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252
252화 인류 최강의 벽
한 달이라는 시간은 눈 깜빡할 사이에 흘러갔다.
그레이트 베이슨 사막(Great Basin Desert)
인류는 헬게이트라는 세계적 대재앙에 맞서기 위해 그곳에 포위망을 구축했다.
“후우···.”
왕구호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풀었다.
그는 시야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많은 숫자의 게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많구나.’
누에고치처럼 닫혀 있는 형태의 게이트들.
작은 동물이 드나들 정도로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고층 건물도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큰 것까지. 온갖 형태와 크기를 지닌 게이트가 전부 같은 주기로 맥동하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그것은 마치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울리는 고수의 북소리 같기도 했고, 잠시 후 저 안에서 쏟아져 나올 수많은 악마들의 심장 소리 같기도 했다.
꿀꺽.
왕구호는 침을 삼키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는 세계에서 알아보는 유명한 초인이 되었지만, 왕구호는 여전히 전투를 앞두면 긴장이 되었다.
“···아무도 죽지 않아야 할 텐데.”
그 이유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말이다.
[현장에 알립니다. 20분 후, 퍼스트-헬게이트가 열릴 예정입니다.]컨트롤타워인 마왕성에서의 방송이었다. 왕구호는 고개를 들어 하늘 높이 떠 있는 마왕성을 바라봤다.
마왕성은 헬게이트가 발생하는 중심지의 하늘 위에 떠 있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적들은 전부 저곳으로 몰려갈 텐데···.’
왕구호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마왕성에 주둔하고 있는 백영희 매니저님, 주 팀장님, 그리고 장영신 등이 걱정됐다.
“역시 너무 위험해···.”
“오지랖은. 얀마. 저긴 핵폭탄이 단체로 떨어져도 멀쩡해.”
“아, 민재 형.”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민재가 후방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악마화]를 유지하고 있는 민재의 전신이 은빛으로 빛났다.
“후방에 있는 팀들은 어때요?”
“긴장 좀 풀라고 엉덩이 한 대씩 차주니까 괜찮아지더라.”
왕구호 옆에 내려선 민재가 킥킥 웃으며 말했다.
7개월 전에 비해, [악마화]한 민재의 육체는 놀랍도록 날렵해진 모습이었다.
3미터가 넘던 거구는 평범한 인간 정도로 줄어들었고(그래도 거구였지만), 커다랗던 2개의 뿔은 새끼손톱 마디만큼 작아져서 이마 위에 살짝 돋아난 정도였다.
그러나 예전보다 작아졌다고 약해진 느낌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힘이 훨씬 압축되고 정제된 느낌.
사납기만 하던 짐승이 노련한 사냥꾼으로 변한 듯, 여유로운 미소마저 보였다.
그 미소에 왕구호는 마음이 조금 놓이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다들 오늘을 위해서 힘들게 훈련했으니까요.”
“힘들었던 정도냐. 진짜 죽어라 했지···.”
민재는 왕구호 옆에 나란히 서서 퍼스트-헬게이트가 열리는 것을 기다렸다.
[현장에 알립니다. 15분 후, 퍼스트-헬게이트가 열릴 예정입니다.]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저거···. 맥박이 조금씩 빨라지는 거 맞지?”
“네. 맞아요.”
두 사람은 긴장한 표정으로 퍼스트-헬게이트를 바라봤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병력이 긴장한 채 그 모습을 주시하고 있었다.
수천 개가 넘는 거대한 누에고치가 부풀어 올랐다 가라앉고, 다시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그에 따라 쿵! 쿵! 쿵! 쿵! 공기가 진동하면서 공명된 파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츠츠츠츳···.
대기 중의 마력이 변화하고, 특이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치지직.
그리고 방송이 끊겼다. 광범위 마나 펄스가 발생해서 일대의 전자기기를 전부 먹통으로 만들어버렸다.
“곧 시작이군.”
“드디어···.”
충분히 예상했던 상황이기에 사람들은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았다.
전자기기가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통신이 불가능해진 것은 아니었다.
[여기는 미국 초인 연합. 통신 양호합니다.] [중국도 양호합니다.] [러시아 양호.] [남미 연합입니다. 살짝 노이즈가 끼는 것 같습니다만···.]초인들은 가이아 대륙에서 공수해온 통신 아티팩트를 활용해 통신을 유지했다.
“다들 별로 긴장한 것 같지가 않네요. 나만 이렇게 떨리나···.”
민재는 우는소리를 하는 왕구호를 옆에서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자식은 아직도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른다니까.’
하긴 백날 말해줘 봤자 소용없다.
왕구호는 그런 녀석이니까. 여전히 자신감이 다소 부족하고, 호구같이 착하고, 가끔은 답답할 정도로 우직한 녀석.
민재는 왕구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잖냐. 대인 형님이 저놈들에 대해서 다 알려줬는데. 우리가 왜 쫄아야 돼?”
“···그건 그렇지만.”
왕구호는 대인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빛냈다.
한참 전에 부대표로 승진한 대인이지만, 왕구호에게 임대인은 영원한 ‘팀장님’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팀장님은 이름도 모르던 나를 구해주셨지.’
왕구호가 블랙하운드 길드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시절. 그는 어눌한 말투에 소심한 성격의 반쪽짜리 탱커였다.
대왕 달팽이의 공격에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모든 길드원들이 외면하던 왕구호를 구해준 사람이 바로 대인이었다.
‘···그전까지는 모든 사람들이 날 이용하려고만 했었어.’
-야. 네 개성은 그렇게 쓰는 게 아냐.
귀찮은 듯 툭 내뱉은 말.
그게 왕구호가 기억하는 대인의 첫 모습이었다.
이후에 대인은 왕구호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블랙하운드 길드에 찾아오고, 김태진 대표와 맞서기까지 했다.
“···팀장님 밑에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돌이켜보면 즐거운 고생이었다.
하루하루 강해지는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었고,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것은 왕구호가 처음 겪어본 행복이었다.
내가 어딘가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
그 고양감은 자존감이 부족했던 왕구호의 성격을 조금씩 바꾸었다.
어릴 때 부모님을 잃고 고아원에서 주변 눈치를 보며 자란 소년은, 어느덧 당당한 청년이 되었다.
비록 여전히 소심한 편이긴 했지만.
‘나도 팀장님께 보답을 하고 싶어. 그분이 원하는 걸 내가 해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팀장님이 아끼는 사람들이 죽게 하지는 않을 거예요.”
왕구호가 다짐하듯 중얼거릴 때였다.
위이이이이이이이잉!
하늘 위 마왕성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퍼스트-헬게이트 출현까지 5분 이하가 남았다는 신호였다.
“후우···.”
왕구호는 심호흡을 하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럼 7팀. 움직이겠습니다.”
왕구호가 이어마이크에 대고 말하자, 그의 뒤로 다른 팀원들이 하나둘 따라붙었다.
“드디어 시작이네.”
하얀 이를 드러낸 민재가 왕구호의 오른편에 섰고,
우끼이이!
키야아아아아!
얼마 전에 팀에 편입된 금오와 말랑이(금오가 거대화한 말랑이 위에 타고 있었다)가 왕구호의 왼편에 섰다.
““네! 알겠습니다!””
대인이 직접 뽑은 S급 재능의 팀원들이 절도 있는 자세로 왕구호 팀장의 뒤에 섰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수백 명의 한국 초인들이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척척척척.
선두의 왕구호를 필두로, 오와 열을 맞춰 걷는 한국 초인들의 모습은 장관을 이뤘다.
‘WH-7팀이다!’
‘한국 초인 연합이 선두에 나서는군.’
‘저 남자가 미스터 왕···.’
한국 초인들이 위치한 곳은 전장의 최전선.
가장 많은 헬게이트가 열리고, 가장 많은 괴물들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이었다.
여러 국가의 군인들, 그리고 초인들은 경외심과 부러움이 담긴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특히 대부분의 시선은 선두에서 초인들을 이끄는 왕구호에게 집중돼 있었다.
‘단신으로 재앙급 사태를 막을 수 있는 남자.’
‘인류 최강의 벽.’
‘세계 10대 초인···.’
전 세계의 초인들 중에서, 최강의 딜러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여러 대답이 나올 것이다.
미국 최강의 히어로 헤라클레스.
중국의 염동력 능력자 류 웨이.
한국의 무신(武神) 백창수.
이 셋 외에도, ‘누가 최강의 딜러냐?’라는 질문에는 수많은 후보가 등장해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최고의 탱커가 누구냐는 질문에는 열에 아홉이 한 사람의 이름을 이야기한다.
지난 7개월 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활약을 펼친 WH-7팀.
그들의 팀장.
인류 최강의 벽, 왕구호.
“여러분은 잠시 대기하세요. 여기서부터는 저 혼자 갑니다.”
왕구호는 홀로 걸어가며 특성을 발동했다.
드드드드드득!
그의 온몸이 황금빛으로 뒤덮이며,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쿵! 쿵! 쿠웅···!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그의 몸이 점점 커져 갔다.
5미터, 10미터, 20미터, 30미터···.
성채처럼 부풀어 오른 황금 거인은 선두의 가장 큰 헬게이트와 불과 100미터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
울룩불룩.
울룩불룩.
누에고치가 거칠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몇몇은 이미 약간씩 찢어진 것이 보였다.
피막에 가려졌던 게이트 너머로, 흉험한 존재들의 눈동자가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크르르르르···.
크르르르르···.
왕구호는 놈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누구보다 앞에서 보고 들었다. 그는 온몸의 마력을 끌어 올렸다.
그때 백창수의 전음이 들려왔다.
[구호야. 오늘 컨디션은 어떠냐?]태연하게 묻고 있지만,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왕구호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전음을 보냈다.
[완전 좋습니다. 사흘 밤낮이라도 싸울 수 있을 것 같아요.]백창수는 본진에 남아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선두에서 싸우길 좋아하는 초인이지만, 맡은 역할이 있어 ‘아직’은 현장에 나서지 않았다.
[너 혼자 다 처치하면 내 몫이 줄어드니까 적당히 해라. 알았지?]위험해질 것 같으면 바로 뒤로 물러나라는 뜻이다.
왕구호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늦으시면 대표님 몫은 없습니다.] [자식이···. 알았다. 나중에 보자.]수천 개의 누에고치가 부화하고 있었다. 부풀어 오른 게이트의 피막이 찢어지고, 그 안에서 괴물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찌이이이이익···!
지옥이 통째로 넘어오는 듯한 광경이었다. 차마 형용하기 힘든 괴물들이 수천 개의 구멍에서 쏟아지고, 미끄러지고, 울컥울컥 토해냈다.
크르르르르르···.
크르르르르르···.
마수와 악마들이 쏟아지면서 사막이 일순간 암적색으로 물들었다. 놈들은 인간의 자궁을 찢고 태어난 에이리언처럼 게걸스럽게 입을 벌리고 침을 흘렸다.
“으으···.”
“미친···.”
수많은 경험을 한 베테랑 초인들조차, 일순간 그 광경에 압도당해 몸이 굳어버릴 정도.
왕구호가 멈췄던 걸음을 다시 걷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쿵! 쿵! 쿠웅!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그의 몸에서 뿜어지는 황금빛이 강렬해졌다.
그 빛은 게이트에서 쏟아진 마수들과 악마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적의 예봉을 꺾는다. 그게 내 역할.”
중얼거린 왕구호는 발을 들었다가 힘껏 굴렀다.
콰아아아아앙-!
단순한 발 구르기가 아니었다. 마력을 한껏 담아서 바닥을 찍자, 사막의 모래 위로 마력의 파동이 퍼져 나갔다.
그 파동은 적의 시선을 하나로 모으기에 충분했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온갖 마수, 악마들을 향해 왕구호는 온 힘을 다해 포효했다.
“와라―!”
동시에 그의 발아래에서 초인 특성 [암석화]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동조(同調)화.’
이제 왕구호는 자신의 특성 [암석화]를 자신이 아닌 다른 물체에도 사용해, 그것을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모래 벽.”
사막의 모래에 자신의 능력을 덧씌운 후, 적들이 달려오는 정면에 강철보다 단단한 모래 벽을 수십 미터 높이로 일으킨다거나,
“모래 창.”
바닥에서 날카로운 모래 창이 솟구치게 해 수많은 적들을 꿰어버릴 수도 있었다.
푹푹푹푹!
전력으로 달려오던 마수들이 벽에 부딪쳐 피떡이 되고, 아래에서 솟구친 모래 창에 몸에 구멍이 뻥뻥 뚫렸다.
갑자기 사막 한가운데 유사가 생겨나, 달려오던 마수들이 그 안으로 빨려들며 허우적거렸다.
적의 예봉으로 튀어나온 수천의 마수들 중 대부분이 쓰러졌다.
전부 왕구호의 작품이었다.
“인류 최강의 벽이라더니···.”
“벽 정도가 아니잖아.”
초인들은 경외감 가득한 눈으로 인류 최강의 벽이 만든 광경을 바라봤다.
사막은 인류 최강의 벽이 최강의 창으로도 변할 수 있는 무대였다.
그러나 왕구호는 그들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한차례 길게 심호흡을 한 후, 허리를 곧게 폈다.
“휴우. 겨우 막았다.”
혼자서 적의 예봉을 막아낸 사내는 이마를 훔치며 소심하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뒤에서,
“공격-!”
민재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연합군의 공격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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