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236
236화 도쿄 워 프로젝트(3)
가나가와현, 하다노시.
인근에서 가장 큰 트라이브, 간쇼쿠의 영주 쿠사나기 렌은 오후 내내 간부들과 함께 대책회의 중이었다.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총리한테 붙어야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무사시 & 이자나미 연합과 연맹을 맺어야 합니다!”
“제정신이야? 하룻밤 만에 만다라가 점령당했다는 거 못 들었어?”
“그래서 총리한테 붙어서 나라를 통째로 팔아넘기자고?”
“하. 언제부터 그렇게 애국자셨다고···.”
“너 이 새끼 지금 뭐라고 했어!”
한나절이나 이어진 회의는 사람들을 점점 신경질적으로 만들었다. 서로 의견이 다른 두 간부가 얼굴을 붉히며 말다툼을 벌이다 결국 멱살을 잡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만-!”
그 무의미한 다툼은 영주인 쿠사나기가 테이블을 내려치면서 끝났다. 씩씩대던 간부들이 그녀의 호통에 다시 자리에 앉았다.
쿠사나기는 간부들을 둘러보며 한숨을 쉬었다.
‘몬스터랑 싸울 줄만 알지. 정치는커녕 투표도 안 하던 놈들뿐이니···.’
거의 모든 트라이브가 그렇듯, 간쇼쿠의 간부들도 대부분 능력을 각성한 초인이었다.
그들은 사냥과 싸움에 있어서는 프로였지만, 정치적인 안건에 대해서는 쿠사나기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영주님. 차라리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있는 게 어떻습니까?”
한 간부의 조심스러운 의견에, 쿠사나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기엔 우리는 도쿄랑 너무 가까워.”
그들은 도쿄와 인접한 가나가와현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
이미 총리 쪽에서도, 무사시 & 이자나미 연합에서도 사람이 왔다 갔다.
그들은 서로 주장하는 이야기가 전혀 달랐지만, 결국 하려는 말은 똑같았다.
자기들 편에 붙으라는 것.
그러지 않으면 나중에 좋은 꼴 보긴 힘들 거라는 은근한 경고도 섞여 있었다.
“···우린 어느 쪽이든 선택을 해야만 돼.”
멀리서 구경만 하기에는 전장이 너무 가깝다. 필연적으로 휩쓸리게 될 테고, 잘못된 선택을 하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쿠사나기는 부담감에 위가 시큰거리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간부들의 의견은 무사시 & 이자나미 쪽에 조금 더 기울었다.
“솔직히 총리한테 붙으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도쿄에 있는 트라이브를 전부 불법 무장 단체라고 했는데, 그런 논리면 우리도 다 마찬가지잖아요?”
“무사시 & 이자나미 연합은 지금의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고···.”
총리는 일본을 옛날처럼 민주주의가 기반인 국가로 되돌릴 계획이었다.
3년간 트라이브 체제에 익숙해진 사람들-특히 무사 계급의 초인들-은 그에 대한 반발감이 있었다.
하지만 영주인 쿠사나기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어차피 지금 같은 체제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어. 예전처럼 민주주의 형태로 돌아가든, 누군가가 전국을 통일해서 왕이 되든 일본은 결국 다시 하나의 국가로 통일될 거야.’
그녀가 한 지방의 영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강해서이기도 했지만, 선택의 순간마다 대부분 옳은 판단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녀도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후우···.”
소득이 없는 긴 회의에, 지친 쿠사나기의 한숨이 깊어질 때였다.
두두두두···!
미약한 진동에 회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동시에 굳었다.
“지진인가?”
그들은 지진에 예민한 일본인들답게, 그리고 민간인보다 훨씬 감각이 발달한 초인들답게 미세한 진동도 쉽게 감지했다.
하지만 지진에 겁을 먹은 사람은 없었다.
이 안에 있는 사람들 전부, 건물이 통째로 무너져도 살아남을 수 있는 초인들이었으니까.
그런데···.
두두두두두···!
“진동이 점점 커지는데?”
“그냥 지진이 아니야. 한쪽 방향에서 다가오고 있어.”
쿠사나기의 말에, 모두가 동의하듯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릴 때였다.
-애애애애애앵!
사방에서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리고, 잠시 후 회의실 안으로 병사 한 명이 다급히 뛰어들었다.
“여, 영주님! 몬스터의 습격입니다!”
몬스터의 습격이란 말에 쿠사나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지 안에서 게이트라도 열린 건가?
대형이라면 탐지기에 걸렸을 텐데···.
“피해 규모는? 보스급이라도 나왔나?”
“아직 피해는 없습니다. 보스급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만···.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는데? 빨리 말해!”
“최소 수백입니다!”
“뭐?”
바보처럼 되묻는 영주에게, 병사는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설명했다.
“지금 성 밖으로 수백의 몬스터가 빠른 속도로 진군해오고 있습니다!”
잠시 후, 쿠사나기는 간부들과 함께 성벽 위로 올라갔다.
병사의 설명은 부족한 감이 있었다.
끼히-이이이잇! 끼히-이이이잇!
끼히-이이이잇! 끼히-이이이잇!
쿵! 쿵! 쿵! 쿵!
발맞춰 진군해오는 붉은 물결은 피의 바다를 연상케 했다. 폭풍우가 치는 날 거칠게 일어나는 파도, 그것은 해일이 되어 육지를 덮치려 하고 있었다.
“수백은 무슨···. 아무리 적게 봐도 천은 넘잖아.”
그 아득한 숫자에 간부들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쿠사나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전군 전투 준비-! 싸울 수 있으면 어린애든 노인이든 다 성벽 위로 올려!”
그녀의 그 외침이 신호라도 된 것처럼, 진군해오던 오니들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쿵! 쿵! 쿵쿵쿵쿵!
오니 군대의 후방에서, 남들보다 머리가 두 개 이상 큰 거대 오니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끼히-요오오오오옷!!
놈이 커다란 포효를 터트리자, 오니 군대가 지축을 울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진동에 성벽이 흔들렸다. 적들은 순식간에 성벽 밑에 도달했다.
“놈들이 넘어오면 끝이야! 어떻게든 막아!”
쿠사나기는 괴력으로 차량용 기관총을 양손에 하나씩 들었다. 총구가 불을 뿜으며 분당 수천 발의 총알이 쏟아졌다.
투타타타타타타!
투타타타타타타!
영주가 앞장서서 싸우자 다른 초인들도 각각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신체 능력이 뛰어난 초인들은 기관총이나 로켓포를 직접 들고 사용하고,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특성을 지닌 초인들은 지상에 공격을 퍼부었다.
일반 병사들이나 비상소집된 시민들도 총을 들고 싸웠다. 평소에는 민간인의 무기 소유가 엄격히 금지되어 있지만, 지금은 모두가 총 한 자루씩은 들어야 했다.
“뒈져 이 새끼들아!”
“죽어라아아!”
인간들은 악을 쓰며 공격을 퍼부었다.
성벽을 기어오르던 오니들은 벌집이 되어 아래로 떨어지고, 쏟아지는 포화에 산산조각이 났다.
그 와중에 성벽을 기어오르는 놈들도 있었다.
콰직!
성벽을 거의 다 기어오른 오니를 커다란 해머로 찍어버린 쿠사나기가 소리쳤다.
“어딜 감히 내 땅을 넘봐!”
간쇼쿠는 도쿄의 4대 트라이브에 비하면 규모도 훨씬 작고 인원도 적었다. 하지만 결속력만큼은 단단했다.
게다가 다른 트라이브에 비하면 민간인에 대한 대우도 꽤 좋은 편이었다.
때문에 초인들도, 성벽 위의 민간인들도 물러서지 않고 다 함께 몬스터 군대에 맞서 싸웠다.
전투가 시작된 지 두 시간가량이 지났다.
“놈들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이대로 버티면 충분히 막을 수 있어!”
쿠사나기는 성벽 위를 돌아다니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성벽 아래에 오니의 시체가 쌓여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끝이 보인다는 말에, 지쳐가던 병사들은 남은 힘을 다 끌어모아 싸웠다.
그때, 그들의 눈앞에서 새로운 게이트가 열렸다.
지이이이잉-!
하늘에 시커먼 구멍이 뚫리고, 그 안에서 온갖 형태의 파충류 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숫자가 지금까지 죽인 오니들보다 많았다.
“씨발···.”
쿠사나기는 해머를 잠시 바닥에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파충류 괴물들이 혀를 날름거리며, 성벽을 향해 빠르게 기어오기 시작했다.
무서운 속도로 성벽을 기어오르는 파충류 괴물들을 바라보며, 쿠사나기는 표정을 굳혔다.
‘성을 버리고 도망쳐야 하나?’
저 파충류들까지 상대하는 건 무리다. 성벽은 앞으로 한 시간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고, 적들이 성벽을 넘으면 이곳은 끝이다.
“왜 하필 우리한테···.”
“이렇게 죽긴 싫어!”
사방에서 겁에 질린 병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까지 탈영하거나 도망친 사람은 없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였다.
“전원···.”
쿠사나기의 입에서 ‘퇴각’이라는 단어가 나오려 할 때였다.
―콰콰콰콰쾅!
거대한 폭음과 함께, 몬스터 군대의 측면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무슨···.”
폭발에 휘말린 몬스터들이 비명을 지른다. 탄내와 함께 크게 피어오르는 연기. 화염과 연기가 곧 갑작스러운 돌풍에 날려 사라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부아아아아앙!
5대의 바이크가 오색의 꼬리를 남기며 질주했다.
“저, 저건 뭐야?”
“바이크?”
“갑자기 어디서···.”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5대의 바이크를 쳐다보았다.
바이크는 전부 색깔이 달랐다.
레드. 블루. 옐로우. 그린.
그리고 가장 뒤의 블랙.
색이 전부 다른 5대의 바이크가 쐐기 진형을 이룬 채 몬스터의 측후면을 공격했다.
선두이자 중앙의 붉은 바이크.
레드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손으로 검을 들었다. 바이크를 옆으로 크게 기울이며 적들을 공격 범위에 넣었다.
“녹아내려라! 마그마 소드!”
유치찬란한 기술명과 달리, 그 위력은 굉장했다.
화르르륵!
레드의 검신이 붉게 달아올랐다. 검에서 쏟아져 나온 검기에 불꽃이 더해져 적진을 휩쓸었다.
퍼버버버벙!
폭발에 휘말린 몬스터는 전부 쓸려나갔다. 성벽 위의 사람들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내 차례군.”
바이크들이 위치를 바꾸며 이번에는 블루가 선두로 나섰다.
블루는 등에 멘 창을 꺼냈다. 60센티미터 길이의 단창은 버튼을 누르자 2미터까지 길어졌다.
“얼어붙어라. 설풍.”
후우웅!
블루가 창을 휘두르자, 공격 범위에 안에 있던 몬스터들이 얼어붙더니 이내 산산조각으로 흩어졌다.
쩌적, 쩌저적!
블루의 특성 [빙결]과 창술이 시너지를 일으킨 결과였다.
“마무리는 나한테 맡겨.”
옐로우는 자리에서 완전히 일어나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핸들에서 완전히 손을 놓았지만, 만다라의 지하 연구시설에서 만든 바이크에는 자율주행 기능이 있었다.
시위에 여러 개의 화살을 건 옐로우가 외쳤다.
“받아라! 라이트닝썬더!”
오빠들에 비하면 그나마 담백한 기술명이었지만, 그 효과는 결코 담백하지 않았다.
치직, 치지직-!
화살에 하나하나에 뇌전의 힘이 담겼다. 그것은 작은 뇌룡처럼 날아가 수십의 몬스터를 관통했다.
그린과 블랙은 나설 필요도 없었다.
이 정도는 셋이서도 충분했다.
“우와···!”
“저 사람들 뭐야···?”
성벽 위에 있던 초인들, 병사들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성벽 아래에서 펼쳐지는 싸움을 지켜보기만 했다.
부아아아앙!
부아아아앙!
다섯 명의 레인저가 시속 400km 이상의 슈퍼 바이크를 타고 전장을 난도질했다.
그들이 검을 휘두르고, 창을 찌르고, 시위를 당길 때마다 몬스터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계속 그렇게 구경들만 할 거야? 이 틈에 밀어붙여!”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쿠사나기였다. 영주의 외침에, 넋을 놓고 있던 병사들도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지원군이 도착했다!”
“충분히 막아낼 수 있어!”
우와아아아!
희망을 발견한 사람들은 온 힘을 끌어내 싸웠다. 그들은 성벽을 기어오르던 몬스터들을 전부 추락시키는 데 성공했다.
성벽 위가 안전해진 것을 확인한 쿠사나기는 아래로 내려가며 외쳤다.
“성문을 열어라! 초인들은 날 따라와! 저 사람들을 도와서 몬스터 잔당을 청소한다!”
쿠구궁!
성문이 열리고, 전투 차량에 탑승한 영주와 무사들이 성 밖으로 나왔다.
정리는 쉬웠다. 몬스터 군대는 사분오열해 흩어졌고, 그마저도 레인저들이 대부분 해치웠다.
촤아아악!
마무리로 거대 오니의 목을 베어버린 레드가 바닥에 멋지게 착지했다.
쿠사나기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큰 위기를 넘겼어요.”
그녀는 고마워하는 동시에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상대는 영지를 구해준 은인들이지만, 동시에 엄청난 실력을 갖춘 초인들이었으니까.
‘한 명 한 명이 엄청나게 강해. 어디서 이런 괴물들이 나타난 거지?’
그녀와 함께 온 초인들도 경외심 반, 두려움 반인 시선으로 레인저들을 바라봤다.
‘바이크 엄청 멋있다···.’
‘무기도 되게 고급져 보여.’
‘입고 있는 거 전투 슈트 맞지?’
과거와 달리, 레인저들의 모습은 전혀 촌스럽지 않았다.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만다라의 지하 연구시설에서 최신 마정석 기술을 적용해 만든 강화 무기였고,
유니폼도 전처럼 쫄쫄이가 아닌 몬스터 신소재로 만든 강화 외골격이었다.
무엇보다, 그 안의 알맹이는 과거와 다른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성격들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
“아, 저희는···.”
쑥스러워하는 레드를 대신해, 전투 내내 뒤에서 구경만 하던 블랙이 앞으로 나섰다.
“···방해라니요. 여러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희는 큰 피해를 입었을 겁니다.”
큰 피해 정도가 아니라, 영지가 전멸할 뻔했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아도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쿠사나기는 트라이브의 영주로서 예의를 갖춰 레인저들을 대했다. 그녀는 이들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다.
“바쁘지 않으시다면 제 성으로 초대해도 될까요?”
[폐가 되는 게 아닐지···.]“전혀 아니에요.”
대인은 잠시 망설이는 척하다 영주의 초대에 응했다. 애초에 이 상황을 노리고 꾸민 이벤트였으니까.
레인저들이 성벽 안으로 들어서자 성벽 위에서 환호가 쏟아졌다.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아까 엄청 멋있었어요!”
사람들은 레인저들이 보여준 모습에 매료됐다. 그들은 오늘 직접 보고 겪은 일들을 떠들어 댈 것이고, 소문은 순식간에 다른 지역까지 퍼져나갈 터였다.
‘이렇게 영웅이 탄생하고, 전설이 시작되는 거지.’
이곳은 시작에 불과했다.
도쿄로 돌아갈 때까지, 그들은 최소 열 곳 이상의 트라이브에 들를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