의 활용법은 적을 공격하는 것만이 아니다.’
성녀의 힘이 더해지기만 한다면.
그녀가 예지한 미래를 뛰어 넘어. 여기서 강화된 티폰을 쓰러트리는 것이 분명 가능할 거란 확신이 있었다.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고. 지금부터 제가 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회복시켜 주시면 됩니다.”
“···예?”
이윽고.
대답 대신 이어진 현우의 행동은···.
그의 곁에 서 있던 아그네스는 물론이고, 주위의 모두에게 경악을 선사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
‘뭘 하려는 거지?’
버서커.
격전지와 멀리 떨어진 성 아가타 대성당의 첨탑 위에서. 은밀히 전투를 관찰하고 있던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뭣?”
푸욱!
티폰의 뿔을 파괴할 때 사용했던 아티팩트. 주현우가 그 날카로운 창신으로 자신의 몸을 관통하듯 찔러버린 것.
“저런 미친놈이···.”
버서커는 튀어나온 말을 삼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그저 공포에 미쳐 자결이라도 하려는 것으로 밖엔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대체 어떤 미친놈이.
눈앞에 적을 두고 저딴 자해를 하겠는가.
그런데 그 결과는···.
경악을 넘어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인간이 맞긴 한 건가?”
신성력이 깃든 푸른 뇌전.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도 전신의 털이 쭈뼛 설 정도로 방대한 힘이. 주현우의 전신을 뒤덮으며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