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Instruction Manual RAW novel - Chapter (1684)
회귀자 사용설명서 1684화
중원무림빙의(89)
피 냄새 때문에 헛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을 정도였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나?’
당연히 구역질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꾹 참고 있었지만, 머릿속에 피어나는 의문까지 참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게 내가 아는 모용꼬물이가 맞는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물론 모용화연과 진청영의 최후를 생각해 보면… 저런 모습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게 이해가 가기는 했지만… 저건 내가 예상했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났다.
기껏해야 조금 삐뚤어지는 걸 예상했는데, 지금은 삐뚤어지다 못해 이상한 곳으로 풀악셀을 밟아버렸다.
조금 과장해서 말해서 인간이 아니라 괴물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차가운 얼굴에는 한 줌의 감정조차 보이지 않는다.
“…….”
그간 천마신궁에서의 생활이 어땠는지도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녀석을 경외하면서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원래 천마가 이런 건가? 아니… 한숙부랑 똘마니들 반응 생각하면… 24대 천마는 이런 분위기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쪽은 분명히 진심으로 아끼고… 존경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
‘아니, 시바 여기는 왜 이렇게 살벌해? 얘는 도대체… 왜 이렇게 살벌한 거야?’
목이 터져라 외쳤던 천마재림 만마앙복은… 꼬물이의 불편한 심기를 눈치챈 것만 같은 심소소가 슬쩍 팔을 들면서 마무리된다.
순식간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지는 장내. 섭섭하게도 눈길 하나 주지 않고 나를 지나친 꼬물이는 뚜벅뚜벅 준비된 단상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진짜 눈길 한 번 안 주자너. 시바.’
녀석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도올신녀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돈다.
쿵! 하는 북소리가 다시 한번 울리고 난 이후에… 제를 올리기 위해 석상 앞까지 나가는 도올신녀의 움직임이 뚝딱뚝딱거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모습에 왠지 모르게 불안해진다. 이쪽을 바라보며 필사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던지라, 괜스레 나도 애가 탄다.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도, 도, 도, 도, 도으… 도올이시여…!”
심지어 도올신녀는 삑사리를 내버렸다. 본인도 크게 당황해 뭘 해야 하는지 까먹은 듯하다. 너무 긴장해서 그런지 호흡이 계속해서 거칠어지고 있다.
자꾸만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꼴이 보였지만… 그 누가 이런 분위기에서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계속해서 아예 모련이를 저격하는 듯한 느낌인지라 슬그머니 몸을 움직인 것은 당연지사. 아까 전에 도올신녀가 했던 사전 연습을 머릿속에 담아 놓았던 터라 가능한 행동이었다. 조심스레 도올신녀에게 귓속말을 전한다.
“한 바퀴 도실 차례세요. 신녀님.”
“흐윽… 같, 같이 돌아주면 안 되겠느냐아아….”
“제가 어찌….”
“같… 같이 돌아주면 안 되겠느냐아…. 흐으으윽… 다리가 움직이지 않… 않음이다아….”
‘진짜 개막장이자너. 시바.’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참을 수 없는 얼빵함의 냄새가 나더라니… 이제 보니 시바 하고 있는 행태가 베니고어를 생각나게 한다.
‘시바 이거 빙의체 아니야?’
“숨…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혹, 혹여나 몸에 이상이 생겼을 수도 있음이다아… 이… 이를 어찌한단 말이냐아….”
‘아니, 전부 다 들린다고요. 신녀님. 왜 귓속말을 전부 다 들을 수 있게 하냐고요.’
“괜찮아요. 신녀님. 잠깐이면 끝나니까. 일단, 연습하셨던 대로….”
“제발 같이 돌아다오오오….”
“제가 어찌….”
“내… 내가 오늘 상태가 좋, 좋지 않구나… 흐윽… 평소였다면 행사를 다음으로 미루었겠지만… 이대로 제를 미루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음이다… 교, 교주님께서도 방문해 주셨으니… 네 도움을 받아서라도 무사히 제를 마무리하고 싶구나… 이 아픈 몸을 이겨내고 말이다….”
‘진짜 개 막장이네. 시바… 와….’
눈에 보이는 변명이었다. 그 짧은 사이에 본인만의 드라마를 완성하신 것이다. 몸이 안 좋지만 시비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행사를 마무리하는 신녀의 모습을 보이고 싶은 모양, 심지어 자신의 사정을 천마에게 직접 전해달라는 눈치다.
방금 전에 죽다 살아난 건 모련인데, 이제는 지가 더 아프단다.
‘얘 도대체 어떻게 신녀 된 거지?’
마음 같아서는 너 알아서 하라 한 이후에 내버려 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을 리 만무, 그렇지 않아도 꼬물이가 도올제에 참석한 것이 처음이라 하지 않았던가.
지금 녀석이 여기에 와있는 것만 봐도 일이 어떻게 됐을지 대충 예상이 간다. 아마 한숙부 같은 ‘어른’들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옮겼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아 보였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여론이고 나발이고 신경도 안 쓸 것 같자너.’
이렇게 변방까지 힘든 발걸음을 해준 것을 보면 그나마 녀석을 다잡아 주는 어른이 한두 명 즈음은 있을 것 같아 안심이 되기는 했지만, 도올진영과 이쪽에게까지 안심이 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만일 이번 행사가 어처구니없이 끝나게 되면, 꼬물이에게 이 이상 행사들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는 명분을 심어주게 되는 셈이었으니까.
녀석은 아마 죽을 때까지 도올진영이나 천마신교의 쓸데없는 행사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모련이는 꼬물이와 만날 기회가 없을 것이다. 당장 지금도 눈길도 주지 않고 있는데, 서로 만날 기회조차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내 얼굴을 조금만 살펴보면 모용화연이 일부 묻어 있다는 것을 눈치챌 텐데… 얼굴을 봐주고 있지도 않다.
아니, 인간이 제대로 인간으로 보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진 군사처럼 이상한 필터가 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 그럼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신녀님.”
“그, 그래… 도와주는 것이냐….”
“네.”
조심스럽게 도올신녀를 부축해 준 이후에는 제에 예정되어 있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엄… 엄마가 힘내고 있단다 꼬물아. 슬슬 눈에 들어오지? 어?’
하지만 꼬물이는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목소리라도 좀 들어보고 싶었는데, 일언반구조차 없다. 그저 묵묵하게 도올신녀 쪽을 한 번 바라본 이후에는, 상석에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트집을 잡았으니, 이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액션을 취하는 것이다.
‘아니.’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붙잡아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도올신녀는 오히려 꼬물이가 몸을 일으키는 것이 반가워 보이는 모양새. 그냥 무섭게만 보이는 교주님이 그냥 제발 자신의 작고 소중한 보금자리에서 나가줬으면 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지금 이 행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 기회를 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귀에서 피가 나도록 들었겠지만, 지금의 도올신녀에게 그런 것은 사소한 이야기.
그저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 그녀에게는 가장 중요했던 것이다.
‘아니, 시바 신녀님! 진짜! 아후!!!’
아니나 다를까 꼬물이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바로 등을 돌려 버린다. 심 씨 자매들도 조금 당황한 듯한 모양새. 화들짝 놀라며 꼬물이에게 다가가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얘네들도 꼬물이가 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는 것이겠지.
아무리 무소불위의 위치에서 권력과 존경을 받고,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존재였지만 수천,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법.
‘아니야. 그거 아니야. 이대로 그냥 가면 무조건 말 나와요. 손가락질받는다니까요.’
“교, 교주님….”
“더 이상 이곳에 자리하는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군.”
“하나….”
“이만 돌아가겠다.”
“…….”
말투에 시바 왜 이렇게 진 군사 묻었어.
용기 있는 부관 한 명이….
“하나 교주님. 한 장로님께서….”
‘한숙부가 장로가 됐어?’
라고 말을 내뱉기는 했지만 꼬물이는 녀석에게 손을 뻗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순식간에 얼굴이 푸르죽죽한 녀석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버둥버둥거리다가 울컥 피를 토하기까지 하고 있다.
‘아니, 시바. 뭐야? 허공섭물? 아니. 왜 허공섭물로 목을 졸라. 네 부관이잖아. 꼬물아. 네 부관이잖아….’
“교주님!!”
“교… 교주님!!”
“꺄아악!”
“으아아아악!”
“교주님!!!!”
“꺄아아아아아아아악! 모, 모련아!!! 모련아아아아악!!!”
‘아니, 시바 신녀님!’
“나를 두고 가지 말아다오오!!”
눈치 없는 도올신녀는 아예 비명을 내지르는 중, 몇몇 시비들도 피를 토하면서 죽어가는 부관 한 명을 바라보며 경기를 일으킨다.
교주와 함께 온 다른 이들도 다르지 않다.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갑작스러운 사이코패스 행동에 어찌할 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심지어 신녀가 직접 주관하는 행사에서 피를 보았다는 게 크게 다가오는 모양인지, 심 씨 자매들 또한 크게 당황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교주님!! 부, 부디 자비를!!”
“교주님 부디 자비를, 진 부관이 충… 충성심에 올린 말씀이옵니다! 다,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오라!”
“어찌… 제발 자비를!!”
“이리하시면… 아니 됩니다! 교주님! 진, 진 부관은… 오, 오랫동안 교주님을 모셔온 충신이 아닙니까!”
‘이 새끼 진짜 막 나가는 거네. 이거 그냥 진짜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냐고….’
옆에서 계속해서 녀석을 만류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한번 눈깔이 돌아간 꼬물이는 손을 멈추지 않는다. 계속해서 무표정으로 손에 힘을 주고 있다. 뿌득뿌득 하는 소리와 함께 부관의 목이 조금씩 꺾여 나가고 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 심소소가 커다랗게 내공을 실어 고함을 내리친 것은 바로 그때.
“도련님!!!!!!!!!!!!!!!!!”
“…….”
“…….”
“…….”
“부, 부디 자비를….”
“…….”
“…….”
툭.
“쿨럭! 쿨… 쿨럭! 콜록! 허억… 허억! 허억! 콜록! 콜… 콜록!”
“…….”
“…….”
“이만 가도록 하지.”
‘시… 시바….’
땅에 떨어진 부관은 계속해서 숨을 헐떡이는 중이다. 의원들이 달려와 목이 돌아갈 뻔한 부관을 챙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꼬물이는 녀석에게 시선도 주지 않는다.
심지어 녀석을 따르는 이들 중 몇몇은 그리 놀랍지도 않다는 반응이다. 그간 이런 일들이 몇 번이나 있었다는 거겠지. 어떠면 시바 죽었던 놈들도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적은 둘째 치고서라도 본인에게 충언을 올리는 부관까지 죽여 버릴 뻔한 모습이 너무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둠현성조차 이 정도로 막장스러운 행보를 보인 적은 없었다.
기껏해야 책상을 한 번 치는 게 끝이었는데, 얘의 일탈은 차원이 다르다.
‘그냥 폭탄인데?’
“…….”
‘걍 폭군인데? 아니, 뭐… 뭐 이런 미친….’
당황스럽다.
저게 안아달라고 눈물 콧물 다 흘리던 꼬물이라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는다. 풀피리를 불어달라고 조르던 꼬물이와 영 매치가 되지 않는다.
당황스러운 게 당연했다.
하지만.
“…….”
“…….”
‘도련님이라는 말에는 반응했어.’
흔들림 없을 것 같았던 꼬물이가 분명히 심소소가 외친 도련님에는 반응하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케어가 필요한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어떻게 모련이를 인식시켜야 하는지는 아직도 미지수….
머릿속에서는 나름대로 그럴듯한 그림이 떠오르고 있었다.
‘슬쩍 밖에 나가서 혼자 풀피리 한번 불어볼까? 청력도 좋을 테니까… 알아서 듣고 찾아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