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다구리에 장사 없다(4)-더 맞을래?
콰콰쾅!
천마교주의 손에서 뻗어 나간 흑색 강기가 무림맹의 초소 하나를 박살 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도검을 들고 있는 허수아비 몇 개가 바닥을 구르고 있을 뿐이었다.
“빌어먹을···.”
교주는 이를 부드득 갈며 박살 난 잔해를 노려봤다. 그가 신경질적으로 팔을 휘두르자, 손에서 뻗어 나간 흑색 강기가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콰콰콰콰콰쾅!
초소 전체를 먼지로 만들어버렸으나, 교주의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이게 벌써 몇 번째인가!”
천마신교의 무사들이, 특히 교주가 직접 습격하는 곳마다 전부 허탕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적들은 항상 한발 먼저 몸을 피했다. 대신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조악하게 만든 허수아비들과 온갖 함정뿐이었다.
지금도 한쪽에서는 구덩이에 빠진 천마신교의 무사들이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올라오고 있었다.
운이 좋았는지 죽은 자는 없지만, 부상 때문에 한동안 싸울 수 없게 된 무사들이 적지 않았다.
교주가 그들을 노려보며 으르렁댔다.
“한심한 놈들. 변변한 전투도 치르지 않았거늘···.”
“······.”
교주의 서늘한 눈빛에 무사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사실 그들은 억울했다. 그들이 빠진 건 단순한 함정이 아니라, 마법으로 교묘하게 위장된 함정이었다. 어지간한 고수들도 눈치챌 수 없었다.
하지만 교주의 눈에는 하찮은 함정에 빠진 쓸모없는 놈들로 보일 뿐이었다.
‘빌어먹을. 벌써 며칠째인가!’
무림 정복을 선언하며 남하한 천마신교는 적들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니고 있었다.
반면,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 무림맹 청해 지부의 병력은 철저하게 게릴라전을 펼쳤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초소에 함정을 만들어 놓은 다음에는 어김없이···.’
아니나 다를까. 불길한 예상이 맞았다.
“교주님! 후방에서 습격입니다!”
휘이익!
수하의 보고가 들려온 순간, 교주는 한줄기 검은 선이 되어 병력의 뒤편으로 질주했다.
잠시 후, 교주는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는 무림맹의 벌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갈-!”
교주가 고함치며 손을 휘둘렀다. 그의 손에서 엿가락처럼 늘어난 흑색 강기가 도망치는 무사들의 후방을 덮쳤다.
그 순간, 한 명이 뒤돌아서며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서 시퍼런 검강이 치솟았다.
콰아아앙!
폭발과 함께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교주가 상대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파천검제!”
“여, 요즘 자주 보네?”
그렇게 대답한 대인은 검을 휘둘러서 강기를 마구 쏟아냈다. 그리고 몸을 돌려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이 찢어 죽일 놈! 놓칠 줄 아느냐!”
천마교주는 대인을 쫓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부터 온갖 함정과 마법이 그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바위가 굴러떨어지고, 갑자기 나무가 움직여 길을 가로막았다. 땅에서 흙벽이 솟구치기도 했다.
“같잖은 사술 따위!”
-푸화아아악!
교주는 몸에서 마기가 폭발해 주변을 휩쓸었다. 바위가 깨져나가고, 나무가 산산 조각나고, 흙벽이 퍼버벙! 폭발했다.
흙먼지가 수 미터 높이까지 피어올라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먼지가 다 가라앉았을 때, 대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뒤였다.
천마교주는 두 눈에 핏발이 섰다.
“이놈이 또···!”
분명 방금 전까지 이 앞에 있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어도, 교주는 대인의 기척을 느끼고 확실하게 뒤를 쫓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라졌다! 마치 원래부터 이곳에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뿌드득.
교주는 이를 갈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시뻘겋게 충혈된 두 눈에서 피가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죽인다···!”
파천검제?
그깟 애송이, 정면으로 상대한다면 순식간에 목을 꺾어버릴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놈은 정면 대결을 피했다.
항상 천마신교의 후방이나 병참부대를 공격했고, 쫓아가면 교묘한 사술을 사용해 모습을 감춰버렸다.
교주는 마치 바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파천검제-! 네놈이 그러고도 무인이냐!”
-콰콰콰콰콰콰!
천마교주의 몸에서 마기가 터져 나왔다. 두 눈에서 붉은 광망이 줄줄 흘렀다. 뇌까지 치민 마기는 쉽게 냉정을 잃게 만들었고, 살기가 머릿속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네놈만큼은 반드시 죽일 것이다! 반드시-!!”
천마의 포효가 산천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파괴했다.
***
“휘유. 바짝 약이 올랐네.”
대인은 수 km 떨어진 곳에서 마기를 줄기줄기 피워 올리는 천마교주를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단거리 공간이동 스크롤이 찢어진 상태로 쥐어져 있었다.
대인은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어떻게든 여기까지는 왔는데···.”
본격적으로 천마신교와 무림맹의 충돌이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대인은 멸마단을 이끌고 천마신교의 전진을 최대한 저지했다.
후방을 노려 적의 병참을 공격하고, 함정에 빠뜨려 시간을 끌었다. 협력자가 많은 덕분에 일은 아주 쉬웠다.
“여기는 독수리. 그래. 잘 내뺐다.”
[다행이다 오바!]통신기 너머에서 릴리가 안도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인은 픽 웃으며 말했다.
“나 걱정하지 말고 너나 잘해. 준비는 다 끝났어?”
[아까부터 다 끝났다 오바!]“좋아. 그럼 슬슬···.”
대인은 다시 고개를 돌려 자신이 사라진 자리에서 날뛰는 천마를 보았다.
-콰콰콰콰콰쾅!
“아버님! 그만하십시오!”
친아들인 소교주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교주는 닥치는 대로 주변의 지형지물을 파괴하고 있었다.
“파천검제! 어디 있느냐! 크하하하하하!”
‘점점 미쳐가네. 시간을 더 끌면 위험하겠어.’
지난 며칠 동안, 대인은 천마교주의 신경을 건드리고 계속 도발했다. 자신을 증오하고 집착하도록.
그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지금의 천마교주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사실 지금도 꽤 아슬아슬한 상태였다.
‘이제는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났겠지.’
“파-천-검-제-! 당장 나오지 않으면 다 죽여 버리겠다!”
콰앙! 콰콰콰쾅!
지형이 바뀔 정도로 주위를 다 때려 부수는 것만 보아도, 교주가 얼마나 제정신이 아닌지 알 수 있었다.
[이쪽에서는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 것 같소.]오죽하면 소교주 쪽에서 먼저 통신을 보낼 정도였다.
그 말에 대인도 동의했다. 이제 슬슬 계획을 실행해야 할 때였다.
‘스승님이 아직까지 안 온 건 아쉽지만···.’
이틀이면 온다던 만박노괴는 일주일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이 없었다.
전쟁이 이미 시작된 상황이라, 데리러 갈 수도 없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워야지 뭐.”
다행히 잇몸이 꽤 튼튼했다. 대인은 이어마이크를 켜고 말했다.
“아아. 여러분. 들리십니까?”
[여기는 청운. 잘 들리네.] [···천무진이오. 잘 들리오.] [허어. 이것 참 신기하구나.] [여기는 병아리!]청운, 소교주, 검성, 그리고 릴리가 순서대로 대답했다. 대인이 말했다.
“지금부터 작전명 를 시작하겠습니다. 뭔지 다 알 테니 두 번 설명 안 해도 되죠?”
모두에게서 알겠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대인은 협곡까지 남은 거리를 가늠했다. 협곡 안에는 천하삼절이 기척을 죽인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선수분들. 대기해 주세요.”
대인은 잠시 더 기다렸다가 아래로 뛰어내렸다.
휘익!
그는 난동을 부리고 있는 천마교주를 향해 달려가며 소리쳤다.
“이봐! 천마교주!”
천마가 고개를 홱 돌려 대인을 노려봤다. 대인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외쳤다.
“혹시 나 찾았어?”
“네, 노, 옴···!”
대인의 웃는 얼굴을 본 순간, 교주의 이성을 붙잡고 있던 마지막 끈이 뚝 끊어졌다.
천마교주가 짐승과도 같은 포효를 터트리며 대인에게 달려들었다.
크워어어어어어-!
그의 몸에서 치솟은 마기가 사방으로 뻗쳐나갔다. 마기와 강기가 하나로 뒤섞여, 닥치는 대로 부수고 파괴했다.
꿀꺽.
“···살벌해라.”
마른침을 삼킨 대인은 곧장 몸을 돌려서 협곡을 향해 내달렸다. 천마가 그 뒤를 무시무시한 속도로 뒤쫓았다.
겉으로는 여유 있는 표정을 지었지만, 대인의 등에서도 한 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
한 명의 청년과 두 중년이 바위 위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있었다.
그들 중 등에 다섯 자루의 창을 멘,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인이 말했다.
“형님들. 저기 옵니다.”
그 말에 옆으로 누워서 귀를 후비던 덩치 큰 중년인이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부터 엄청난 속도로 접근해오는 두 개의 강한 기가 느껴졌다.
“큭큭. 그놈 참. 발바닥에 땀 나게 뛰어오는 모양이구만.”
도왕은 자세를 고쳐서 똑바로 앉으며, 옆에 놓여있던 도를 어깨에 척 걸쳤다.
천마가 뿜어내는 마기를 느낀 도왕이 미간을 찌푸렸다. 천마의 기척이 가까워져 올수록 그의 표정은 점점 굳었다.
“이거 말로만 들었을 땐 몰랐는데···.”
오싹.
백수십 년을 살아오며 온갖 수라장을 헤쳐 온 절대고수조차, 저토록 가공할 마기와 살기는 처음 느껴보았다.
꾸욱···.
천마의 존재가 가까워질수록, 도파를 잡은 도왕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잠시 후, 대인과 그를 뒤쫓는 마귀의 형상이 보였다.
“저게 무슨···.”
대인이 뒤를 따라오는 천마교주는 더 이상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마기에 둘러싸인 3미터가량의 거인이었다.
넘실거리는 마기가 갑옷처럼 온몸을 뒤덮는 것도 모자라, 짐승처럼 네 발로 뛰었다. 흉포한 입을 크게 벌려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아아-!!
두 눈에서 붉은 흉광이 섬뜩하게 번뜩였다. 그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쫓기고 있는 대인은 옷이 여기저기 찢겨나가 있었다.
도왕과 신창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러다 저 녀석이 당하겠다.”
“···우리가 도와야겠습니다.”
그때, 눈을 감고 조용히 좌선하고 있던 검성이 말했다.
“아우들. 가만히 있게.”
“대형. 저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옵니까? 자칫하면 저 괴물이···.”
“검황의 제자가 왜 우리보고 여기서 기다리라고 한 것 같은가?”
“그야···.”
도왕은 그 이유를 잘 몰랐다. 사실 그는 대인이 이번 계획을 설명할 때 흘려들었다.
“천마가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고 몸을 사릴까 그런 것이네. 지금 우리가 기척을 드러낸다면, 천마가 이리로 오지 않고 몸을 뒤로 뺄 수도 있는 것이야.”
“대형. 허나···.”
“자네들이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아. 남궁 형님처럼, 저 아이도 천마의 손에 죽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는 게지?”
“······.”
“······.”
두 노인은 침묵했다. 천천히 눈을 뜬 검성이 의동생들을 향해 빙긋 웃었다.
“하지만 보게. 우리끼리 이야기하는 동안, 벌써 거의 다 오지 않았나?”
검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쥐었다.
그의 시선이 대인과 그 뒤를 쫓는 천마를 향했다. 둘 다 이제 거의 협곡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대인이 통신기를 통해 신호를 보냈다.
[지금!]휘이익!
검성이 하늘로 검을 던졌다. 그의 의지를 머금은 검이 협곡의 양옆에 있는 절벽을 거칠게 할퀴었다.
-콰콰콰콰콰콰콰쾅!
절벽의 한쪽이 무너져 내리며 우르르 돌무더기가 쏟아졌다. 그것은 그대로 대인과 천마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 순간 대인은 마지막 남은 순간이동 스크롤을 찢었다.
파앗-!
대인의 몸이 단숨에 수 킬로미터를 이동해서 그 자리를 벗어난 순간,
“크워어어어어어어어!”
천마는 자신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돌무더기를 바라보며 포효했다.
콰앙! 콰앙! 콰콰콰콰콰쾅!
낙석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수백, 수천 줄기의 벼락이 동시에 대지를 후려치는 것 같았다.
땅이 뒤집어질 듯한 굉음이 겨우 잠잠해지고 난 뒤, 그 자리에는 거대한 돌무덤이 쌓여 있었다.
“죽은 것은 아니겠지?”
“그 정도로 만만한 놈은 아닙니다.”
“그래도 온몸에 피멍 정도는 들었을 겝니다.”
천하삼절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돌무덤을 향해 걸어갔다.
-퍼어어어어엉!
돌무덤의 중심이 폭발하며 천마교주가 그 안에서 솟구쳤다.
“크아아아아아아!”
고통스러운 포효와 함께 천마교주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는 대인을 찾았다.
그러나 대인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한 명 한 명이 가공할 기세를 풍기는 인간들이 자신을 포위하고 있었다.
검성이 천하삼절을 대표해 물었다.
“순순히 정신을 차릴 테냐? 아니면 더 맞고 정신을 차릴 테냐?”
대답을 들을 것도 없었다. 천마는 온몸으로 마기를 뿜어내며 검성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