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355
355화 (외전) 앗, 아앗···!
창밖에는 진눈깨비가 어지럽게 흩날리고 있었다.
“크크···.”
도왕은 창밖을 바라보며 허망하게 웃었다.
병실에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웃음.
창을 활짝 열어놓은 탓에, 입에서 새하얀 김이 새어 나왔다.
-어쩌다 보니 제가 어르신 대신 땜빵으로 나가기로 했어요.
손에 쥔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도왕은 방금 전 대인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병실에는 스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방금 전에도 간호사들이 와서 창문을 닫는 게 좋겠다고 말하려다가, 도왕의 두 눈에서 일렁이는 시퍼런 귀화를 보고는 합죽이가 되어 돌아갔다.
“날 대신해 파천검제를 끌어들였다···. 크큭. 그 늙은이들이 제법 머리를 썼구나.”
도왕은 자신을 버리고 미팅에 나간 의형제들을 ‘늙은이들’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더 이상 그들을 형제로 여기지 않겠다는 의미.
“허나 그것이 더할 나위 없는 악수가 될 것이다···.”
도왕의 머릿속에는 어떤 음모가 꿈틀거리며 자라나고 있었다.
세간에는 도왕의 체격과 무지막지한 도법 때문에, 그의 머리가 나쁘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머리가 나빠서는 결코 절세고수가 될 수 없는 법.
다만 몸이 너무 강해지니 머리를 쓸 일이 별로 없어서 지금까지 안 쓰고 있었을 뿐이다.
“내 반드시 너희에게 뼈저린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그 늙은이들을 가장 깊은 절망에 빠뜨릴 계획을 떠올리며 도왕은 비죽 웃었다.
그는 떠올린 계획을 머릿속에서 천천히 점검해 보았다.
‘무력으로 그 멤버를 미팅 장소에 못 나가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파천검제까지 더해졌으니···.’
국가 전력의 군대가 앞을 가로막아도 모조리 절단 내고 지나갈 자들이 아닌가!
때문에 무력으로 미팅 장소에 못 가게 하는 것은 어불성설.
하지만 무력만이 미팅을 훼방 놓을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도왕은 미간을 좁히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파천검제. 그 녀석이 나 대신 미팅에 나간단 말이지···.’
아까 대인과 전화 통화를 한 이후로, 도왕의 머릿속에는 대인을 이용해 이 미팅을 파투 낼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사실 세 늙은이만큼은 아니지만, 대인도 도왕의 눈에는 곱게 보이지 않았다.
‘인기도 많은 놈이 미팅까지 나가려 해? 이런 천벌을 받을 놈 같으니!’
저런 놈들 때문에 자신처럼 어디 하나 부족할 것 없는 사내가 여태 홀몸인 것이 아닌가!
“너도 맛 좀 봐라 이놈아.”
결심을 내린 도왕은 전화기를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 신호가 간 후, 건너편에서 앳된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도왕 어르신?
“현아. 잘 지냈느냐?”
전화를 받은 상대는 검황문의 문주 남궁현이었다.
한동안 남궁현과 안부를 주고받던 도왕은 자연스럽게 본론을 꺼냈다.
“그런데 말이다. 너 파천검제 소식 들었느냐?”
-···대인 오라버니 소식이요? 무슨 일 있나요?
예상대로다.
그 이름이 나오자마자 남궁현의 목소리가 변한 것이 느껴졌다.
도왕은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으며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었다.
“몰랐느냐? 오늘 형님들이랑 같이 미팅 나간다고 하던데 말이다.”
-미··· 뭐라구욧?
남궁현의 목소리가 뾰족해졌다. 도왕은 퍽 난감한 목소리를 연기하며 말했다.
“이런. 내가 괜한 소리를 한 모양이구나. 난 당연히 너도 아는 줄 알고···.”
-어르신. 그 얘기 자세히 좀 해주세요.
“허어. 이를 어쩐다. 누가 알면 내가 고자질이라도···.”
-그런 거 절대 아니니까 말해주세요. 저 죽는 꼴 보고 싶으신 거 아니죠?
“거참. 남궁 형님과의 인연도 있으니 너한테 말을 안 할 수도 없고···. 대신 이거 나한테 들었다는 것은 비밀로 해줄 게지?
-물론이죠. 그래서 미팅 장소가 어디예요? 지구예요?
“지구는 아니고 노스탤 대륙이라고···.”
도왕에게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전해 들은 남궁현이 “잠시만요.”라고 말하더니 잠시 휴대폰을 귀에서 떼고 누군가를 불렀다.
-비영! 지금 당장 본문의 최정예를 소집하세요!
-존명!
그리고 다시 휴대폰을 든 남궁현은 한기가 풀풀 날리는 목소리로 도왕에게 말했다.
-감사해요 어르신. 이번 일 끝나고 인사하러 찾아뵐게요.
“그러려무나. 이것저것 준비하려면 바쁠 테니 이만 끊으마.”
전화를 끊은 후, 도왕은 들썩이는 어깨를 한동안 주체하지 못했다.
“크크크크···. 이로써 대계의 삼분지 일은 완성되었다.”
물론 이 정도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도왕은 곧바로 두 번째 전화를 걸었다.
곧 수화기 너머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누구요. 적 형이 아니신가!
“하하! 그간 격조하였소이다. 레너드 경. 잘 지냈소?
전화를 받은 상대는 힉스 왕국의 기사단장이자 최고령 소드마스터, 레너드 경이었다.
마계와의 전쟁이 끝난 후, 무림사존과 레너드 경은 같은 노인이란 이유로-물론 무림사존이 훨씬 연상이었지만-공감대를 형성하고 금세 친해졌다.
이후에도 그들은 종종 만나며 교분을 쌓아왔기에, 두 사람의 통화는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충분히 뜸을 들인 도왕은 흘려 말하듯 가볍게 화제를 꺼냈다.
“그런데 파천검제 말이오. 그 아이가 요즘 부쩍 외로운가 보오.”
-···임대인 공 말이오? 무슨 일이라도 있소?
레너드 경은 대인의 이름 뒤에 꼬박꼬박 공을 붙였다.
대인은 그와 앨리나 여왕의 목숨을 구해주고, 나아가서는 그를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이르게 해준 은인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별건 아니고. 그 아이가 형님들과 함께 미팅에 나간다기에···.
-미팅이 무엇이오?
“···커흠. 아 그게···.”
예상외의 질문에 도왕은 잠시 당황했으나, 곧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가며 설명하는 데 성공했다.
레너드 경의 반응은 굉장했다!
-뭣이? 이 바람둥이 같은 놈이! 우리 폐하는 어쩌고 딴 여자를 만나!
은인이든 어쨌든 괘씸한 건 괘씸한 레너드 경이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그가 씩씩대는 것이 느껴졌다.
“허허. 진정하시구려.”
-지금 어떻게 진정하게 되었···! 후우. 미안하오. 당신에게 화낼 일이 아니지. 일단 폐하께 이 소식을 전해 드려야겠소! 당장 대책회의를···.
도왕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를 어쩐다. 내가 괜히 말을 꺼내서 일을 크게 만든 게 아닌가 싶은데···.”
-무슨 말씀을. 내 이 은혜는 잊지 않겠소. 일단 당장 왕국기사단과 마법병단을 움직일 수 있는지 알아보고···. 내 나중에 또 연락하리다!
레너드가 급히 전화를 끊었다. 도왕은 통화가 끊긴 휴대폰을 가만히 내려 보았다.
“크크···. 크하하하!!”
그의 광소가 병실 안을 쩌렁쩌렁하게 뒤흔들었다.
복도 밖에서 간호사들이 “저 할아버지 미친 거 아냐?” “미친 거 같은데.” “사람 불러야 되는 거 아냐?” 하고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통쾌한 기분이었다.
“이것으로 마무리를 지어야겠군.”
도왕은 세 번째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WH그룹의 실질적인 경영자이자 차원 허브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여자.
바로 백영희였다.
-네. 도왕님. 무슨 일이세요?
이번에도 잠시 안부를 주고받은 후, 도왕은 은근슬쩍 말을 꺼냈다.
“혹시 그거 아느냐? 파천검제 말이다. 그 녀석이 오늘···.”
-미팅에 나간다는 거요?
“···아, 알고 있었느냐?”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지금 고민 중이었어요. 어떻게 깽판을 치러 갈지.
놀랍게도 백영희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도왕이 왜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는지도 짐작하고 있었다.
-부대표님이 도왕님 대신에 땜빵으로 나가는 거라면서요? 속이 많이 상하시겠어요.
“그럼 너에게는 딱히 숨길 필요가 없겠구나···.”
-네. 도왕님이 원하는 거랑 제가 원하는 거랑 같은 것 같으니까요.
“크크크크···. 그렇단 말이지···. 따로 계획이 있느냐?”
그렇게 가장 유쾌했던 통화가 종료되고, 도왕은 후련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그가 뒷짐을 진 채 부드럽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니들은 이제 x됐다. 망할 늙은이들아.”
남궁현, 앨리나, 백영희.
차원 허브에서 가장 강력한 힘과 권력을 지닌 여자들이 저들의 미팅을 방해하러 갈 것이다.
물론 그들이 노리는 건 임대인이 다른 여자를 못 만나게 하는 것이지만, 그 와중에 다른 사람들까지 휩쓸려 미팅 자체가 파투가 날 가능성이야 충분하지 않은가?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이쪽이 아닌 저쪽 주최자.
“혹시 모르니 용제에게도 전화를 해둬야겠군.”
전화를 막상 걸려고 하니, 이번에는 도왕도 조금 망설여졌다.
백삼십이 넘도록 강호를 주유하면서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었지만, 그에게도 인간이 아닌 규격 외의 존재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꿀꺽.”
그래도 타오르는 복수심에 더 컸기에, 도왕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누구야?
···분명 예전에 전화번호를 교환한 것 같은데. 일방적인 교환이었던 모양이다.
도왕은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용제여. 나 도왕이오.”
-도왕이 누구···. 아 무극이가 데리고 다니는 애들 중에 칼 쓰는 애?
따지고 싶은 것이 많은 평가였지만, 일단 아쉬운 것은 이쪽이었기에 도왕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용제여. 그대의 도움이 필요하오.”
-갑자기 뭔 도움? 너 사고 쳤니?
수화기 너머에서 아브락사스가 흥미롭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림사존과는 마계 전쟁을 함께한 결사대 멤버지만, 그녀는 천무극 외에는 이렇다 할 친분이 없었다.
도왕이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혹···. 오늘 있을 미팅에 대해서 알고 계시오?”
-알다마다. 임대인한테 부탁받아서 내가 직접 제일 예쁜 애들로 섭외했는걸. 그게 왜?
제일 예쁜 애들이라니!
도왕은 더더욱 이 미팅을 성사시켜선 안 된다고 필사적으로 다짐했다.
“솔직하게 말하리다. 이 미팅은 성사되어서는 안 되오! 그 금수만도 못한 놈들이 어여쁜 처자들을 만나게 해선 안 된단 말이오!”
한 맺힌 노인의 외침에 아브락사스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휴대폰을 바라봤다.
-너 뭐 잘못 먹었니?
“내 다 솔직히 말하리다···.”
도왕은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아브락사스는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아하하하! 그러니까 네가 미팅에 못 나가게 됐으니까 애들 시켜서 깽판을 놓겠다? 이거 완전 심술보 할아버지잖아?
“당신은 모르오. 놈들이 얼마나 비열하고 간악한지! 어쨌든···. 도와줄 수 있소?”
-흐응. 꽤 재미있어 보이긴 하는데···.
아브락사스가 묘한 뉘앙스를 남기고 뜸을 들이자 도왕은 초조해졌다.
-근데 말이야. 미팅을 아예 파투 내는 건 나도 좀 곤란해. 오랜만에 화장도 하고 꾸미고 있었단 말야.
‘당신이 왜?’
그런 의문이 들었으나, 도왕이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브락사스가 먼저 말했다.
-대신 나한테 그거보다 더 좋은 생각이 있어.
“더 좋은 생각?”
그 순간, 아브락사스는 도왕보다 수십 배는 더 교활하게 웃고 있었다.
-괜히 애들 시켜서 차원 전쟁급 사태를 일으키지 말고. 아예 미팅 멤버를 바꿔버리면 어때?
“앗, 아앗···!”
도왕은 온몸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세 노인이 뒤바뀐 미팅 멤버들과 마주한 순간 느낄, 그 지독한 절망을 맛본 것만으로 말이다.
***
“어떻게 이럴 수가···.”
“이게 대체···.”
“왜, 왜, 어째서!”
세 노인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테이블 너머의 여성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하나같이 아름다웠다.
그들이 상상했던 그 이상으로.
문제는 저 여성들이 그들과 교제가 가능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타앙!
천무극은 테이블을 내리치며 아브락사스를 노려보았다.
“엘프들이 아니지 않소!”
“얘들이 웬만한 엘프보다 더 예쁜데?”
“지금 그런 문제가 아니지 않소이까!”
천무극이 얼굴이 새빨개져서 따지고 들었지만, 아브락사스는 우아하게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웃을 뿐이었다. 오늘따라 그녀는 화사했다.
“어머 몰랐어? 도왕이랑 다 얘기가 된 줄 알았는데.”
“···도왕? 여기서 군양이 이름이 왜 나온단 말이오?”
도왕은 몰랐다.
드래곤 로드는 결코 한 인간만 편애해서 절망에 빠뜨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도왕 걔가···.”
아브락사스는 태연하게 도왕에게 이 모든 사태의 후폭풍을 떠넘겼다.
반응은 굉장했다!
“이런 찢어 죽일 놈이!”
“허허허···.”
“물귀신이라 이거지···.”
세 노인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천무극은 자신의 옆에 돌처럼 굳어 있는 제자를 힐끗 보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아브락사스에게 말했다.
“이건 무효요. 장난은 그만하고 진짜 엘프들을 불러오시오.”
“걔네는 이미 돌아갔어. 안 그래도 너희들이 상대라니까 좀 부담스러워했거든.”
“아니 우리가 어디가 어때서!”
천무극이 벌떡 일어나 따지고 들려고 하는 순간, 그의 어깨 위에 손 하나가 올라왔다.
검성이었다.
“천 형. 그만하시오. 닿지 않은 인연을 억지로 붙들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소.”
“이놈아! 지금 그런 말이 나오느냐?”
천무극의 어깨를 잡은 검성이 고개를 저었다.
“사실 나는 여기 올 때부터 마음에 불편했소. 나는 이만 먼저 가보겠소.”
“간다니? 갑자기 무슨 소리냐?”
자리에서 일어난 검성은 뒷짐을 지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곳에 오는 내내, 아니 오늘 아침부터 계속 희진 소저의 얼굴이 내 머릿속에 떠나지 않았소.”
희진은 장영신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검성은 차라리 홀가분해졌다며 빙긋 웃었다.
“나는 희진 씨에게 가 보겠소. 더 늦기 전에 정식으로 데이트 신청을 할 생각이오.”
검성은 그 말을 남기고, 신법을 펼쳐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천마는 황당하다는 듯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인연은 무슨···. 저거 지는 어차피 만날 여자가 있다 이거 아니냐?”
“오늘은 틀린 것 같으니 나도 이만 가겠소.”
드르륵.
신창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두 눈이 복수심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너, 너도? 어딜 가겠단 게냐?”
“···한때 형제라고 믿었던 자를 응징하러 갈 생각이오.”
그자가 누군지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신창도 떠났다.
홀로 남은 천무극은 허탈한 얼굴로 테이블 반대편에 앉은 네 여인을 바라보았다.
넷 중 셋의 시선이 대인에게 못 박힌 듯 꽂혀 있었다.
식은땀을 삐질 흘리는 제자의 모습도 그에겐 얄미워 보일 뿐이었다.
‘얄미운 놈. 누군 하나도 없는데 셋이나···.’
분위기를 보니 여기 더 있다간 자신도 좋은 꼴은 못 볼 것 같았다.
툭툭.
대인의 어깨를 두드린 천무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해 보거라. 나도 이만 가볼 테니···.”
그 순간, 덥석 뻗어 나온 손이 천무극의 손목을 붙잡았다.
“가긴 어딜 가?”
“또 뭐요?”
천무극은 퉁명스럽게 말하며 아브락사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유일하게 대인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빤히 천무극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미팅 안 할 거야?”
“무슨···.”
화려한 드레스에 장신구.
평소 잘 하지 않던 화장에 아찔한 하이힐,
그리고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장미 향.
작정하고 꾸미고 나온 아브락사스는 평소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크, 크흠!”
괜히 얼굴이 붉어진 천무극이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잡힌 손목을 빼내려 했지만, 이상하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미팅은 무슨. 그대 때문에 일을 다 그르치지 않았소. 결국 제자 놈만 좋은 일 시켜주게···.”
이상하게 투정 부리듯 말하게 되는 건 왜일까?
가슴은 왜 이리 간질간질한 것이지?
저 앵두 같은 입술은 왜 이리 탐스러워 보이는지···.
그때 아브락사스가 천무극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난 처음부터 너 보러 왔는데. 원래 미팅 멤버에는 낄 생각이었거든?”
“무, 무, 무슨···!”
당황해서 얼굴을 붉히는 천마에게, 드래곤 로드가 찡긋 윙크를 하며 말했다.
“우리 무극이. 누나는 별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