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Instruction Manual RAW novel - Chapter (1737)
회귀자 사용설명서 1737화
중원무림빙의(142)
꼬물이는 현실의 삶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른다.
이해할 생각도 없을 것이다.
자신이 너무나 비현실적인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
“…….”
그래도 무언가 느끼고 있는 것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 보이는 민가를 본 이후에도 그다지 표정의 변화가 없는 것이 눈에 비쳐왔다.
아니, 아예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표정은 무뚝뚝하고, 무감각하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지 애비를 닮아서 공감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것인지, 심지어는 이쪽을 슬그머니 바라본다. 예상했던 것처럼 이쪽이 무엇을 하려고 하고 있는 것인지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다.
괜스레 민망해진 것은 당연지사. 보통 이런 종류의 이벤트를 벌일 때에는 알아도 모르는 척해주는 것이 국룰인데, 표정을 보니 그럴 생각조차 없는 것처럼 보인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떻게 나를 설득할지 두고 보겠다는 얼굴이었던 지라 오히려 부담감만 가중된다.
‘시바. 진짜 너무 극… 극혐인데… 이 새끼… 갑… 갑자기 너무 정떨어지는데. 이건 내 잘못 아니지?’
너무 성급하게 일을 진행하려고 했던 걸까? 조금 더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진 이후에 빌드업을 시작했어야 했나?
물론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폭주기관차가 되어 급속도로 진도를 빼고 있는 김현성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어거지로 진도를 빼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조금 불안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일단은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이곳을 둘러본 적이 있으십니까?”
“전혀.”
“…….”
“직접 본 적은 없다. 이런 장소들을 지나친 기억도 없다. 본좌의 가신들은 본좌에게 이런 민가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본좌도 딱히 이들의 모습을 살필 필요가 없었으니 말이다. 하나 교내에 결코 적지 않은 빈민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니… 이런 모습이 딱히 이상하게 보이지도 않는군. 혹여나 그대는… 그래, 본좌를 질책하려 하는 것인가?”
“…….”
“물론 그들 개개인의 사정은 유감이나, 본좌의 관심을 온전히 빈민들을 위해 쓸 수는 없는 법이다. 본좌가 해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였다면 그들을 구제하려 했을지도 모르지. 하나, 본좌는 그리 한가하지 않다. 쓸데없고 아무 의미 없는 여러 제들을 참관하고 주관하는 일부터, 교 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지. 그 어느 것 하나 저들보다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 없다.”
“…….”
“심지어 본좌가 이들 모두를 구제하는 것이 옳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
“하나 그것과는 별개로 그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어째서 본좌를 이곳에 데려오고 싶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군. 그래, 그대는 이 빈민들이야말로… 천마신교를 지탱해 주는 민이야말로 교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로군. 참으로 진보적인 사고로구나, 하나 위험한 사고이기도 하다. 이곳이 황실이었다면 그대의 목이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그대가 충성하는 것은 본좌가 아니라 민들인가.”
‘진짜… 내 아들이지만 정떨어진다. 진짜. 와… 어떻게 이렇게 닮았지?’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대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도 있다. 아니, 공감하지 않아도 그대를 얻기 위해서는 공감해야겠지. 그대에게 이 민들이 중요하다면, 본좌가 이들을 돌보도록 하지. 물론 본좌가 직접 시간을 낼 수는 없겠지만, 사람을 시켜서라도… 이들을….”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교주님.”
“…….”
“교주님께서 이 민들을 돌보아 주기를 바랐기 때문에 교주님을 이곳으로 모신 것이 아닙니다.”
“…….”
“그렇다면 무엇인가. 어떤 연유로 본좌를 이곳으로 부른 것인가.”
‘나도 몰라. 이 새끼야. 사실 네가 말한 게 맞어. 시바. 그렇게 빌드업 하려고 했었어.’
“…….”
‘진짜 짜증 나자너… 시바.’
하지만 그렇게 설명할 수 없다. 네 말이 맞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할 거 합시다. 라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지금은 아직 뭔가가 더 남았다는 듯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는 것이 이쪽이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래, 정답을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꼬물이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치게 해야 했다.
“후우… 귀찮군. 그대는 참으로 귀찮은 가신이로구나.”
“…….”
“…….”
직후,
저 멀리서부터 달려오고 있는 어린아이들이 시야에 비쳐왔다. 이쪽과 꼬물이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봤을 테니, 저쪽에서 먼저 반응이 온 것이다.
이쪽은 이미 사전 답사를 몇 번 온 적이 있었으니, 더 반가운 리액션을 해주고 있는 중. 괜시리 뿌듯해진다. 고작 며칠이었지만 저잣거리의 당과가 저 꼬맹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마치 몇 년 동안 후원한 것 같은 리액션이지 않은가.
“공자님!”
“공자니임!!!”
“공자님이다! 공자님이다!!!”
“부잣집 공자님이시다!!!”
그 모습을 본 모용진천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고아들인가?”
“그냥 고아들이 아닙니다. 이전에 있었던 싸움으로 인해 만들어진 고아들이지요.”
“이전에 있었던 싸움?”
“내전 말입니다.”
“…….”
“…….”
“저 맨 앞에 달려오고 있는 아이의 이름은 왕경입니다. 내전에서 부모를 모두 잃어 홀로 있는 것을 한 씨 부인이 거두어 이곳에서 함께 살고 있지요.”
“…….”
“팔이 한 짝이 없는 아이의 이름은 리연입니다. 마땅히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이 없어, 환부가 썩어 팔을 도려내야 했을 겁니다.”
“…….”
“맨 뒤에서 달려오고 있는 아이의 이름은 허경입니다. 한 씨 부인 홀로 키우고 있는 아이입니다. 부는 지난 전투에서….”
“그러니까 그대의 말을, 이 들이 모두 반역자의 자식들이라는 말이로군.”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본좌가 천마가 되는 것에 공적을 올린 이들은 모조리 논공행상(論功行賞)하였다.”
“이름 없는 무사의 남겨진 딸과 아들의 공도 논하시었습니까?”
“…….”
“…….”
‘응 안 했을 줄 알았어. 네가 그렇게 세심할 리가 없지.’
“…….”
“…….”
“그건….”
“물론 교주님께서는 아랫것들을 돌볼 여유가 없으셨겠지요.”
“…….”
“그대는 이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 말하고 싶은 것인가?”
“저는 그리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이지?”
“본디 답이 없는 문제도 있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시바 색안경 좀 제발 좀 벗어. 시바.’
이 악물고 마술의 트릭을 찾는 사람처럼 눈에 불을 켜지 말고, 그냥 시바 느끼라고.
더 이상 대화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얘는 눈에 불을 켜고 무슨 트릭을 사용했는지 찾아보려고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어떤 말을 해도 얘는 계속해서 내가 자신을 이곳에 데려온 이유에 대해서만 캐내려고 할 테니 말이다.
그저 더 이상은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그사이에 빈민가라 할 수 있는 풍경들이 눈에 비쳐오기 시작했다. 자주 찾아오는 부잣집 공자님에게 뭐라도 받을 수 있을까 달려오고 있는 꼬마들, 그리고 그들을 따라나선 어른들까지.
그중에서는 제대로 걸을 힘도 없어 보이는 노인도 있었고, 오랜 전투로 인해 상처 입은, 단전이 망가져 버린 퇴역무사들도 있었다. 당연하지만 아이와 함께 나온 어머니의 모습도 시야에 비쳐온다.
꼬물이의 매마른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품에 안긴 아이도 있었고, 어머니의 손을 잡은 아이도 있다. 하나같이 재잘재잘거리고 있는 모습은 뭐라 설명하기에 어렵다.
행복해 보이기도 하고, 비참해 보이기도 한다. 활기가 넘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우울해 보이기도 한다. 가끔 웃는 얼굴이 보이기도 했지만 그 표정 곳곳에는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아마도,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부정적인 감정들의 정체는 걱정일 것이다.
오늘 하루, 그리고 내일, 앞으로의 미래, 나 자신의 미래가 아닌, 내 아이의 미래, 내 가족의 미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미래.
분명 모용화연도….
‘나도 저랬었나.’
나도 저런 표정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저들보다야 형편이 나았지만 분명 비슷한 부분이 있기는 했을 것이다.
삶이다.
저게 바로 삶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일 것이다.
그래,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바로 저런 풍경이었다. 딱 저런 모습이었다.
‘그래.’
저게 바로 현실적인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너도 한때는 현실적인 삶을 살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
“…….”
꼬물이가 조금이라도 더 다른 이들을 이해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불가능하지만 저런 삶에 공감하고, 녹아들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꼬물이의 인격적인 성장을 위해서가 아니다. 물론 그런 부분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녀석이 스탠스를 바꾸는 것이, 그것이 교인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이게 정통성이야. 무조건 정통성으로 가야 돼. 지금 우리는 정통성이 중요한 거야.’
수라의 길을 선택한 김현성과는 조금 다른 루트, 어차피 김현성이야 지금부터 온갖 미친짓을 하며 무림을 난장판으로 만들 것이다.
꼬물이가 아무리 광인이 되어 미쳐 날뛴다고 한들, 진짜 미친놈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일 테니….
‘차라리… 확실하게 못을 박는 게 나아.’
교인들에게 먼저 인정받고, 확실하게 25대 천마로 이름을 남기며 어진 성군 컨셉으로 가닥을 잡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인 것은 당연지사.
“…….”
조금 불편한 심기의 꼬물이가 시야에 비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뭐야. 얘 또 왜 이래?’
아니,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화가 난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분노를 참고 있는 것으로 비친다.
‘이거 지뢰였나?’
완전히 지뢰였던 건가? 내가 모용진천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여지도 있나?
교내에 꼬물이의 사연을 모르는 교인들은 없다. 아니, 중원에서도 꼬물이의 사연을 모르는 이들은 없다. 아마 저잣거리 꼬맹이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녀석이 어머니를 잃고, 그 복수심에 미쳐 천마신교로 귀의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
어쩌면 지금 사마영은 그 사연을 이용해 모용진천에게 깨달음을 주려고 하는 무례한 놈처럼 비춰질 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그랬고 말이다.
‘이, 이거… 큰일 난 건가?’
“…….”
‘목 날아가기 일보 직전인 건가?’
“…….”
‘아니… 시바… 좀… 그런 상황인거지?’
꼬물이는 사마영이라는 인간이 아무리 똑똑하다 한들, 자신의 위에서 자신을 능멸하지 말라 이야기했다. 지금, 명백하게 이쪽은 그 선을 넘었을지도 모른다.
이대로 목이 잘려 나가기 전에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지사.
‘시바.’
곧바로 동네 꼬마들을 모은 이후에는….
‘풀피리나 불자. 풀피리가 답이야.’
꼬물이가 더 편하게 감상에 빠질 수 있도록 BGM을 깔아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