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트라이브 천마신교(3)
“진짜 깜짝 놀랐다니까! 그런 대단한 검술은 어디서 배운 거야?”
“······.”
“하하. 원군을 부르러 갔더니 그사이에 처리해버릴 줄은 몰랐지 뭐야. 혹시 오해하지 마. 절대 나 혼자 살겠다고 도망친 게 아니었어. 맹세할 수 있다니까?”
“······.”
“저기 히무라 상···. 대장부가 그런 일로 화가 나고 그런 거 아니지?”
잔뜩 주눅이 든 겐지의 말투에, 대인은 마치 처음 들었다는 듯 옆을 돌아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나한테 말한 거였어?”
“하하하하. 히무라 상은 유머 감각도 정말 뛰어나다니까···.”
겐지의 기름진 얼굴 위로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영주가 주최하는 연회가 시작된 후로, 겐지는 똥 마려운 개처럼 대인의 뒤만 졸래졸래 쫓아다니고 있었다.
거대 오니가 등장한 직후, 대인 일행을 내버려 두고 혼자 도망친 일 때문이었다.
그대로 대인과 그 일행이 죽어버렸다면 아무 일도 없었겠지만, 대인이 일격에 오니를 죽여 버리면서 겐지의 입장은 퍽 난감해졌다.
촌놈이라고 무시했던 무사가 영주의 연회에 정식으로 초대까지 받아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 실력도 어마어마했다.
만약 대인이 트라이브에 스카웃이라도 된다면, 단숨에 두 사람의 위치는 바뀔 터였다.
“정말 도망친 게 아니라 원군을 부르러 간 거였어. 믿어줘 히무라 상···.”
겐지가 살에 파묻힌 작은 눈으로 대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대인은 귀를 후비며 말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역전된 지 오래였다.
“난 내 눈으로 본 것만 믿거든? 아까 보니까 너 달리기 꽤 빠르더라?”
“에이. 그러지 말고···.”
겐지가 대인의 주머니에 뭔가를 슬쩍 찔러 넣었다. 대인은 살짝 주머니를 열어 확인했다.
일행이 서쪽 성벽을 통과할 때 겐지에게 찔러줬던 상급 마정석이었다.
겐지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이건 우리의 우정의 표시. 섭섭한 마음 있으면 풀라구.”
대인은 먹으려던 초밥을 접시 위에 내려놓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너 한 번만 더 나한테 윙크하면, 그땐 그 작은 눈을 다신 못 뜨게 해줄 거야.”
“미, 미안.”
“그리고 왜 하나야? 하나 더 있을 텐데?”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겐지는 어색한 웃음을 짓더니 중급 마정석을 대인의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두 손을 파리처럼 비비며 비굴한 웃음을 지었다.
“헤헤.”
간도 쓸개도 다 내줄 것만 같은 겐지의 행동에, 대인을 주시하고 있던 다른 무사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한심한 놈.’
‘저러고도 무사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겐지는 대인 옆에 바짝 붙어서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히무라 상. 궁금한 거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봐.”
“흠···.”
대인은 졸졸 따라오는 겐지를 무시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대 오니를 대신 처리해준 공으로, 대인 일행은 영주의 연회에 정식으로 초대를 받았다.
그러나 영주인 다케다 노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연회에 참석한 무사들이 흥청망청 즐기고 있었다.
‘아주 주지육림이 따로 없네.’
연회장은 화려함을 넘어 지나칠 정도로 사치스러웠다.
최고급 호텔의 연회장을 개조했는데, 감당 못 할 정도로 많은 음식과 술이 차려져 있었다.
한쪽에서는 음악에 맞춰 짧은 옷차림을 한 여자들이 춤을 추거나, 무사들의 시중을 들었다.
“흐흐흐.”
“이년! 이리 오너라.”
연회에 참석한 무사들 중 일부는 여자들을 희롱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 무사들도 다들 당연하다는 듯 그 광경을 낄낄대며 바라봤다.
‘꼬맹이들은 못 오게 하길 잘했네.’
대인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대인의 모습을, 연회에 참석한 무사들 대부분이 신경 쓰고 있었다.
‘저 녀석 검술이 그렇게 강하다고?’
‘그렇다니까. 그 큰 오니를 한 방에 해치웠다고!’
‘히무라 겐신? 그거 진짜 이름일까?’
‘그럴 리가 있나. 오타쿠겠지. 왜 그런 놈들 가끔 있잖아.’
그들이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다 들렸지만, 대인은 안 들리는 척 느긋하게 음식을 집어 먹으며 연회장 안을 돌아다녔다.
“맥주.”
대인이 옆으로 손을 뻗자, 뒤에서 그의 시종처럼 따라오던 겐지가 냉큼 맥주를 대령했다.
“헤헤. 더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너무 가까이 오진 말고.”
대인은 기름진 미소를 짓는 겐지의 얼굴을 옆으로 밀었다.
“근데 영주님은 안 오시나? 초대라기에 여기서 만나 뵐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대인의 질문에, 겐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마 안 오실걸. 워낙 모습을 드러내는 걸 조심하시는 분이라.”
트라이브 오로치의 영주 다케다 노부.
그는 유난히 조심성이 많은 영주 중 한 명이었다. 게다가 특성이 라서, 그의 진짜 얼굴은 심복들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대인은 입맛을 다셨다.
“아쉽네. 오늘 꼭 만나봤으면 했는데···.”
“저기···. 있잖아. 히무라 상.”
“왜?”
겐지가 쑥스러운 듯 몸을 배배 꼬았다. 대인은 그에게 주먹을 휘두르지 않기 위해 상당한 인내심을 발휘해야만 했다.
“우리 트라이브에 들어오면 말이야. 나 좀 잘 봐줘. 응? 내가 히무라 상 적응하는 거 열심히 도와줄 테니까.”
벌써부터 김칫국부터 마시는 그 모습에, 대인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언제 여기 들어온데? 나 직장 옮길 생각 없어.”
그러자 겐지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다 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몸값 높이려고 그러는 거지? 히무라 상 실력이면 충분히 그럴 만하지.”
“······.”
이 돼지가 뭔가 이상한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하지만 대인은 굳이 그 오해를 풀어줄 생각은 없었다.
‘보니까 다른 놈들도 다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 같고.’
도쿄 4대 트라이브에 속하는 ‘오로치’는, 일본 전국 규모로 봐도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규모가 큰 조직이었다.
그 영역 안에서 실력을 증명하고 영주의 연회에 초대까지 받았으니, 무사들이 생각하는 그 이후의 수순은 거의 같았다.
‘저 정도 실력자인데 당연히 영주님께서 영입하려고 하시겠지.’
‘갑자기 어디서 저런 괴물이 나타난 거야?’
‘저 녀석을 우리 파벌로 데려올 수 있을까?’
무사들 중 절반은 부러움의 시선을, 절반은 경계의 시선을 대인에게 보냈다.
하지만 겐지처럼 쉽게 대인에게 말을 걸어오는 무사는 없었다.
그들도 나름의 파벌이 있고, 각자의 입장을 아직 확실하게 정리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대인 옆에 찰싹 붙어있는 겐지 때문에, 다가가면 그와 똑같은 급이 될 것 같아서 다들 머뭇거리고 있었다.
“히무라 상.”
대인을 밀착 마크한 겐지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당신 실력이면 금방 위로 치고 올라갈 거야. 우리 영주님이 딴 건 몰라도 실력 우선주의는 확실하시거든.”
“얼굴도 못 봤다며?”
“헤헤. 그러니까 나는 못 본 거지.”
겐지가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두 손을 파리처럼 비볐다.
“하지만 히무라 상은 다르지. 진짜로 뵐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잘 좀 부탁할게. 히무라 상이 직접 나서기 그런 자질구레한 일, 지저분한 일은 다 나한테 맡기라구.”
겐지는 대인을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대인은 피식 웃었다.
“한번 생각해 볼게.”
“히무라 상! 아리가또!”
겐지는 허리를 숙이며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눴다.
주상욱이 굳은 표정으로 대인에게 다가온 것은 그때였다.
“···부대표님. 잠시 이야기 좀 나눌까요?”
대인은 겐지에게 둘이서 할 이야기가 있으니 비켜달라고 했다.
“히무라 상. 필요하면 아무 때나 불러.”
겐지가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떴다. 대인은 주상욱과 함께 호텔 발코니로 자리를 옮겼다.
우우웅!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기막을 형성한 대인이 물었다.
“도쿄 쪽 상황은 어떻대요?”
대인이 연회에 참석해 무사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동안, 주상욱은 실무자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자신들의 정체와 일본 정부와 접촉하려 한다는 목적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도쿄의 전체적인 상황에 대해서 제법 자세히 알게 되었다.
“···저희에겐 매우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주상욱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일본의 행정, 입법, 사법부가 모여 있는 지요다구는 알 수 없는 마력장에 의해 외부와 완전히 단절됐고, 살아남은 정부 인사들은 도쿄 도청에 모여 있는 상황.
겨우 명맥만 유지한 정부의 영향력은 미약해서, 도쿄를 장악한 대형 트라이브들을 제어하기는커녕 눈치만 보는 형편이라고 했다.
“도쿄 도청이 있는 신주쿠는 유일한 중립지대라고 하더군요. 트라이브 간에 눈치를 보느라 건드리지 않지만···. 마음만 먹으면 하루 안에 쓸어버릴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던 사실이었기에, 대인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주상욱이 한숨을 내쉬었다. 꽉 쥔 그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그의 시선은 발코니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부대표님.”
무사들이 호텔에 모여 연회를 즐기는 동안, 저 아래에는 평민이라 불리는 민간인들이 여전히 고된 노동과 배고픔에 신음하고 있었다.
“저는 이 장소, 그리고 이곳의 체제가 역겹습니다.”
‘그럴 만도 하겠지.’
주상욱은 훗날 ‘초인심판관, 사냥꾼, 처형자’ 등등 무시무시한 별명으로 불리게 되는 인물이었다.
그만큼 초인 범죄에 누구보다 강경하게 대응했던 정치인이자, 초인.
훗날 그가 통과시킨 법안 때문에 초인들은 많은 세금을 내고, 같은 죄를 저질러도 일반인보다 무거운 법의 심판을 받았다.
‘누구든 한번 찍으면 끝장을 보는 인간이었지.’
그래서 대인도 과거에는 주상욱을 무척 싫어했었다.
지금이야 뭐···.
주상욱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부대표님도 보셨을 겁니다. 장대에 걸린 시체들. 노예처럼 취급받는 시민들! 저 안에 있는 자들은 자기들이 무슨 귀족이라도 되는 듯이···!”
주상욱의 눈에, 초인들이 지배하는 이 땅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무법지대나 마찬가지였다.
“임무만 아니었다면···.”
주상욱은 치미는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일단은 일본 정부를 만나서 동맹을 맺는 것이 우선이었다.
최소한의 명분이라도 있어야 외국의 일에 간섭할 테니까.
대인은 어깨를 들썩이는 주상욱을 보며 짧게 한마디 했다.
“잘 참으셨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추태를 부렸군요. 아, 그런데···.”
주상욱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인을 바라봤다.
“듣기로는, 이곳 영주가 부대표님을 영입하려고 한다는 것 같습니다만···.”
그러면서 주상욱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대인을 바라봤다.
‘이 남자 역시 초인이다. 일본의 트라이브 체제에 그가 매력을 느낀다면···.’
순간 주상욱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대인이 이곳의 영주 따위에게 영입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미 임대인은 한국에서 가장 큰 길드의 부대표가 아닌가. 그가 지니고 있는 권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바로 그게 문제야.’
꿀꺽.
주상욱은 침을 삼키며 대인을 바라봤다.
‘만약 임대인이 일본의 트라이브 체제를 한국에 적용시킬 마음을 먹는다면···?’
과연 막을 수 있을까. 주상욱은 그런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려왔다.
씨익.
마치 그의 생각을 읽은 듯, 대인이 씩 웃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저한테 계획이 하나 있거든요?”
“계획이라니 무슨···.”
“잠시 귀 좀.”
주상욱은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털썩.
대인은 혈도를 짚어 기절시킨 주상욱을 발코니 구석에 잘 밀어 넣었다. 한동안은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도록.
“죄송한데 여기서부터는 영업 비밀이라.”
대인은 다시 연회장 안으로 걸음을 옮기며, 스승이 챙겨준 물건이 품 안에 잘 있는지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