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258
258화 마지막 퍼즐의 행방
“아저씨···.”
릴리는 지구로 돌아가지 못하고 다른 차원만 돌아다니는 일에 지쳤는지, 무척 피곤한 모습이었다.
“우리 지구로 언제 돌아가?”
“조금만 참아. 여기서 마지막 보석만 찾으면 바로 돌아갈 거니까.”
“맨날 그 소리. 얼마나 쪼금인데?”
대인은 통통 부은 볼을 쭉 잡아당겼다가 놓았다.
“아마 오늘이면 끝날걸.”
“···이번엔 진짜지?”
“그렇다니까. 준비 끝났으면 나가자.”
“응!”
두 사람은 함께 막사 밖으로 나갔다. 곧바로 커다란 성의 모습이 보였다.
신성 아르테리아 왕국.
그 수도이자 신의 이름이기도 한 ‘아르만’을 둘러싼 성벽은, 오랜 세월 신의 가호를 받아 두터운 신성력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웬만한 드래곤이라도 저 성벽을 힘으로 뚫는 건 무리지. 아브락사스 정도 되는 고룡이라면 또 모를까···.’
하지만 아브락사스는 지금 곁에 없었다.
다른 중요한 일을 맡고 있어서, 이곳으로 불러올 수도 없는 상황.
결국 이번에도 대인은 릴리와 둘이서 일을 해결해야 했다.
그리고 지난 한 달 동안, 그들은 ‘마지막 보석’을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진짜 다른 의도는 없었는데.’
두 사람이 밖으로 나오자 주위에서 엄청난 함성이 쏟아졌다.
“우와아아아아!”
“···쩝.”
결과적으로 상황이 이렇게 된 건, 몇 가지 우연이 겹쳐서일 뿐, 결코 대인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우와아아아아!”
“아르만의 사자께서 오셨다!”
“타락한 왕을 무찌르고 아르만의 영광을 되찾자!”
“우리는 성전에서 승리할 것이다!”
대인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수만 병사의 뜨거운 눈빛과 함성에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그때 그에게 다가온 두 사람이 있었다.
“아르만의 아들이시여.”
허리를 깊이 숙이는 마른 남자는 40대 중반 가량의 사제로, 이 나라에서 신앙심이 가장 깊기로 유명한 테미안 추기경이었다.
“···성전을 치를 준비가 끝났습니다.”
다른 한 명은 찬란한 은발의 여인이었다.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으나, 안타깝게도 두 눈의 초점이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장님이었다.
“음. 수고들 하셨습니다.”
대인은 그들을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속마음은 상당히 복잡했다.
‘하다하다 이젠 신의 아들이라니.’
신정일치 국가인 이 나라는, 교황이 곧 왕이자 신의 대리자였다.
하지만 지금 이 나라는 극도로 부패해 있었다.
교황은 향락과 사치에 빠져 나라를 돌보지 않았으며, 간신들이 나라를 장악해 백성을 쥐어짜 냈다.
대인과 릴리가 이 세계에 도착한 것은 그 폭정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였다.
‘난 그냥 헬게이트를 막는 데 필요한 마지막 신의 보석을 수소문하러 돌아다닌 것뿐인데···.’
마지막 보석의 정보를 얻기 위해 이곳까지 오는 동안, 두 사람은 다른 세계에서 했던 것처럼 가끔씩 ‘착한 일’을 했다.
문제는, 지금 대인에게서 은은한 후광이 흐른다는 것이었다.
우우우웅···!
지난 몇 달 동안 찾아낸 4개의 ‘신의 보석’ 때문이었다.
‘어마어마한 신성력. 역시 이분은···.’
‘신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시는 분···.’
반란군을 이끄는 추기경과 눈먼 성녀는 대인의 앞에서 저절로 몸과 마음이 공손해지는 것을 느꼈다.
터무니없는 오해였지만, 두 사람은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대인도 굳이 사람들의 오해를 적극적으로 풀려고 하지 않았다.
정보를 얻으려면 이곳 사람들에게 호의를 사는 편이 좋았으니까.
‘그리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수만 명이나 되는 반란군을 데리고 왕국 수도까지 진격해 버린 것이다.
“···진짜 웃기지도 않는 코미디라니까.”
대인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국말로 중얼거렸다.
그 모습조차, 성전에 참여한 병사들에게는 신에게 뜻을 묻는 것처럼 보였다.
병사들이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아르만의 아들이시여!”
“저희는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습니다!”
대인이 이 땅에 나타난 순간부터, 긴 절망에 빠져 있던 백성들 사이에서는 조금씩 소문이 돌았다.
-아르만께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내려보내셨다.
-드디어 구원의 그날이 왔다.
-타락한 교황과 간신들에게 신벌이 내려질 것이다!
소문을 들은 테미안 추기경이 먼저 대인을 찾아왔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그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점점 몰려들었다.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려는 귀족과 병사들이 나타났고, 릴리가 불꽃을 일으켜 그들을 혼내줬다.
그 후 악질 귀족에게 정보를 캐내면서 모처에 감금돼 있던 ‘눈먼 성녀’를 구출하게 되었고,
···성녀는 대인을 ‘아르만의 아들’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눈덩이처럼 추종자들이 늘어나더니···.’
그들은 벌어진 전투마다 전부 승리했다.
(대인은 덤벼오는 놈들이 있어서 적당히 패서 쫓아냈을 뿐이다.)
나중에는 귀족들이 알아서 항복하면서 병력이 늘어났다.
(···정보와 헌금을 가져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소문은 추종자보다 더 순식간에 불어났다.
(이제 무를 수도 없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저분께서 가시는 길에는 항상 기적이 일어난다!”
“썩어빠진 교황과 사제들을 쫓아내자!”
“아르만의 아들딸이 우리와 함께하신다!”
“우와아아아아!”
신의 아들.
신성 아르테리아 왕국에 온 지 고작 한 달 만에 대인이 얻은 칭호였다.
‘왜 항상 이렇게 되는 거지?’
이젠 대인이 걸어 다니기만 해도 길이 열리고, 사람들이 울고불고 엎드려 기도하는 지경이었다.
자신을 보고 용기백배한 반란군 병사들을 둘러보며, 대인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뭐, 일단은 지구와의 동맹을 위해서는 한동안은 신의 아들인 척하는 게 낫겠지.’
신성 왕국은 뛰어난 사제들이 많기로 유명했다.
이들과 동맹을 맺는다면, 헬게이트를 막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보석도 찾고 동맹도 맺고. 꿩도 보고 알도 먹고.’
그렇게 한 달이나 왕국을 들쑤시고 다닌 덕에 ‘마지막 보석’이 어디 있는지 정보를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곳 왕국의 수도.
교황이 그것을 숨기고 있다고 했다.
“테미안 추기경. 교황에게 답신은 왔습니까?”
하루 전, 대인은 교황에게 사정을 설명하는 편지를 보냈다.
-나는 지구라는 차원에서 왔고, 그곳에는 마왕들이 쳐들어오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마왕들을 막지 못하면, 놈들은 지구를 점령한 후에 결국 이 땅에도 쳐들어올 것이다.
-놈들을 막기 위해서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신의 보석이 필요하다.
-순순히 신의 보석을 넘긴다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그런 내용이었다.
그러나 테미안 추기경은 고개를 저었다.
“전령으로 보낸 병사의 두 팔을 잘라서 돌려보냈습니다.”
대인의 미간이 구겨졌다.
결국 거절이라니.
웬만하면 대화로 잘 해결하고 싶었는데···.
‘하긴, 이렇게 군사를 잔뜩 몰고 왔으니 대화로 끝내기는 힘들겠지.’
물론 정중하게 찾아가서 부탁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나라의 교황이 폭군이고 쓰레기라는 사실은, 전생에서도 유명했으니까.
‘그런데 교황이 폭군이 되는 건 몇 년 뒤로 알고 있는데···. 시간이 앞당겨진 게 한두 개가 아니긴 하지만.’
대인은 잠시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털어내며 추기경에게 말했다.
“그 병사는 잘 치료해주세요. 팔 잘린 것도 붙여주시고.”
“이미 치료 중입니다.”
추기경의 신성력이면 팔다리가 잘린 정도야 쉽게 치료할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대인은 뒤를 돌아봤다.
수만의 병사가 대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교황의 오랜 폭정에 시달려 뛰쳐나온 청년들,
권력에 억눌려 있던 귀족과 그 병사들,
파문이 두려워 옳은 말을 하지 못했던 사제들.
모두 큰 결심을 한 표정으로 신의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참 부담스럽네.”
옆에서 릴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소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아저씨 때문에 못살겠다니까. 착한 일도 적당히 해야지.”
“까불기는.”
릴리에게 가볍게 꿀밤을 먹인 대인은 추기경과 성녀에게 말했다.
“그럼 10분 후에 공격을 시작하겠습니다. 저랑 꼬맹이가 선봉에 서죠. 두 분께서 성벽의 신성력을 중화해 주세요.”
“드디어···.”
“예!”
두 사람의 얼굴에 환희의 감정이 떠올랐다.
잠시 후, 반란군은 성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대인과 릴리는 선두로 나섰다.
“꼬맹이. 네가 먼저 해. 네 공격에 약해지면 내가 잘라서 열 테니까.”
“빨리 끝내고 집에 가자!”
화르르륵!
릴리의 머리 위에 오색찬란한 불꽃이 피어올랐고,
스르르륵···.
대인의 아공간에서 빠져나온 수십 자루의 검이 성문을 향해 검극을 겨눴다.
추기경과 성녀, 사제들이 일으킨 신성력이 성벽의 강력한 신성력 방어막을 중화시켰다.
지이이··· 이이잉!
두터운 신성력의 방어막이 걷히고 맨살을 드러낸 성문을 향해,
“꼬맹이. 지금!”
릴리가 만들어낸 불꽃이 날아갔다.
콰콰콰콰콰쾅!
왕국의 수도가 함락되기까지,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
“감히, 감히이···!”
신성 아르테리아 왕국의 교황이자 왕.
오시리우스 3세는 세 겹으로 접힌 턱살을 부들부들 떨었다.
“파문이다! 너희 전부 파문이야!”
그는 두꺼운 손가락으로 반역자들에게 삿대질을 했다.
그러나 평소 같았으면 눈도 마주치지 못했을 자들이, 지금은 똑바로 눈을 치켜뜨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지막이라도 교황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습니까?”
슬픈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추기경에게, 오시리우스 왕은 시뻘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테미안! 이 배은망덕한 놈! 누가 널 추기경으로 임명했는데!”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한 것은 아르만이시오. 그분에 대한 신앙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단 말이오.”
파아아앗-!
테미안 추기경의 몸에서 신성력이 퍼져 나와 대전을 가득 채웠다.
그에 반해, 교황의 몸에서는 미미한 신성력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이익! 전부 파문이다! 네놈들 전부 지옥으로 떨어져 영원히 고통받을 것이야!”
고래고래 소리치며 뒤룩뒤룩 살이 찐 몸을 파들파들 떨어댈 뿐.
대전 안에 교황의 편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성문이 뚫리는 순간 병사들은 대부분 도망쳤고, 신성력을 잃은 신성기사단은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
그나마 신성력이 남아 있는 기사들은 고뇌 끝에 검을 거두거나, 오히려 반란군의 편이 되었다.
교황은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옥좌에서 강제로 끌어내려 졌다.
그는 반쯤 실성한 표정으로 외쳤다.
“나는 아르만의 대리자이자, 이 나라의 왕이다! 전부 지옥에 떨어지고 싶으냐! 악마의 꼬임에 넘어간 것이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짜악!
교황의 얼굴이 크게 돌아갔다.
“가, 감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선명한 붉은 자국이 남은 뺨을 움켜쥐는 교황에게, 눈먼 성녀가 말했다.
“당신에겐 더 이상 신을 대리할 자격이 없다. 너는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 떨어져 영원히 구원받지 못하리라!”
성녀의 말은 예언이자 저주처럼 들렸다.
“으으, 으으으으···.”
교황은 홀로 빙하 한가운데 떨어진 듯 몸을 감싸며 부들부들 떨었다.
대인은 그가 완전히 정신이 나가기 전에 앞으로 나섰다.
“잠깐만. 물어볼 게 있는데.”
“······.”
신성 아르테리아 왕국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검은 머리의 사내.
대인을 본 순간 오시리우스 교황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떨었다.
“너로구나! 네가 누구인지 안다! 나를 파멸시키기 위해 마왕이 보낸 주구로다!”
“나참. 마왕 막으려고 뼈 빠지게 돌아다니는 사람한테···.”
대인은 황당하다는 듯 투덜거렸다.
그는 추기경과 눈먼 성녀에게 양해를 구한 후, 교황을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아르만의 힘이 깃든 보석, 어디 있는지 당신밖에 모른다며? 그게 필요해.”
“······.”
교황은 입을 다물고 대인을 노려봤다. 대인은 조용히 설득에 들어갔다.
“지금 분위기 보이지? 사람들이 당신을 때려죽이고 싶어서 안달 난 거.”
“······.”
“보석만 넘기면 안전은 내가 보장하지. 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할 수 있어.”
물론 안전은 보장할 생각이었다. 지구에 있는 감옥에 적당히 넣어두면 되니까.
“이대로 죽기엔 남은 인생이 너무 아깝잖아? 신께 참회의 기도도 드리고, 봉사활동도 오래 하면 혹시 알아? 죽어서 천국으로 가게 해주실지?”
갑자기 교황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어댔다.
“푸흐흐···.”
타이어에서 천천히 바람이 빠지듯, 무척이나 힘없는 웃음이었다.
‘뭐지?’
대인은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런 경우에 그의 예감은 틀린 적이 거의 없었다.
교황은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미 늦었다.”
“···뭐?”
“보석은 나한테 없어. 이미 그들이 가져갔다.”
“무슨 소리야? 가져가다니. 누가?”
그 순간, 교황의 두 눈에서 흰자위가 사라지며 온통 검게 변했다.
스스슷···.
동시에 신성력이라고는 한 톨도 느껴지지 않던 교황의 몸에서, 갑자기 불길한 마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울룩불룩.
기형적으로 자라나는 몸. 팔다리가 연체동물처럼 휘면서 몸을 휘감고, 손가락이 분화하며 수십 개의 촉수로 변했다.
[그 대가로 나는 이 힘을 얻었다!]퍼펑! 퍼엉! 퍼버벙!
촉수가 천장을 뚫고, 벽을 파괴하며 사방으로 자라났다. 그 본체의 크기가 순식간에 십 미터를 훌쩍 넘었다.
“악마다!”
“교황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어!”
놀란 병사들이 소리치며 무기를 휘둘렀다.
까앙! 까가강!
그러나 웬만한 공격으로는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
대인은 가만히 촉수 괴물을 바라보았다.
놈을 죽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저것보다 강한 놈들도 숱하게 사냥해 봤으니까.
문제는 놈의 이마에 새겨진 표식이었다.
“저건···.”
불타오르는 육망성.
그 안에 새겨진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악마들의 얼굴.
대인이 익히 잘 아는 조직의 표식이었다.
“아저씨. 저거···.”
릴리가 대인의 옆으로 다가와 그의 손을 잡았다. 대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판데모니움의 표식이야.”
대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