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Instruction Manual RAW novel - Chapter (1747)
회귀자 사용설명서 1747화
중원무림빙의(152)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중요한 이벤트였다. 압도적으로 유희거리가 부족한 12차원이었으니 말이다.
본래, 새로운 종교, 익숙하지 않은 문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들을 대중들에게 쉽게 소개할 수 있는 수단이 이런 종류의 유희거리가 아니었던가.
물론 가장 잘 먹히는 것은 뇌물이기는 했지만… 범부들과는 다르게 무림인들에게는 단순히 곳간을 푸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이벤트가 필요했다.
‘무림인들은 하루 삼시세끼 잘 처먹고 다니니까.’
“…….”
‘얘네한테 뇌물 뿌리려면 좋은 검, 좋은 말, 좋은 영약 같은 거 뿌려야 되는데….’
그랬다가는 천마신교의 재정이 바닥나 버릴 것이다. 사실 서안지부를 세운 것에도 꽤 많은 투자비용이 들어가지 않았던가.
투자한 만큼 회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들어간 것이기는 했지만 그간 안정적으로 운용되고 있었던 재정에 갑작스레 찬물을 뿌린 격이었으니 재정담당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무림인들에게까지 영약이나 검을 뿌릴 정도로 부유한 상황이 아니라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교국이 진짜 좋기는 했어.’
“…….”
‘일단 돈이 많았으니까.’
그래, 교국에서는 하고 싶은 건 전부 할 수 있었다. 사실 이쪽에서 뇌물을 준비할 필요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마어마한 큰 손 후원자들이 보내주는 헌금으로만 구호 활동 및 뇌물 뿌리기를 하고도 남았으니 말이다. 특히나 명예추기경의 공개 기도회가 열린 이후에 들어오는 후원금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더라.
‘여기서도 그렇게 가야 되기는 해.’
결국 시간이 지나면 교를 지탱하는 것은 일반 신도들이었지만, 초창기에는 우연치 않게 들어온 큰 손들을 신경 써줘야 했다. 큰손들을 신경 써주면 재정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결국에는 일반 신도들도 뒤따라온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유희거리가 중요했다.
돈 많은 큰손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 그간 중원 무림에서 볼 수 없었던 신기하고 진귀한 이벤트였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이게 잘 먹힐까 걱정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효과 좋자너.’
교국에서의 경험을 버무려주자 훌륭히 천마제를 성공적으로 런칭 시키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이번이 5번째다. 서안지부에서 자리를 잡은 이후, 이틀에 한 번꼴로 천마제를 열고 있는 것이다.
조금 고생하고 있기는 했지만….
‘후원자들이 생겨서 다행인 거지.’
그래. 그 어떤 것보다 후원자들이 생겼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하얀색 무복을 입고 살짝 인사를 하자 조심스레 인사를 해오는 후원자가 눈에 비쳤다.
금돈(金豚)이라 불리는 무림상인 이었다.
***
‘저… 저 사람은… 금돈(金豚)이 아닌가?’
틀림없이 금돈이었다.
‘허… 이… 이게 무슨….’
심지어 금돈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박룡도(搏龍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분명 박룡도처럼 보였다. 등 뒤에 걸려 있는 특이한 모양의 도. 일전에 한 번 보고 부딪친 적도 있었으니, 도의 주인이 바뀐 것이 아니라면 저 인물은 박룡도가 맞을 것이다.
거기에….
‘무림군자(武林君子)까지?!’
거기에 군자 중의 군자라 불리는 무림군자까지 자리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이것이 현실이 맞는지 의심하게 된다.
금돈이나 박룡도는 그렇다 치더라도 도대체 어째서 무림군자까지 이곳에 있는 것이란 말인가.
그 성품과 행동이 성인과도 같은 그가 어째서 이런 광신도 집단의 제에 참여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현 천마신교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잠입한 곳에서 뜻밖의 인물들이 눈에 담기자 혼란이 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서안에 많은 무림인들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모두 자신처럼 현 천마신교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레 마교가 발호했으니 말이다. 그것도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중원진출을 도모하고 있었으니 모두의 이목이 집중될 만도 했지만….
‘저… 저들은… 그런 이유 때문에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 않은가.’
최소한 몇몇 인물들은 이제 자체의 의미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십만대산의 특산품은 왜 판매를 하고 있는 것인지, 관아와 관군은 어떻게 개입한 것인지, 그리고 이 웃기지도 않은 제에 어째서 저런 인물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다.
‘분명히 뭔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 현 무림의 정세를 고려해 봤을 때, 분명히 모든 것이 의도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곳에 있는 온갖 기인기사들은 이미 한참 전부터 천마신교의 세작으로 활동했던 이들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바로 옆에 서 있는 절정고수도, 그간 보지 못했던 얼굴 이 아닌가.
“큼… 큼….”
“…….”
“큼… 큼… 큼….”
괜스레 헛기침을 하는 모습, 아마 자신이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었으니 눈치를 주는 것이겠지. 자연스럽게 통성명을 하기 위해 의도된 행동이었다.
“아. 이거 죄송합니다. 대협.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감, 감사합니다.”
“제가 너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군요. 그간 서안에서 소문이 자자했던 천마제를 볼 수 있다 생각하니, 너무 긴장이 되었던 터라….”
“그… 그렇습니까?”
“혹시 대협은….”
“저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의도치 않게 인연을 만나 초대를 받는 바람에….”
“아. 그렇군요. 혹시 존성대명을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
“…….”
“마일근이라고 합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혹시 사문은….”
“1인 전승으로 내려오는 작은 문파라 아마….”
“아하….”
수상하다. 수상한 인물이다. 누가 봐도 수상한 인물이다.
‘이 정도 절정고수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이… 우연이란 말인가.’
정보를 캐기 힘들어 보였던 터라, 곧바로 옆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오른쪽에 앉아 있는 여인은 자신을 마일근이라 소개한 남자보다 더 수상하다.
얼굴을 면사로 가리고 있는 초절정고수.
“혹, 혹시 여협께서는… 이 천마제에 와본 적이 있으십니까?”
“조용.”
“?”
“곧 시작될 것이니. 조용히 하거라.”
“…….”
“…….”
“도, 도대체… 무엇이.”
“조용히 하라는 말 듣지 못했나? 한 번만 더 지껄인다면 그 입을 찢어 죽일 것이다.”
“…….”
“…….”
분위기가 영 좋지 않다. 여기저기서 시선이 느껴져 주변을 돌려보자, 대부분의 인물들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천마신교의 세작들이 전부 다 여기에 모여 있었구나!’
이미 적진의 한복판에 있었던 것이다. 긴장감에 목구멍으로 침이 넘어간다. 어떻게 해야 이곳에서 살아 돌아갈 수 있을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었던 찰나. 멋스럽게 만들어진 제단을 향해 한 남자가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저… 저….’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는 사내. 누가 보기에도 미형이라 할 만한 외형을 가진 사내였다. 실례되는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양귀비를 연상케 하는 사내다.
그 요사스러움이 극에 달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등장과 함께 좌중을 휘어잡았기 때문일까. 작금의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요괴, 어쩌면 눈앞의 사내는 인간이 아니라 요괴일지도 모른다.
요괴인지 인간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는 자신의 피부보다도 더 하얗고 얇은 무복을 입고 있었다. 심지어 맨발이었다. 거친 무림인이라고는 할 수 없는 새하얀 발이 눈에 들어왔다.
굳은살도 없고, 흉터도 없어 보인다. 날씨가 추워 발이 벌겋게 올라오기는 했으나 발목 위에 있는 작은 점 외에는 다른 특이점이 보이지 않는다.
저벅저벅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박사박 땅을 스치듯이 이동하는 모습. 보법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발놀림이 가볍다.
‘허… 저… 저건 도대체….’
맨발로 걸음을 옮긴 사내가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경건하다. 여기저기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지만 이윽고 숨 쉬는 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을 정도로 주변이 조용해진다.
저 제단 위의 있는 남자에게 모두가 압도당한 것이다. 도저히, 그 무엇하나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곳에서 제가 열린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저 남자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하나 확실한 것은 눈앞에 있는 이가 검무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가검?’
가검으로 말이다.
‘진검이 아니로구나.’
진검보다 훨씬 가벼운 것처럼 만들어진 것 같은 가검, 모양이 아름답기는 했으나 결코 사람을 해칠 수가 없는 가검이다.
순간적으로 찬 바람이 불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하얀색 도복을 펄럭이던 남자가 머리를 풀어헤치자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린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남자가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아니… 검무가 아니로구나.’
검무라기보다는 춤을 추는 것으로 보인다. 남자의 춤에 그저 검이 따라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나….
‘아니… 이, 이것이 검무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검무란 말인가.’
형이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
초식이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천마신교에서 대대로 내려져 오는 초식을 춤으로 표현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제의 종류인지 확실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그의 몸짓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는 것뿐이었다.
‘사술? 사술인가.’
그 말 그대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름답다. 저 형이 있는 듯 없는 듯한 검무가 너무나도 아름답다.
얼마나 저 검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인지 남자의 몸에서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린다. 이 추운 날씨에 숨을 헐떡이며 검무에 집중하고 있다.
동작 하나하나에 진심과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으니 어찌 땀이 흘러내리지 않을 수가 있을까. 저 가벼운 가검을 들고도 저 모양이다.
아마 진검이었다면 저 사내의 힘이 남아나질 않았을 것이다.
‘부드럽구나.’
“…….”
‘마치 잔잔한 호수를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
‘아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인 것인가.’
“…….”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경지가 미천해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검무는 계속된다. 해가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와중에도 검무는 끝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하늘의 색이 바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시선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의도된 것인지, 의도되지 않은 것인지. 갑작스레 그가 검을 떨어뜨린다.
그 자리에 풀썩 탈진하듯이 주저앉는다.
박수도 환호성도, 사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자그마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가 다시금 검을 들고, 조용히 좌중을 향해 선보였기 때문이었다.
‘끝났구나.’
“…….”
‘이게 끝이로구나. 허….’
무언가를 놓친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닿을 듯. 닿을 수 없는 것.
가질 듯. 가질 수 없는 것,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모든 것을 움켜쥘 수 있을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움켜쥘 수가 없다.
갑작스레 온몸에 찾아온 허탈감에 온몸에 힘이 빠진다.
아마 자신이 놓친 것은….
“…….”
“…….”
‘깨달음인가.’
깨달음일 것이다.
“아쉽구나… 참으로… 참으로 아쉬워.”
“…….”
“너무나도… 아쉽구나.”
“…….”
분명 깨달음을 놓친 것일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