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39
39화 눈눈몬
아이언 골렘의 주먹과 내 주먹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아아앙!
충돌의 여파로 내 몸이 십 미터 이상 주르륵 밀려났다. 체급의 차이는 어쩔 수가 없었다.
나와 달리 아이언 골렘은 제자리에 굳건히 서 있었다.
하지만 녀석의 상태도 좋다고만은 할 수는 없었다.
뼈가 저릿저릿하기는 해도 멀쩡한 내 왼팔과 달리, 골렘의 오른손 주먹은 반쯤 뭉개져 있었으니까.
골렘은 자신의 주먹과 내 주먹을 번갈아 바라봤다. 녀석의 두 눈이 한순간 더 붉게 빛났다.
[침입자 위험도 레벨 재조정···.]저기, 굳이 안 그래도 될 것 같은데.
[자체 복원기능 활성화.]스르르륵.
아이언 골렘의 찌그러진 주먹이 원래대로 돌아오더니, 심지어 더 두꺼워졌다.
나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봤다.
“너 설정이 좀 이상하지 않냐? 마법이든 SF든 둘 중 하나만 하지?”
아이언 골렘은 대답 대신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쿵쿵쿵쿵쿵!
엄청난 중량을 자랑하는 만큼 아이언 골렘은 그렇게 빠르지는 않았다. 나는 투우소를 상대하는 투우사처럼 녀석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옆으로 휙 피했다.
그 순간 아이언 골렘이 몸을 옆으로 꺾었고, 등에 달린 추진기가 불을 뿜었다.
순식간에 내 눈앞으로 들이닥친 아이언 골렘이 주먹을 휘둘렀다.
-후우우우웅!
내 몸통만한 주먹이 머리 위를 스쳐지나갔다.
나는 몸을 아래로 낮추고, 그 상태에서 그대로 아이언 골렘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우우우우웅!
나는 왼손의 건틀릿에 모여든 마나를, 녀석의 가슴에 꽂아 넣었다.
-콰아아아앙!
뒤로 튕겨 날아간 아이언 골렘은 벽에 부딪친 후에야 멈춰 섰다.
한방 크게 먹였지만, 내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더럽게 단단하네.”
나름대로 회심의 일격이었는데도, 골렘은 멀쩡하게 다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제대로 타격을 주려면 머리를 노려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침입자 위험도 레벨 재조정···. 상위 무기 기능해제.]철퇴의 형태였던 골렘의 두 주먹이 창으로 변하더니, 드릴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이잉!
저거 말하는 투도 그렇고, 이쯤 되면 골렘이 아니라 인공지능 로봇이라고 불러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아이언 골렘이 다시 내게 덤벼들었다. 내 공격에 움푹 파였던 가슴은 벌써 거의 다 복원 돼 있었다.
나는 저릿저릿한 왼팔을 오른손을 주무르면서 투덜거렸다.
“이 이상은 아직 무린데.”
방금 전 공격이 건틀릿의 최대출력은 아니었다.
최대출력은커녕, 내 생각에는 겨우 10%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겨우 10%만으로도 내 육체에 상당한 부담을 줬다.
본능과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15%이상의 힘을 끌어내면 팔이 부러지고,
20%이상이면 왼팔이 산산조각 날 거라는 걸.
그 이상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쓸 생각도 없고.
-후우우웅!
골렘의 창이 내 얼굴을 한 뼘 차이로 지나갔다.
공격이 지나가면서 놈의 옆구리에 커다란 빈틈이 보였지만, 나는 굳이 그걸 노리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팔 하나 망가지는 걸 감수하면, 나는 충분히 이 녀석을 박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뼈와 살이 부딪치는 격렬한 싸움.
그 끝에 쟁취하는 승리.
말은 좋다.
나는 그렇게 싸우다 다치고, 골병들고, 결국 병신이 되는 초인들을 여럿 봐왔다.
그 중 십중팔구는 알콜 중독자가 되거나 마약에 손을 댔다.
모두가 자신의 희생을 잊었다며 세상을 원망하다 결국 범죄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내게 많은 교훈을 줬다.
인생은 가늘고 길게.
안 아프고 건강하게.
싸움은 확실히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하라고.
콰콰콰콰쾅!
회전창이 내 옆을 지나쳐 벽을 꿰뚫었다. 나는 옆으로 몸을 날렸다.
쾅! 쾅쾅쾅쾅쾅!
아이언 골렘은 동굴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나를 쫓아다녔다.
하지만 나는 요리조리 다 빠져나가며 녀석의 공격패턴을 관찰했다.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왕구호가 저 녀석을 묶고, 꼬맹이가 불로 녹이고, 내가 적절한 시점에 마무리를 한다면?
내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맺혔다.
“안전하게 클리어 가능.”
충분히 놈의 데이터를 모았으니, 슬슬 집으로 돌아가도 될 것 같았다.
그나저나 꼬맹이는 지금쯤 밥 다 먹고 자고 있겠지?
자기 전에 이빨이나 제대로 닦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뒤로 쭉 물러나면서 거리를 벌렸다. 상황을 봐서 벽을 부수고 내뺄 생각이었다.
[침입자 행동패턴 분석. 도주 가능성 80%]내 의도를 눈치 챘는지, 아이언 골렘이 등의 추진기에서 불을 뿜으며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나는 뒤로 물러나는 속도를 조금씩 줄이면서, 왼 주먹을 옆구리에 바짝 붙였다.
우우우우우웅!
건틀릿 출력 10%.
치직, 치지직-
여기에 벽력권.
이정도면 몇 초간 못 따라오게 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그때 우리 둘 사이로 통통한 눈눈이가 날아들었다.
[싸, 싸우지 마랏!]겁에 질린 통통한 눈눈이의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녀석은 짧은 두 팔을 파닥거리며, 내게 달려오는 아이언 골렘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눈눈몬! 대인은 우리 친구닷! 싸우지 마랏!]“저 멍청이가···.”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나보다 아이언 골렘이 더 빨랐다.
나는 뒤로 물러나면서 녀석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고, 녀석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으니까.
곧 통통한 눈눈이는 죽는다.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골렘의 거체가 통통한 눈눈이를 뭉개버리고 내게 달려드는 그림이 그려졌다.
나는 그 다음 상황에 대비하며 싸울 계산을 했다.
[······.]그런데 골렘의 창끝이 멈췄다.
통통한 눈눈이 앞에서 멈춰 선 아이언 골렘이, 마치 에러난 기계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때서야 통통한 눈눈이가 감았던 눈을 뜨며 소리쳤다.
[눈눈몬! 싸우지 마랏! 대인도 너도 내 친구닷! 우린 모두 친구닷!] [제거 대상이 아님. 제거 대상이···.]지금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저리 비켜!”
휘익!
통통한 눈눈이의 꼬리를 잡아 옆으로 집어 던지고, 충전이 완료된 왼주먹으로 골렘의 얼굴을 후려쳤다.
출력은 살짝 높여서 12% 정도.
-콰아아아아앙!
이건 100% 제대로 들어갔다. 골렘의 몸이 크게 휘청거리더니 바닥에 넘어졌다.
-쿠웅!
나는 곧바로 쓰러진 골렘의 가슴 위에 올라탔다.
“이렇게 되면 또 말이 달라지지.”
원래 한 방 먹이고 도망가려고 했지만, 지금 내 아래 쓰러져 있는 아이언 골렘은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대인! 눈눈몬 때리지 마랏!]통통한 눈눈이가 뒤에서 날아오면서 외쳤지만, 나는 그 말을 무시했다.
“얘기는 좀 있다가 하자.”
아이언 골렘의 얼굴 위로, 내 펀치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쾅쾅쾅쾅쾅쾅쾅!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손을 털고 일어났다.
내 앞에는 완전히 무력화된 아이언 골렘이 누워 있었다.
[으아아앙! 눈눈몬!]눈눈이들이 몰려와서 그 앞에서 울고 있었다. 나는 얼얼한 주먹을 주무르며 한숨을 쉬었다.
“걔는 살아있는 생물이 아냐. 골렘이라는 마법인형이지.”
통통한 눈눈이가 나를 마구 비난했다. 나는 억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쟤가 먼저 공격했는데? 그럼 내가 죽었어야 돼?”
[그건 아니지만···. 눈눈몬! 죽으면 안 된닷! 일어나랏!] [······.]아이언 골렘은 대답이 없었다. 한쪽 눈은 깨져서 빛을 잃은 모습이었고, 남은 한쪽 눈은 한번 씩 빛이 들어왔다가 나가기를 반복했다.
스륵, 스르륵.
신체의 망가진 부분이 조금씩 재생되고 있었지만, 그 속도는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이 골렘은 매우 수준 높은 마도공학 기술의 결정체였다.
거창하게 영혼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자아를 가진 것은 분명했다.
이 녀석과 눈눈이들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나야 모르지만, 아까 그 상황에서 주먹을 멈추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로서는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지만,
결국 운도 실력이다.
“이봐 골렘. 이정도면 자격은 충분히 증명하지 않았냐?”
내 말에, 아이언 골렘의 눈이 마지막으로 선명하게 빛났다.
[시련···종료···.]골렘의 가슴이 세로로 열리더니, 그 안에서 작은 상자 하나가 밖으로 튀어 나왔다.
나는 상자를 받아서 바로 열어보았다. 신비하게 일렁이는 무늬의 검은색 열쇠가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좋아. 물건은 확인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언 골렘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듯 소리를 냈다.
[임무···완료···.]겨우겨우 깜빡이던 한쪽 눈이 거의 빛을 잃었다.
[기동···중지···.]이내 아이언 골렘의 눈에서 빛이 완전히 사라지자, 눈눈이들이 대성통곡을 했다.
[[[눈눈몬-!!]]]‘눈눈몬’은 노스탤 대륙어로 ‘신성한 강철’이라는 뜻이다.
보아하니, 이 녀석들은 골렘에게 이름까지 지어주고 함께 놀았던 모양이다.
나는 그 어처구니없는 한편의 신파드라마를 지켜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만 좀 하고 집에 가자.”
통통한 눈눈이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대인은 이제 우리 친구 아니닷! 친구는 친구를 안 죽인닷!]“그래서 안 죽였잖아.”
[뭐, 뭐라곳?! 거짓말이닷!]화들짝 놀라는 통통한 눈눈이에게, 나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이 녀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말해주자.
“잠깐 잠든 거야. 다시 깨울 수 있어.”
통통한 눈눈이가 내 손바닥 위에 꼬리를 올리더니, 이내 꼬리가 초록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진짜닷-!!] [[눈눈몬이 살아 있닷-!!]]금세 신이 난 눈눈이들이 쓰러져 있는 아이언 골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이것들 감정기복은 진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눈눈몬의 거체를 일으켜서 들어보았다.
“끙. 좀 무겁긴 한데···. 어떻게 들고 가져갈 수는 있겠네.”
[[우리도 도와준닷!!]]“그건 당연한 거고.”
이런 수준의 마도공학기술로 만들어진 아이언 골렘은 지금 지구의 기술로는 절대 만들 수 없었다.
하지만 가져가서 잘만 연구하면, 재부팅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작자] 개성을 초인이 있다면 말이지.
장영신 그 꼬맹이. 새로운 장난감에 아마 눈에 불을 켜고 달려 들 거다.
“뭐, 어차피 이건 덤이고.”
나는 눈눈몬을 다시 바닥에 내려놓고, 동굴 한쪽에 있는 벽으로 걸어갔다.
벽은 나와 눈눈몬의 싸움에도 거의 손상되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다.
어떤 차원의 신화로 보이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별로 중요한 건 아니었다.
나는 벽면의 작은 구멍에 눈눈몬에게 받은 열쇠를 끼워 넣었다.
끼릭. 끼리릭.
열쇠가 저절로 돌아가더니, 벽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좌우로 갈라졌다.
나는 그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이곳에, 내가 재앙에 대비해 찾으러 온 ‘이계의 힘’이 있었다.