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Instruction Manual RAW novel - chapter (1603)
회귀자 사용설명서 1603화
중원무림빙의(8)
그렇게 시바 8년이 흘렀다.
8주가 아니라 8년 말이다.
1년도 아니고, 2년도 아니고, 3년 도 아니고 시바 무려 8년이었다.
‘모용가주 이 새끼… 진짜 독하다 독해.’
무려 8년 동안이나 연락 한 통 없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래도 한 1년 차에는 슬슬 연락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었지만, 이를 악물고 지 딸을 모르는 척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손자까지 딸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망할 집구석이자너.’
물론 남 말할 처지가 아니기는 하다. 모르긴 몰라도 저쪽에서도 모용화연의 독기에 혀를 내두르고 있을 테니까.
그간 세가 안에서만 지낸 철부지가 정말로 바깥에서 8년이나 버틸 거라고는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다음 달에는 돌아오겠지, 다음 해에는 돌아오겠지, 그다음 해에는 세가를 찾아오겠지 생각한 것이 어느새 8년이나 흘러 버렸다.
‘이게 다 시바 모용율이랑 고라버니 이 새끼 때문이자너.’
템플러 젠과 꿀꿀이 죽을 먹었던 환경이었다면 이쪽에서 먼저 구조신호를 보냈겠지만 은근히 버틸 만했었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집 밖으로 아무것도 없이 나간 모용화란을 내버려 둘 수 없었던 두 오라버니가 이쪽을 원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지금 머무르고 있는 집도 제법 크다. 심 씨 세 자매와 곰팡내가 나는 집에서 생활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곰팡내가 나는 집을 찾아 들어가기는 했지만 집에 입주하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 이사를 종용하던 녀석들 때문에 꽤 커다란 집으로 옮겨 갈 수 있었으니까.
심지어 곳간이 비워진 적도 없다. 심 씨 세 자매는 내게 말을 아끼는 것 같았지만 고라버니가 주기적으로 남몰래 찾아와 식료품 같은 것들을 채워 놓은 것이 분명.
뭔 시바 우렁신랑도 아니고 나와 직접적으로 마주치는 것은 최대한 지양하고 있다.
그나마 꼬물이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겼다 치면 갑자기 튀어나와 의원을 데리고 온다거나 하는 종류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식사라도 하고 가라고 말하면 한사코 거절하면 예의 그 사람 좋은 고릴라 미소를 선보이며 사라진다.
모용율도 고라버니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늘에서 활동하는 고라버니와는 다르게 모용율 이 새끼는 아예 대놓고 모용화연의 삶에 끼어드는 중. 뭐에 그렇게 사사건건 간섭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거의 반 주기적으로 여기에 출근하는 느낌이었는데, 녀석 덕분에 동네에 안 좋은 소문이 돌았을 정도였다.
‘사회생활 하기 힘들자너.’
정체 모를 권력자의 정부가 이사 왔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
“…….”
그야 그럴 만도 했다. 이쪽이 모용화연이었다는 사실은 철저하게 비밀로 유지되고 있었으니까.
심양에서 엄청 멀리 떨어진 요녕의 구석으로 자리를 잡았던지라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용세가 같은 것들은 관심도 없다.
애초에 얼굴을 드러내고 다녀도 이쪽이 모용이라는 걸 알아채는 사람도 없다.
당연히 모용세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도 모르고 있었으니 이 동네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들어온 외지인이 이상해 보일 것이 뻔했다.
“…….”
어느 날 갑자기 커다란 장원을 사서 입주한 아이 딸린 미혼모, 이상하게 부유한데, 곳간도 넘쳐나고, 입고 있는 옷들도 항상 고급스럽게 보이는 상황.
심지어 시비도 세 명을 거느리고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귀공자 같은 남자가 항상 장원을 들락날락거린다.
‘솔직히 누가 봐도 수상하기는 하자너.’
아무리 생각해도 모용세가의 금지옥엽이 홧김에 덜컥 아이를 임신하고 가주와 싸워 스스로 집을 나섰다는 것보다는 더욱 설득력 있다.
덕분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동네에서의 평판은 최악을 달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름 모를 권력자가 첩으로도 들이지 않을 정도였으니 무언가 안 좋은 과거가 있다고 멋대로 추측하는 놈들도 있었고, 애초에 폐쇄적인 동네의 분위기가 그런 소문들을 부채질하는 중.
이 상황을 타개하려고 하기는 했었지만 아예 지네들끼리 똘똘 뭉쳐서 이쪽을 배척했던 터라 그 사이에 끼기도 쉽지가 않다.
물론 구태여 이 집단에서까지 아득바득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는 것도 가만히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동네에서 시바 소문이 도는 게 중요한 게 아니자너.’
어차피 언젠가 떠날 장소에서의 평판보다는 중원무림의 상황과 시바. 혹시라도 표류하고 있을 후발대를 찾는 데 집중해야 했으니 말이다.
진 군사가 이쪽을 찾지 않고 있었으니 억지로라도 내 쪽에서 일을 진행 시켜야 했다.
“…….”
“…….”
‘다시 한번 생각해도 진짜 어처구니가 없네. 시바.’
그래, 어처구니가 없다. 모용가주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진 군사 이 새끼가 이쪽을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게 당황스럽다.
폐관수련인가 뭔가 들어간 녀석은 동굴 속에 처박혀 있다 나온 게 얼마 전이다.
“아씨… 진가의 대공자께서 폐관수련을 끝내셨다고 합니다.”
‘소문 한번 느리네.’
정확히 말하면 일주일 전에 튀어 나왔다. 심 씨 자매들은 이 소식을 이제 전해 들은 것처럼 보였지만 망원경으로 녀석을 응시하고 있었던 이쪽은 이미 녀석이 튀어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들, 들리는 것으로는 사람이 아주 달라지셨다고 합니다. 거기에 젊은 나이에 화… 화경에 이르셨다고 하니 심양진가에 경사가 났다고….”
‘무공 배우고, 망나니물 찍느라 신났지. 이 새끼. 아주 시바.’
그 역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도박에 빠져 살던 심양진가의 망나니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이후에는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소문이 심양 전체에 돌고 있었으니까.
아주 시바 행복한 나날을 보내느라 정신이 없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말이 화경이지 거의 현경 초입에 진입한 것처럼 보였고 무공이라는 것에 재미를 붙였는지 정신없이 파고들고 있었다.
가끔 녀석을 지켜보고 있으면 아주 하는 짓도 가관이다.
‘우리 망나니 대공자님께서 이리 달라지시다니!!!’
그야말로 지금 녀석의 상황을 관통하는 하나의 문장.
매번 매번 시바 에피소드가 질리지도 않고 튀어나오는 중.
자신의 무공을 슬쩍 드러내는 순간을 즐기기라도 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녀석은 진가를 먼저 장악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고, 실제로도 거의 완벽하게 진가를 감아가고 있었다.
심양진가에서 필사적으로 모용화연의 소식을 숨기려고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그쪽의 입장에서 이쪽은 자기 아들내미를 구렁텅이로 빠뜨린 불여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니까.
혹시 다시 모용화연의 소식을 듣고 다시금 망나니가 되어버릴까 걱정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고, 여자에 미쳐 가문이고 나발이고 전부 다 내팽개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토록 시바 녀석을 나 몰라라 했던 가문에서는 이제 어화둥둥 우리 아들 최고를 말하기 바빴고 심지어 가주마저 망나니 대공자의 눈치를 보고 계시다.
형을 무시했던 진가의 소공자들은 시바 이제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형을 존경한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고, 시비들 사이에서도 아주 인기남이 다 되셨다. 조만간 기깔나는 별호도 하나 뽑히겠지.
“그래, 잘된 일이로구나.”
“괜… 괜찮으시다면 대공자님께 다시 한번 사람을 보내는 게 어떻습니까.”
“되었다. 이미 내 말을 하지 않았더냐. 이 이상 그를 붙잡고 싶지 않다고….”
“그… 그래도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은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대공자님께서도….”
“…….”
“…….”
가장 억울했던 건….
녀석이… 8년 동안 시바 열심히 공부하고 시바 자기 계발하고, 커리어를 다지고 있었을 때….
‘나… 나쁜 새끼… 시바… 진짜… 시바….’
“…….”
“…….”
이쪽은 인간극장을 찍어야만 했다는 것.
‘이… 나쁜 새끼… 시바….’
“…….”
“…….”
‘진짜 나쁜 새끼….’
자기 계발은 시바 하지도 못했다. 물론 모용화연의 몸이 선천적으로 약한 몸이었던지라 공부를 제대로 했다고 하더라도 큰 성취를 얻기 힘들었을 것 같았지만 8년 동안이나 공부했다면 무언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장담하건대 제대로 된 무공을 익힐 정도로 몸을 바꾸어 놓았을 수도 있다. 소수마공 같은 것을 익혀서 무림고수 모공화연으로 우뚝 서 있었을지도 모른다.
진 군사 이 새끼가 열심히 무공서적을 뒤적거리는 동안, 이쪽은 육아서적을 뒤적거려야 했다.
놈이 가부좌를 틀고 심신을 안정시켰을 때는 불편하게 앉아 꼬물이에게 젖을 물려야 했다.
‘이… 이 새끼 진짜….’
다시 한번 생각해도 억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 아닌가.
‘이… 더러운 새끼… 진짜….’
심지어 육아만 한 것도 아니다. 후발대를 찾아 이 넓은 중원무림 전체를 뒤져 봐야 했던 터라, 표국도 하나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
그래도 시바 이 넓은 땅덩이에서 도착한 것인지, 도착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를 후발대를 찾으며, 살아남겠다 일도 하고 있는데…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시바 꼬물이가 있으니 이걸 제대로 키우지 못하겠더라.
물론 중원무림이라는 곳에서 표국이라는 게 포화 시장이라는 것도 한몫하고 있지만, 대형표국을 만들어 프랜차이즈화시키겠다고 생각했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한 성과였다.
매체 속에서 등장하는 워킹맘은 시바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부족한 것인지… 스스로의 능력에 의문이 생길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나… 사실… 별로… 안 똑똑한가? 그렇게까지… 능력 있지 않은가… 대륙에서는 그냥… 운이 좋았던 건가? 그냥… 다 때려치우고 집에 처박혀서 꼬물이나 제대로 강화하는 게 좋지 않을까… 표국은… 무슨 표국이야….’
“…….”
‘창렬이도… 정보 길드랑 암살 길드 두 개를 만들었는데… 나는 시바 8년이 지나도록… 대형표국도 하나 못 키웠네….’
“…….”
“참으로 기쁜 소식이구나… 지금은 그것으로 되었다.”
‘기쁘기는 개뿔. 넌 뒤졌어. 시바 진짜. 넌 뒈졌어.’
실제로 억울함에 눈물이 찔끔 고일 정도. 하지만 더 가슴 아팠던 것은….
“…….”
그 많은 희생을 한 이후에도….
“…….”
꼬물이를 제대로 키운 것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 그, 그리고 아씨… 학당에서 친 도련님의 고사 결과가 오늘 나왔습니다만….”
“알고 있다. 그래서 이리 천이에게 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
“아무래도… 도련님 스스로도 많이 실망하신 것 같사오니… 오늘만큼은 도련님을 격려해 주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오십 문 중 사십삼 문을 맞히었사오니 참으로 대견한 일입니다.”
“…….”
“…….”
“…….”
드르륵.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자 움찔거리는 작은 인형.
“후우….”
“히윽.”
“하아….”
“히윽.”
‘꼬물아… 시바 너는… 이 성적을 받고… 눈물이… 나와?’
“…….”
‘지력 수치는 높은데 애가 왜 이러지? 지 아빠를 닮았나.’
“…….”
‘옆 동네 순이는 시바 지력 수치가 10에, 성장한계치는 겨우 영웅 이상인데 매일매일 만점 받는다더라.’
벌써부터 부들부들 떨고 있는 유소년 꼬물이가 시야에 비쳐왔다.
그 자리에서 시험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얼굴에 집어 던지는 게 보통이었지만….
아이가 상처받을 것을 대비해, 보기 싫다는 듯이 치우는 것으로 리액션을 대신한다.
“형편없구나.”
“히윽….”
“참으로 형편없어. 내가… 후우… 아니다.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게 좋겠구나.”
“…….”
“물러가거라.”
“히으으윽… 히윽….”
“꼴도 보기 싫으니… 물러가라 일렀다.”
“잘… 잘못했사옵니다… 어… 어머님… 히윽… 잘… 잘못했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